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逆傳貰難·깡筒傳貰·傳貰詐欺…傳貰, 네가 問題다![딥다이브]|동아일보

逆傳貰難·깡筒傳貰·傳貰詐欺…傳貰, 네가 問題다![딥다이브]

  • 東亞日報
  • 入力 2023年 5月 27日 08時 00分


코멘트
傳貰大亂에 이어 逆傳貰가 골치를 썩이더니 이젠 傳貰士氣가 가장 큰 社會問題 中 하나입니다. 英語로도 ‘Jeonse’라고 表記한다는 傳貰(傳貰). 10餘 年 前부터 消滅論이 提起됐건만, 如前히 蕃盛하며 끈질긴 生命力을 發揮 中입니다. 그리고 아마도 꽤 오래 살아남을 듯합니다. 손보지 않고 그대로 놔두면 또다시 새로운 問題를 惹起할 危險 이 있죠. 그래서 오늘 딥다이브는 傳貰制度를 들여다 봅니다.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展望臺에서 내려다 본 빌라 密集 地域의 모습.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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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年 前에도 있었던 傳貰詐欺
傳貰라는 獨特한 賃貸借契約 制度는 都大體 언제 생겨났을까요. 高麗時代 ‘殿堂(典當)’制度, 卽 物件을 맡겨놓고 돈을 빌리는 것에서 由來했다는 學說이 하나 있고요(윤대성 창원대 名譽敎授 ‘韓國傳貰權法硏究’). 1876年 江華島條約 以後 開港地(釜山·仁川·元山)에 人口가 急速度로 流入되면서 집값이 치솟자 一部 집主人들이 傳貰를 놓아 집 살 돈을 充當한 게 眞짜 始發點이라는 硏究結果도 있습니다(‘주택전세제도의 起源과 傳貰市場 展望’ 報告書).

卽, 傳貰는 누군가 만든 게 아니라 自然 發生的으로 생겨나 우리나라에 자리잡은 制度 라고 봐야 합니다. 그리고 그 正確한 實體는 이겁니다. 私金融. 銀行 門턱이 높았던 時節, 住宅擔保貸出을 받기 어려운 個人이 賃借人 돈(傳貰保證金)을 빌려서 집을 마련하고 利子와 月貰를 퉁親 것이 바로 傳貰입니다.

1939년 동아일보에 실린 전세사기 사건 기사. 월세로 얻은 집이 자기 집인 것처럼 속여서 전세를 내주는 방식으로 보증금을 10여 차례 편취한 사건이다.  지금은 ‘傳貰’라고 한자로 표기하지만 당시엔 ‘全貰’라고 쓴 게 눈에 띈다.
1939年 동아일보에 실린 傳貰詐欺 事件 記事. 月貰로 얻은 집이 自己 집인 것처럼 속여서 傳貰를 내주는 方式으로 保證金을 10餘 次例 騙取한 事件이다. 只今은 ‘傳貰’라고 漢字로 表記하지만 當時엔 ‘全貰’라고 쓴 게 눈에 띈다.
參考로 過去 동아일보 記事에서도 오래 前 傳貰制度의 痕跡이 發見되는데요. 99年 前인 1924年 記事에선 ‘재동엔 3000원짜리 傳貰집이 있으나 돈턱이 아득하고, 인사동에도 相當한 집이 있으나 이것도 50원의 月貰로 두달値는 먼저 주어야 한다’면서 만만찮은 傳貰값 負擔을 다룹니다. 1939年엔 ‘住宅難을 奇貨 삼아 傳貰士氣가 橫行한다’는 記事 도 나왔죠. 그 時節에도 自身이 얻은 月貰집이 自己 집인 것처럼 속여서 10餘 名에게 傳貰金을 가로챈 詐欺犯이 있었다고 합니다.

