•  


[順命]권노갑 回顧錄 <17>김중권의 牽制|東亞日報 </17>

[順命]권노갑 回顧錄 <17>김중권의 牽制

  • 東亞日報
  • 入力 2014年 5月 10日 03時 00分


코멘트

“金室長의 報告가 事實입니까” DJ 메신저가 찾아왔다

○日本 亡命

김대중 大統領이 就任한 1998年, 나는 8·15 特赦로 풀려나 日本으로 亡命 아닌 亡命을 떠났다. 當時 내가 閑步事件으로 收監되었던 것이 抑鬱한 일이었음은 김대중 국민회의 總裁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大統領에 當選되기 前 金 總裁는 黨內 律士 數十 名을 불러 이렇게 말씀했다.

“權 議員이 陋名을 쓰고 抑鬱한 獄살이를 하고 있다. 包括的 賂物罪라는 것은 전두환, 노태우 大統領에게만 適用되었던 罪目인데, 이 法이 國會議員에게 適用된 것은 權 議員이 처음이다. 그러니 어떻게든 權 議員을 求해보시오.”

그리고 金 總裁는 평창동에 있는 내 집으로 直接 찾아와서 “어떻게든 名譽回復을 시켜주겠다”고 約束했고, 이에 집사람은 눈물을 흘리며 고마워했다.

그러나 막상 赦免復權이 되자 나는 大統領에게 누가 되지 않기 위하여 日本行을 決心했던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김중권 室長에 對해 좋은 印象을 갖고 있었다.

出國 前날 김대중 大統領은 나를 面對한 자리에서 “日本에 가거든 熱心히 工夫하게. 國際關係나 東北亞情勢, 그리고 統一問題 等을 工夫하게나”라고 말씀했다.

그래서 日本에 건너간 뒤 게이오대의 韓國 問題 專門家로 有名한 오코노기 마사오(小此木政夫) 敎授의 助言과 도움을 얻으며 大學 硏究員 生活을 繼續해 나갔다.

○한화갑의 建議

그런데 그해 末쯤, 한화갑 院內總務가 靑瓦臺에 들어가서 나의 歸國 問題를 大統領에게 建議했다고 한다. “저 혼자 일할 순 없으니 노갑이 兄과 함께 일할 수 있도록 歸國을 許諾해주십시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大統領은 아무런 答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한화갑 總務가 다시 靑瓦臺에 들어가 나의 歸國問題를 建議했고, 그러자 大統領은 “조용히 들어오라고 하게”라며 許諾했다는 것이다.

한화갑 總務는 이 같은 事實을 第3者를 통해 日本에 있던 나에게 알려왔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送年會 等으로 世間의 耳目이 集中되지 않을 것 같은 12月 31日을 擇해 金浦空港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어떻게 알았는지 金浦空港엔 수많은 同志들이 마중 나와 있었다.

歸國 後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나에 對한 歸國建議가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은 김중권 祕書室長이 나를 牽制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黨僚들이나 國會議員들, 그리고 나와 가까웠던 記者들이 찾아와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는 그 말을 귀담아듣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出國 前 김중권 室長을 만났을 때의 좋은 印象을 그때까지 지니고 있었던 까닭이다.

그런데 그 後 들려오는 이야기가 김중권 室長이 나에 對해 좋지 않은 報告를 大統領께 올린다는 것이었다. 그 內容은 正確히 모르지만 그 때문에 大統領이 많이 苦悶하신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風聞은 어디까지나 風聞이라 나는 半信半疑했다. 그러다가 한番은 大統領이 第3者를 통해 問題의 報告가 事實인가를 直接 確認해 왔기 때문에 그 風聞이 事實無根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전언자에게 自初至終을 說明했고, 大統領은 전언자의 報告를 듣고 나에 對한 誤解를 풀었다고 한다.

事實 나는 김중권 氏가 祕書室長으로 있는 2年 동안은 人事 같은 問題는 아예 기웃거리지도 못했다. 내가 그나마 總選 落薦者들과 黨僚들을 公企業體로 보내는 役割을 맡게 된 것은 祕書室長이 김중권 씨에서 한광옥 議員으로 交替된 後였다.

○黨 代表 김중권

김중권 氏는 16代 總選 때 慶北 蔚珍에서 出馬하여 落選했으나, 그해 7月 “東西和合의 다리가 되어 政權 再創出의 디딤돌이 되겠다”며 黨內 最高委員 競選에 出馬했다.

當時 最高委員 競選 不出馬를 宣言했던 나는 김중권 氏가 當選될 수 있도록 뒤에서 黨僚들을 說得했다. 민주당이 全國 政黨이 되기 위해서는 김중권 氏 같은 嶺南 出身의 最高委員이 나오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김중권 氏는 그해 最高委員에 當選되었다. 그리고 그해 말 정동영 議員의 發言 波動으로 내가 任命職 最高委員을 물러난 直後에 民主黨 代表가 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國政을 다루는 祕書室長은 몰라도 김중권 最高委員이 黨 代表가 되는 것은 反對였다. 그래서 나는 大統領에게 電話를 걸어 김중권 最高委員보다는 김원기 議員이 낫다고 推薦했다.

내가 ‘김중권 代表’를 反對한 것은 正統性의 缺如 때문이었다. 김원기 議員은 평민당 出身으로 正統性이 있지만, 김중권 最高委員은 민정당에 몸담았던 사람이었다.

