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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 軟骨 다 닳았지만…주짓수로 땀 흠뻑 흘려야 사는 맛 느껴요”[양종구의 100歲 時代 健康法]|東亞日報

“무릎 軟骨 다 닳았지만…주짓수로 땀 흠뻑 흘려야 사는 맛 느껴요”[양종구의 100歲 時代 健康法]

  • 東亞日報
  • 入力 2022年 11月 19日 14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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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캐프너 敎授가 주짓수 練習을 始作하기 앞서 基本 姿勢를 取했다. 美國 跆拳道 國家代表 出身인 그는 負傷으로 兩쪽 무릎 軟骨이 다 닳았지만 株 2, 3回 주짓수를 즐기며 健康을 다지고 있다. 전영한 記者 scoopjyh@donga.com
 映畫 ‘흐르는 江물처럼’으로 有名한 美國 몬태나주에서 태어나 자연스럽게 어릴 때부터 스키를 즐겼다. 몬태나는 스키의 名所이다. 里샤오룽(李小龍) 映畫에 푹 빠지면서 14살부터는 跆拳道를 배우기 始作했다. 美國 跆拳道國家代表까지 지낸 스티븐 캐프너 서울여대 英文科 敎授는 滿 63歲에도 激烈한 주짓수로 健康을 다지고 있다. 그는 어릴 때부터 自然스럽게 平生 運動을 生活해온 터라 움직이지 않는 것은 죽은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負傷으로 兩쪽 무릎 手術을 各 5番씩 받아 軟骨이 다 닳았죠. 하지만 株 2, 3回 주짓수로 땀을 흠뻑 흘려야 사는 맛을 느껴요. 1990年代 末 주짓수를 배운 뒤 무릎 탓에 跆拳道에서 더 以上 발차기를 할 수 없게 됐죠. 그 때부터 跆拳道 代身 주짓수로 健康을 챙기고 있습니다.”

캐프너 敎授는 1999年 韓國에서 주짓수를 만났다.

“1999年 美國 하버드대에서 工夫하다 韓國에 暫時 온 존 프랭클이란 親舊로부터 주짓수를 傳受 받았어요. 前 跆拳道와 誘導를 다하고 있었기 때문에 相對的으로 쉽게 배울 수 있었죠. 연세대에 주짓수 동아리를 만들었고 所聞을 듣고 찾아온 10餘名이 함께 배웠죠. 그게 韓國 주짓수의 始作이 됐습니다.”

스티븐 캐프너 敎授(아래)가 바닥에 누워 주짓수 技術을 선보이고 있다. 美國 跆拳道 國家代表 出身인 그는 負傷으로 兩쪽 무릎 軟骨이 다 닳았지만 株 2, 3回 주짓수를 즐기며 健康을 다지고 있다. 전영한 記者 scoopjyh@donga.com
當時 이화여대 通飜譯大學院에서 講義하던 캐프너 敎授는 梨大 體育館에서 跆拳道 동아리를 이끌고 있었다. 韓國 跆拳道國家代表 等 엘리트 選手 出身도 있었다. 蹴球와 野球, 登山 동아리는 많았지만 格鬪技 동아리는 없었던 때였다. 美國에선 모든 種目 엘리트 選手들이 자연스럽게 生活 스포츠로 녹아드는데 韓國에선 特定 種目 外에는 잘 안 되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껴 試圖한 동아리였다. 주짓수 동아리도 跆拳道 동아리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分派가 돼 全國으로 퍼지게 됐다.

“주짓수는 굳이 무릎을 많이 쓰지 않고 누워서도 다양한 技術을 發揮할 수 있어요. 주짓수는 相對를 바닥으로 誘導해 조르기, 누르기, 비틀기, 뒤집기, 꺾기, 壓迫, 占有 等의 다양한 技術로 制壓하는 武術이죠. 앉아서 하는 技術도 있어요. 그렇다보니 무릎에 無理가 가지 않아요. 1時間30分 씩 週 3回 땀 흘리면 온갖 스트레스를 날리며 健康도 잘 챙길 수 있죠. 함께 運動한 會員들과 돼지갈비에 燒酒 한盞 하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캐프너 敎授는 서울 신촌 주짓수에서 每週 2, 3回 運動하고 會員들하고도 어울린다. 그는 “選手들보다는 健康을 위해 찾는 사람들이다. 學生도 있고 會社員도 있고 事業사는 사람도 있다. 다양한 사람들이 하나의 目的, 健康을 위해 땀 흘린다”고 했다. 그는 直接 會員들에게 주짓수를 指導하기도 한다.

