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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7~2024-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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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V 스크린 속 ‘디지털 아트’의 生氣(生氣)는 眞짜일까[안영배의 웰빙風水]

    韓國 抽象 美術의 巨匠으로 評價받는 金煥基(1913-1974)의 그림은 藝術風水的 感覺으로 볼 때 一貫된 기운이 느껴진다. 2017年 65億5000萬원에 落札돼 韓國 美術品 競賣 史上 最高價를 記錄한 ‘고요’를 비롯해 ‘붉은 點火’ ‘宇宙’ 等 그의 遺作에는 솟구치는 生命力과 넉넉한 豐饒의 기운이 배어 있다. 妙하게도 金煥基의 作品 속 기운은 그가 태어난 生家의 기운과도 連結된다. 金煥基는 全南 新安郡의 섬 安佐島에서 富農(富農)의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나 幼年期까지 보냈던 生家 터는 强力한 知己가 形成된 明堂이다. 生命力을 象徵하는 木(木)기운과 豐饒를 象徵하는 土(土)기운이 適切히 組合된 明堂 터의 기운은 그의 作品 속 기운의 源泉(源泉)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같은 기운은 서로 感應한다는 動機感應(同氣感應)의 原理로 解釋된다. 卽 特定한 터의 기운을 받고 태어난 이가 創作이나 藝術 活動을 할 境遇 그 作品에서도 같은 기운이 나타난다는 게 藝術風水論이다. 藝術史에서 기운이 빼어난 作品을 남긴 作家를 稱讚할 때 ‘人傑指令(人傑地靈;뛰어난 人材는 신령스런 땅에서 태어남)’이라고 表現하는 것도 같은 脈絡이다. 神靈한 땅 기운을 받은 人物은 作品속에 그 기운을 담아 사람들에게 鑑賞의 즐거움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디지털 아트, 眞짜와 假짜의 境界線흔히 作家 精神, 藝術魂 等으로 描寫되는 作品 속 기운은 藝術風水論에서는 ‘令旗(靈氣)’라는 單語로 表現된다. 中國의 美術專門家 딩시위안(丁羲元)는 著書 ‘藝術風水’에서 “靈氣가 있는 그림은 보는 이의 눈길과 마음을 사로잡는다”고 하면서 이는 作家의 天賦的인 氣質과 修養에서 비롯된 것으로 解釋했다. 여기서 天賦的인 氣質은 타고난 風水的 或은 遺傳的 背景을 가리키며, 修養은 갈고 닦은 藝術的 完成度를 意味한다. 이와 關聯해 作家 精神, 或은 作品 속 영기에 注目한 젊은 作家가 눈에 띈다. 世界的인 아트페어인 프리즈(Frieze)에서 ‘디지털 파트너쉽’이라는 새로운 領域을 公式的으로 등장시킨 김대환(英語名;Jason Kim) 作家다. 그는 지난 9月 ‘프리즈 서울 2023’에서 金煥基의 原作과 이를 디지털로 새롭게 具現한 作品을 함께 선보여 注目을 끌었다. 作家는 TV라는 디지털 캔버스를 利用해 金煥基의 마지막 作品(7-Ⅶ-74)을 再解釋했는데, 原作과의 調和 或은 乖離 等 여러 궁금症을 자아내게 했다. 무엇보다도 김대환의 破格的 藝術 活動은 디지털 아트로까지 藝術 風水를 擴張시킬 수 있는지를 確認해보는 基準이 된다는 點에서도 興味를 끌었다. 原作이 새로운 作品으로 再誕生했을 境遇 原作의 기운 亦是 新作으로 轉移(轉移)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먼저 김대환은 金煥基의 에세이集人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作品의 靈感으로 設定했다. 그는 金煥基의 作品을 디지털 世上으로 이끌어내는 過程에서, 스스로가 익숙한 ‘나’가 아닌 ‘作家(金煥基)’로 變身하는 게 가장 重要한 첫 걸음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我執과 性格을 비워놓은 자리에 作家의 情報를 채워넣었다. 當時 作家가 살던 地域, 만났던 이들, 들었던 音樂, 자주 가던 카페나 선술집, 읽었던 冊, 靈感을 받았던 사람들 等에 對한 情報를 컴퓨터 命令語로 入力시킨 後 作家의 原作을 하나하나 글을 읽듯 마음속에서 재구현했다.”그 結果는 어떠했을까. 놀랍게도 디지털 畵面에서 再構成된 金煥基의 作品에서도 金煥基의 源泉的 기운이 如前히 發現되고 있었다. 原作과는 달리 TV스크린이라는 素材, 動的 映像이라는 表現 方法 等으로 微細한 部分에서 기운의 樣相이 달리 나타나긴 했지만, 全體的으로 原作의 기운이 디지털 아트로 곧장 轉移된 것으로 느껴졌다. 當時 展示 關係者는 “金煥基 作品을 管理하는 환기미술관 쪽에서도 新鮮하다는 反應을 보였다”고 傳했다. 作家 김대환은 4次産業革命 時代에 맞춰 登場한 디지털 아트에 對해 이렇게 評價한다. “結局 이 모든 行爲가 ‘眞짜’ 作品이 아닌 디지털로 具現된 스크린의 藝術일 뿐이지만, 同時에 이 모든 것은 ‘假짜’가 아니라는 點 亦是 분명하다.” 마치 ‘假想 現實’ 世界를 對하는 듯한 作家의 告白은 그의 實際 經驗에서 비롯된다. 김대환은 서울대 美大에서 東洋畫科 및 디자인 複數 專攻으로 學部를 卒業한 後 2020年 英國 王立大學으로 留學하면서 美術 企劃 硏究 및 作品 活動을 竝行했다. 그러다 코비드(COVID) 事態로 英國에서 孤立되는 非對面 時代를 맞았다. 그는 이 期間 멀리 있는 韓國의 家族이 그리워 畫像 通話를 하면서 서로의 靈魂이 慰安을 받을 수 있다는 事實, 또 家族間의 溫氣가 스크린을 통해 地球 反對便까지 傳해질 수 있다는 事實, 마지막으로 이는 우리가 作品을 鑑賞할 때 받는 感動과 다르지 않다는 點을 깨닫게 됐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차갑고 딱딱한 스크린(平面) 너머로 서로의 溫氣를 傳하고 있으며, 이 溫氣는 사람의 ‘마음(哲學)’을 反映할 때 그 存在 價値를 더욱 빛나게 한다는 것이다. 그가 밝힌 溫氣와 마음의 傳達, 스크린을 통한 眞짜와 假짜를 넘어선 境界는 風水에서 重視하는 ‘기운(氣運) 交感’을 의미하기도 한다. 現在 그의 獨特한 디지털 미디어 아트 行步는 유럽人들로부터도 큰 注目을 받고 있다. 그는 韓國에서 반 고흐 展示(2019), LG OLED를 아트 디스플레이로 進行하는 展示(The Black Canvas, 2019)를 성공시킨 以後 英國과 韓國을 中心으로 브랜딩 專門 會社인 비자인(BESIGN)의 代表로서 아트 디렉팅(總括 企劃) 및 製作을 하고 있다. 그는 ‘프리즈 런던 2021’ 아트페어에서 英國의 現代 藝術家인 데미안 허스트와 함께 展示를 進行했고, 같은 해 겨울에는 런던의 奢侈 갤러리에서 現代 美術을 代表하는 作家인 쿠私馬 야요이(日本), 뱅크시(英國), 이우환(韓國) 等의 디지털 展示를 盛況裏에 開催했다. 그는 國內에서 活動中인 韓國 畫家의 位相을 世界的으로 알리는 데도 寄與하고 있다. 지난 10月 世界 3代 競賣社 中 하나인 본햄스 런던 本社에서 最初의 韓國 畫家 招請 個人展(김성희 作家)을 성공시켰던 것.李 展示는 韓國 및 아시아 藝術 市場에 關心을 가진 유럽 컬렉터들로부터 큰 歡迎을 받았다. 김대환은 이 展示會에서도 김성희 作家(서울대 東洋畫科 敎授)의 原作과 함께 이를 디지털 아트로 解釋한 自身의 作品을 對照的으로 配置하면서 好評을 받았다. 原作이 디지털 아트로 變身하는 過程까지 보여주는 이 展示會에서 김성희 作家는 “디지털 作品에서는 平面 作品에서 類推하기 어려웠던 다양한 기운의 흐름이 보여져서 좋았다”고 評價했다. AR(增强現實), VR(假想現實), XR(擴張現實) 等 新世界가 펼쳐지는 世上에서 젊은 藝術家가 主導하는 디지털 아트가 藝術風水의 未來를 보여주는 듯하다. 안영배 記者·風水學 博士 ojong@donga.com}

    • 2023-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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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最高, 最大, 最多… 3최로 글로벌 觀光都市 만들 것”

    “持續 可能한 글로벌 觀光都市 光陽을 열기 위해 最高, 最大, 最多의 ‘3崔 原則’을 觀光 事業의 核心으로 삼고 있습니다.” 全南 광양시가 南海岸 남중권의 中心 觀光地로 浮上하기 위해 果敢한 觀光 戰略 事業을 펼치고 있다. 그 中心에 선 人物이 國會議員을 거쳐 第9代 光陽市長職을 遂行하고 있는 정인화 市場이다. 그는 全南道 觀光文化局長을 거쳐 한양대에서 國際觀光學(碩士 過程)을 專攻한 觀光 分野 專門家이기도 하다. ―3崔 原則을 具體的으로 說明한다면…. “그동안 光陽은 製鐵都市로만 알려져 觀光 인프라가 不足하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습니다. 이를 改善하기 위해서는 最高, 最大, 最多의 觀光 商品을 開發해 사람들의 耳目을 집중시키는 것이 가장 重要합니다. 그렇게 입所聞을 타게 되면 光陽 觀光客 1000萬 名 時代를 자연스럽게 열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確信합니다.” 鄭 市場은 그 例로 全南 順川, 麗水, 慶南 河東, 南海까지 한눈에 眺望할 수 있는 九峯山(海拔 473m)에서 烽火山을 잇는 ‘世界 最長 골든 출렁다리 770’ 建設을 꼽았다. 烽燧臺가 있었던 두 山을 길이 770m 다리로 連結하는 事業이다. 鄭 市長은 또 16世紀에 最大 規模의 韓中日 國際 海上 戰爭이 벌어졌던 光陽灣은 李舜臣 將軍을 ‘킬러 콘텐츠’로 내세워 世界人의 耳目을 끌 수 있는 觀光의 報告라고 밝혔다. ―스토리가 重視되는 觀光 文化에서 外形的 ‘3崔’만으로는 不足하지 않나. “光陽은 周邊 都市와 差別化된 競爭力을 갖춘 觀光 스토리 또한 적지 않습니다. 景觀이 아름다운 蟾津江 亡德浦口는 民族詩人 尹東柱의 遺稿 詩集 發刊과 關聯한 獨立運動과 100年 友情의 香臭가 밴 곳이고, 백계산 옥룡사誌의 冬柏숲과 道詵國師의 風水 스토리는 光陽灣이 간직한 傳統文化 콘텐츠입니다. 이런 콘텐츠 等을 잘 發掘해 活用하면 位置的으로 光陽灣의 中央을 차지하고 있는 光陽이 南海岸 남중권의 觀光 中心地로도 우뚝 설 수 있다고 봅니다.” ―特히 觀光 産業에 力點을 두는 理由는…. “人口 減少, 地域經濟 沈滯라는 宿題를 解決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을 끌어들여야 합니다. 일자리 創出 效果가 큰 觀光 産業은 이를 解決하는 키포인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觀光은 地域經濟 活性化에 核心 役割을 하는 未來 成長 動力이기 때문입니다.” 鄭 市長은 積極的인 觀光 開發과 觀光 인프라 構築 等을 통해 國內뿐만 아니라 全 世界 觀光客의 발길을 끌어들이는 데 最善을 다하겠다고 밝혔다.안영배 記者 ojong@donga.com}

    • 2023-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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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겨울에 즐기는 ‘와유(臥遊) 風水’…글이 그림이 되고, 그림은 기운을 뿌리고[안영배의 웰빙風水]

    날씨가 추워지기 始作하면 室外보다는 室內를 主로 찾기 마련이다. 人體 生理的으로 겨울에는 다른 사람들의 紀行文을 읽음으로써 間接 體驗하는 ‘와유(臥遊) 旅行’이나, 實際 自然物의 기운을 담고 있는 그림, 文字 藝術, 彫刻品 等을 室內 展示場에서 鑑賞하는 ‘와유 風水’가 活潑해진다. 藝術作品 속에서 作品에 內在된 기운과 感興을 하는 行爲는 藝術 風水라고도 한다. 올 겨울엔 分野가 다른 두 作家의 作品이 藝術風水的 視角에서 눈길을 끈다. ● 글씨에서 그림을 보다흔히 藝術風水 하면 自然을 描寫한 그림에서 風水的 느낌을 알아채고 즐기는 程度로 理解하기 쉽다. 그러나 藝術風水는 글씨, 彫刻品, 陶瓷器 等을 모두 包含한다. 材料가 무엇이든 作品 속에서 發揮되는 氣韻生動(氣韻生動)의 境地를 느끼는 風水的 活動이 바로 藝術風水이기 때문이다.글씨 속에서 風水的 興趣를 즐길 수 있는, 흔치 않은 展示會가 열린다. 서울 인사동 인사아트센터 6層(12月 6日~11日)에서 ‘行鰻鱺로(行萬里路)’라는 題目으로 열리는 미당(美堂) 이필숙 作家의 네 番째 書藝展이다.작가의 作品으로 들어가 보자. ‘市中油化 火中諭示(詩中有畵 畵中有詩)’라는 말이 있다. ‘詩 속에 그림이 들어 있고, 그림 속에 詩가 들어 있다’는 뜻으로, 蘇東坡가 唐나라 때 詩人이자 畫家인 往諭의 ‘남전연우도’ 그림을 보고 남긴 말이다. 바로 그런 말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作品이 이필숙 作家의 ‘화양연화(花樣年華)’다. 映畫와 TV 드라마 題目으로도 널리 알려진 이 말은 ‘人生에서 가장 아름답고 幸福한 瞬間’ 或은 ‘꽃처럼 아름다운 時節’을 意味한다. 作家는 “삶이 꽃이 되는 瞬間을 글字로 表現했다”는 말처럼, 마치 글씨가 곧 꽃이 되고, 꽃이 글字로 피어나는 듯한 强烈한 興趣를 일으킨다. 藝術風水的 感覺으로는 꽃으로 象徵되는 禍(火)의 기운이 絶頂에 이른 듯하다. 化의 기운은 흔히 華麗함, 藝術的 創造性, 宗敎的 歡喜 等을 象徵한다. 作品 속에서 作家는 化의 기운으로 ‘書藝의 꽃’을 觀客에게 膳物한다고나 할까.작가의 또 다른 作品인 ‘桃花源記(桃花源記)’를 鑑賞해보자. 中國의 代表的 田園詩人 陶淵明(365~427)의 ‘桃花源記’를 作品化한 것인데, 書藝 作品에서는 包容과 풍요로움을 象徵하는 土(土)의 기운이 活性化돼 있다. 서울大 안재원 敎授(人文學硏究員)는 作家의 作品 自體를 圖畫院으로 設定한 後, 그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사람을 뜻하는 ‘人(人)’字 글씨들을 찾아서 세어보길 勸한다. 그리고 各各의 ‘人’들이 펼쳐 보이는 몸사위를 느껴보라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人’들의 몸사위에서 作家의 붓사위를 만나게 된다. 作品이 곧 作家라는 解釋이다. 오랜 歲月 秋史 金正喜의 書畫(書畵) 美學을 硏究해온 미당 이필숙은 自身의 ‘作家노트’에서 “自然 或은 自然의 道(道)는 書畫家의 기운(氣韻), 精神(精神), 風格(風格) 等과도 一脈相通한다”고 告白하고 있다. 作品 속에 作家의 기운이 실려 있다는 藝術風水的 視角이다. 作品 속에서 作家의 기운을 만나 交感을 나누거나, 作家가 作品 속에서 表現해낸 기운을 느낌으로써 즐거움과 幸福感을 느끼는 게 藝術風水의 目的이기도 하다. 그런 點에서 이番 書藝展은 文字를 造形化한 藝術作品에서 生動하는 기운을 느껴볼 수 있는 時間이 될 것으로 보인다. ● 作品들이 서로 交感하는 空間 서울 한남동의 ZIP739 2層 아트라운지에서는 空間과 作品이 相互 交感하는 特異한 經驗을 提供하는 展示會가 열리고 있다. 가나아트가 主管한 이영림 作家의 ‘Unfolded’라는 題目의 個人展이다(2024년 1月7日까지).작가는 非定型의 ‘셰이프트 캔버스(Shaped Canvas)’, 卽 旣存의 定型化된 四角形 캔버스가 아닌 다양한 形態와 模樣을 갖춘 캔버스에서 實驗的 作品들을 선보이고 있다. 作家는 먼저 作品에서 2次元의 平面的 繪畫에서 脫皮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多角形 或은 非定型으로 잘라진 나무 위에 色彩를 올리거나, 畵面 위에다 曲線의 鐵製와 나뭇조각 等을 입히는 等으로 3次元의 立體性을 確保하고 있다. 어찌 보면 繪畫와 彫刻의 境界를 解體하는 듯한 모습이다. 이어 作品이 展示되는 空間 또한 하나의 캔버스가 된다. 作家는 作品이 놓인 자리, 卽 展示 空間 自體를 하나의 캔버스로 想定한다. 그리고 展示 空間과 作品이 相互 作用을 일으키면서 자아내는 風景에 集中한다. 여기서는 作品이 어떤 位置, 어떤 角度에 配置되는가가 重要하다. 作品이 空間과 相互作用을 통해 活性化되는 重要 變數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作家는 鑑賞者(보는 이)의 視角이 作品 및 空間과 有機的으로 關係를 맺는 認知的 過程을 所重히 여긴다. 作家는 스스로 作品의 範圍나 意味를 限定 짓지 않는다. 오히려 作品이 놓인 場所, 作品을 對하는 鑑賞者의 視線과 움직임 같은 外的인 行爲들까지 自身의 藝術 作業으로 包含하고자 한다. 그 結果 鑑賞者는 主體的으로 作品이 놓인 空間에 介入하게 되고, 鑑賞者에 依해 空間 속에 놓인 作品의 意味가 完成된다는 意圖다. 作家는 2012年 싱가포르 라셀藝術大學校를 卒業한 後 作家로 活動하기 以前에는 認知心理學 博士課程(이화여대 心理學科)을 修了한 經歷이 있다. 그가 作品 속에서 사람의 ‘認知 過程’을 特히 重要視하는 背景이기도 하다. 事實 作家가 空間과 作品의 相互作用을 重要視한다는 것은 매우 風水的인 時刻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를 鑑賞하는 觀客의 認識까지 藝術活動 속에 끌어들이는 行爲 亦是 徹底히 風水的인 事故라고 할 수 있다. 風水에서는 對象物(或은 作品)李 空間에서 어떻게 配置돼 있느냐를 매우 重視하며, 그 配置 構圖에 따라 보는 이에게 길하거나 凶한 기운을 附與한다고 보기 때문이다.풍수적인 思考를 하고 있는 觀客이 이 갤러리에서 作品 鑑賞을 한다고 치자. 觀客은 먼저 갤러리 空間에서 凡常치 않은 에너지場, 卽 明堂 기운이 펼쳐져 있음을 感知하게 된다. 이를 東洋 傳統의 목·火·土·金·數 五行(五行)으로 分類해보면 木器(木氣)에 該當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作家가 즐겨 使用하는 材料는 목기운人 나무다. 展示會 한쪽 사이드에 配置한 作家의 作品들의 境遇 나무의 결을 깊이 품은 셰이프트 캔버스 위에 色깔을 겹겹이 或은 섬세하게 입힌 形態다. 色깔 亦是 軟草綠, 짙은 草綠, 옅거나 짙은 파랑 等 모두 목기운 一色이다. 卽 作品과 空間이 모두 같은 기운으로 서로 相互作用을 하면서 活性化되고 있다. 觀客은 이곳에서 목기운이 주는 生命性, 活動性, 力動性을 느끼는 기운 體驗을 하게 된다.전시 空間의 또다른 사이드에서는 和기운이 剛한 ‘빨강色 作品’들이 눈길을 끈다. 세 作品은 가운데 세 個 點 模樣의 作品을 中心으로 相互 交感을 이루고 있는데, 이는 展示空間에서 펼쳐지는 목 기운을 받아 木生火(木生火)라는 氣韻生動의 效果를 거두고 있다.이처럼 現代美術 作家의 作品에서 東洋 傳統의 五行(五行) 기운을 읽어보는 것은 색다른 즐거움이다. 普通 自然 風景이나 具體的 物象은 목·火·土·金·數라는 5가지 特徵的 기운을 가지고 있다. 한가지 五行이 强調되거나, 여러 五行 기운이 섞여 表出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를 表現한 藝術品 亦是 鑑賞者에게도 똑같은 기운이 傳達된다는 게 東洋畫의 基本的 鑑賞 틀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五行 기운을 東洋의 山水畫 或은 靜物畫가 아닌, 難解하다고 所聞난 現代 抽象化에서도 體驗하고 느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와유 現場이 이영림 作家의 展示會다. 안영배 記者·風水學 博士 ojong@donga.com}

