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 第3代 國王 太宗은 中國人들이 金剛山에 목매는 理由가 궁금했다. 太宗은 1404年 9月 臣下들과 政策을 論議하던 中에 “中國 使臣이 오면 꼭 金剛山을 보고 싶어 하는데 무슨 까닭인가? 俗諺에 中國人에게는 ‘고려국에 태어나 親히 金剛山을 보는 것이 所願(願生高麗國 親見金剛山)’이라는 말이 있다는데 그러한가?’ 하고 물었다. 이때 河崙은 “金剛山이 동국(東國, 우리나라)에 있다는 말이 大腸經에 실려 있으므로 그렇게 말하는 것”이라고 答했다. 實際로 그랬다. 金剛山은 經典에 言及될 程度로 神祕하고도 莊嚴한 山이었다. 그래서 中國 使臣들은 韓半島를 찾을 때마다 金剛山에 直接 가보기를 願했다. 그게 如意치 못할 境遇 金剛山 그림이라도 求해 보기를 懇切히 바랐다. 高麗와 朝鮮 朝廷이 中國에 金剛山도(金剛山圖)를 그려 보내주었다는 記錄도 여럿 있을 程度다. 그림을 통해서나마 金剛山의 神靈한 기운을 느껴보려는 心理는 事實 中國의 ‘와유(臥遊, 누워서 山川을 遊覽함)’ 傳統과 無關치 않다. 臥遊는 房안에 누운 채 壁에 걸린 그림 속의 算數(山水)를 鑑賞하거나 山水의 기운을 누리며 즐긴다는 뜻이다. 그 淵源은 中國 南北朝時代의 畫家 從兵(宗炳, 375~443)에게서 찾아진다. 從兵은 젊은 時節 天下 名山을 두루 돌아다니다 몸이 늙어 더 以上 現場을 찾을 수 없었다. 苦心 끝에 代案을 찾아냈다. 自身이 찾아다녔던 山川을 그림으로 描寫해 房에 걸어두고서 마음의 눈으로 遊覽을 즐기는 方法이었다. 이러한 臥遊山水(臥遊山水)는 山水畫에서도 自然의 기운이 具現된다는 기운生動(氣韻生動)의 槪念을 前提로 한다. 當然히 自然의 기운을 探索하는 風水와도 連結되는 論理다. 우리나라에서 金剛山의 와유산수를 確實하게 驅使한 畫家로는 謙齋 鄭敾(1676~1759)李 으뜸으로 꼽힌다. 英祖 임금의 그림 先生이었던 謙齋는 1734年 겨울 ‘金剛全圖(金剛全圖)’라는 作品을 完成했다. 莊嚴한 金剛山의 全景을 眞景(眞景)山水畫風으로 그려낸 것이다. ‘眞景’은 마음에서 느낀 그대로를 그린 眞짜 景致라는 뜻이다.겸재는 代作(가로 94.5cm, 세로 130.8cm)인 ‘金剛全圖’를 그리면서 畫幅 上段에 ‘一萬二千峯의 皆骨山(겨울 金剛山), 뉘라서 그 意味를 담아 참 모습을 그려내리’라고 始作하는 提示(題詩)를 써놓았다. 그만이 金剛山을 오롯이 表現해낼 수 있다는 自負心이 밴 詩句다. ‘金剛全圖’는 謙齋가 露骨的으로 自己 자랑을 해도 遜色이 없는 傑作으로 評價된다. 火星(畵聖)이라고까지 推仰받은 그의 獨特한 畫風이 絶妙하게 表現돼 있을 뿐만 아니라, 그의 宇宙觀 或은 世界觀까지 作品속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事實 謙齋는 主役 解說書人 ‘도설경해’라는 冊을 쓸 程度로 力學의 大家이기도 했다. 美術史學者 오주석氏(作故)는 士大夫 出身이자 圖畫署 畫員인 謙齋에 對해 硏究한 後 그가 깨달은 周易의 根本 理致 및 太極, 陰陽, 五行 等의 思想이 ‘金剛全圖’에 表現돼 있다고 主張했다. 東洋 山水畫의 鑑賞法 中 하나인 氣韻生動(氣韻生動)으로 ‘金剛全圖’를 살펴보자. 謙齋는 于先 金剛山 一萬二千 봉우리를 한데 모아 原形으로 集約시켜 놓았다. 그리고 그 中心은 畵面 한가운데 萬瀑洞 溪谷이다. 金剛山 이곳 저곳 골짜기에서 흘러온 物들度 모두 萬瀑洞으로 모여든다. 天下 絶景을 자랑하는 萬瀑洞의 너럭바위가 畵面의 中心이자 기운의 中心이 되는 셈이다. 이곳은 그림 속 기와 外部(火가 或은 感想家)와의 連結路인 器具(氣口)에 該當하고, 五行으로는 中央의 土(土)를 象徵한다. 萬瀑洞의 土 기운은 溪谷의 물길을 따라 畵面 아래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데 長安寺 入口 무지개다리人 비홍교에 이른다. 이곳은 큰 물을 이룬 곳이다. 五行으로는 수(水)에 該當하는 空間이다. 비홍교 쪽에서 다시 視線은 時計 反對 方向으로 옮아가는데 바위로 이루어진 암봉들이 불꽃처럼 펼쳐지고 있다. 그러니까 金剛全圖의 畵面 오른쪽은 禍(火)의 領域이다. 이윽고 化의 空間에서 畵面 최상단部로 가면 金剛山의 最高峯인 毘盧峯(1639m)李 雄壯하게 描寫돼 있다. 