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劇場에 앉아 映畫를 볼 때 사람들은 가끔 自己 自身을 본다. 畵面을 바라보면서 自身의 葛藤에 對한 解答을 求하거나 慰勞받은 經驗은 누구나 한 番쯤 가져보았을 것이다.
臨床 心理分析家이자 映畫評論家인 심영섭氏가 펴낸 ‘심영섭의 시네마 싸이콜로지’(다른우리)는 그처럼 映畫를 렌즈삼아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본 冊. 沈氏가 1999年 동아일보에 ‘映畫 속의 心理學’이라는 題目으로 連載했던 칼럼을 母胎로 태어났다.
著者는 이 冊에서 映畫를 例로 들어 複雜微妙한 感情, 언뜻 理解할 수 없는 態度의 根源을 說明해준다. 假令 겉보기엔 柔順해도 慇懃히 周圍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사람들을 種種 볼 수 있다. 싫어하는 上司로부터 하기 싫은 書類 整理를 指示받았을 때 拒絶하는 代身 意圖的으로 書類를 잃어버리거나 찾지 못할 곳에 넣어두는 式이다. 著者는 이같은 ‘手動 攻擊性’李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를 映畫 ‘파이란’의 主人公 鋼材를 통해 分析한다. 現實을 透明하게 遲刻하기 힘들거나 自身의 感情을 있는 그대로 表現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애꿎은 方式으로 憤怒를 表出한다는 것. 憤怒는 表現함으로써, 或은 大衆과 共有함으로써 대단히 自己 主張的인 意思疏通의 方法으로 轉換될 수 있다는 것이 著者의 助言이다.
또 늑대가 처음부터 늑대라고 속을 다 보여줬는데도 늑대를 量이라고 錯覺하는 사람들이 있다. 다 알면서도 넘어가고 나중에 後悔하는 式이다. 이처럼 心理的으로 스트레스를 주는 생각의 不調和를 克服하기 위해 엉뚱하게 이미 알고 있는 情報를 無視하거나 縮小하는 ‘認知 不調和 傾向’이 무엇 때문인지도 映畫 ‘나인 먼쓰’를 통해 알기 쉽게 풀어낸다.
어린이를 싫어했던 主人公 새무얼이 막상 아이가 태어나자 兒童 愛好家로 變貌해버린 것은, 取消 不可能한 事件을 맞닥뜨렸을 때, 或은 選擇에 對한 責任感을 剛하게 느끼는 狀況이 發生할 때 ‘認知 不調和 傾向’李 커지는 것과 關聯이 있다는 說明이다.
映畫에 자주 登場하는 象徵에 對한 分析도 눈여겨볼 만한 대목. 아버지의 엄지가 부러지는 꿈을 꾸었다는 來談者의 臨床心理分析 事例와 映畫 ‘피아노’ ‘잉글리시 페이션트’에서 엄지 손가락을 자르는 場面 等을 聯關지어 엄지 切斷이 象徵하는 意味를 分析한 글을 읽다보면 巨大한 無意識 世界를 探險하기 위한 地圖를 보는 듯한 氣分이 든다.
“化粧室에 앉아서도 프로이트를 理解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目的”이라는 著者의 말처럼 쉬운 톤으로 쓰인 冊이라서, 精巧한 分析을 期待하는 讀者들은 滿足하지 못할 수도 있을 듯하다. 揷畵가 서용남氏가 그린 엉뚱하고 때로 獵奇的인 그림은 자칫 무거울 수 있는 冊의 무게를 덜어낸다.
김희경記者 susan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