    • 2023-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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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李舜臣 ‘犧牲의 바다’ 품은 光陽…不滅의 冬柏잎은 별빛처럼 玲瓏하고[수토기행]

    ‘鐵의 都市’ 全南 光陽이 歷史的 스토리를 품은 文化 觀光地로 浮上하고 있다. 光陽 앞바다는 李舜臣 將軍이 臨津·精油 7年戰爭을 끝내기 위해 하늘에 목숨을 건 盟誓를 한 곳이자, 民族詩人 尹東柱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가 世上에 빛을 볼 수 있도록 肉筆 原稿를 保管해온 곳이기도 하다. 統一新羅말 風水大家人 道詵國師의 자취가 담긴 옥룡사地 一帶는 現在도 有名人士들을 輩出한 明堂 터다. 햇빛에 반짝거리는 玲瓏한 冬柏숲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겨울 散策 名所로도 人氣 높다.● 李舜臣이 목숨을 擔保로 盟誓한 바다1598年 12月16日 初겨울 새벽. 全南 光陽의 앞바다는 暴風前夜처럼 고요했다. 그러나 잔잔한 바다 물결과는 달리 朝鮮 板屋船 艦隊는 限껏 당긴 활시위처럼 팽팽한 緊張感이 흘렀다. “오늘 眞實로 죽음을 覺悟하오니, 하늘에 바라옵건대 반드시 이 敵을 殲滅하게 하여 주소서.” 三道水軍統制使 李舜臣은 목숨을 걸고 하늘에 盟誓했다. 이어 日本 艦隊와 最後의 決戰이 벌어졌다. 臨津·精油 7年 戰爭의 最大 規模 決戰이 光陽灣 바다에서 展開됐던 것이다.해발 473m의 光陽市 九峯山 展望臺. 425年 前 바로 그때의 光陽灣 겨울 바다는 勿論 順川, 麗水, 河東, 南海까지 한눈에 眺望할 수 있는 곳이다. 李舜臣 將軍이 숨筒을 끊으려 했던 倭將(倭將) 고니시 유키나가 軍의 駐屯地인 順天矮星, 朝鮮과 明나라 聯合水軍의 前進 基地였던 墓道와 張도, 저 멀리 南海郡 露梁大橋와 李舜臣 將軍 殉國 場所인 관음포까지 한눈에 들어온다.순천에서 南海까지 20餘km에 이르는 바다에서 치러진 이 戰爭을 ‘光陽灣 해前’이라고도 부른다. 李舜臣 將軍이 順天矮星 앞바다에서 日本 軍과 戰鬪를 벌인 以後 南海郡 露梁 앞바다 戰鬪에서 死亡하기까지 60餘日間 持續的으로 이어진 海上 戰爭이기 때문이다. 日本側은 李舜臣 將軍이 露梁海峽에서 日本艦隊와 戰鬪을 벌이는 틈을 타 고니시 유키나가 軍이 順天矮星에서 逃亡할 수 있었던 이 戰爭에 對해서는 敗北를 認定한다. 우리가 壬辰精油 7年戰爭을 ‘이긴 戰爭’이라고 規定하는 것도 光陽灣 바다에서의 將軍의 崇高한 犧牲 德分이다.구봉산 展望臺에서는 歷史的 場所를 無料 望遠鏡으로 細密히 살펴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日出과 日沒을 덤으로 鑑賞할 수 있다. 이곳은 바다 위로 피어나는 물안개, 光陽 컨테이너 埠頭를 오가는 大型 船舶 等 異國的인 港口 夜景을 즐길 수 있는 名所로도 有名하다. 夕陽이 바다를 물들이기 始作하면 展望臺의 銀빛 메탈아트 烽燧臺(9.4m)가 빛나고 광양제철소, 李舜臣大橋 等 夜景이 恍惚하게 펼쳐진다.웅장하게 서 있는 李舜臣大橋(銃 延長 2260m)는 李舜臣 將軍이 태어난 해(1545年)을 기려 柱塔 사이 거리가 1545m로 建設된 海上 橋梁이다. 콘크리트로 세워진 柱塔으로는 世界 最高 높이(270m)라고 한다.● 白頭大幹 끝에서 復活한 尹東柱의 詩魂(詩魂)光陽에서는 餘名의 感動과 노을의 餘韻을 즐길 수 있는 또다른 名所가 있다. 550里 蟾津江이 마침내 그 悠長한 흐름을 마무리짓고 바다로 흘러드는 亡德浦口다. 壬辰倭亂 當時 板屋船을 만들던 宣召였던 이곳은 民族詩人 尹東柱의 親筆 유고를 保存한 ‘鄭炳昱 家屋’(1925年 建立)으로도 有名하다.국문학자 정병욱(1922~1982)은 對日抗爭期의 연희전문학교 時節 尹東柱와 因緣을 맺은 人物이다. 鄭炳昱은 先輩 尹東柱가 日本으로 留學 가며 맡긴 詩集 原稿를 自己 집 마루 밑에다 꽁꽁 숨겨 保管했다. 1945年 尹東柱가 日本 후쿠오카 刑務所에서 死亡한 後, 光復 後인 1948年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라는 그의 遺稿 詩集이 世上에 나올 수 있었다. 日帝下에서 尹東柱 유고를 목숨처럼 지켜낸 정병욱 家族 德分이다.백두대간의 北쪽 끝인 北間島 룽징(龍井) 出身인 尹東柱의 詩魂(詩魂)李 백두대간의 南쪽 끝자락인 망덕산의 정병욱 家屋에서 살아났다는 點이 이채롭다. 亡德浦口에는 尹東柱의 詩를 모티브로 한 여러 造形物들이 設置돼 있어 발길을 멈추게 한다. 最近 英國 國王 찰스 3歲가 버킹엄궁에서 開催한 尹錫悅 大統領과의 國賓 晩餐 中 朗誦했던 尹東柱의 ‘바람이 불어’ 是非도 새겨져 있다.한편 亡德浦口 散策路에서 바다쪽으로는 배알도라고 불리는 자그마한 섬이 있다. 망덕산을 向해 拜謁하는 形局에서 그 이름을 얻었다고 傳한다. 오래된 古木, 푸른 잔디가 펼쳐진 배알도 海邊의 섬 庭園은 물멍과 놀멍 名所로 有名하고, 섬 頂上에는 日出과 日沒 및 섬 周邊을 鑑賞할 수 있는 海雲亭이 있다.배알도는 亡德浦口에서 섬을 잇는 ‘별헤는 다리’와 섬에서 맞은便 水邊公園을 잇는 ‘해맞이 다리’가 獨特한 韻致를 자랑한다. 2個의 海上보도교는 流麗한 曲線美로 눈길을 끈다.● 옥룡사誌의 冬柏숲 散策路백계산(505m)의 옥룡사地 冬柏숲度 빼놓을 수 없는 歷史 散策路다. 옥룡사地 周邊에는 首領 100年 以上의 冬柏나무 1萬餘 그루가 자라고 있다. 國內 最大 規模의 冬柏나무 群落地(天然記念物 第489號)다.동백숲은 統一新羅 말 禪僧이자 風水 代價인 道詵國師(827~898)가 옥룡사의 땅 기운을 補强하기 위해 심었다는 傳說을 傳한다. 道詵國師에게 따라다니는 ‘裨補(裨補)風水’의 現場인 것이다.비보풍수는 특정한 땅에 그에 어울리는 특정한 나무나 花草類 等을 심고 가꿈으로써 活性化한 땅 기운(지기·地氣)이 사람에게 이로움을 提供하도록 하는 環境的 行爲를 가리킨다.기자조선을 세운 記者가 朝鮮의 平壤 땅에다 버드나무를 심게 했다는 逸話도 그런 例다. 記者는 朝鮮의 風俗이 너무 剛하고 모진 것을 보고 平壤의 百姓들에게 버드나무를 심도록 奬勵했다. 이는 부드러운 性質을 가지고 있는 버드나무를 심게 함으로써 사람들의 人心을 純化시키는 效果를 거두기 위한 것이었다. 平壤을 버드나무 有(柳) 字를 써서 ‘柳京(柳京)’으로 부르는 背景이다. 마찬가지로 冬柏꽃은 至高한 사랑, 生命의 永續性과 循環 等을 象徵한다고 한다. 道詵國師는 백두대간의 끝자락에 該當하는이곳에서 冬柏나무를 심음으로써, 우리나라 知己가 끊임없이 이어지도록 念願하는 次元에서 冬柏나무를 심었던 것일까.도선국사는 統一新羅때 創建한 옥룡사에서 35年間 머물다 入寂했다고 傳한다. 蕃盛했던 寺刹은 1878年 火災로 廢墟가 됐고 當時 심었다는 冬柏나무만이 茂盛하게 숲을 이루고 있다.옥룡사지에서 隣近 운암사로 이어지는 冬柏나무 오솔길은 爽快한 숲 香氣가 마음의 근심을 씻어주는 治癒의 散策路다. 겨울철에 걸어보는 冬柏숲은 또다른 멋이 있다. 붉은 꽃송이 하나 달려 있지 않지만 한낮의 햇빛을 限껏 머금은 冬柏잎은 대낮에 반짝이는 별을 보는 듯한 夢幻的인 雰圍氣를 자아낸다.옥룡사지에는 ‘所望의 샘’이라는 샘물이 솟아난다. 이 물을 마신 뒤 노무현 候補가 大統領이 됐다는 逸話가 案內板에 새겨져 있다. 그래서 明堂인 옥룡사地를 訪問한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所願을 빌며 샘물을 마시기도 한다. 餘裕가 있다면 隣近의 옥룡면 名當 마을과 道詵國師마을(추산리), 白雲山 自然 休養林度 들러볼 만하다. 特히 옥룡면의 名當 마을은 옥룡사地 基準으로 左靑龍(왼쪽 山자락)의 끝자락에 位置한 곳인데 정인화 광양시長, 朴贊浩 前 地檢長 等 政官界 有名 人士들을 한마을에서 集中的으로 輩出한 곳으로 有名하다. 道詵國師의 風水 源泉地답게 人傑指令(人傑地靈; 영험한 기운이 있는 땅에서 훌륭한 人材가 나온다는 뜻)의 現場인 것이다. 안영배 記者·風水學 博士 ojong@donga.com}

    • 2023-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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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李舜臣의 바다 품은 光陽… 志操의 冬柏잎은 별빛처럼 빛나고[수토기행]