事實 傳貰는 꽤 危險할 수 있는 契約입니다. 自身의 全 財産이나 다름 없는 傳貰 保證金을 契約書 한張만 믿고 信用度도 確認되지 않은 집主人에게 덜컥 내주기 때문 입니다. 하지만 傳貰값이 繼續 오르기만 한다면 保證金을 떼일 念慮는 적은 便이죠. 새로 들어올 貰入者로부터 받아 나가면 되니까요. 同時에 最小限의 安全裝置가 있긴 합니다. 1981年 制定된 賃貸借保護法인데요. 最小 傳貰期間을 定하고 있죠(당시엔 1年). 아울러 ‘月貰는 每달 돈을 까먹지만 傳貰는 元金을 고스란히 지킬 수 있다’ 는 理由로 傳貰를 選好하는 賃借人들度 적지 않습니다. 傳貰制度가 維持될 수 있던 理由입니다.

庶民 울린 傳貰大亂
1970年代 以後 都市化가 加速化하면서 大都市, 特히 서울을 中心으로 傳貰 比重은 꾸준히 커졌는데요. 傳貰市場이 本格的으로 커진 건 1980年代 後半부터입니다. 傳貰大亂이 新聞 社會面을 裝飾하기 始作한 것도 이때부터인데요.

當時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1980年代 後半 3低 好況(低換率·低油價·低金利)으로 株式市場에 이어 不動産市場까지 投機 바람이 붑니다. 同時에 勤勞者 所得水準이 높아지자 ‘나도 아파트에 살고 싶다’는 欲望이 傳貰 需要를 부추겼죠. 이에 ‘住宅 200萬戶 建設’을 公約한 노태우 政府는 1989年 4月 盆唐?一山 新都市 建設計劃을 發表했습니다. 엄청난 物量 供給이 豫告되면서 一時的으로 집값 上昇勢는 주춤하는 듯했는데요. 新都市 아파트를 分讓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집 購買를 미루고 傳貰살이를 擇하면서 傳貰 需要가 되레 爆發 합니다. 傳貰값 오름勢는 더 빨라졌죠.

1990년 3월 동아일보 기사. 전세값 폭등으로 세입자 자살이 이어지면서 전세값 잡기가 가장 큰 사회 이슈였다.
1990年 3月 동아일보 記事. 傳貰값 暴騰으로 貰入者 自殺이 이어지면서 傳貰값 잡기가 가장 큰 社會 이슈였다.
그러자 政府가 나섰습니다. 貰入者를 保護한다며 1989年 12月 賃貸借保護法을 改正해 傳貰期間을 旣存 1年에서 2年으로 延長 했죠. 그 結果 어떻게 됐을까요. 그야말로 헬게이트가 열렸습니다. 집主人들이 2年値 傳貰金을 한꺼번에 올려받았기 때문입니다. 다락같이 오른 傳貰保證金을 堪當할 길 없어 極端的 選擇을 하는 事件이 이어지면서, 1990年 初盤 두달 남짓한 期間 17名의 貰入者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왠지 익숙한 이야기 아닌가요? 그렇습니다. 2020年 賃貸借 3法 通過 뒤 ‘2年+2年’을 保障하는 契約更新請求權이 導入되자, 傳貰값이 무섭게 치솟아 亂離를 겪은 지 얼마 안 됐는데요. 바로 그와 비슷한 일이 過去에도 있었던 겁니다.

傳貰大亂이 社會 問題化 되면서 1990年엔 庶民 住居難 解消를 위한 여러 政策이 나왔는데요. 그 中 하나가 바로 多世帶 住宅, 卽 빌라를 많이 짓도록 建築 規制를 大幅 緩和하는 거였습니다. 아파트는 비싸니까 低所得層이 居住할 만한 빌라를 늘리자는 趣旨였는데요. 그 빌라가 只今은 傳貰詐欺로 庶民을 울리는 애物단지가 되어버렸으니, 아이러니입니다.