大統領은 내 建議를 듣고 알았다고만 말씀하셨다. 하지만 그 後 한광옥 祕書室長이 김중권 氏가 黨 代表에 內定되었다는 通報를 해왔다. 나는 大統領이 決定한 以上 그를 돕기로 했다. 그러나 黨에 뿌리가 없는 김중권 代表는 그 뒤 黨 統率問題로 相當히 苦戰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眞實인데, 2001年 5月 31日 김중권 代表와 가까웠던 추미애 議員은 議員 워크숍에서 그동안 김중권 代表가 黨을 잘 이끌어 왔는데 내가 오랫동안 同苦同樂해온 同志들을 위해 그해 3月 麻浦 事務室을 연 것이 힘을 빼는 契機가 되었다고 攻擊했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國民議政府 初代 祕書室長이 김중권 氏였다면 마지막 祕書室長은 朴趾源 氏다.  

▼ “늘 내 일을 妨害한게 권노갑氏요”

‘東橋洞 兩甲’ 권노갑-한화갑의 愛憎

 

“東橋洞 同志들은 前부터 서로 ‘한番 東橋洞 맨이면 永遠한 東橋洞 맨’이라는 弄談을 하곤 한다. 그만큼 剛한 紐帶感과 結束力을 갖고 있다. 오랜 歲月 동안 김대중 總裁를 모시고 同苦同樂하면서 생겨난 人間的 信賴가 없었다면 생각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信賴가 總裁에 對한 忠誠心을 낳았다. 世間에서는 이를 盲目的인 忠誠이라 批判도 하는 模樣이지만, 事實은 그렇지 않다. 한화갑 同志는 ‘옳은 것에의 服從’이며 ‘實證的 眞實에 對한 服從’이라고 表現한 일이 있다.”(권노갑 顧問의 1999年 回顧錄 ‘누군가의 버팀木이 되는 삶이 아름답다’ 中에서)

권노갑은 朴正熙 政權 時節 中央情報部에 끌려가 拷問을 當할 때 搜査官이 놓고 간 볼펜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차라리 저걸로 내 눈을 찔러버리면 暫時라도 顧問을 멈춰주려나….’ 그런 歲月은 무언가를 期待하는 忠誠心만으로는 버텨낼 수 없다.

그건, 趙芝薰 詩人이 외친 것처럼 오직 旬日(純一)한 精神을 지키기 위한 불타는 信念, 눈물겨운 精誠, 冷徹한 確執(確執), 高貴한 鬪爭일 수밖에 없다. 아니 그게 아니면 說明할 수 없는 歲月이다.

하지만 동교동系도 사람이라, DJ가 世上을 떠난 뒤 많은 變化가 있었다.

권노갑과 함께 ‘동교동系의 量甲(兩甲)’으로 불린 한화갑 前 民主黨 代表(75)의 變身이 代表的이다. 18代 大選을 앞두고 朴槿惠 支持를 宣言한 뒤, 한화갑은 新東亞 記者에게 이렇게 털어놨다.

―동교동系에서 ‘彭’당한 理由가 뭐라고 생각합니까.

“이봐요. 世上을 제대로 알아야 해요. 政治人이 사람을 쓸 때는 必要해서 쓰는 것이지, 키워주려고 쓰는 게 아닙니다.”

―DJ가 그랬다는 말씀인가요?

“모든 指導者가 다 그래요. 그걸 알고 自己 자리를 잡아야 합니다. 나는 無條件 충성하려고 한 사람이었지만 말이오.”

한화갑은 그리고 권노갑에 對해 이렇게 말했다. “나보다 여덟 살 많은데 나는 그의 相對가 못돼. 그는 내가 하려는 일을 늘 妨害했어.”

事實이다. 한화갑은 1995年 地方選擧 때 全南道知事에 出馬하려 했다. 권노갑이 막았다. “總裁가 나한테 道知事 나가라고 했지만 내가 그럴 수 없다고 했다. 總裁가 大選을 準備 中인데 같은 (全南) 신안 出身인 자네가 道知事를 나간다는 게 말이 되는가?”

한화갑은 ‘포스트 DJ’를 꿈꿨다. 권노갑은 그것도 막았다. 신라호텔에서 한화갑의 ‘東橋洞 動機’인 김옥두 事務總長까지 ‘證人’으로 앉혀놓고 3가지 理由를 대며 안 된다고 말렸다. 兵役未畢이고, 故鄕이 新安日 뿐 아니라, 무엇보다 동교동 祕書 出身이 어떻게 大統領을 하겠다는 것이냐고 막았다. 代身 黨 代表를 하라고 했다. 實際로 DJ의 承諾까지 받아 亦是 김옥두가 있는 자리에서 通報했다.

DJ는 권노갑의 얘기를 듣고 난 다음 딱 한마디만 덧붙였다고 한다. “(한화갑은 안 된다고) 자네가 너무 나서지는 말게.”

김창혁 專門記者 chang@donga.com
#권노갑 #김중권 #朴趾源 #東橋洞 #조지훈
  • 좋아요
    0
  • 슬퍼요
    0
  • 火나요
    0
  • 推薦해요

댓글 0

只今 뜨는 뉴스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의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전통문화연구회 "울산대학교한국어처리연구실 옥철영(IT융합전공)교수팀"에서 개발한 한글한자자동변환기를 바탕하여 지속적으로 공동 연구 개발하고 있는 서비스입니다.
- 현재 고유명사(인명, 지명등)을 비롯한 여러 변환오류가 있으며 이를 해결하고자 많은 연구 개발을 진행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이를 인지하시고 다른 곳에서 인용시 한자 변환 결과를 한번 더 검토하시고 사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변환오류 및 건의,문의사항은 juntong@juntong.or.kr로 메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Copyright ⓒ 2020 By '전통문화연구회(傳統文化硏究會)' All Rights reserved.
 한국   대만   중국   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