    《‘鐵의 都市’ 全南 光陽이 歷史的 스토리를 품은 文化 觀光地로 浮上하고 있다. 光陽 앞바다는 李舜臣 將軍이 臨津·精油 7年戰爭을 끝내기 위해 하늘에 목숨을 건 盟誓를 한 곳이자, 民族詩人 尹東柱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가 世上에 빛을 볼 수 있도록 肉筆 原稿를 保管해 온 곳이기도 하다. 統一新羅 末 道詵國師의 자취가 담긴 옥룡사地 冬柏숲 또한 눈이 부시도록 반짝거려 겨울 散策 코스로 人氣가 높다.》 ● 丁酉再亂 最後·最大의 戰爭터1598年 12月 16日 初겨울 새벽. 全南 光陽의 앞바다는 暴風前夜처럼 고요했다. 그러나 잔잔한 바다 물결과는 달리 朝鮮 板屋船 艦隊에는 限껏 당긴 활시위처럼 팽팽한 緊張感이 흘렀다. “오늘 眞實로 죽음을 覺悟하오니, 하늘에 바라옵건대 반드시 이 敵을 殲滅하게 하여 주소서.” 三道水軍統制使 李舜臣은 목숨을 걸고 하늘에 盟誓했다. 이어 日本 艦隊와 最後의 決戰이 벌어졌다. 臨津·精油 7年戰爭의 最大 規模 決戰이 光陽灣 바다에서 展開됐던 것이다. 海拔 473m의 光陽市 九峯山 展望臺. 425年 前 바로 그 光陽灣 앞바다는 勿論이고 順川, 麗水, 河東, 南海까지 한눈에 眺望할 수 있는 곳이다. 李舜臣 將軍이 숨筒을 끊으려 했던 倭將(倭將) 고니시 유키나가 軍의 駐屯地인 順天矮星, 朝鮮과 明나라 聯合水軍의 前進 基地였던 墓道와 張도, 저 멀리 南海郡 露梁大橋와 李舜臣 將軍 殉國 場所인 관음포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順天에서 南海까지 20餘 km에 이르는 바다에서 치러진 戰爭을 ‘光陽灣 해前’이라고도 부른다. 李舜臣 將軍이 順天矮星 앞바다에서 日本 軍과 戰鬪를 벌인 以後 南海郡 露梁 앞바다 戰鬪에서 死亡하기까지 60餘 日間 持續的으로 이어진 海上 戰爭이기 때문이다. 日本 側은 李舜臣 將軍이 露梁海峽에서 日本 艦隊와 戰鬪를 벌이는 틈을 타 고니시 유키나가 軍이 順天矮星에서 逃亡할 수 있었던 이 戰爭에 對해서만 唯一하게 敗北를 認定한다. 우리가 臨津·精油 7年戰爭을 ‘이긴 戰爭’이라고 規定하는 것도 光陽灣에서의 將軍의 崇高한 犧牲 德分이다. 九峯山 展望臺에서는 歷史的 場所를 無料 望遠鏡으로 細密히 살펴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日出과 日沒을 鑑賞할 수 있다. 이곳은 바다 위로 피어나는 물안개, 光陽 컨테이너 埠頭를 오가는 大型 船舶 等 異國的인 港口 夜景을 즐길 수 있는 名所로도 有名하다. 夕陽이 바다를 물들이기 始作하면 展望臺의 銀빛 메탈아트 烽燧臺(9.4m)가 金빛으로 빛나고 광양제철소, 李舜臣大橋 等 夜景이 恍惚하게 펼쳐진다. 雄壯하게 서 있는 李舜臣大橋(銃 延長 2260m)는 李舜臣 將軍이 태어난 해(1545年)를 기려 柱塔 사이 거리가 1545m로 建設된 海上 橋梁이다. 콘크리트로 세워진 柱塔으로는 世界 最高 높이(270m)라고 한다. ● 白頭大幹 끝에서 復活한 尹東柱의 詩魂(詩魂) 光陽에서는 餘名의 感動과 노을의 餘韻을 즐길 수 있는 또 다른 名所가 있다. 550里 蟾津江이 마침내 그 悠長한 흐름을 마무리 짓고 바다로 흘러드는 亡德浦口다. 壬辰倭亂 當時 板屋船을 만들던 宣召였던 이곳은 民族詩人 尹東柱의 親筆 유고를 保存한 ‘鄭炳昱 家屋’(1925年 建立)으로도 有名하다. 國文學者 정병욱(1922∼1982)은 對日抗爭期의 연희전문학교 時節 尹東柱와 因緣을 맺은 人物이다. 鄭炳昱은 先輩 尹東柱가 日本으로 留學 가며 맡긴 詩集 原稿를 自己 집 마루 밑에다 꽁꽁 숨겨 保管했다. 1945年 尹東柱가 日本 후쿠오카 刑務所에서 死亡한 後, 光復 後인 1948年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라는 그의 遺稿 詩集이 世上에 나올 수 있었다. 日帝下에서 尹東柱 유고를 목숨처럼 지켜낸 정병욱 家族 德分이다. 백두대간의 北쪽 끝인 北間島 룽징(龍井) 出身인 尹東柱의 詩魂(詩魂)李 백두대간의 南쪽 끝자락인 망덕산의 정병욱 家屋에서 살아났다는 點이 이채롭다. 亡德浦口에는 尹東柱의 詩를 모티브로 한 여러 造形物들이 設置돼 있어 발길을 멈추게 한다. 最近 英國 國王 찰스 3歲가 버킹엄궁에서 開催한 尹錫悅 大統領과의 國賓 晩餐 中 朗誦했던 尹東柱의 ‘바람이 불어’ 是非도 새겨져 있다. 한便 亡德浦口 散策路에서 바다 쪽으로는 배알도라고 불리는 자그마한 섬이 있다. 망덕산을 向해 拜謁하는 形局에서 그 이름을 얻었다고 傳한다. 오래된 古木, 푸른 잔디가 펼쳐진 배알도 海邊의 섬 庭園은 물멍과 놀멍 名所로 有名하고, 섬 頂上에는 日出과 日沒 및 섬 周邊을 鑑賞할 수 있는 海雲亭이 있다. 배알도는 亡德浦口에서 섬을 잇는 ‘별헤는 다리’와 섬에서 맞은便 水邊公園을 잇는 ‘해맞이 다리’가 獨特한 韻致를 자랑한다. 2個의 海上보도교는 流麗한 曲線美로 눈길을 끈다. ● 옥룡사誌의 冬柏숲 散策路백계산(505m)의 옥룡사地 冬柏숲度 빼놓을 수 없는 歷史 散策路다. 옥룡사地 周邊에는 首領 100年 以上의 冬柏나무 1萬餘 그루가 자라고 있다. 國內 最大 規模의 冬柏나무 群落地(天然記念物 第489號)다. 冬柏숲은 統一新羅 말 禪僧이자 風水 代價인 道詵國師(827∼898)가 옥룡사의 땅 기운을 補强하기 위해 심었다는 傳說을 傳한다. 道詵國師에게 따라다니는 ‘裨補(裨補)風水’의 現場인 것이다. 裨補風水는 특정한 땅에 그에 어울리는 특정한 나무나 花草類 等을 심고 가꿈으로써 活性化한 땅 기운(지기·地氣)이 사람에게 이로움을 提供하는 環境的 行爲를 가리킨다. 箕子朝鮮을 세운 記者가 朝鮮의 平壤 땅에다 버드나무를 심게 했다는 逸話도 그런 例다. 記者는 朝鮮의 風俗이 너무 剛하고 모진 것을 보고 平壤의 百姓들에게 버드나무를 심도록 奬勵했다. 이는 부드러운 性質을 가지고 있는 버드나무를 심게 함으로써 사람들의 人心을 純化시키는 效果를 거두기 위한 것이었다. 平壤을 버드나무 有(柳) 字를 써서 ‘柳京(柳京)’으로 부르는 背景이다. 마찬가지로 冬柏꽃은 至高한 사랑, 生命의 永續性과 循環 等을 象徵한다고 한다. 道詵國師는 백두대간의 끝자락에 該當하는 이곳에서 우리나라 知己가 循環을 통해 永遠히 이어지도록 念願하는 次元에서 冬柏나무를 심었던 것일까. 道詵國師는 統一新羅 때 創建한 옥룡사에서 35年間 머물다 入寂했다고 傳한다. 蕃盛했던 寺刹은 1878年 火災로 廢墟가 됐고 當時 심었다는 冬柏나무만이 茂盛하게 숲을 이루고 있다. 옥룡사地에서 隣近 운암사로 이어지는 冬柏나무 오솔길은 爽快한 숲 香氣가 마음의 근심을 씻어주는 治癒의 散策路다. 겨울철에 걸어 보는 冬柏숲은 또 다른 멋이 있다. 붉은 꽃송이 하나 달려 있지 않지만 한낮의 햇빛을 限껏 머금은 冬柏잎은 대낮에 반짝이는 별을 보는 듯한 夢幻的인 雰圍氣를 자아낸다. 옥룡사地에는 ‘所望의 샘’이라는 샘물이 솟아난다. 이 물을 마신 뒤 노무현 候補가 大統領이 됐다는 逸話가 案內板에 새겨져 있다. 그래서 옥룡사地를 訪問한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所願을 빌며 샘물을 마시기도 한다. 餘裕가 있다면 옥룡사地 冬柏나무숲 隣近의 道詵國師마을, 白雲山 自然休養林도 들러볼 만하다.안영배 記者·風水學 博士 ojong@donga.com}

    • 2023-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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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漢江邊 ‘K-明堂’에서 힐링하는 晩秋 旅行[水土奇行]

    《京畿 楊平과 加平은 서울과 가까운 首都圈이라는 理由로 서울 사람들이 그냥 지나치기 쉽지만 名勝地들이 적지 않은 곳이다. 楊平 쪽 南漢江과 加平 쪽 北漢江이 秀麗한 山勢와 어우러져 名所들을 形成한 이곳에서는 豐盛한 스토리가 담긴 自然記念物과 21世紀 ‘K-明堂’을 象徵하는 建築物들이 共存하고 있다. 首都圈 名當地로 늦가을 旅行을 즐겨보자.》 ● 장락地脈에 서린 龍鳳(龍鳳)의 기운丹楓마저 저물어 가는 무렵의 旅行은 겉治粧 없이 속살 그대로의 自然을 즐기는 맛이 있다. 노랗게 물든 나뭇잎과 열매를 땅에 수북이 뿌려놓은 채 몸매를 드러낸 용문사 銀杏나무(楊平郡 용문면)가 바로 그런 곳이다. 키 42m, 뿌리 部分 둘레가 15.2m에 이르는 이 銀杏나무의 守令은 1100年 以上으로 推定된다. 우리나라 天然記念物(第30號)이자 楊平郡의 象徵物이기도 하다. 老巨樹임에도 不拘하고 只今도 約 2∼3가마(350kg)의 열매를 맺는 암나무다. 歷史가 오래된 나무이다 보니 따라붙은 事緣도 다양하다. 佛敎의 高僧 義湘大師, 마의태자 等 新羅時代 人物들이 심었다는 傳說들이 傳한다. 歷史的으로는 朝鮮의 世宗大王이 이 나무의 眞價를 알아보고 ‘堂上官’이라는 벼슬을 내려주었다. 世祖 때 벼슬을 下賜받은 忠北 報恩의 正二品松보다 이른 時期에 官職에 進出한 나무다. 近代에 들어서는 對日抗爭期인 1907年, 日本軍이 정미의病(丁未義兵)의 巢窟인 龍門寺에 불을 질렀는데 이 銀杏나무만은 火魔를 避했다는 逸話가 傳한다. 이때부터 火災로 消失된 四天王展(四天王殿)을 代身하는 天王목(天王木) 役割을 해왔다고 한다. 또 나라에 큰 變故가 생길 때마다 이 나무가 소리로 이를 알렸다는 신령스러운 스토리도 있다. 朝鮮의 高宗이 昇遐하였을 때 큰 나뭇가지 하나가 부러졌고, 8·15 光復과 6·25戰爭 때도 나무가 구슬픈 소리를 냈다는 것이다. 용문사 銀杏나무가 끊임없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이곳이 風水的으로 明堂 터임을 알려주는 證據다. 좋은 기운이 있는 곳은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끊임없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實際로 이곳은 용문사 境內에서도 가장 기운이 굳센 곳 中 하나다. 이런 기운은 사람들의 所願을 들어주는 名所로 소문나기 마련이다. 이 銀杏나무는 벼슬을 받은 ‘高貴한 存在’인 만큼 出世나 名譽 等의 所願 祈禱處로 有名했다. 또한 豐盛한 銀行 열매가 子息 生産을 의미한다고 해서 出産과 豐饒의 神木(神木)으로서 役割을 忠實히 해오기도 했다. 只今도 銀杏나무를 保護하는 鐵柵 周邊으로는 所願을 빼곡히 담은 종이들이 無數히 걸려 있다. 용문사를 품고 있는 龍門山(1157m) 亦是 예사로운 山은 아니다. 이름 그대로 ‘龍(龍)’李 出入하는 ‘門(門)’이라는 뜻으로 미르(龍)山이면서, 다른 한便으로 鳳凰山이라고도 불렸다. 最高의 支存(至尊)을 象徵하는 龍과 鳳凰의 뜻을 다 품은 山인 셈이다. 이 山의 地脈은 北쪽으로 鳳凰의 꼬리인 봉미산을 거쳐 加平 쪽의 보리産科 장락산으로 이어진다. 이 길을 즐기는 登山客들도 적지 않은데 一名 ‘장락地脈’으로 알려진 코스다.● 小說 ‘風水戰爭’의 背景인 보리山 靑리움먼저 보리山에는 한컴그룹(한글과 컴퓨터)李 設立한 複合 라이프 플랫폼인 ‘靑리움’(加平郡 설악면)이 있다. ‘맑은 기운이 모이는 空間’임을 의미하는 청리움은 人工知能(AI), 事物인터넷(IoT), 假想現實(VR) 等 4次 産業革命 技術을 加平의 淸淨 自然에 椄木시켜 自然 속에서 스마트 라이프를 具現하려는 김상철 한컴그룹 會長의 意志가 담긴 作品이라고 한다. 再充電 힐링 프로그램으로 官公署와 企業體의 硏修 場所로 人氣를 끄는 청리움은 事實 小說 ‘風水戰爭’의 背景이기도 하다. 小說家 김진명이 이곳을 訪問한 뒤 靈感을 받아 글감으로 썼다는 것이다. 小說 속에 登場하는 보리産科 장락산의 奇異한 關係, 보리山 곳곳에 맺힌 九龍穴(九龍穴) 터, 午下山房 等이 모두 이곳에 實在하고 있다. 午下山房의 主人인 ‘午下産인’으로 描寫된 人物 亦是 김상철 會長을 가리킨다. 實際로 이곳은 대단한 明堂 터로 알려져 있다. 이곳을 訪問한 慧炬 스님(동국대 동국譯經院 院長)은 黃龍農酒(黃龍弄珠·黃龍이 如意珠를 갖고 노닌다는 뜻)의 穴터라고 하면서 感歎했다고 한다. 청리움은 유럽의 어느 小都市를 訪問한 것 같은 異國的 느낌을 주면서도 徹底히 韓國的인 情緖를 간직하고 있다. 400年 守令의 木瓜나무, 맛이 津한 土種 된醬과 간醬이 담긴 醬독臺, 기와집 지붕에 핀 瓦松(瓦松), 목·火·土·金·數 五行(五行)別로 分類해 놓은 植物과 나무, 甚至於 긴 꼬리가 特徵인 土種닭까지 珍貴한 韓國産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金 會長은 靑리움에서만큼은 “未來 世代를 위해서라도 우리 것을 原形 그대로 保存하며 가꾸고 있다”고 말했다. 靑리움에서는 저 멀리 건너便으로 장락산이 보인다. 보리山 청리움의 視角에서는 장락산이 福을 불러오는 安山 役割을 하고 있다. 장락산 품에 안긴 白色 建物이 매우 印象的으로 다가오는데, 돔形 지붕이 마치 美國 國會議事堂을 聯想케 한다. 바로 世界平和統一家庭聯合(통일교)의 聖殿인 ‘千正宮’이다. 統一敎 創始者이자 風水에도 밝았던 故(故) 문선명 總裁가 이곳에 자리 잡으면서 “湖水와 山野가 調和를 이룬 곳으로, 世界에 자랑할 만한 곳”이라고 自負했던 곳이다. 아쉽게도 장락산 千正宮 一帶는 一般人의 出入을 禁止하고 있어서 멀리서 鑑賞할 수밖에 없다. 보리産科 장락산의 海拔 높이가 똑같이 627m라는 點도 關心을 끄는 대목이다. 이 때문에 두 山은 雙둥이 山으로 比較되곤 한다. 장락산이 代替로 바위로 이뤄진 骨山(骨山)이어서 靈的 或은 宗敎的 感興을 일으키는 山이라면, 보리山은 흙으로 이뤄진 肉山(肉山)으로 豐饒와 休息에 좋은 山이라는 解釋이다. 장락산에 宗敎 施設物이 들어서고, 보리山에 企業體 硏修 施設이 들어선 게 偶然이 아니라는 얘기다.● 漢江邊의 名當 博物館장락산 아래 淸平湖의 快適한 水邊 風景을 즐긴 後 北漢江邊을 따라 서울 쪽으로 가다 보면 南漢江과 合流하는 두물머리(楊平郡 양수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두물머리의 象徵인 느티나무(首領 400年)와 바로 옆 고인돌에서 暫時 쉬면 加平과 楊平 쪽 山과 江의 기운을 綜合的으로 醉氣(取氣)하는 느낌이 든다. 이어 本格的으로 漢江이 始作되는 江邊路에 位置한 西洋樂器 博物館 ‘프라움惡旗博物館’(館長 김정실)을 訪問하는 것도 좋다. 4679㎡(藥 1415坪) 敷地에 中世 유럽 建築 樣式으로 지어진 博物館은 出入口부터 雄壯한 雰圍氣를 준다. 1層은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춘 音樂과 樂器들이 紹介돼 있다. 漢江邊의 아름다운 風景이 한눈에 들어오는 2層 展示室엔 18∼19世紀에 製作된 그랜드 피아노, 하프, 바이올린 等 名品 樂器들이 櫛比하다. 김정실 館長은 런던, 파리, 빈 等 유럽의 都市에서 벌어지는 競賣場을 돌며 珍貴한 西洋 古典 樂器를 蒐集하고 世界的으로 이름난 博物館을 두루 탐방한 끝에 이곳에 樂器博物館을 세웠다고 한다. 그런데 博物館 庭園에는 매우 재미있는 文句가 새겨져 있다. ‘우리나라의 知己(地氣)는 平均 0.5G(가우스)이나, 이곳은 17G로 生氣 터이며 地氣가 매우 旺盛한 터’임을 證明하는 어느 風水團體의 牌말이 눈길을 끈다. 그와 함께 姜 건너便으로 영험한 검단산을 바라보는 靑石 거북도 함께 造成돼 있는데, 거북을 어루만지며 所願을 빌면 이뤄진다는 俗說 때문인지 거북 머리가 반질반질할 程度다. 한便 김상철 會長의 夫人인 金 館長은 지난해 競技 남양주시의 低所得 홀몸老人을 위해 3000萬 원을 支援한 것을 비롯해 1996年 以後 只今까지 社會的 弱者層을 對象으로 27億 원 넘게 寄附해 왔다. 豐饒 明堂의 眞正한 主人은 豐饒를 베풀 줄 아는 사람임을 보여주는 곳이라고 할 것 같다.안영배 記者·風水學 博士 ojong@donga.com}

    • 2023-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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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豐饒 明堂은 主人이 따로 있다 [안영배의 웰빙風水]