목돈 없이 傳貰 사는 時代 왔지만
2001년 4월 전세 매물 구하기가 어려워지자 서울 성북구의 한 부동산 중개업자가 돈암동 아파트의 우체통함에 전세급구 전단을 붙이고 있다. 동아일보DB
2001年 4月 傳貰 賣物 求하기가 어려워지자 서울 성북구의 한 不動産 仲介業者가 돈암동 아파트의 郵遞筒함에 傳貰急求 傳單을 붙이고 있다. 東亞日報DB
傳貰 市場이 크게 흔들린 건 1998年. 韓國이 外換危機에 빠지면서 不動産 市場이 가라앉았고 그해 傳貰값은 無慮 40%(首都圈 基準) 暴落했습니다. 初有의 ‘逆傳貰難’ 이 일어난 건데요. 失職?減俸으로 더 싼 傳貰집으로 옮기려던 貰入者들은 保證金을 돌려받지 못해 아우聲이었고요. 새로운 貰入者를 求할 길 없어 집이 競賣에 넘어간 집主人이 自殺하는 悲劇이 벌어졌죠. 傳貰價가 賣買價를 웃도는 ‘깡筒傳貰’도 이때 처음 登場합니다.(노무현 政府의 ‘實錄 不動産政策 40年’ 參照)

하지만 競技가 빠르게 살아나면서 이듬해 傳貰값은 다시 튀어올라 暴騰勢를 演出합니다. IMF 時期에 住宅 供給이 줄어든 탓에 2000年代 들어 傳貰값은 上昇勢를 탔는데요. 2000年代 中後半 不動産 投機 烈風이 이어지며 傳貰市場은 더 커갔죠.

‘전세 급구’는 2008년에도 마찬가지였다. 서울 성동구의 아파트에서 공인중개사가 전세를 구한다는 공지문을 붙이는 모습. 동아일보DB
‘傳貰 急求’는 2008年에도 마찬가지였다. 서울 성동구의 아파트에서 公認仲介士가 傳貰를 求한다는 公知文을 붙이는 모습. 東亞日報DB
이 時節 2年마다 꼬박꼬박 오르는 傳貰金은 貰入者들의 가장 큰 苦悶거리였습니다. 保證金을 올려줄 길 없어 邊두리로 밀려나야 하는 庶民들이 많았죠. 政府는 이들의 負擔을 덜어주겠다며 相當히 손쉬우면서도 破格的인 方法을 採擇했습니다. 傳貰資金 貸出, 卽 빚을 더 많이 내주기로 한 겁니다.

傳貰資金 貸出은 꽤 오래 前부터 一部 銀行에 있었지만 貸出 條件이 까다로워서 좀처럼 活性化되지 않았습니다(연대보증을 세워야 하는 式). 2008年 末 政府는 ‘庶民 住居安定’을 名目으로 住宅金融公社의 傳貰資金貸出 保證 限度를 1億원에서 2億원으로 확 올렸는데요. 이때부터 傳貰資金 貸出 市場이 本格的으로 열립니다. 깐깐한 所得 基準 없이 傳貰값의 70%(以後 80%로 上向)까지 빌릴 수 있게 됐으니까요. 2015年엔 貸出限度가 最大 5億원(서울保證保險 商品)까지로 더 늘었는데요. 德分에 ‘목돈 없이 銀行에 利子만 내고 傳貰 사는 時代’가 활짝 열립니다.

그래서 貰入者들은 마음 便히 살던 집에서 傳貰를 繼續 살 수 있어 그 後로 幸福해졌을까요? 그랬으면 좋겠지만 實狀은 反對입니다. 傳貰資金 貸出이 巨大한 부메랑이 되어 돌아와 不動産 市場을 强打 하고 있습니다.

爆彈으로 돌아온 傳貰貸出
貰入者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傳貰資金 貸出이 이젠 모든 傳貰 關聯 問題의 主犯으로 擧論되고 있다. 뉴스1
傳貰貸出이 不動産 市場 거품을 일으키는 元兇 中 하나라는 건 사실 數年 前부터 不動産 專門家들이 公公然히 해왔던 이야기입니다. 다만 누구도 ‘그러니 이제 그만 傳貰貸出을 조이자’라고 剛하게 主張하지 못했을 뿐이죠. ‘傳貰貸出=庶民 支援’인 狀況에서 敢히 손댈 엄두를 내지 못한 겁니다.