陽明한 기운이 넘쳐나는 領域으로 五行으로는 金(金)에 該當한다. 毘盧峯이 種(鐘)을 엎어 놓은 듯한 모습으로 描寫돼 있는 것도 이곳이 金의 기운임을 表現해내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風水에서는 이런 模樣의 産을 金星(金星)으로 分類하기 때문이다. 毘盧峯에서 다시 왼便 아래로 내려오면 森林이 우거진 부드러운 山이 나타난다. 소나무 잣나무 等 樹木이 우거진 이곳은 목(木)기운에 該當한다. 이처럼 ‘金剛全圖’는 하나의 畵面 속에 五行의 기운이 골고루 表現돼 있는, 보기 드문 作品이다. 그런데 오주석의 硏究에 依하면 ‘金剛全圖’는 中央 土에서 始作해 土克水(土剋水: 토가 水를 이김), 水克火(水剋火; 數가 불을 이김), 火克金(火剋金), 金克木(金剋木)이라는 五行 相剋의 理致가 作動하고 있다. 이는 人間 世上에서는 後天(後天) 相剋의 原理가 作動한다는 驛의 理致를 表現하려 한 것으로 解釋된다. 이 뿐만 아니다. 畵面 上段의 毘盧峯과 下段의 비홍교는 陰陽의 최정점을 暗示하고 있다. 불끈 솟은 毘盧峯과 물이 豐富한 비홍교는 兩南淫女(陽男陰女)를 象徵하는 것으로 解釋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곳은 S字 模樣의 太極(太極)으로 이어지고 있다. 謙齋는 이 作品을 完成한 뒤 “設令 (金剛山을) 내 발로 直接 밟아보려 한들 이제 다시 두루 걸어야 할 터/ 어찌 베갯맡에 期待 (내 그림을) 실컷 보는 것만 하겠는가”하고 提示에서 밝혀 놓았다. 金剛山을 直接 가보지 않아도 金剛山의 겉 모습과 참 뜻을 表現해낸 自身의 그림에서 臥遊의 妙味를 누릴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 不足한 기운은 그림으로 補充그림을 통한 臥遊의 즐거움은 現代에 와서도 누릴 수 있다. 東아시아 사람들은 陰陽과 五行을 통해 自然을 理解하고 說明했다는 常識을 理解하면 錦上添花다. 옛 사람들은 山의 形態를 金,목,수,禍,討議 五行으로 區分해 山의 기운을 理解했다. 中國 五代(五大;907~979年) 時期의 畫家인 荊浩(荊浩)는 ‘筆法機’라는 화론서에서 “뾰족한 形象을 鳳(峰)이라 하고, 平平한 形象을 情(頂)이라 하며, 둥근 形象을 만(巒)이라 하고, 山과 山이 서로 잇대 있는 形象을 ‘英(領)’이라고 한다”고 言及했다. 이는 山의 形態를 五行으로 分類함을 가리킨다. 날카롭고 뾰족한 봉우리를 이룬 ‘鳳’은 火山(火山)에 屬하며, 頂上이 平平한 産銀 土産(土山)에 屬한다. 봉우리가 둥그스름한 形象은 錦山(金山)인데, 봉우리가 둥글면서도 우뚝 치솟은 形態를 하고 있으면 目算(木山)에 該當한다. 또 봉우리와 봉우리가 서로 이어진 듯 물결처럼 보이는 形態의 山은 水産(水山)에 屬한다. 여기서 五行에 對해 한 걸음 더 나아간 解釋을 해보자. ▲目算은 목의 기운을 象徵한다. 목의 기운은 生命力, 成長과 上昇, 創意性을 象徵한다. 季節로는 봄, 人體로는 간 機能과 關聯 깊다. ▲火山은 化의 기운을 象徵한다. 化의 기운은 熱情, 發展과 擴張, 藝術性, 宗敎를 象徵한다. 季節로는 여름, 人體로는 心臟 機能과 關聯 깊다. ▲土産은 討議 기운을 象徵한다. 討議 기운은 調和와 仲裁, 均衡, 包容 等을 象徵한다. 季節로는 換節期, 人體로는 僞裝 機能과 關聯 깊다. ▲금산은 金의 기운을 象徵한다. 金의 기운은 結實, 決斷力, 勇氣, 自己 節制 等을 象徵한다. 季節로는 가을, 人體로는 肺 機能과 關聯 깊다. ▲水産은 數의 기운을 象徵한다. 數의 기운은 智慧, 融通性, 精神과 靈魂 等을 象徵한다. 季節로는 겨울, 人體로는 腎臟 機能과 關聯 깊다. 이렇게 五行이 强調된 그림에서는 實際로 五行의 에너지가 뿜어져 나온다. 世上을 살아가다보면 自身에게 必要한 德目, 或은 健康上 도움이 되는 五行이 있기 마련이다. 이때 山水畫 等 그림 속에서 强調되는 特定 五行을 집안에서 마음의 눈으로 즐기다 보면 절로 不足한 기운을 補充할 수 있다. 바로 이게 ‘와유’의 眞正한 意味이자 適切한 藝術 風水일 것이다. 안영배 記者·風水學 博士 oj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