    ● 小說 ‘風水戰爭’의 舞臺베스트셀러 作家 김진명이 最近 펴낸 小說 ‘風水戰爭’에는 興味로운 場所가 描寫돼 있다. 詛呪의 呪術에 걸린 大韓民國을 救하기 爲해 全國의 有名 道士들이 몰려든 加平의 보리山 午下山房이다. 小說은 이곳을 主 舞臺로 삼아 日本人들에 依한 우리나라 歷史 歪曲 및 風水 侵略 等의 얘기를 풀어가고 있다. 보리山 午下山房으로 直接 가보았다. 小說속 描寫대로 아늑한 기운이 감도는 이곳은 한컴그룹(한글과 컴퓨터)李 複合라이프 플랫폼을 標榜하며 세운 ‘靑리움’(加平郡 설악면) 內에 자리 잡고 있다. ‘맑은 기운이 모이는 空間’임을 의미하는 청리움은 김상철 한컴그룹 會長의 意志가 담긴 作品이라고 한다. 청리움은 地自體 및 企業體 硏修院으로 쓰이는 본채 建物 위쪽으로 오래된 기와를 머리에 인 午下山房이 들어선 構造다.놀랍게도 午下山房의 ‘午下(梧河)’는 김상철 會長의 號이기도 했다. 그러니 小說에서 午下山房의 主人으로 描寫된 吳하산人은 바로 金 會長을 가리키는 셈이다. 實際로 竹杖(竹杖)을 짚고서 손님을 맞이하는 金 會長에게서는 企業人이라기보다는 陶人의 品格이 물씬 풍겼다. 靑리움, 卽 午下山房이 들어선 보리山 一帶는 風水를 모르는 이들도 절로 感歎을 내뱉을 程度로 名勝을 자랑하는 名當지다. 이곳을 訪問한 慧炬스님(동국대 동국譯經院 院長)은 神仙이 道袍 자락을 휘날리며 춤을 추는 先人無水型(仙人舞袖形) 或은 黃龍이 如意珠를 갖고 노니는 黃龍農酒型(黃龍弄珠形) 明堂이라고 讚歎했다고 한다. 九龍穴(九龍穴) 터로 알려진 이곳에는 實際로 最小 9곳 以上의 名當 穴들이 곳곳에 숨은 듯이 布陣돼 있다. 그中 한 곳이 맞은便 장락산을 바라보며 세워진 두 마리 거북賞이다. 이곳에서 김상철 會長은 이곳 보리産科 건너便 장락산의 妙한 關係를 說明했다. “보리産科 장락산은 海拔 높이가 똑같이 627m로 一種의 雙둥이 山이라고 할 수 있다. 統一敎 聖殿인 千正宮이 있는 장락산이 五行(五行)中 禍(火) 기운이라면 이곳 청리움이 들어선 보리山은 數(水) 기운이라고 할 수 있다. 數를 象徵하는 거北上이 이곳에 配置된 것도 거센 불기운에 對應하기 위한 悲報策이다.” 實際로 청리움에는 龍이 물을 만나는 龍沼(龍沼)들도 곳곳에 布陣돼 있다. 元來 있던 작은 蓮못들을 다듬고 가꿔서 只今의 크기로 造成했다고 한다. 이 亦是 龍은 물이 있어야 昇天한다는 風水的 措置라고 할 것이다. 統一敎 指導者이면서 風水에도 밝았던 故(故) 문선명 總裁도 生前에 보리山의 眞價를 알아보았던 模樣이다. 統一敎 側이 한컴그룹 所有의 보리山에 對한 買入을 進行하다가 門 總裁가 死亡(2012年)하는 바람에 中斷됐다고 한다. 物各有主(物各有主)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天地間의 萬物에는 모두 各自의 主人이 있다는 뜻이다. 장락산과 보리山의 關係도 그러한 듯싶다. 장락산은 天機(天氣)가 旺盛한 靈的인 山이어서 宗敎的 施設物이 어울리는 곳이고, 보리産銀 豐饒로운 知己(地氣)가 가득한 곳이어서 企業 或은 事業體 施設物이 어울리는 곳이다. ●白色 名當討議 正體 ‘靑리움’은 유럽의 어느 小都市를 訪問한 것 같은 異國的 느낌을 주면서도 徹底히 韓國的인 情緖를 간직하고 있다. 400年 守令의 木瓜나무, 土種 된醬과 간醬이 맛이 津한 醬독臺, 午下山房의 기와 지붕에 핀 瓦松(瓦松), 시골 情緖 물씬 풍기는 탐스러운 紅柹, 山자락 곳곳에 흩뿌려 놓은 山蔘 種子, 甚至於 긴꼬리가 特徵인 土種 닭 等이 곳곳에 숨은 듯이 자리하고 있다. 金 會長은 靑리움에서만큼은 “未來 世代를 위해서라도 우리 것을 原形 그대로 保存하며 가꾸고 있다”고 말했다. 또 靑리움에서는 珍貴한 風水的 現象을 눈으로 確認해 볼 수 있다. 午下山房 바로 隣近에는 지름 60cm 안팎 넓이로 둥그렇게 白土(白土)가 形成된 地帶가 있다. 風水에서는 여러 色깔을 띠는 誤色토 或은 하얀 빛깔의 白土는 名當 穴임을 알려주는 ‘證據’라고 解釋한다. 땅의 地氣에 依해 흙 色깔이 周邊과 달라지는 奇跡 現象이라고 할 수 있다. 實際로 이곳은 明穴 터답게 터의 기운도 强하다. 이곳에서 所願을 빌면 이뤄진다고 해서 所願을 적어놓을 수 있는 펜과 종이들도 갖춰져 있다. 다음으로 韓醫學 原理에 依해 植物 및 나무類를 목·火·土·金·數 五行(五行)別로 分類해 심어놓은 地域이다. 보리山자락 한 모퉁이에 五行 別로 區分해 놓은 地域에서는 實際로 獨特한 五行의 기운이 느껴진다. 사람의 손으로 人爲的으로 造成된 空間에서도 ▲스프링처럼 위로 솟구쳐 오르는 목의 기운 ▲머리 위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어나는 化의 기운 ▲묵직한 帽子 或은 鐵帽를 뒤집어쓴 듯한 討議 기운 ▲아래로 下降하는 金의 기운 ▲뼛속까지 振動을 傳해주는 數의 기운 等을 體驗해볼 수 있는 게 놀라울 程度다. 이 모두 五夏 김상철 會長의 意志가 反映된 作品이라고 한다. 이처럼 成功한 企業家인 金 會長은 海外에 흩어진 우리 文化財 還收 活動, 傳統 藝術 復元 및 後援, 한글의 世界化 等 우리文化 지킴이로서의 役割을 忠實히 해오고 있다. 그는 國際로타리 아치클럼프 소사이어티 멤버이기도 하다. 美貨 25萬 달러 以上을 寄附한 最上位 클럽 會員들에게 주어지는 名譽職인데, 豐饒 明堂인 보리山의 菩提心을 實踐하는 主人公답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안영배 記者·風水學 博士 ojong@donga.com}

    • 2023-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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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謙齋 그림 ‘金剛山도’에 숨겨진 五行 風水[안영배의 웰빙風水]

    朝鮮 第3代 國王 太宗은 中國人들이 金剛山에 목매는 理由가 궁금했다. 太宗은 1404年 9月 臣下들과 政策을 論議하던 中에 “中國 使臣이 오면 꼭 金剛山을 보고 싶어 하는데 무슨 까닭인가? 俗諺에 中國人에게는 ‘고려국에 태어나 親히 金剛山을 보는 것이 所願(願生高麗國 親見金剛山)’이라는 말이 있다는데 그러한가?’ 하고 물었다. 이때 河崙은 “金剛山이 동국(東國, 우리나라)에 있다는 말이 大腸經에 실려 있으므로 그렇게 말하는 것”이라고 答했다. 實際로 그랬다. 金剛山은 經典에 言及될 程度로 神祕하고도 莊嚴한 山이었다. 그래서 中國 使臣들은 韓半島를 찾을 때마다 金剛山에 直接 가보기를 願했다. 그게 如意치 못할 境遇 金剛山 그림이라도 求해 보기를 懇切히 바랐다. 高麗와 朝鮮 朝廷이 中國에 金剛山도(金剛山圖)를 그려 보내주었다는 記錄도 여럿 있을 程度다. 그림을 통해서나마 金剛山의 神靈한 기운을 느껴보려는 心理는 事實 中國의 ‘와유(臥遊, 누워서 山川을 遊覽함)’ 傳統과 無關치 않다. 臥遊는 房안에 누운 채 壁에 걸린 그림 속의 算數(山水)를 鑑賞하거나 山水의 기운을 누리며 즐긴다는 뜻이다. 그 淵源은 中國 南北朝時代의 畫家 從兵(宗炳, 375~443)에게서 찾아진다. 從兵은 젊은 時節 天下 名山을 두루 돌아다니다 몸이 늙어 더 以上 現場을 찾을 수 없었다. 苦心 끝에 代案을 찾아냈다. 自身이 찾아다녔던 山川을 그림으로 描寫해 房에 걸어두고서 마음의 눈으로 遊覽을 즐기는 方法이었다. 이러한 臥遊山水(臥遊山水)는 山水畫에서도 自然의 기운이 具現된다는 기운生動(氣韻生動)의 槪念을 前提로 한다. 當然히 自然의 기운을 探索하는 風水와도 連結되는 論理다. 우리나라에서 金剛山의 와유산수를 確實하게 驅使한 畫家로는 謙齋 鄭敾(1676~1759)李 으뜸으로 꼽힌다. 英祖 임금의 그림 先生이었던 謙齋는 1734年 겨울 ‘金剛全圖(金剛全圖)’라는 作品을 完成했다. 莊嚴한 金剛山의 全景을 眞景(眞景)山水畫風으로 그려낸 것이다. ‘眞景’은 마음에서 느낀 그대로를 그린 眞짜 景致라는 뜻이다.겸재는 代作(가로 94.5cm, 세로 130.8cm)인 ‘金剛全圖’를 그리면서 畫幅 上段에 ‘一萬二千峯의 皆骨山(겨울 金剛山), 뉘라서 그 意味를 담아 참 모습을 그려내리’라고 始作하는 提示(題詩)를 써놓았다. 그만이 金剛山을 오롯이 表現해낼 수 있다는 自負心이 밴 詩句다. ‘金剛全圖’는 謙齋가 露骨的으로 自己 자랑을 해도 遜色이 없는 傑作으로 評價된다. 火星(畵聖)이라고까지 推仰받은 그의 獨特한 畫風이 絶妙하게 表現돼 있을 뿐만 아니라, 그의 宇宙觀 或은 世界觀까지 作品속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事實 謙齋는 主役 解說書人 ‘도설경해’라는 冊을 쓸 程度로 力學의 大家이기도 했다. 美術史學者 오주석氏(作故)는 士大夫 出身이자 圖畫署 畫員인 謙齋에 對해 硏究한 後 그가 깨달은 周易의 根本 理致 및 太極, 陰陽, 五行 等의 思想이 ‘金剛全圖’에 表現돼 있다고 主張했다. 東洋 山水畫의 鑑賞法 中 하나인 氣韻生動(氣韻生動)으로 ‘金剛全圖’를 살펴보자. 謙齋는 于先 金剛山 一萬二千 봉우리를 한데 모아 原形으로 集約시켜 놓았다. 그리고 그 中心은 畵面 한가운데 萬瀑洞 溪谷이다. 金剛山 이곳 저곳 골짜기에서 흘러온 物들度 모두 萬瀑洞으로 모여든다. 天下 絶景을 자랑하는 萬瀑洞의 너럭바위가 畵面의 中心이자 기운의 中心이 되는 셈이다. 이곳은 그림 속 기와 外部(火가 或은 感想家)와의 連結路인 器具(氣口)에 該當하고, 五行으로는 中央의 土(土)를 象徵한다. 萬瀑洞의 土 기운은 溪谷의 물길을 따라 畵面 아래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데 長安寺 入口 무지개다리人 비홍교에 이른다. 이곳은 큰 물을 이룬 곳이다. 五行으로는 수(水)에 該當하는 空間이다. 비홍교 쪽에서 다시 視線은 時計 反對 方向으로 옮아가는데 바위로 이루어진 암봉들이 불꽃처럼 펼쳐지고 있다. 그러니까 金剛全圖의 畵面 오른쪽은 禍(火)의 領域이다. 이윽고 化의 空間에서 畵面 최상단部로 가면 金剛山의 最高峯인 毘盧峯(1639m)李 雄壯하게 描寫돼 있다. 陽明한 기운이 넘쳐나는 領域으로 五行으로는 金(金)에 該當한다. 毘盧峯이 種(鐘)을 엎어 놓은 듯한 모습으로 描寫돼 있는 것도 이곳이 金의 기운임을 表現해내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風水에서는 이런 模樣의 産을 金星(金星)으로 分類하기 때문이다. 毘盧峯에서 다시 왼便 아래로 내려오면 森林이 우거진 부드러운 山이 나타난다. 소나무 잣나무 等 樹木이 우거진 이곳은 목(木)기운에 該當한다. 이처럼 ‘金剛全圖’는 하나의 畵面 속에 五行의 기운이 골고루 表現돼 있는, 보기 드문 作品이다. 그런데 오주석의 硏究에 依하면 ‘金剛全圖’는 中央 土에서 始作해 土克水(土剋水: 토가 水를 이김), 水克火(水剋火; 數가 불을 이김), 火克金(火剋金), 金克木(金剋木)이라는 五行 相剋의 理致가 作動하고 있다. 이는 人間 世上에서는 後天(後天) 相剋의 原理가 作動한다는 驛의 理致를 表現하려 한 것으로 解釋된다. 이 뿐만 아니다. 畵面 上段의 毘盧峯과 下段의 비홍교는 陰陽의 최정점을 暗示하고 있다. 불끈 솟은 毘盧峯과 물이 豐富한 비홍교는 兩南淫女(陽男陰女)를 象徵하는 것으로 解釋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곳은 S字 模樣의 太極(太極)으로 이어지고 있다. 謙齋는 이 作品을 完成한 뒤 “設令 (金剛山을) 내 발로 直接 밟아보려 한들 이제 다시 두루 걸어야 할 터/ 어찌 베갯맡에 期待 (내 그림을) 실컷 보는 것만 하겠는가”하고 提示에서 밝혀 놓았다. 金剛山을 直接 가보지 않아도 金剛山의 겉 모습과 참 뜻을 表現해낸 自身의 그림에서 臥遊의 妙味를 누릴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 不足한 기운은 그림으로 補充그림을 통한 臥遊의 즐거움은 現代에 와서도 누릴 수 있다. 東아시아 사람들은 陰陽과 五行을 통해 自然을 理解하고 說明했다는 常識을 理解하면 錦上添花다. 옛 사람들은 山의 形態를 金,목,수,禍,討議 五行으로 區分해 山의 기운을 理解했다. 中國 五代(五大;907~979年) 時期의 畫家인 荊浩(荊浩)는 ‘筆法機’라는 화론서에서 “뾰족한 形象을 鳳(峰)이라 하고, 平平한 形象을 情(頂)이라 하며, 둥근 形象을 만(巒)이라 하고, 山과 山이 서로 잇대 있는 形象을 ‘英(領)’이라고 한다”고 言及했다. 이는 山의 形態를 五行으로 分類함을 가리킨다. 날카롭고 뾰족한 봉우리를 이룬 ‘鳳’은 火山(火山)에 屬하며, 頂上이 平平한 産銀 土産(土山)에 屬한다. 봉우리가 둥그스름한 形象은 錦山(金山)인데, 봉우리가 둥글면서도 우뚝 치솟은 形態를 하고 있으면 目算(木山)에 該當한다. 또 봉우리와 봉우리가 서로 이어진 듯 물결처럼 보이는 形態의 山은 水産(水山)에 屬한다. 여기서 五行에 對해 한 걸음 더 나아간 解釋을 해보자. ▲目算은 목의 기운을 象徵한다. 목의 기운은 生命力, 成長과 上昇, 創意性을 象徵한다. 季節로는 봄, 人體로는 간 機能과 關聯 깊다. ▲火山은 化의 기운을 象徵한다. 化의 기운은 熱情, 發展과 擴張, 藝術性, 宗敎를 象徵한다. 季節로는 여름, 人體로는 心臟 機能과 關聯 깊다. ▲土産은 討議 기운을 象徵한다. 討議 기운은 調和와 仲裁, 均衡, 包容 等을 象徵한다. 季節로는 換節期, 人體로는 僞裝 機能과 關聯 깊다. ▲금산은 金의 기운을 象徵한다. 金의 기운은 結實, 決斷力, 勇氣, 自己 節制 等을 象徵한다. 季節로는 가을, 人體로는 肺 機能과 關聯 깊다. ▲水産은 數의 기운을 象徵한다. 數의 기운은 智慧, 融通性, 精神과 靈魂 等을 象徵한다. 季節로는 겨울, 人體로는 腎臟 機能과 關聯 깊다. 이렇게 五行이 强調된 그림에서는 實際로 五行의 에너지가 뿜어져 나온다. 世上을 살아가다보면 自身에게 必要한 德目, 或은 健康上 도움이 되는 五行이 있기 마련이다. 이때 山水畫 等 그림 속에서 强調되는 特定 五行을 집안에서 마음의 눈으로 즐기다 보면 절로 不足한 기운을 補充할 수 있다. 바로 이게 ‘와유’의 眞正한 意味이자 適切한 藝術 風水일 것이다. 안영배 記者·風水學 博士 ojong@donga.com}

    • 2023-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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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丹陽 名所 旅行… 몸에 陽의 기운 샘솟아[수토기행]

