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流配길 落心했던 茶山… 풍요한 집터 만나니 著述까지 多産이로구나|동아일보

流配길 落心했던 茶山… 풍요한 집터 만나니 著述까지 多産이로구나

  • 東亞日報
  • 入力 2022年 7月 2日 03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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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旅行이야기]茶山의 자취가 밴 强震
水菊이 활짝 핀 茶山의 첫 流配地
强震에 觀光 活力 가져온 가우도
月出山 韻致 가득 月南寺址와 백운동

소의 멍에처럼 생긴 가우도(駕牛島)는 강진읍을 풍요롭게 해주는 명당으로 알려져 관광명소로 부상 중이다. 해안가 트레킹 코스와 타워전망대(산 정상 건물)의 해상 풍경, 바다를 건너가는 집트랙 등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소의 멍에처럼 생긴 가우도(駕牛島)는 강진읍을 풍요롭게 해주는 明堂으로 알려져 觀光名所로 負傷 中이다. 海岸가 트레킹 코스와 타워展望臺(山 正常 建物)의 海上 風景, 바다를 건너가는 집트랙 等으로 人氣를 끌고 있다.
《배부른 황소가 한가로이 엎드린 채 되새김질을 하고 있는 와우形(臥牛形) 터에서 지내봤다. 茶山 丁若鏞(1762∼1836)李 全南 康津에서 첫 流配 生活을 했던 ‘辭意再’ 옆 韓屋體驗館, 바로 황소 얼굴에 該當한다는 터다. 이름 그대로 넉넉한 터 기운 때문일까. 茶山의 자취가 밴 强震을 旅行하는 동안 몸이 平安해지고 마음은 여유로웠다.》

○ 强震 황소 名當에서 기운 차린 정약용
다산 정약용이 강진에서 18년 유배 생활을 처음시작한 ‘사의재’.
茶山 丁若鏞이 康津에서 18年 流配 生活을 처음始作韓 ‘辭意再’.
221年 前인 1801年 겨울, 全南 康津 땅을 밟은 茶山은 깊은 那落에 빠져 있었다. 賃金(正祖)의 寵愛를 한 몸에 받다가 猝地에 ‘천주쟁이’라는 逆賊으로 낙인찍혀 아무도 그를 반겨주지 않았다. 康津邑內 同門마을에 사는 酒幕집 酒母만이 茶山에게 飮食을 내주었다. 허겁지겁 아욱국에 밥을 말아먹는 多産을 가엽게 여긴 酒母는 골房까지 내주며 머물도록 했다.

酒母는 智慧도 깊었다. 茶山에게 “어찌 그냥 헛되이 社시려 하는가? 弟子라도 가르쳐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匕首 같은 忠告를 던졌다. 茶山은 精神이 번쩍 들었다. 그가 마음을 다잡아 後學을 養成하며 ‘經世遺表’ 等 偉大한 實學 著書들을 執筆하게 된 것은 酒幕집에서의 이런 事緣 때문이라고 傳해진다.

茶山은 酒母와 그 외동딸의 보살핌을 받으며 4年間 머문 酒幕집 堂號를 ‘辭意再(四宜齋)’라고 지었다. ‘생각과 容貌와 言語와 行動, 네 가지를 올바로 하는 이가 居處하는 집’이라는 뜻이다. 스스로를 警戒하는 文句이기도 했던 ‘辭意再’는 後代에 歷史的 名所로 誕生하게 된다.

康津郡이 오랜 考證 끝에 復元해낸 사의재는 茶山과의 因緣, 고풍스러운 草家, 水菊이 활짝 핀 蓮못 等으로 사람들이 즐겨 찾는 踏査 코스가 됐다. 辭意再 터에서 흘러나오는 豐饒로운 知己(地氣)는 酒幕집 酒母의 넉넉한 마음씨까지 傳해주는 듯하다. 辭意再 바로 옆으로는 宿泊이 可能한 辭意再 韓屋體驗館(9個 客室)李 運營되고 있다.