그 사이 傳貰資金 貸出金은 急激히 불어났습니다(2012년 23兆원→2022年 171兆원). 이는 불 붙은 不動産 市場을 더욱 달아오르게 만드는 땔감 役割 을 톡톡히 했는데요. 低金利 傳貰貸出 德에 傳貰需要가 넘치면서, 집主人들은 傳貰값을 大幅 올리기 쉬워졌습니다. 賃借人들이 더 싼 傳貰집을 찾아 옮기는 代身 傳貰貸出을 받아서 充當하면 되니까요. 앞에서 言及한 2020年 賃貸借 3法 施行으로 傳貰값이 치솟자 傳貰貸出이 暴騰한 게 이를 잘 보여줍니다.

傳貰貸出은 갭投資의 道具로도 活用됐습니다. 傳貰資金貸出을 지렛대로 삼아서 傳貰 끼고 住宅을 購入할 수 있으니까요. 住宅擔保貸出 規制를 無力化하는 手段이 된 겁니다. 傳貰貸出이 傳貰뿐 아니라 賣買價格까지 끌어올린 건데요.

只今의 傳貰사기를 招來한 ‘無資本 갭投資’ 亦是 寬大한 傳貰貸出의 虛點을 파고들었습니다. 詐欺꾼들은 新築 빌라의 鑑定評價를 부풀려 傳貰金 바가지를 씌웠습니다. 貰入者들은 傳貰金의 最大 80%를 貸出받아 傳貰집을 마련했지만, 알고 보니 그 집은 깡筒傳貰였습니다.

傳貰 終末? 글쎄, 쉽지 않을 걸
要컨대 傳貰期間을 늘려주거나 傳貰貸出을 쉽게 내주는 式의 政策은 傳貰라는 制度를 永續시키는 데는 寄與했지만 結果的으로 庶民의 住居 安定을 가져다주진 못했습니다. 오히려 一旦 한番 傳貰값이 떨어지기 始作하면 모래城처럼 무너지는 傳貰市場의 脆弱性 키웠는데요.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듭니다. 아무래도 傳貰制度 自體가 問題인데?

事實 ‘傳貰의 月貰化’ 얘기는 1990年代부터 나왔고, 十餘 年 前부턴 ‘傳貰 終末論’까지 나돌았습니다. 只今처럼 住宅市場이 沈滯에 빠지던 時期(좋은 말로는 ‘安定期’)였던 2013年에 特히 話頭였죠. 집값이 繼續 떨어질 판인데 누가 傳貰 끼고 집을 社겠냐는 論理였습니다. 전세란 집값 上昇을 前提로 해야 生命을 維持 할 수 있으니까요. 2016年 初엔 朴槿惠 當時 大統領이 “傳貰時代는 하나의 追憶이 될 것”이라며 直接 終末論을 펴기까지 했는데요. 低金利가 심해지면서 집主人들이 傳貰보단 月貰 또는 反轉勢를 選好했기 때문입니다.(물론 그 以後 벌어진 狀況은…)

그럼 只今은 어떨까요. 不動産 專門家에게 傳貰의 運命을 물어봤습니다. 獨立不動産리서치 광수네福德房의 이광수 代表(前 未來에셋證券 애널리스트)와 박원갑 국민은행 不動産 首席專門委員, 두 분과 通話했는데요. 두분의 톤은 살짝 다르지만 적어도 10年 안에 傳貰가 사라지는 일은 없을 거라는 게 共通된 意見 입니다.