    忠北 丹陽(丹陽)은 地名에서 神仙의 香氣가 물씬 풍기는 곳이다. 丹陽은 不老長生의 核心인 單(丹)을 硏磨한다는 ‘煉丹(鍊丹)’과, 人體 生命力인 陽氣(陽氣)를 잘 다스린다는 ‘調養(調陽)’에서 한 글字씩 醉한 이름이라고 傳해진다. 丹陽에는 이름만큼이나 健康해지고 힐링이 되는 名所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傳統의 觀光都市 丹陽이 예전보다 더 세련되고 親環境的으로 再武裝한 ‘單 名所’들로 가을 나들이客을 끌어들이고 있다. ● 삼선암 바위에 이름 새긴 속내는?단양에는 ‘單(丹) 旅行’을 위한 特別할 길이 있다. 丹陽郡이 造成해놓은 ‘느림보遊覽길’과 ‘느림보江물길’이다. 이들 길을 걷다 보면 陽氣 充滿한 單 名所들을 次例대로 만날 수 있다. 먼저 느림보遊覽길은 4個 區間 總 36.6km로 이뤄져 있다. 이 中 1區間(腺癌骨生態遊覽길·14.8km)과 3區間(舍人巖숲소리길·9.2km)에서는 神仙 世界를 表現하는 글과 傳說들을 集中的으로 接할 수 있다. 먼저 腺癌骨生態遊覽길은 ‘神仙이 내려와 노닐던 길’로 불린다. 단성면 段性生活體育公園에서 單陽川乙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腺癌溪谷의 下仙巖, 中仙巖, 上仙巖을 연달아 만나게 된다. 神仙이 이 세 곳 巖盤地帶의 絶景에 醉해 노닐었다는 傳說이 傳해지는 名所들이다. 도락산에서 發源하는 腺癌溪谷의 첫 番째 名所인 下仙巖(下仙巖)은 30餘 個에 이르는 너른 마당바위가 펼쳐진 곳이다. 이 中 3層 構造의 흰色 너럭바위 위로는 둥글고 커다란 巖盤이 덩그러니 앉아있는 모습이 印象的이다. 그 形象이 彌勒 같다고 해서 불암(佛巖) 或은 腺癌(仙巖)이라고 불린다. 下仙巖에서는 바위에 새겨진 各自(刻字)들이 여러 個 있다. 이 中 篆書體(篆書體)로 ‘名所單調(明紹丹?)’라는 붉은빛 글씨가 눈길을 끈다. 神仙처럼 노닐던 耳鳴(李明), 이소(李紹) 兄弟가 先約(仙藥)을 굽던 부엌이라고 傳해진다. 長生不死의 藥을 만드는 곳이라는 뜻이다. 下仙巖은 明堂 기운이 느껴지는 곳이자 빼어난 景致로도 이름났다. 丹陽郡守를 지낸 退溪 李滉은 “바위의 赦免(四面)에는 봄이면 철쭉꽃이 타는 노을 같고 가을이면 丹楓이 燦爛한 緋緞 같으니, 바위는 眞實로 奇異한 景致 中에서 더욱 奇異하다”고 노래했다. 가을빛 물속에 비친 바위가 무지개처럼 玲瓏해서 ‘弘巖(虹巖)’으로도 불리는 下仙巖을 떠나 溪谷을 더 오르면 中仙巖을 만나게 된다. 純白色 바위가 層層臺를 이루고, 그 위로 玉빛 溪谷수가 흘러 빼어난 風光을 자랑하는 곳이다. 腺癌溪谷을 象徵하는 三線구곡(三仙九曲)의 中心인 中仙巖 옥염대에는 1717年 忠淸道 觀察使 윤헌주가 直接 썼다고 하는 ‘四郡江山三線首席(四郡江山三仙水石)’이란 글씨가 巖角돼 있다. 丹陽, 迎春, 堤川, 청풍(朝鮮時代 行政區域) 4個 軍에서 上仙巖, 中仙巖, 下仙巖의 물과 돌이 가장 아름답다는 뜻이다. 신비로운 風景에 반한 옛 先人들은 바위에 自身의 이름 석 字를 깊이 새겨놓기도 했다. 바위에 새겨진 이름만도 300名이 넘는다고 한다. 團地 訪問 記念 삼아 새겨 놓았겠는가. 自身의 이름을 좋은 기운이 서린 바위에 새김으로써 그 기운을 取하려 한 속내까지 읽힌다. 三線舊曲의 세 番째 名所인 上仙巖은 크고 雄壯한 바위와 올망졸망한 바위들이 調和를 이뤄 素朴하면서도 맛깔스러운 韻致를 더해준다. 옛사람들은 鶴처럼 맑고 깨끗한 사람이 遊覽하기에 좋은 場所라고 評價했다. 사람이 드러누울 수 있도록 길다랗게 펼쳐진 어느 바위 위에 앉아 瀑布처럼 떨어지는 溪谷 물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노라니 절로 神仙이 된 듯한 氣分이다. 네 番째 名所인 舍人巖을 만나기 爲해선 느림보遊覽길 3區間(舍人巖숲소리길)으로 가야 한다. 空中으로 50m 치솟은 奇巖絶壁이 마치 긴 巖石을 끼워 맞춘 듯 奇異한 姿態를 자랑하는 곳이다. 舍人巖은 高麗末의 儒學者 禹倬이 ‘社人材觀’ 벼슬에 있을 때 休養하던 곳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高麗史’에 “力學(易學)에 造詣가 깊고 點을 치면 틀림이 없다”고 記錄할 만큼 뛰어난 易學者 禹倬이 즐겨 찾은 곳이다. 곳곳에 明堂 기운이 빼곡하다 보니 朝鮮 선비들의 水土(搜討) 踏査 目錄 中 優先 順位였다. 宣祖의 孫子 낭원군度 “癸酉年(1693年) 겨울에 다시 遊覽을 왔다”는 글씨를 새겨놓았을 만큼 이곳은 當代의 핫플레이스였다. ● ‘느림보 물길’ 따라 펼쳐지는 鮮京丹陽 8頃 中 으뜸이자 單 名所인 도담三峯과 石門은 南漢江 江邊을 따라 걷는 ‘느림보江물길’에서 만날 수 있다. 도담三峯은 南漢江 한가운데에서 솟은 세 個의 바위가 섬처럼 들어선 곳을 가리킨다. 講院 旌善郡 三峯山이 洪水 때 떠내려와 只今의 도담三峯이 되었다는 재미있는 傳說이 깃들어 있고, 號를 ‘三峯’이라고 지은 鄭道傳의 基地가 담긴 스토리도 傳해진다. 三峯 中 堂堂한 風采가 돋보이는 가운데 바위가 將軍峯이다. 이곳에는 三道程으로 불리는 亭子가 들어서 있어 그윽한 韻致를 자아낸다. 明堂 기운이 맺힌 곳이어서 朝鮮 선비들이 亭子에서 風流를 즐기기도 했다. 도담三峯은 朝鮮의 代表的인 畫家들에 依해 그림으로도 傳해지고 있다. 檀園 金弘道, 이방운 等이 이곳을 畫幅에 담았다. 失敬(實景)李 그림으로 表現되는 瞬間 그림에서도 實景의 기운(氣運)이 실린다. 이를 東洋의 山水畫 理論에서는 ‘氣韻生動(氣韻生動)’이라고 表現한다. 그림을 통해 自然과 交感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방운은 도담三峯과 함께 바로 隣近의 昔門徒 畫幅에 담았다. 이곳 亦是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깃든 ‘單 名所’에 該當한다. 石文은 너비 20m에 達하는 무지개 模樣의 自然石을 가리킨다. 두 個의 커다란 바위 기둥 위로 또 하나의 바위가 가로질러 門의 形態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自然이 빚어낸 뛰어난 造形美가 돋보이는 空間이다. 둥그런 石文을 通해서는 또 다른 風景이 눈에 들어온다. 가을 햇살로 빛나는 南漢江과 그 너머로 마치 神仙이 살고 있는 듯한 평화로운 마을 風景이 정겹다. 神靈한 기운이 담긴 곳인 만큼 우리나라 創世 神話의 主人公인 ‘麻姑할미’의 傳說이 담긴 洞窟도 있다. 도담三峯과 石門은 南漢江 건너便 도담庭園에서 바라보는 展望도 좋다. 도담三峯과 石文을 背景으로 알록달록한 코스모스와 百日紅, 댑싸리가 가을 情趣를 滿喫하게 해준다. 特히 石文이 있는 絶壁에서는 사람 모습의 바위, 자라바위 等 寶物처럼 숨겨진 바위 風光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아이 等 家族을 同伴한 旅行이라면 느림보江물길의 市內 쪽 江邊에 있는 다누리아쿠아리움을 들러 볼 일이다. 韓國觀光公社 世宗忠北知事가 꼽은 강소형 潛在 觀光地인 다누리아쿠아리움은 國內外 민물고기 234種, 總 2萬3000餘 마리를 保有한 國內 最大 規模의 민물고기 生態館이다. 높이 8m에 達하는 大型 水族館을 비롯해 다양한 模樣의 水槽 속에서 물고기들을 觀察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몸값이 비싼’ 물고기들이 健康하게 잘 지내고 있다고 한다. 물고기들도 사람처럼 名當에서 더 잘 지낸다는 얘기도 있는 걸 보면, 이곳은 ‘물 名當’인 셈이다. 다누리아쿠아리움에서는 天然記念物인 水獺을 비롯해 ‘南漢江의 貴族’으로 불리는 黃쏘가리, 幸運을 불러온다는 中國의 保護 魚種 홍룡, 아마존의 巨大어 피라루크 等 稀貴한 민물고기를 만날 수 있다. 傳統의 丹陽 遊覽船 나들이도 推薦 코스다. 빼어난 算數祕境으로 第2의 海金剛이라고 불려왔던 丹陽은 수많은 風流客이 船上 遊覽을 즐기던 곳이었다. 丹陽 壯懷나루에서는 龜潭峯과 玉荀峯 等을 거쳐 청풍나루를 往復하는 遊覽船이 있다. 丹陽八景에 屬하는 龜潭峯과 玉荀峯은 江에서 鑑賞해야 그 韻致를 제대로 맛볼 수 있다.안영배 記者·風水學 博士 ojong@donga.com}

    • 2023-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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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靑山裏大捷 103周年 記念式 開催…國民統合 舞臺 및 獨立戰爭 記錄映畫 上映

    (寺)白夜 金佐鎭將軍記念事業會(理事長 前地名, 以下 ‘事業會’)는 23日 午前 11時 白凡金九記念館 컨벤션홀(서울 용산구 효창동)에서 ‘靑山裏大捷 勝戰 103周年 記念式’을 開催한다. 國家 報勳部 主催, 事業會 主管으로 開催하는 이 行事에는 朴敏植 報勳部 長官을 비롯한 政治·經濟界, 宗敎·文化界 人士 300餘 名이 參席할 豫定이다. 記念式은 靑山裏 獨立戰爭 記錄映畫 上映 및 獨立軍 讚歌 公演 等도 곁들여 進行한다.사업회 側은 “白夜 金佐鎭 將軍의 國民大統合 精神을 이어받아 國民統合 實現의 端初를 마련하기 위해 與野 政黨 代表는 勿論 各 分野에서 活動中인 人士들에 對한 招請 範圍를 例年보다 擴大했다”고 밝혔다. 金佐鎭 將軍 家族代表인 김을동 前議員은 “各 地域에서 活動하던 獨立軍들이 한마음으로 뭉쳐 靑山裏戰鬪를 勝利로 이끌었듯이 現在의 後孫들도 當面한 世界的 危機 狀況을 이겨 나가기 위해서는 分裂이 아닌 統合의 精神이 必要하다”며 “靑山裏大捷을 記念하는 이 行事가 國民 統合의 基礎가 되길 期待한다”고 밝혔다. 이 날 記念式에는 尹錫悅 大統領 直屬 國民統合委員會 金한길 委員長, 李鍾贊 光復會長 等이 參席할 豫定이며 國民의힘 金起炫 代表, 민주당 李在明 代表 等 各 政黨 代表들도 招請됐다. 한便 이番 行事에서는 白夜 將軍의 愛國精神을 高揚하고, 記念事業會의 선양 事業에 寄與한 人士들에 對해 功勞를 기리는 感謝牌 授與式度 있다. 感謝牌는 김영웅 엠젠솔루션그룹 副會長, 이두형 前 楊汀高等學校 國史課 敎師 2名에게 授與할 豫定이다.안영배 記者 ojong@donga.com}

    • 2023-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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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健康과 長壽 기운 담은 그림은 最高級 室內 風水다[안영배의 웰빙風水]

    室內 인테리어로 걸어놓은 그림이 健康이나 장수와 關聯 있을까. 이 主題를 처음으로 들고나온 이가 中國 明나라의 畫家 董其昌(董其昌, 1555~1636)이다. 中國 繪畫史에서 그림과 ‘養生(養生)의 道’를 椄木시킨 것으로 評價받는 人物이다. 그는 中國의 山水畫를 北宗畫와 南宗畫로 區別한 後, 北宗畫는 壽命을 短縮시키는 反面 南宗畫는 壽命을 늘려준다고 主張했다. 그의 主張은 나름대로 說得力이 있었다. 長江(長江, 창장江) 以南 地域에서 水墨 山水畫를 즐겨 그려온 南宗畫家들 中에서는 長壽하는 이들이 많았다. 明나라 時代의 文徵明(89歲), 心柱(82歲), 陳繼儒(81歲) 等은 現代人의 基準으로 보아도 오래 살았다. 董其昌 自身도 81歲까지 살았다. 反面 彩色 山水畫를 그려온 北宗畫家들은 大槪 還甲을 넘기지 못했다고 한다. 董其昌은 그 理由를 그림 技法에서 찾았다. 北宗畫는 붓으로 가늘고 긴 線, 짧고 굵은 線 等 輪廓線을 그리고 도끼로 찍어내거나 끌로 파내듯 對象物을 表現하는 舊作法(鉤斫法)을 驅使한다. 이 技法은 지나치게 조심스럽고 細密해 畫家의 心身을 고달프게 하고 結局 壽命까지 短縮시킨다는 게 董其昌의 主張이었다. 게다가 매너리즘的 技巧와 定型化된 技法은 그림에서 生動感이 缺如되는 短點까지 보인다는 것이다. 反面 南宗畫는 묵을 利用해 空間의 餘白을 最大限 살려내는 線談法(渲淡法)을 驅使한다. 이러한 南宗畫는 餘裕를 즐기고 精神的 快樂을 追求하는 것을 目的으로 삼는다. 董其昌은 南宗畫家들이 그림 속에서 自然을 즐기기 때문에 精神이 穩全하고 疾病이 없이 長壽했다고까지 말한다. 이른바 그림에 依支하고 그림으로 樂을 삼는 ‘奇貨慰樂(寄畵爲樂)의 境地다. 南宗畫와 北宗畫의 이같은 特徵은 기운(氣運)의 側面에서 解釋할 수 있다. 中國의 畫家이자 美術史家인 딩시위안(丁羲元)은 著書 ‘藝術風水’에서 “舊作法을 驅使한 北宗畫는 線으로 角을 만들 듯 空間의 境界를 確定지음으로써 氣(氣)를 안으로 가두거나 吸收하는 作用을 일으킨다”고 말한다. 反面 “線談法을 驅使한 南宗畫는 空間의 境界線이 模糊해 機가 外部의 空間으로 흘러나온다”고 한다. 卽 南宗畫에서는 기운이 열린 空間으로의 移動이 可能하다는 뜻이다. 이런 기운의 流動性을 두고 ‘氣韻生動(氣韻生動)’이라고 表現한다. 氣韻生動은 더 나아가 作品과 鑑賞者에게도 이어진다. 結局 南宗畫를 즐기거나 가까이 하면 그림과 感應한 鑑賞者의 健康과 長壽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로 볼 때 그림은 기운을 담고 있는 物象(物像)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氣를 다루는 風水 인테리어 側面에서도 매우 重要한 考慮 要素다. 아무 그림이나 집안에 들여 놓아서는 안된다는 警告일 수 있기 때문이다. ● 畫家의 出世作에 注目해야 風水 인테리어 側面에서 집에서 걸어놓기에 좋지 않은 그림들은 大略 다음과 같다. 먼저 오래된 무덤에서 出土되거나 盜掘된 것들은 陰物(陰物)이라고 해서 사람이 살고 있는 집에 들여놓아서는 안된다고 規定한다. 사람이 사는 집은 陽氣가 充滿한 陽宅(陽宅)이어야 하는데, 죽음과 關聯 있는 陰氣의 物件이 들어올 境遇 健康에 해로움을 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덤에서 出土된 人形, 殉葬用으로 쓰인 陶瓷器나 土官, 저승稅契를 表現한 美術品 等은 아무리 藝術性이 빼어나다고 해도 집안의 居室이나 寢室 等에 놓아두어서는 삼가야 한다. 비슷한 理由로 사람의 白骨, 鬼神, 도깨비 등 陰散하거나 오싹한 느낌이 드는 그림들도 風水인테리어에서는 꺼리는 對象이다.다음으로 壽命이 짧거나 夭折한 畫家의 作品들을 많이 所藏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이는 畫家와 作品은 서로 기운이 이어져 있다는 動機感應(同氣感應)의 原理가 作用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卽 그림을 통해 畫家의 健康과 壽命 기운이 鑑賞者에게 傳達될 수 있으므로, 特히 젊은 層일수록 腰絶 作家의 作品들은 避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畫家가 그린 作品의 實際 모델이 病弱하거나 夭折한 境遇에도 이런 기운이 傳達될 수 있으므로 注意해야 한다. 한便 남의 그림을 베낀 模作(模作)이나 남의 그림을 僞造한 僞作(僞作)도 좋지 않다고 본다. 美術 專門家들은 模作을 자주 가까이 하면 眼目이 흐려져 氣를 傷하게 하고, 眞僞를 가리는 눈마저 잃게 된다고 警告한다. 19世紀 네덜란드 出身 畫家 빈센트 반 고흐의 作品을 事例로 들어 보자. 37歲로 夭折한 그는 죽음 直前에 ‘ 加勢 博士의 肖像’(1890年 作)이라는 作品을 남겼다. 家勢는 반 고흐의 精神 疾患을 治療하던 醫師였다. 반 고흐는 파리 近郊 오베르에서 自殺하기 얼마 前에 이 油畫를 그렸는데, 現在 두 가지 版本이 傳해진다. 두 作品 모두 醫師인 폴 加勢 博士가 오른쪽 팔에 머리를 卦高 몸을 비스듬히 기울여 卓子에 기대 앉아 있는 모습이다. 卓子 위로는 博士의 왼손이 ‘디기탈리스’라는 植物을 쥐고 있다. 디기탈리스는 心臟 痛症을 治療하는 强心劑(强心劑) 材料여서 폴 加勢 博士와 반 고흐를 이어주는 象徵物이기도 하다. 기운的인 側面에서는 作品의 기운이 드나드는 器具(氣口) 役割을 하고 있다. 그런데 디기탈리스를 바라보는 폴 加勢 博士의 얼굴이 憂鬱한 表情이다. 반 고흐는 “이 醫師는 우리 時代의 暗鬱한 表情을 지닌 사람”이라고 描寫했다. 그는 동생 太湖에게 쓴 便紙에서는 家勢 博士를 가리켜 “나보다 더 重한 患者인지도 모른다”고까지 했다. 반 고흐가 죽은 지 100年이 되던 1990年 ‘ 加勢 博士의 肖像’李 뉴욕 크리스티 競賣에 出品됐다. 이 作品은 日本의 製紙會社 會長 사이토 요헤이에게 8250萬 달러(藥 1000億 원)에 팔려 當時 美術品 競賣 史上 最高價 記錄을 세웠다. 또 다른 판은 現在 프랑스 파리의 오르세 美術館에 있다. 가셰의 遺族들이 1950年代에 寄贈한 作品이다. 두 그림은 背景色이나 構圖가 若干의 差異가 난다. 競賣에 나온 그림은 노란色 冊 두 卷이 卓子 위에 놓여져 있는 데 反해 美術館 所藏 作品은 冊이 그려져 있지 않다. 이 때문에 한동안 僞作 論爭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를 藝術風水의 기운生動(氣韻生動) 觀點으로 보면 흥미로운 點이 發見된다. 두 作品은 鑑定 專門家들에 依해 고흐의 眞品이라고 判定났지만, 두 作品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서로 相當한 差異가 난다는 點이다. 오르세 美術館의 作品은 고흐가 그린 다른 作品들에서 느껴지는 기운과 別般 다르지 않다. 同一한 作家가 그린 그림들에서는 技法이나 形式이 아무리 달리 驅使돼 있어도 作家 固有의 에너지 波動(기운)李 同一하기 때문이다. 이런 作家의 에너지를 丈人의 기운이라고 해서 中國에서는 ‘ 長期(匠氣)’라고 表現한다. 反面 競賣에 나온 作品은 반 고흐의 固有한 기운과 좀 다르게 느껴진다. 머리가 어지러울 程度로 氣의 波動이 거친 便이다. 偶然의 一致인지 競賣에서 이 作品을 購買한 사이토 요헤이는 3年 後 賂物 스캔들로 懲役刑을 받아 監獄살이를 했고, 1996年에 世上을 떠났다. 그의 죽음과 함께 이 그림은 購買者가 여러番 바뀌면서 現在 行方이 알려지지 않고 있다.그렇다면 어떤 畫家의 作品을 所藏하는 것이 좋을까. 一旦 畫家의 出世作은 좋다고 본다. 畫家가 苦難을 겪으면서 成功에 이르기까지 決定的인 役割을 한 作品은 創作의 生命 기운이 剛하게 담겨 있다. 그런 기운은 所藏者나 鑑賞者에게 좋은 기운을 불어넣는다. 이와는 달리 成功했던 畫家의 絶筆 作品은 反對 境遇에 該當한다. 畫家가 기운이 이미 衰했거나 完全히 衰하기 前에 잠깐 힘을 내 그린 것이므로 創作의 生命力이 떨어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作品의 稀少性 側面에서 보면 마지막 作品이라는 價値가 있다 하더라도, 藝術 風水的 側面에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結局 作家의 作品을 購買하고 所藏하는 行爲는 作家의 좋은 에너지를 ‘作品 값’이라는 이름으로 購買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안영배 記者·風水學 博士 ojong@donga.com}