사의재를 낀 同門마을에는 明堂임을 알려주는 表式이 있다. 韓屋體驗館 入口에 있는 ‘同門샘’이라는 우물이다. 標말은 샘을 風水的으로 說明해놓았다. 이에 따르면 步銀産 우두봉(牛頭峰) 자락 아래 强震邑城으로 둘러싸였던 강진읍은 全體的으로 와우形 터에 該當한다. 邑城 4大門 中 하나인 同門 쪽 샘(東門井), 卽 바로 이곳은 소의 왼쪽 눈이라는 說明이다. 소의 오른쪽 눈인 西門 쪽 샘(西門井·서성리)도 있었지만 只今은 없어졌다.

茶山은 1805年 겨울 사의재를 떠나 우두봉 기슭의 고성사(高聲寺·當時는 高聲癌)에서 머물게 된다. 親分을 맺은 白蓮社 住持 혜장의 配慮 德分이었다. 强震 市內가 굽어보이는 이곳에서 茶山은 ‘報恩山房’이란 看板을 내걸고 長男(學緣)과 강진읍 6弟子를 對象으로 ‘周易’ 等 學問을 가르쳤다. 사의재에서 車로 10餘 分 距離의 고성사는 現在 ‘水菊 길’ 散策 코스로 有名하다. 그런데 現地 사람들은 고성사의 저녁 鐘소리(高庵暮鐘·고암모種)를 더 높게 친다. 고성사가 황소의 귀밑 或은 목방울을 매다는 部位에 該當하는데, 이곳에서 소리가 울려 퍼져야 强震이 發展한다는 믿음 때문이라고 한다. ‘높은(高) 소리(聲)’라는 뜻의 고성사는 實際로 ‘소리 名當’으로도 널리 알려졌다. 南道의 판소리 하는 사람들에게는 有名한 得音(得音) 場所 中 하나로 꼽혔다.

茶山은 겨울 한철을 고성사에서 보낸 後 弟子의 집을 轉轉하다가 1808年 만덕산 자락 아래 茶山草堂(도암면 만덕리)에 定着하게 된다. 그는 다산초당에서 ‘牧民心書’ ‘欽欽新書’ 等 500餘 卷의 厖大한 著書를 完成했다. 事實 茶山은 發福(發福)을 祈願하는 風水地理를 剛하게 否定했던 人物이다. 그런 그가 와우形 名當에서 기운을 차리고 마침내 自身의 實學思想을 集大成했다는 點은 逆說的이다.
○가우도 開發과 황소의 멍에

강진읍의 主要 建物들은 風水的으로 ‘소 판’으로 配置됐다고 말할 만하다. 康津郡靑果 强震警察署는 소의 콧등에 該當하고, 康津郡 圖書館은 소의 콧구멍 明堂으로 불려왔다. 강진읍 들머리에 있는 强震醫療院과 强震高校 一帶는 예전부터 소의 ‘혀 끝’이란 뜻의 ‘새끝’이라고 불렸다. 또 옛 이름이 草地(草地)인 木理마을은 소가 풀을 뜯어 먹는 場所라고 한다.

强震 風水의 白眉는 가우도(駕牛島)에 있다. 바닷물이 강진읍 쪽으로 깊숙이 들어온 강진만의 섬 가우도는 地形이 소(牛)의 멍에(駕)처럼 생겼다. 멍에는 수레나 쟁기를 끌기 위해 마소의 목에 얹는 나무 막대다. 그러니 康津邑內에 한가롭게 누워 있는 황소를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는 가우도의 멍에를 씌워야 한다는 論理도 생겨난다.

2013年 陸地와 가우도를 잇는 다리가 竣工됐다. 대구면 저두리와 이어지는 聽者다리(438m)와 다산초당이 있는 쪽인 도암면 망호리와 이어지는 茶山다리(716m)가 생김으로써 가우도는 康津郡의 代表的 觀光 名所로 浮上했다. 海上보도교 2個가 생김으로써 가우도의 멍에가 활짝 펴진 形局이 되고, 이어 멍에가 씌워진 강진읍 황소가 벌떡 일어나 밭을 갈기 始作했다는 風水的 解釋도 뒤따랐다.