事實 그의 最愛 運動은 跆拳道였다. 里샤오룽 映畫를 보고 華麗한 발차기에 魅了돼 多樣한 格鬪技를 接했다. 그는 “中國의 쿵후, 日本의 가라테, 韓國의 跆拳道를 比較해 봤다. 華麗한 발 技術에 妙味가 있는 里샤오룽 映畫에 가장 가까운 武術이야말로 跆拳道라는 結論을 내렸다”고 했다.

스티븐 캐프너 敎授가 跆拳道 발차기를 선보이고 있다. 東亞日報 DB.
“跆拳道와 誘導를 함께 했는데 跆拳道 師範님이 跆拳道 하나에 集中하라고 하셨죠. 結果的으로 그분 말이 맞았습니다.”

몬태나주립대 體育學科에 進學해 繼續 跆拳道를 익힌 그는 美國 國家代表가 돼 1987年 世界跆拳道選手權大會 라이트 級 3位, 1987年 美國跆拳道選手權大會 라이트 級 1位를 차지했다. 아버지가 6·25戰爭 參戰 勇士인 그는 1988年 서울올림픽을 準備하러 1987年 韓國에 轉地訓鍊을 오면서 韓國과 繼續 因緣을 맺고 있다. 하지만 무릎 負傷으로 올림픽에는 出戰하지 못했다.

“18살에 무릎을 크게 다쳤어요. 手術 받고 다시 跆拳道를 始作했죠. 그런데 結局 안 되더라고요. 다른 親舊에게 밀려 올림픽에 나가지 못했어요. 하지만 韓國에서 다른 機會를 찾았죠.”

跆拳道를 했기에 韓國 跆拳道 關係者들의 도움으로 宗主國 韓國에 安着하게 됐다. 1989年부터 世界跆拳道聯盟(WT)에서 일하며 工夫할 機會를 잡은 것이다. WT에서 國際審判 敎育과 英文 雜誌 發行을 도운 그는 1991年 서울대 體育敎育科 碩士課程에 入學했고 1998年 跆拳道에 담긴 哲學硏究로 博士學位를 받았다. 韓國文學에 빠진 그는 韓國 小說을 英文으로 飜譯하기도 했다. 연세대에서 近現代小說로 國文學 博士學位도 받았다. 그가 좋아하는 韓國作家들은 이효석 김동리 李淸俊 安壽吉 等. 캐프너 敎授는 最近 연세대 國際學部에서 韓國學도 講義도 始作했다. 韓國에 對해 英語로 講義한다.

스티븐 캐프너 교수(가운데)가 1987년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라이트급에서 3위를 차지 한 뒤 시상대에 섰다. 캐프너 교수 제공.,
스티븐 캐프너 敎授(가운데)가 1987年 世界跆拳道選手權大會 라이트級에서 3位를 차지 한 뒤 施賞臺에 섰다. 캐프너 敎授 提供.,
캐프너 敎授는 事實上 ‘韓國人’이란 소릴 듣는다. 韓國 이름도 있다. 서태부(西跆夫). ‘西洋 사람으로 跆拳道를 하는 사나이’란 뜻이다. 跆拳道로 오래前부터 因緣을 이어온 양진방 大韓跆拳道協會 會長(65)李 이름 ‘스티븐’과 비슷하게 지어줬다.

韓國에서 다양한 工夫를 하면서도 跆拳道 즐기기를 놓지 않았던 캐프너 敎授는 2002年부터는 주짓수에 매달리고 있다. 주짓수 하나만으로 筋力과 柔軟性, 心肺持久力까지 키울 수 있다고 했다. 그는 現在 주짓수 4段, 跆拳道 8段과 誘導 1段까지 總 13段의 高手다.

“率直히 무릎 軟骨이 없어 다리가 若干 휘기도 했죠. 하지만 무릎 움직임을 最少化하는 運動을 찾아 하고 있습니다. 人間은 어떤 式으로든 움직여 땀을 흘려야 합니다. 그래야 몸도 마음도 健康하게 지킬 수 있습니다.”

캐프너 敎授는 韓國에서 30年 넘게 살면서 學生들이 어렸을 때부터 自然스럽게 뛰어 놀지 못하고 工夫에 매달려야 하는 環境에 對해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그는 “난 어릴 때부터 안 해 본 運動이 없다. 學校에 가면 자연스럽게 野球와 籠球, 美式蹴球, 테니스 等 다양한 스포츠를 接한다. 내 故鄕 몬태나가 스키 名所로 有名해 어릴 때부터 스키도 즐겼다. 그런 좋은 經驗이 아직도 날 繼續 움직이게 한다”고 말했다.

스티븐 캐프너 敎授가 바닥에 누워 주짓수 對鍊을 하고 있다. 전영한 記者 scoopjyh@donga.com

양종구 記者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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