    • 2023-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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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용이 吐해놓은 黃金빛 물길… 義林池 祝祭, 가을을 살찌우다[수토기행]

    《忠北 堤川에는 龍이 빚어낸 깊고도 넓은 蓮못들이 있다. 龍의 머리를 닮아 용두산(龍頭山·871m)이라고 불리는 山에서 흘러내린 貯水池인 義林池와 飛龍談이다. 義林池는 우리나라 現存 最古(最古)의 貯水池이고, 龍이 昇天하는 기세인 飛龍담은 ‘한放 治癒 숲길’로 造成된 以後 週·夜間 즐겨 찾는 힐링 名所로 人氣가 높다. 또 그 아래쪽 靑田뜰에서는 가을의 黃金빛 饗宴(農耕文化藝術祭)李 펼쳐지고 있다. 용두산과 짝이 되는 義林池 南쪽의 비봉산(飛鳳山·531m)에서는 鳳凰의 날개를 탄 듯한 氣分으로 淸風湖의 異國的 가을 風景도 즐길 수 있다.》 ● 義林池의 黃金빛 農耕 祝祭 非龍潭 貯水池(堤川市 모산동)는 義林池 위쪽으로 約 1.5km 떨어진 곳의 人工 蓮못이다. 堤川의 象徵인 義林池보다 規模는 조금 작아 ‘第2 義林池’로 불리기도 하는데, 아름다운 景觀과 快適한 숲길만큼은 어디에 내놔도 꿀리지 않는 곳이다. 最近 飛龍談에서 그 위쪽 용두산 山林浴場까지 돌아오는 둘레길이 ‘堤川 義林池 한放 治癒숲길’로 造成됐다. 물안개길(2.4km), 솔香氣길(6.5km), 온새미로길(2km), 솔나무길(0.5km) 等 4個 區間 總 11.4km 距離다. 山林廳이 國土 錄畫 50周年을 記念해 全國의 걷기 좋은 ‘名品 숲길’로 選定한 곳 中 하나다. 한放 治癒 숲길 中 물안개길은 飛龍談에서 出發해 한放 生態숲을 돌아 다시 飛龍談으로 돌아오는 덱길 코스다. 步行 難度가 最低 水準으로 障礙人, 老人, 妊産婦 等도 便하게 散策할 수 있다. 이 코스는 人工으로 만든 城 構造物 포토존으로도 有名하다. 낮에는 津草綠 물빛의 飛龍담에 反映(反影)으로 비치는 性 모습도 아름답거니와 밤엔 形形色色의 불빛으로 異國的인 모습으로 變한다. ‘飛龍’이란 이름처럼 昇天하는 용이 불길을 뿜어내는 듯한 雰圍氣다. 非龍潭 貯水池에서 便安한 쉼과 힐링을 맛본 後 義林池 쪽으로 흘러 내려가는 물길을 따라 걷다 보면 老松 100餘 그루가 솔香氣를 뿜어내는 솔밭公園을 만나게 되고, 더 아래쪽으로는 義林池, 靑田뜰로 이어진다. 只今 義林池와 靑田뜰에서는 黃金빛 가을의 풍요로움을 體驗할 수 있다. 제천시가 每年 開催하는 ‘義林池 農耕文化藝術祭’(10月 13∼15日)다. 볏짚을 活用한 造形物로 꾸며진 農耕 아트 퍼포먼스, 農器具와 農機械를 直接 操作해보는 農耕文化 體驗, 黃金쌀을 받을 수 있는 寶物찾기 等 다양한 體驗 프로그램이 運營되고 있어서 온 家族이 함께 즐길 수 있다. 農耕文化를 體驗한 後 義林池 歷史博物館度 들러볼 만하다. 義林池의 歷史와 構造, 生態 等을 알려주는 專門博物館이다. 現在 이곳에서는 ‘비손: 비나이다, 비나이다’라는 企劃展示가 來年 1月 11日까지 열리고 있다. ‘비손’은 두 손을 비비면서 神에게 病이 낫거나 所願을 이루게 해 달라고 비는 行爲다. 農耕文化를 基盤으로 한 우리나라 祈福信仰의 面面을 구경할 수 있는 흔치 않은 機會다. 이番 展示에서는 運勢와 吉日을 점치는 冊, 길상과 辟邪 무늬가 있는 各種 生活用品, 家庭神을 모신 團地와 缸아리, 忠北道 無形 文化遺産으로 指定된 오티別神祭 옷과 道具 等 100餘 點의 遺物도 선보이고 있다. ● 淸風湖가 빚어낸 綠色 鮮京 용두산의 용이 吐해놓은 곳이 義林池라면, 鳳凰의 視線으로 絶景을 鑑賞할 수 있는 곳이 비봉산 全亡대다. 비봉산은 가운데 솟은 봉우리가 鳳凰의 머리, 兩쪽으로 뻗은 稜線이 날개에 該當해 鳳凰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模樣새를 한 山이다. 鳳凰의 머리인 頂上까지는 케이블카와 모노레일이 設置돼 있어서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다. 頂上의 展望臺에서는 巨大한 ‘內陸의 바다’인 淸風湖(忠州 쪽에서는 忠州湖)와 周邊의 湖畔마을 等 異國的인 江邊 風景을 鑑賞할 수 있다. 마치 하늘에서 地上의 鮮京(仙境)을 觀察하는 듯한 느낌이다. 淸風湖 絶景을 즐기는 또 다른 方法은 産科 淸風湖를 잇는 總 58km(1∼7코스)의 散策길로 造成된 자드락길을 걷는 것이다. 자드락길은 ‘山기슭 비탈진 땅에 난 좁은 길’을 일컫는 말이다. 이 中 자드락길 6코스인 괴곡성벽길의 淸風湖 展望臺에서는 또 다른 景觀美를 만날 수 있다. 螺旋形 構造인 이곳 백봉展望臺에 오르면 막힌 곳 없이 펼쳐지는 시원한 展望이 壓卷이다. 물안개나 낮은 구름이 山 아래로 깔려 展望이 흐려져도 괜찮다. 그 自體로 神祕한 鮮京 世界에 들어선 듯한 夢幻的인 雰圍氣가 演出되기 때문이다. 隣近에는 淸風文化財團地와 淸風랜드가 있어 文化와 레저 體驗을 즐길 수 있다. 特히 淸風文化財團地 內에는 忠州댐 建設로 移轉해온 한벽루와 石造如來立像(寶物), 팔영루, 황석리 고인돌 等이 展示돼 있다. 特히 황석리 고인돌에서는 腎臟 174cm의 30代 初盤 男性의 뼈가 出土됐는데, 現在 韓國人의 骨格보다 조금 큰 北方系 人種 或은 白人種으로 推定돼 話題가 된 바 있다. 또 이곳 고인돌 中에는 特異하게 北斗七星과 北極星이 새겨져 있는 것이 있다. 하늘과 별을 崇尙하던 우리 民族의 特性을 알려주는 所重한 文化遺産이다. ● 비보 風水의 現場 新羅 敬順王의 딸 德州公主의 傳說이 덕지덕지 묻어 있는 德周寺로 가는 길목에는 奇異한 模樣의 區層石塔이 서 있다. 1963年 寶物로 指定된 ‘獅子빈신사지 사사자 區層石塔’이다. 德周寺에서 約 2km 떨어진 山길 외딴곳에 있어서 자칫 그냥 지나치기 쉽다. 이 塔은 千年 前 ‘獅子빈신사’라는 이름의 寺刹이 있던 터에 세워진 花崗巖 塔이다. 元來는 9層이었는데 只今은 5層까지만 남았다. 石塔은 2層 基壇에 4마리의 獅子가 四方을 護衛하듯 配置돼 있고, 塔 한가운데에는 머리에 두건을 쓴 毘盧遮那佛이 앉아 있다. 各其 다른 얼굴 表情을 짓고 있는 4마리 獅子와 部處의 생김새도 異色的이거니와 纖細한 技法의 彫刻美가 돋보이는 石塔이다. 全南 求禮 화엄사의 사사자 삼층石塔 못지않은 品格을 갖추고 있어서 ‘왜 이런 곳에 放置돼 있을까’ 싶을 程度다. 石塔에는 高麗 顯宗 13年(1022年)에 ‘부처의 힘을 빌려 敵을 물리치려는 所望을 담아 9層의 塔을 세운다’는 글句가 새겨져 있다. 그런데 이 石塔은 이곳 터의 거센 기운을 鎭壓하기 위한 비보 風水的 特徵도 가지고 있다. 비보 風水는 기운이 너무 거세거나 反對로 너무 貧弱한 곳을 塔이나 돌 等으로 補完하는 裝置를 가리킨다. 月岳山 자락의 德周寺 亦是 비보 風水의 現場이다. 절 入口에는 男根石 3期가 서 있다. 月岳山의 强한 陰氣(陰氣)를 누르기 위한 風水的 裝置다. 男根石에서 祈禱를 하면 得男을 한다는 所聞이 나서 아이를 願하는 女性들이 많이 찾는다고도 한다. 堤川 旅行의 別味는 美食이다. 堤川은 忠淸·江原·輕傷 3度의 接境地인 만큼 飮食文化가 發達돼 있다. 이 中 朝鮮時代 3代 藥令市 中 하나라는 自負心을 살려 ‘藥債落(藥菜樂)’이라는 鄕土飮食 브랜드가 注目을 끌고 있다. ‘藥이 되는 飮食을 먹으니 즐겁다’는 뜻의 藥債落은 黃芪를 넣은 約간醬, 當歸를 使用한 藥고추醬, 뽕잎으로 만든 藥草소금 等 ‘약념(藥念)’ 이미지를 담은 양념을 使用하는 것이 特徵이다. 이 外에 제천시가 認證한 ‘堤川맛집’ 等 食道樂에 眞心인 食堂들을 골라 ‘飮食 비보’를 즐길 수 있다.안영배 記者·風水學 博士 ojong@donga.com}

    • 2023-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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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藝術과 風水, 그림에서 生氣(生氣)가 흘러나오네[안영배의 웰빙風水]

    東洋에서 誕生한 山水畫는 自然의 기운(氣運)을 畫幅에 담아두는 裝置이기도 했다. 中國 南北朝 時代의 畫家 從兵(宗炳·375∼443)은 화론서人 ‘火山水西’에서 ‘山水畫는 도(道)를 드러내는 신물(神物)’이라고 評價했다. 畫家가 아름다운 山川을 鑑賞하며 自然에 깃든 신령스러움까지 마음으로 깨달아 畫幅에 담아내면, 鑑賞者도 그 아름다움과 신령스러움을 그림에서 똑같이 取할 수 있다고 解釋했다. 이런 畫論은 같은 기운은 서로 感應한다는 風水의 동기감응論(同氣感應論)과도 통한다.원나라 때 山水畫家로 名聲을 떨친 黃公望(黃公望·1269∼1354)은 한걸음 더 나아가 “그림 속에도 風水가 存在한다”고 主張했다. 그는 風水 明堂을 그림에서도 具現해내려고 不斷히 애썼다. 또 北宋(北宋)의 畫家 郭熙(郭熙·1023∼1085)는 아예 “山水畫도 風水처럼 發福(發福)한다”고까지 主張했다.사실 東洋의 山水畫와 風水는 共通點이 많다. 둘 다 自然을 다루고, 그 속에 보이지는 않지만 分明히 存在하는 生氣(生氣)를 重視한다. 게다가 山水畫는 그림 속의 좋은 기운을 집안에 담아두는 風水 인테리어로서도 人氣가 높다. 이처럼 그림, 彫刻, 陶瓷器 等 藝術品을 風水的 視角으로 理解하고 鑑賞하는 行爲를 ‘藝術風水’라고 한다. 이때 藝術 作品에서 生命이 살아 움직이게끔 보여주는 重要한 手段이 ‘先(線)’이다. 그림 속의 生命力, 生動感 같은 生氣는 모두 線의 움직임에 따라 表現되기 때문이다. 이는 東洋 藝術과 西洋 藝術을 區分짓는 確實한 基準點이기도 하다. 西洋 藝術은 선 代身 輪廓을 强調하는 面을 重視하면서, 3次元 空間과 빛의 色깔 爲主로 發展해왔다. 反面 동양 藝術은 투박하지만 生動感이 넘치는 線을 各種 線描法으로 驅使해 ‘辭意(寫意)’의 境地로 발전시켰다. 東洋畫에서 善이란 마치 作家의 呼吸처럼 살아 있는 것이다. 時時刻刻 그 旺盛한 省力力, 卽 기운을 發散하는 媒介體가 善이란 뜻이다. ○ 線을 별자리로 表現한 韓國化, 宇宙의 기운까지 담겨 바로 이 線을 찾고 具現하기 위해 藝術魂을 쏟아온 韓國畫家가 있다. 혜명 김성희 作家(서울대 東洋畫科 敎授)는 “긋는 行爲인 線(線)은 그 한瞬間에 作家의 現在의 모든 것을 담아내는 時間性을 가지고 있다”고 定義하며, 들숨과 날숨, 잠깐의 생각의 들락거림, 意識의 狀態가 한 치도 숨김없이 線을 통해 드러난다고 말한다. 또한 線은 方向性을 가지고 있다는 게 그의 ‘先 哲學’이다. 方向性을 가진 線은 人間의 志向, 意志, 꿈, 欲望을 象徵한다. 線들이 始作되고 끝나는, 或은 만나는 地點은 하나하나 하늘의 별처럼 아름답게 빛나며 우리 삶의 모든 瞬間들을 象徵하고 있다. 밤하늘의 별들이 線으로 이어지는 瞬間 人間의 꿈과 理想과 欲望이 投影된 별자리 스토리를 탄생시키듯 말이다. 그는 별자리의 線을 통해서 世上을 表現한다. 그래서 사람, 나무, 새 等을 描寫하고 있는 그의 그림에는 모두 별과 線이 登場한다. 별자리를 통해 삶과 萬物을 表現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作品 ‘별난 이야기 1702’를 鑑賞해보자.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이른 봄날 아침 아파트의 작은 花壇에 새들이 앉아 있는 木蓮나무 그림이다. 새들을 품은 나뭇가지 끝에는 새 싹들이 피어나는 모습도 보인다. 아름다운 빛깔의 새들은 生命을 노래하고 있고, 싹들이 피어나는 木蓮나무 또한 生命의 나무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별과 線을 통해 表現되고 있다. 藝術風水로 보자면 豐饒를 象徵하는 木蓮나무와 生命을 象徵하는 새들에서는 充滿한 生氣가 뿜어져 나온다. 또 별자리를 통해 傳達되는 宇宙的 에너지도 作品 속에 녹아들어 있다. 신령스런 기운, 卽 靈氣(靈氣)가 있는 그림은 보는 이의 눈길과 마음을 사로잡는다. 作品과 1m 程度 떨어진 곳에서도 에너지 波長이 느껴질 程度로 重厚하면서 生命力 있게 다가온다. 總體的으로 健康과 長壽의 기운이 傳達되는 그림이라고 評價할 수 있다. 놀랍게도 그의 作品은 外國人들로부터 더 注目을 끈 듯하다. 金 作家는 世界 3代 競賣社 中 하나인 英國 競賣社 본햄스(Bonhams)의 런던 本社에 招請돼 個人展(10月 7∼13日)을 열게 됐다고 밝혔다. 展示 期間은 ‘아트페어(美術品 場터) 프리즈 런던’이 열리는 時期인데, 韓國 作家가 본햄스 本社에서 展示하는 것은 이番이 처음이라고 한다. 美術 專門家들은 英國 內에서도 進入 障壁이 높기로 有名한 메이페어(Mayfair)에서 韓國畫 招請 展示가 열리는 것은 남다른 意味가 있다고 評價했다. 現代人의 情緖와 삶을 韓國的 素材로써 表現하는 K아트의 유럽 進出이 本格化되고 있다는 뜻이다. 이番 展示에서는 作家가 오랫동안 作業해 온 ‘별 난 이야기’(Constellation Links) 聯作과 여기에서 分化된 ‘透明人間’(Transparenter) 聯作이 紹介된다. 方向性을 가진 線(=Stroke)李 어떻게 별자리를 만드는지, 無數한 별자리들이 連繫돼 어떤 形象들이 形成되는지, 誕生과 消滅을 反復하는 별들과 이 地上의 存在들이 어떻게 同時에 통찰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作品들이다. 作家는 “新作을 包含해 그동안 作業해 온 代表作들을 紹介할 豫定”이라면서 “映像으로 再解釋한 作品도 함께 선보인다”고 말했다. 서울대 美術館 館長과 서울대 美大 學長을 지낸 金 作家는 긴 長纖維로 된 韓紙에 먹과 天然染料를 스미게 하고, 다시 韓紙 위에 線을 긋거나 彩色하는 方法으로 作業하고 있다. 藝術風水에서는 作家 意識과 藝術的 感覺 뿐만 아니라 이를 表現해내는 材料인 종이, 먹, 染料 等에서도 다섯가지 五行 기운(목, 火, 土, 金, 數)으로 分類해 基 에너지의 强弱과 密度 等을 鑑別해낸다. 線을 통해 風水와도 접목되는 그의 作品들이 유럽 美術市場에서 어떤 評價를 받게 될지 궁금해진다. 안영배 記者·風水學 博士 ojong@donga.com}