높이 25m인 가우도 청자타워에서 집트랙을 타면 1분여 만에 바다를 건너 육지에 도착한다.
높이 25m인 가우도 靑瓷타워에서 집트랙을 타면 1分餘 만에 바다를 건너 陸地에 到着한다.
實際로 가우도를 찾는 觀光客들이 늘어났다. 가우도 海岸을 따라 펼쳐지는 덱과 厚朴나무, 곰솔이 우거진 숲길을 利用해 섬 한 바퀴를 돌아보는 一名 ‘함께해(海) 길’(2.5km)은 트레킹 코스로 人氣가 높다. 또 섬의 頂上部에 設置된 靑瓷타워까지 태워주는 모노레일과 타워 展望臺에서 펼쳐지는 海上 風景도 핫플레이스다. 높이 25m 靑瓷타워에서 바다를 훌쩍 뛰어넘어 저두리로 건너가는 ‘하늘길’(집트랙)은 짜릿함을 膳賜한다.
○强震 月出山의 숨겨진 寶物
월남사지 삼층석탑과 월출산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月南寺址 三層石塔과 月出山이 絶妙한 調和를 이루고 있다.
강진읍 西쪽, 卽 月出山 南쪽 山자락 아래 성전면의 月南寺址 一帶도 康津의 빼놓을 수 없는 祕境이다. 最近 完全히 復元된 月南寺址 三層石塔(寶物 第298號)으로 有名한 月南寺는 考慮 진각國師(1178∼1234)가 茶를 마시며 遂行했던 절로 알려져 있다. 16世紀 前後에 斃死된 以後 現在 3萬3057m²(藥 1萬 坪) 規模에 達했던 절터를 復元하고 있다.

三層石塔 周邊에 形成된 터의 기운도 出衆할뿐더러 石塔과 어우러지는 月出山의 風景은 北쪽 靈巖에서 바라다본 月出山 景致와는 또 다른 맛을 자아낸다. 山에도 앞面과 뒷面이 있다. 靈巖 쪽 月出山은 山의 뒷面으로 莊重하고 무겁게 느껴진다면 康津 쪽 月出山은 山의 앞面으로 밝고 따뜻한 느낌을 받게 된다.

강진 차밭에서 바라본 월출산 남쪽 자락. 북쪽의 영암 월출산과는 다른 느낌을 받을수 있어 사진 촬영 명소로 소문났다.
康津 茶밭에서 바라본 月出山 南쪽 자락. 北쪽의 靈巖 月出山과는 다른 느낌을 받을수 있어 寫眞 撮影 名所로 소문났다.
月南寺址 周邊의 백운동 원림, 康津 茶밭(多元) 等도 빠뜨릴 수 없는 곳이다. 백운동 原林은 朝鮮 中期 이담로(1627∼1701)가 꾸민 別墅庭園이다. 自然과 人工이 調和를 이룬 이곳은 潭陽 瀟灑園, 莞島 부용동과 함께 湖南 3代 別墅庭園으로 꼽힌다. 백운동原林은 朝鮮의 선비들에게도 人氣 있는 訪問地였다. 茶山 亦是 1812年 이곳을 다녀간 後 백운동原林의 12勝景을 노래한 詩文인 ‘白雲첩’을 남겼다. 現在의 庭園은 白雲妾에 남겨진 ‘백운동度(白雲洞圖)’를 바탕으로 再現해놓은 建物이다.

‘비밀의 정원’ 백운동원림의 대나무 숲길.
‘祕密의 庭園’ 백운동原林의 대나무 숲길.
案內板이 없으면 進入하기가 힘든 ‘祕密의 庭園’ 백운동園林을 둘러본 後 강진다원의 有名한 茶밭 風景을 즐기거나 ‘이한영車文化院’에서 茶 한盞 마시는 것으로도 旅行의 한 코스가 될 수 있다. ‘이한영車文化院’은 백운동原林 5代 主人이자 茶山의 가장 어린 弟子 이시헌의 後孫(이현정)李 車를 만들고 茶道 敎育을 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하룻밤 묵으면서 月出山 精氣도 쬘 수 있다.


글·寫眞 强震=안영배 記者·哲學博士 ojong@donga.com
#强震 #茶山 #가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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