“傳貰 制度가 없어지기란 不可能합니다. 傳貰는 自然 發生的으로 생겨났고 擴大됐기 때문에 이걸 人爲的으로 없애기란 現實的으로 어렵습니다. 只今 傳貰 保證金 規模가 수백조원에 達하는데요(참고로 韓國經濟硏究院은 1058兆원으로 推定). 이걸 누군가 充當해줘야 없어질 것 아닙니까. 그걸 누가 堪當하겠어요. 政府가 政治的 言語를 使用해서 ‘傳貰制度를 根本的으로 改革한다’고 얘기하지만 現實을 모르는 얘기입니다.”(이광수 광수네福德房 代表)

“長期的으로는 戰勢가 消滅할 수 있지만 그렇게 빠른 速度로, 10年 안에 純粹 月貰로 넘어가진 않습니다. 집主人도 月貰로 돌리려면 資金 準備 等 時間이 必要하니까요. 特히 海外 같은 ‘純粹 月貰’는 매우 어려울 겁니다. 아마 ‘半傳貰’가 大勢를 이룰 거고요. 빌라는 傳貰恐怖 때문에 月貰化가 빨리 進行되고, 아파트는 傳貰가 維持되는 式으로 差別化가 심해질 겁니다.”(박원갑 국민은행 首席專門委員)

傳貰를 없애진 않더라도 制度는 좀 고쳐야 하지 않을까요. 韓國 말고도 傳貰와 거의 비슷한 ‘안티크레티코’라는 制度가 볼리비아엔 있는데요. 다른 點은 볼리비아에선 傳貰를 내놓은 집은 아무런 抵當이 없어야 하고요, 萬若 競賣가 進行되면 專貰入者가 1順位가 됩니다. 傳貰權이 不動産登錄簿에 記載하도록 義務化했고요.(김진유 경기대 敎授 ‘傳貰의 歷史와 韓國과 볼리비아의 田稅制도 比較分析’)

한마디로 우리나라 傳貰制度보다 훨씬 透明性이 높습니다. 韓國도 ‘깜깜이 契約’을 막기 위해 집主人에게 情報 公開 義務를 附與해야 합니다. 박원갑 委員은 “貰入者가 많은 多世帶 住宅의 境遇 世代別로 누가 언제 얼마의 月貰 또는 傳貰 契約을 맺었는지, 擔保貸出은 얼마나 남아있는지를 모두 記錄해 契約書에 添附하도록 집主人에 義務를 附與해야 한다”고 說明합니다. 적어도 아무 것도 모른 채 傳貰 契約을 맺었다가 집이 競賣에 넘어가는 날벼락을 맞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겁니다. By. 딥다이브

짧게 잡아도 100年 넘게 韓國에서 生命을 이어온 田稅制도. 그동안 참 말도 많고 頉도 많았는데요. 그 中에서도 逆傳貰難, 깡筒傳貰, 傳貰士氣가 겹친 只今이 最惡인 건 분명해 보입니다. 더 以上 傳貰詐欺 被害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나오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主要 內容을 要約하자면

-길게는 高麗時代, 짧게는 江華島條約 以後부터 登場한 田稅制도. 不安定한 私的契約이라는 限界에도 不拘하고 韓國의 住宅賃貸 市場에서 主流로 자리잡았습니다.
-傳貰大亂이 社會를 휩쓸 때마다 政府는 對策을 내놨는데요. 庶民 住居安定을 名目으로 傳貰-期間을 늘려주고 傳貰貸出을 擴大하는 式이었습니다. 이런 政策은 다시 傳貰값 急騰의 副作用으로 이어지곤 했습니다.
-부풀었던 傳貰市場의 거품이 꺼지면서 陣痛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結局 傳貰 制度 自體가 問題라면 이제 傳貰는 사라지려나요? 한때는 ‘傳貰 終末論’이 大勢였지만, 이제는 完全한 滅種에 이르진 않을 거란 意見이 더 優勢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進化시켜서 더 쓸만하게 만들어야겠죠.

*이 記事는 26日 發行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記事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經濟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購讀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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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記者 har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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