    • 2023-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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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립니다]개천절 民族共同行事, 國家的 記念物인 ‘國調戰’ 建立 宣布式 가져

    開天節 民族共同行事準備委員會 本部는 短期 4356年(2023年) 開天節 記念行事를 3日 午後 1時 서울 獨立門驛 殉國先烈祠堂 앞 廣場(독립문역3番 出口)에서 開催한다. 이 行事에서는 ‘國調戰建立汎國民推進委員會’ 一同 名義로 國調戰 建立 宣布式을 갖게 된다. 行事準備委員會의 윤승길 事務總長은 “全國에 數千 個의 檀君 祠堂이 있음에도 不拘하고, 半萬年 歷史의 求心點이며 民族의 始祖이신 檀君王儉을 기리는 國家的 記念 建物인 國調戰(國祖殿)이 없다는 참으로 어이없고 부끄러운 일”이라고 하면서 檀君聲調 國調戰 建立은 더 以上 遲滯할 수 없는 民族 最大의 先決課題라고 主張했다.국조전건립범국민추진위원회 側은 ‘民族의 基本부터 잡아야 나라가 바로 서고, 分斷된 祖國과 分裂된 民族 構成員들을 하나된 마음과 바른 精神으로 統合하고 團結시켜 國力을 신장시킬 수 있다’고 發表했다. 民族의 基本은 當然히 우리 國調인 檀君이므로, 檀君을 모시는 國調戰 建立은 必須라는 主張이다. 尹 事務總長은 “우리 民族은 南과 北, 與野 政派를 莫論하고 檀君의 後孫임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기 때문에 國調戰 建立은 全 國民的 同參에 呼訴해 推進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 短期4356年(2023年) 10月3日 開天節 民族共同行事 日程● 一時 : 2023年 10月 3日 13時~17時● 場所 : 독립문역 殉國先烈祠堂 앞 廣場(독립문역3番出口)● 第1部 ? 천제봉行式(13:00~14:00)● 第2部 ? 開天節 民族共同行事 記念式(14:00~16:00)● 第3部 ? 統一개川 民族和合大祝祭(16:00~17:00)● 問議 : 事務總長 윤승길 010-7423-3038, 事務局長 송창호 010-5960-3477 안영배 記者 ojong@donga.com}

    • 2023-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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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運動 震源地 탑골公園, 漢陽의 時間과 空間을 支配하다[안영배의 웰빙風水]

    時計가 없었던 朝鮮時代 漢陽 사람들은 어떻게 出退勤 時間, 約束 時間 等을 定할 수 있었을까. 勿論 世宗 때 製作된 해時計인 仰釜日晷와 물時計인 自擊漏가 있긴 했다. 그러나 이런 時計는 四大門 안 宮闕 周圍에 그것도 少數만 背馳돼 特定 階層에서만 利用할 수 있었다. 大部分의 사람들은 南山의 높은 봉우리에 해가 걸리면 大略 正午, 四大門의 門이 열리고 닫힐 때를 아침과 저녁의 基準으로 삼아 生活을 해왔던 것으로 推定된다. 또 對日抗爭機 時節 南山公園에서는 每日 大砲를 쏘아 正午를 알리는 오포(午砲) 行事를 해왔다. 漢陽都城 內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알람 時計였다. 이는 南山이 漢陽에서 ‘時間의 中心’이라는 象徵性을 갖고 있었기 때문으로 解釋된다.최근 ‘時間의 中心’인 南山과 함께 ‘空間의 中心’으로서 탑골公園이 注目받고 있다. 天文學者인 임정규(仁荷大 融合考古學과), 양홍진(韓國天文硏究院) 博士 等은 ‘탑골公園 聖域化 學術大會’에서 南山과 탑골公園의 天文地理적 關係性을 發表했다( ‘서울의 中心 탑골公園 立地의 融合的 分析’).이에 依하면 南山과 塔골公園은 同一 南北 子午線(子午線) 上에 位置해 있다. 탑골公園 中心部와 그 南쪽의 南山(現在 南山타워 中心部)이 모두 같은 經度線(126.9883)에 있다는 뜻이다. 이런 位置 關係는 時間을 測定할 때 매우 重要하다. 塔골公園에서 바라보았을 때 南山의 높은 봉우리에 해가 걸리는 視角이 가장 正確한 正午가 되기 때문이다. 朝鮮時代 天文, 地理, 曆數에 關한 業務를 맡았던 觀象監(서울 鍾路區 願書公園 入口) 亦是 이 經度線 床에 자리하고 있었던 것도 우연한 일은 아닐 것이다.게다가 탑골公園 內 원각사 十層石塔은 窺標(圭表) 役割까지 해줄 수 있었다. 窺標는 正午와 正南北 方向을 測定할 수 있는 막대기 같은 道具를 가리킨다. 옛사람들은 막대기를 세워놓은 뒤 해의 그림자가 가장 짧아지는 視角을 正午로 삼았고, 正午 때의 막대기 그림자를 延長해 놓으면 바로 正南北을 가리킨다는 點을 알고 있었다. 世祖 임금 當時 12m 巨大한 높이에 하얀 大理石으로 製作된 원각사 石塔은 白塔(白塔)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 塔은 漢陽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平地 空間에서 가장 눈에 띄었는데, 가장 쉽게 時間을 確認할 수 있는 窺標이기도 했던 것이다. 春分과 秋分 때 東大門으로 해가 떠올라 古代 國家에서 都市 或은 都邑地를 建設할 때 南北 子午線은 方向을 定하는 基準線 機能을 해왔다. 世界的으로 有名한 古代 國家일수록 子午線 方向을 따라 神聖한 祭壇을 建立했을 뿐만 아니라, 南北 間 道路 亦是 子午線과 平行하도록 建設했다. 勿論 漢陽의 主要 南北 方向 道路도 例外가 아니다. 이는 朝鮮時代에 製作된 漢陽都城 地圖인 ‘首善全圖’에서 確然히 드러난다. ‘首善全圖’를 仔細히 들여다보면 東大門과 西大門을 잇는 가로線(水平線) 한가운데 地點이 現在의 탑골公園(首善全圖에서는 대사동 或은 탑동으로 記錄)에 該當한다. 이곳에서 다시 세로線(垂直線), 卽 南北 子午線을 그어 보면 正南쪽으로는 南山 봉우리로 連結되고 北쪽으로는 漢陽都城 北壁 近處 휴암(?岩, 부엉이바위)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北쪽으로 더 멀리 그어 보면 놀랍게도 漢陽의 鎭山인 三角山(北漢山)과도 連結된다. 그러니까 탑골公園을 中心點으로 삼을 境遇 ‘首善全圖’가 全體的으로 南北左右로 均衡을 이룬 漢陽의 모습을 描寫하고 있음을 把握할 수 있다.이 地圖에는 天文風水的 背景도 녹아 있다. 南山과 탑골公園이 南北 子午線이 되면, 自然스럽게 東쪽의 東大門과 西쪽의 西大門은 春分과 秋分을 알려주는 表式이 된다. 卽 春分과 秋分 때는 正確히 東大門 樓閣으로 해가 떠오르고, 西大門(宮闕 造成市 地形的 理由로 東西 水平線 床에서 若干 비낀 地點에 設立됐음) 쪽으로 해가 진다는 얘기다. 朝鮮 사람들은 그렇게 塔골公園에서 1年 365日의 季節 흐름을 把握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春分과 秋分, 冬至와 하지 때 日出과 日沒 等은 防衛를 重視하는 天文風水에서 基準點 役割을 해왔다. 塔골公園은 울림이 큰 明堂자리 塔골公園은 景福宮과 昌德宮 사이에 자리 잡고 있으며, 宗廟와 市廛을 바로 옆에 두고 있는 等 漢陽 사람들이면 누구가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다. 位置上 民意(民意)가 모이는 中心이기도 하거니와 그 울림도 매우 컸다. 于先 朝鮮 改革의 목소리도 이곳에서 터져 나왔다. ‘白塔’으로 불리는 十層石塔이 있는 곳을 中心으로 모였다고 해서 이른바 ‘백塔婆’라고 불리는 젊은 知識人들(朴智元, 洪大容, 李德懋, 朴齊家, 柳得恭, 서상수 等) 은 中國 明나라에 對한 事大主義와 朱子學說을 버리고 主體意識과 優秀한 文明을 받아들여 朝鮮을 富國强兵하게 하자고 主唱했다. 北學派, 利用厚生學派 等의 이름으로 불리는 이들은 朝鮮의 開化思想에 큰 影響을 미쳤다는 評價를 받고 있다. 1919年 世界人의 가슴을 울린 3.1運動도 南山에서 오포가 울릴 때 이곳 탑골公園에서부터 始作됐음은 잘 알려진 事實이다. 塔골公園은 天文 風水가 아닌 地理 風水로 보아도 漢陽의 中心點이 되는 곳이다. 風水에서는 四方의 山을 基準으로 南北軸과 東西軸이 만나는 中央 地點을 天心十道(天心十道)라고 해서 名當 穴(穴)李 맺혀 있을 可能性이 크다고 본다. 이름난 名當 무덤이나 建物 中 이런 地點에 자리잡고 있는 境遇가 적지 않은데, 탑골公園이 바로 그런 곳이다. 옛사람들은 탑골公園의 天文적 位置뿐만 아니라 땅의 地理的 利點까지 活用했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원각사 石塔은 에너지 波動이 매우 큰 名當 穴에 자리잡고 있다. 風水的 視角으로 보면 塔골公園에서의 울림이 큰 것은 이곳의 明堂 기운이 사람들에게 影響力을 크게 行使했기 때문으로 解釋할 수 있다. 서울 都心 속 塔골公園에서 天文과 地理를 體驗해보기를 勸한다. 안영배 記者·風水學 博士 ojong@donga.com}

    • 2023-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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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智異山 高嶺土 名當에서 힐링과 氣力 充電을[수토기행]

    朝鮮의 學者 김일손(1464∼1498)은 智異山 旅行記인 ‘두류기행록’에서 智異山은 신선술을 닦는 데 쓰이는 藥材인 丹沙(丹砂)가 豐富한 곳이라고 記錄했다. 不辭(不死)·불로(不老)의 象徵인 單社는 바로 智異山의 動植物을 包含한 自然 그 自體를 가리킨다고도 했다. 그는 또 智異山자락 慶南 山淸郡 單性(丹城)을 ‘段構成(丹丘城·밤낮없이 밝은 神仙 世界)’으로 이름을 고쳐 부르는 等 山淸을 理想鄕으로 描寫했다. 바로 그 山淸에서 只今 ‘不老草 祝祭’가 한창이다. 現代式 이름으로는 ‘山淸 港(抗)老化 엑스포’ 行事다. 智異山國立公園 東쪽, 왕산과 筆鋒山 자락 海拔 400∼700m 高地에는 異色的인 公園이 들어서 있다. 東醫寶鑑村(山淸郡 금서면)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智異山의 不老草와 許浚의 ‘東醫寶鑑’ 스토리를 테마로 삼아 造成한 國內 最大 規模의 한放테마파크다. 智異山자락에서 자라는 1000餘 種의 自生 藥草를 자랑하는 山淸郡이 高嶺土 廢鑛 地域을 한放公園으로 탈바꿈시켜 놓은 곳이다. 白瓷와 粉靑沙器의 原料로 쓰이는 高嶺土는 治癒 및 提督(制毒) 效果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른바 ‘名當土’라고도 불리는데, 高嶺土가 나오는 땅은 좋은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境遇가 많기 때문이다. 約 118萬 ㎡ 敷地에 造成된 東醫寶鑑村 內 ‘한방기體驗場’이 바로 그런 곳이다. 景福宮 勤政殿을 聯想케 하는 韓屋 建築物이 雄壯하게 들어선 이곳에는 세 個의 神祕한 돌이 地脈을 따라 一列로 늘어서 있다. 위에서부터 석경, 龜鑑席(龜鑑石), 複石精으로 불리는 이 巖石들은 터의 影響을 받아 굳세고도 좋은 기운이 뭉쳐 있다고 한다. 斷然 注目받는 곳은 가운데 龜鑑席이다. 同意展 建物 바로 뒤로 숨은 듯이 자리 잡고 있는 龜鑑席은 무게만 127t에 達하는 巨大한 바위다. 땅의 地力을 돋운다고 해서 응奇石(應氣石)으로도 불린다. 風水 理論을 動員해 龜鑑席을 說明하는 立看板도 興味롭다. 한방기體驗場 바로 뒤인 왕산의 主脈(主脈)에서 내려오는 石經의 姜夔(剛氣), 筆鳳山에서 내려오는 文氣(文氣), 그리고 高嶺土 名當 穴에서 凝結된 應氣(應氣) 等 세 가지가 技監席의 代表的 기운이라고 한다. 이 바위를 두 팔로 껴안거나 앞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龜鑑席의 좋은 기운이 몸에 傳達된다고 한다. 이곳을 案內한 山淸郡 文化觀光解說師는 韓方에서 體質을 鑑別할 때 使用하는 오링테스트로 觀光客들에게 ‘기운에 對한 믿음’을 强調했다. 觀光客을 相對로 明堂 터에서는 손가락의 握力이 剛해지고 그렇지 못한 곳에서는 弱해지는 現象을 直接 느끼게 해주자 여기저기서 拍手 喝采가 쏟아졌다. 2009年 이곳을 訪問한 後 바로 韓國觀光公社 社長으로 推薦받은 獨逸人 이참 氏의 名當 效驗담도 紹介돼 있다. 龜鑑席 위便宜 석경(60t)은 돌로 만들어진 거울이다. 나쁜 기운을 내보내고 再生시키는 기운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健康을 빌기 위해 많이 찾는 곳이라고 한다. 龜鑑席 아래便의 複石鼎은 솥 模樣의 돌인데 福을 담아내는 그릇이라는 意味가 있다. 이 바위 위에 銅錢을 놓아 두면 福을 받는다는 俗說이 있어 사람들이 銅錢을 두고 가는데, 山淸郡은 이 銅錢을 不遇이웃 돕기에 使用하고 있다고 한다. 東醫寶鑑村에서의 氣 에너지 體驗은 한방기體驗場에서 그치지 않는다. 東醫寶鑑村 南東쪽으로 흘러내리는 무릉계곡 위를 건너다니도록 한 무릉교(211m)는 氣의 循環을 象徵하는 곳이다. 五行(물, 나무, 불, 흙, 쇠)의 기운을 象徵하는 出入門을 通過해 만나는 무릉교는 매우 이채로운 모습을 하고 있다. 一般的인 欄干 形態와는 다르게 六角形의 構造物 70個가 터널처럼 連結된 출렁다리 構造다. 이는 龜鑑席에 거북 등 模樣으로 새겨놓은 六角形 圖形을 象徵한다. 왕산과 筆鳳山의 기운을 連結시키는 龜鑑席의 六角形 기운이 이 다리를 通해 다시 循環한다는 意味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흔히 六角形은 宗敎의 神聖性 或은 神靈함을 象徵하는 記號로 많이 使用하는데, 飮用水人 물도 六角形의 分子 構造를 이룰 때 人體에 가장 有益하다고 알려져 있다. 무릉교는 王山 및 筆鋒山, 東醫寶鑑村의 景致를 滿喫할 수 있는 眺望 名所이자, 케이블을 따라 照明燈을 設置해 夜景도 매우 뛰어나다. 觀覽客의 必須 訪問 코스 中 하나다. 無形의 기운이 아닌, 몸을 통해 좋은 에너지를 直接 ‘吟味하는’ 코스도 있다. 무릉교 아래쪽 ‘同意本家’라고 불리는 한放 體驗 韓醫院이다. 이곳에서는 韓醫師의 指導 아래 韓藥인 供辰丹 만들기 體驗과 足浴 體驗을 할 수 있다. 特히 供辰丹 만들기는 미리 準備된 藥材를 동그란 模樣으로 만들어 金가루를 입혀 完成시키는 體驗 프로그램이다. 몸으로 좋은 藥草 기운을 吟味하면서 家族 健康을 위한 마음으로 빚은 供辰丹은 包裝紙에 담아 膳物할 수 있다. 東醫寶鑑村 내 한放迷路公園은 散策과 힐링을 겸할 수 있는 곳이다. 殺菌·抗菌 物質인 피톤치드를 내뿜는 扁柏나무 2100그루로 造成된 美로(길이 1480m)가 人氣가 높다. 上空에서 내려다본 迷路 構造는 마치 人體 解剖圖와 비슷하다. ‘東醫寶鑑’의 신형장不渡(身形藏府圖)를 形象化한 것이라고 한다.남사예담촌에서 힐링하기 왕산을 사이에 두고 東醫寶鑑村 건너便의 구형왕릉(금서면 화계리)은 山淸 基 體驗에서 빠질 수 없는 곳이다. 이곳은 金海 金官伽倻의 마지막 王인 제10대 구형왕의 무덤이라고 傳해진다. 中國 지린省 지안(集安)의 將軍분처럼 피라미드 形態의 돌무덤으로 有名한 곳이다. 높이 7.15m의 7層 構造인 구형왕릉 무덤은 보기 드문 明堂 터라고 할 수 있다. 近處에 있는 것만으로 기운 充電이 節로 됨을 느낄 수 있을 程度다. 그래서인지 壬辰倭亂 때 倭軍이 王陵의 돌을 헐어버리려고 하자 雷聲霹靂이 몰아쳐 倭寇가 逃亡했다는 傳說도 있고 칡넝쿨, 落葉, 甚至於 새들도 陵 位를 비켜 간다는 얘기도 傳해진다. 한便 구형왕릉 隣近에는 東醫寶鑑의 著者 許浚의 스승인 留意태가 使用했다는 藥水터도 잘 整備돼 있다. 朝鮮 燕山君 時節 戊午士禍로 犧牲된 性理學者 金馹孫이 ‘段構成’이라고 노래한 단성면의 남사예담촌도 들러볼 만하다. 남泗川 江돌과 黃土를 2m 높이로 쌓아 올린 담이 예스러운 멋을 限껏 자아내는 名所다. 남사예담촌은 元來 250餘 채의 韓屋 마을이었는데 6·25戰爭 때 많이 불타 現在 40餘 채만 남았다. 科擧及第者, 富者, 學者 等을 輩出한 生家들의 모습을 둘러보는 즐거움을 준다. 또한 남사例談村 안에는 잘 차린 韓定食집과 雰圍氣 있는 카페가 곳곳에 있는데 터의 기운이 좋아 쉬어가기 좋다. 마을 뒤便 展望臺에 오르면 마을 全體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어 風水的으로 좋은 條件을 갖춘 곳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한방 힐링과 抗老化 體驗 現在 東醫寶鑑村에서는 특별한 이벤트가 열리고 있다. ‘2023 山淸世界傳統醫藥項老化엑스포’(9月 15日∼10月 19日)란 이름의 行事다. 2013年에 처음 열린 以後 10年 만에 열리는 國際 祝祭다. 엑스포主題館, 韓醫學博物館, 山淸藥草館, 한방기體驗場 等의 常設 展示館과 함께 世界傳統醫約款, 抗老化힐링館, 한放抗老化産業館, 惠民署 等 非常設 展示館 等에서 다양한 體驗을 할 수 있다. 家族 單位로 한放 힐링 體驗을 할 수 있는 空間으로 惠民署가 있다. 惠民署는 朝鮮時代에 百姓을 無料로 治療해 주던 醫療施設이었다. 그런 愛民 精神을 具現하는 뜻으로 이곳 惠民署에서도 醫師로부터 無料로 疾患 및 體質에 맞는 한放 施術과 投藥 處方 等을 받을 수 있다. 無料로 鍼, 뜸, 附缸 等을 經驗할 수 있는 傳統醫學 體驗, 現代化한 스마트 治療 體驗, 어린이 한放 體驗 等 多樣한 프로그램도 準備돼 있다. 2023 山淸 엑스포가 열리는 35日間 150餘 會議 公演·이벤트가 열린다. 山淸郡이 强調하는 標語처럼 ‘生氣 한放’, ‘愉快 한放’, ‘人生 한放’을 느껴볼 수 있는 機會다.산청=안영배 記者·風水學 博士 ojong@donga.com}

    • 2023-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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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굴帝國의 都市 아그라…타지마할 江邊에는 ‘永遠한 사랑’ 誓約 이어지고[수토기행]

    히말라야 山脈 氷河地帶에서 發源해 印度 北部 平原을 가로로 적시며 흘러가는 야무나강은 갠지스江의 最大 支流이자 引渡의 神聖한 7强 中 하나로 꼽힌다. 印度 首都 델리, 무굴帝國의 高度(古都) 아그라 等을 옆에 끼고서 英雄들의 興亡盛衰를 지켜본 ‘歷史의 江’이기도 하다. 타지마할의 아름다운 사랑 얘기도, 델리의 武勇談도 이 江을 따라 펼쳐진다.● 타지마할, 地上으로 내려온 天上의 庭園붉은 沙巖으로 빚어낸 아치형 出入 正門을 通過하니 大理石으로 만든 水路가 直線으로 펼쳐진다. 南北으로 約 280m 길이의 水路 中心에는 물이 솟아나는 人工 蓮못이 造成돼 있고, 水路가 끝나는 地點에는 純白의 大理石 建物이 視線을 壓倒해온다. 무굴帝國 皇帝가 숨진 아내를 永遠히 기리기 위해 지은 靈廟(靈廟) 타지마할이다. 무굴帝國의 옛 首都 아그라의 야무나 江을 背景으로 삼아 세운 建築物이다.타지마할은 1983年 ‘이슬람 藝術의 保釋’이라는 讚辭를 받으며 유네스코 世界文化遺産으로 指定됐다. 2007年에는 世界의 驚異的인 文化遺産 7個 中 하나로 選定되면서 더욱 有名稅를 탔다. 人工으로 만든 基壇 위에 67m 높이의 洋파 돔과 40m 높이의 4個 尖塔, 그리고 아치형 壁龕으로 온 몸을 治粧하고 있는 靈廟는 天上의 宮闕을 表現해놓은 듯하다.영묘는 무굴帝國의 5代 皇帝인 샤 자한(1592~1666)이 出産 中에 世上을 떠난 아내 뭄타즈 馬할을 위해 세운 것이다. 그가 征服戰爭 遠征길에도 늘 함께했을 만큼 사랑했던 아내를 永遠히 記憶하고자 만든 記念物이다. 타지마할은 1632年 工事를 始作해 約 20餘 年에 걸쳐 完工됐다. 世界 곳곳의 뛰어난 建築家 및 技術者 數千 名이 投入되고 2萬餘 名의 人夫들이 動員됐다고 한다.영묘를 가까이에서 觀察하기 위해 水路를 따라 人工 蓮못으로 다가갔다. 水路 한가운데의 네모반듯한 蓮못은 이슬람 經典인 코란을 따라 만든 ‘生命의 水原(水原)’이다. 天國 或은 樂園에 있다는 4個의 水路(물, 젖, 꿀, 葡萄酒)를 表現한 것으로, 自然의 풍요로움과 生命力을 象徵한다. 또 이 神聖한 空間을 中心으로 4個의 正四角形 區域으로 나뉜 庭園은 ‘四分庭園(四分庭園; 차르바그· Char Bagh)’이라고 불린다. 幾何學的 모습의 庭園 亦是 天國을 本딴 것이다. 이 蓮못에서는 타지마할의 反映(反影)을 鑑賞할 수 있다. 물빛에 反射돼 나타나는 타지마할은 建物의 上下 및 左右의 完璧한 對稱性과 함께 調和美를 보여준다.더욱 神祕한 것은 水路가 始作되는 地點인 出入口, 水路의 中間 地點인 人工 蓮못, 그리고 水路의 끝 地點인 英妙가 風水的으로 모두 名當 穴(穴)에 該當한다는 點이다. 타지마할을 象徵하는 3곳의 核心 建築物이 各各 名當 穴에 配置돼 있을 뿐만 아니라, 豐饒와 生命을 象徵하는 水路를 통해 한 묶음으로 連結돼 있다는 것은 매우 意圖的인 表現이다. 이는 타지마할의 建築家가 風水的 眼目으로 建築 設計를 했음을 보여준다.연못을 거쳐 靈廟 本堂으로 들어갔다. 內部는 8角形 房을 中心으로 皇帝 夫婦의 記念碑가 있고 地下 納骨堂에 眞짜 石棺이 있다고 한다. 神聖한 空間이라고 해서 신발캡을 덧씌워야 入場할 수 있고 內部 寫眞 撮影도 嚴格히 禁止돼 있다.타지마할은 日出과 日沒, 달이 뜨는 보름 等 時間에 따라 빛깔과 姿態가 變한다. 主要 資材로 쓰인 大理石이 빛을 透過시키거나 굴절시키는 現象에 依한 것이라고 한다. 皇帝는 世上에서 가장 아름다운 墓地를 지어주겠다고 한 約束을 이렇게 지켰던 것이다.하지만 皇帝는 그 代價를 치렀다. 皇帝가 아버지에게서 權力을 빼앗았듯, 그 自身도 아들 손에 廢位되고 만다. 다른 夫人에게서 얻은 아들 아우랑제브가 타지마할을 짓는데 國庫를 蕩盡했다는 理由로 叛亂을 일으켜 王位를 簒奪했다. 아우랑제브는 아버지를 아그라 誠意 監獄(捕虜의 塔)에 流杯했다. 城壁이 붉은 沙巖으로 만들어져 ‘붉은 城’으로 불리는 이곳의 監獄은 野蕪나 江邊을 따라 타지마할과는 約 2km 떨어져 있다. 샤 赭汗은 8年 동안 아내의 渺漫 바라보며 살다가 숨을 거뒀다. 아들은 屍身만큼은 아내 옆에 있도록 해주었다.● 奴隸 王이 세운 꾸뜹 미나르무굴帝國의 아그라처럼 印度의 首都 델리도 야무나 江을 끼고 있다. 한때 무굴帝國의 首都이기도 했던 델리는 크게 두 區域으로 나뉜다. 印度 諸國의 옛 首都 地域은 올드델리, 20世紀 英國 植民時代에 開發된 地域은 뉴델리로 불린다. 올드델리에는 ‘쿠트브미나르 遺跡群’이 있다. 델리에서 浮沈했던 英雄들의 歷史를 담고 있는 곳이다. 먼저 登場하는 人物이 印度 最初의 이슬람 王朝인 ‘델리 술탄國’을 建國한 쿠트브 아이바크(1150~1210)다. 이 王朝는 微賤한 奴隸 出身이 세웠다고 해서 奴隸王朝(1206~1290)로 불리기도 하는데, 向後 600年間 이어지는 북인도 이슬람 帝國의 基盤을 마련한 王朝로 評價받고 있다.쿠트브 아이바크는 宗敎的 熱情이 剛한 人物이었다. 그는 指導者 술탄이 되기 前인 1192年 북인도 地域을 占領한 뒤 맨 먼저 ‘쿠와트 알 이슬람(이슬람의 힘)’ 모스크를 建設했고, 이듬해인 1193年에는 쿠트브미나르라는 둥그란 塔을 造成했다. 이 모스크와 塔은 元來 있던 27個 힌두敎와 자이나교 寺院 等을 코끼리를 動員해 무너뜨린 後 지어졌다. 印度 傳統 宗敎에 對한 이슬람의 勝戰을 象徵하는 措置였다.쿠트브미나르의 威容은 대단하다. 元來 이 塔은 2層 規模의 壁돌塔이었는데, 그의 後繼者에 依해 3層을 더해 5層짜리 塔으로 完成됐다. 높이 73m인 이 塔은 아래 지름 14.32m, 위쪽 지름 2.75m로, 아래에서 위로 줄어드는 形態를 取하고 있다. 塔 안쪽으로는 379個의 原形 階段이 있는데 一般 觀光客에게는 開放되지 않는다.모스크인 쿠와트 알 이슬람은 다양한 宗敎의 樣式이 담겨 있어 눈길을 끈다. 1205年에 完成된 이 모스크는 東西 43m, 南北 32.4m 規模의 回廊型 死角 構造다. 現在는 正面에 세웠던 石造 아치 壁과 안뜰의 回廊 等 一部만이 남았다. 回廊에 세워진 列柱들은 힌두敎 寺院들을 破壞해 얻은 石材를 그대로 使用했기에 힌두敎 傳統 文樣이 새겨져 있다.모스크 뜰에는 굽타 王朝 때 만들어진 鐵週도 눈에 띈다. 높이 7.2m에 무게 10t인 이 鐵기둥은 402年 찬드라굽타 2歲가 비슈누 寺院에 세웠던 것을 10世紀頃 힌두敎 寺院을 新築할 때 只今의 자리로 옮겨온 것이다. 찬드라굽타 2世는 活潑한 征服活動으로 굽타 帝國을 이끈 偉大한 王으로 記錄되는 英雄이다. 그는 힌두敎의 最高愼重 하나인 비쉬누神에 對한 믿음이 確固했고, 비쉬누 神殿을 지으면서 이 쇠기둥을 세웠다고 한다.이 鐵기둥은 純度가 매우 높아 1600年이 넘은 只今까지도 地上 部分이 녹슬지 않은 것으로 有名하다.현재 鐵柱가 있는 자리는 대단한 에너지가 감돌고 있는 明堂 터다. 영헝한 鐵柱로 소문나 많은 사람들이 撤酒를 껴안는 바람에 接近을 禁止하는 鐵柵까지 만들었다고 한다.1993년 유네스코 文化遺産에 登載된 꾸뜹 미나르 遺跡群은 以外에 이슬람文化의 傑作으로 評價받는 알라이 다르瓦子 文, 未完成 塔인 알라이 미나르, 日투트美쉬王의 무덤 等이 있다.한편 뉴델리에도 빼놓으면 서운한 名所들이 적지 않다. 붉은 沙巖 甓돌로 周邊을 두르고 108個에 達하는 階段이 땅 밑으로 뻗어 있는 階段形 우물인 아그라센 키 바올리는 引渡 젊은이들의 데이크 코스로 有名하고. 世界에서 가장 큰 힌두寺院으로 꼽히는 스와미나라얀 악샤르담, 冊에서나 보았던 印度 藝術의 眞品들이 陳列된 印度 國立博物館 等은 눈을 풍요롭게 해준다.여행 情報印度는 最近 몽골과 더불어 우리나라 MZ世代들 사이에서 ‘獨特한 體驗 名所’로 浮上하고 있는 地域이다. 特히 아고라, 델리, 바라나시 等 人夫 北部는 힌두敎와 이슬람 樣式의 建築物과 藝術品으로 旅行客들의 人氣를 끄는 地域이다. 이에 따라 國內 海外旅行 專門業體들이 人道 各 都市를 巡禮하는 旅行商品을 續續 出市하고 있다. 最近에는 印度 뿐만 아니라 이웃恨 부탄, 네팔의 獨特한 佛敎 建築 旅行까지 連繫한 패키지 商品도 出市됐다. 印度-부탄, 印度-네팔 패키지는 힐링과 冥想까지 考慮한 特需 旅行 商品이어서 코다투어, 好景觀光旅行社 等 佛敎稅가 剛한 嶺南 地域의 旅行業體들이 主로 다루고 있다. 안영배 記者·風水學 博士 ojong@donga.com}

    • 2023-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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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무나강 붉게 물들인 英雄들의 敍事詩… 타지마할엔 不滅의 사랑만 남아[수토기행]

    히말라야山脈 氷河地帶에서 發源해 印度 北部 平原을 가로로 적시며 흘러가는 야무나강은 갠지스江의 最大 支流이자 引渡의 神聖한 7强 中 하나로 꼽힌다. 印度 首都 델리, 무굴帝國의 高度(古都) 아그라 等을 옆에 끼고서 英雄들의 興亡盛衰를 지켜본 ‘歷史의 江’이기도 하다. 타지마할의 아름다운 사랑 얘기도, 델리의 武勇談도 이 江을 따라 펼쳐진다. ● 타지마할, 地上으로 내려온 天上의 庭園아치형 出入門을 通過하니 大理石으로 만든 水路가 直線으로 펼쳐진다. 南北으로 約 280m 길이의 水路 中心에는 물이 솟아나는 人工 蓮못이 造成돼 있고, 水路가 끝나는 地點에는 純白의 大理石 建物이 視線을 壓倒해 온다. 무굴帝國 皇帝가 숨진 아내를 永遠히 기리기 위해 지은 靈廟(靈廟) 타지마할이다. 무굴帝國의 옛 首都 아그라의 야무나강을 背景으로 삼아 세운 建築物이다. 타지마할은 1983年 ‘이슬람 藝術의 保釋’이라는 讚辭를 받으며 유네스코 世界文化遺産으로 指定됐다. 2007年에는 世界의 驚異的인 文化遺産 7個 中 하나로 選定되면서 더욱 有名해졌다. 人工으로 만든 基壇 위에 67m 높이의 洋파 돔과 40m 높이의 4個 尖塔, 그리고 아치형 壁龕으로 온몸을 治粧하고 있는 靈廟는 天上의 宮闕을 表現해 놓은 듯하다. 英妙는 무굴帝國의 5代 皇帝인 샤자한(1592∼ 1666)이 出産 中에 世上을 떠난 아내 뭄타즈 馬할을 위해 세운 것이다. 그가 征服 戰爭 遠征길에도 늘 함께했을 만큼 사랑했던 아내를 永遠히 記憶하고자 만든 記念物이다. 타지마할은 1632年 工事를 始作해 20餘 年에 걸쳐 完工됐다. 世界 곳곳의 뛰어난 建築家 및 技術者 數千 名이 投入되고 2萬餘 名의 人夫가 動員됐다고 한다. 英妙를 가까이에서 觀察하기 위해 水路를 따라 人工 蓮못으로 다가갔다. 水路 한가운데의 네모반듯한 蓮못은 이슬람 經典인 꾸란을 따라 만든 ‘生命의 水原(水源)’이다. 天國 或은 樂園에 있다는 4個의 水路(물, 젖, 꿀, 葡萄酒)를 表現한 것으로, 自然의 풍요로움과 生命力을 象徵한다. 또 이 神聖한 空間을 中心으로 4個의 正四角形 區域으로 나뉜 庭園은 ‘四分庭園(四分庭園·차르바그)’이라고 불린다. 幾何學的 모습의 庭園 亦是 天國을 본뜬 것이다. 이 蓮못에서는 타지마할의 反映(反影)을 鑑賞할 수 있다. 물빛에 反射돼 나타나는 타지마할은 建物의 上下 및 左右의 完璧한 對稱性과 함께 調和美를 보여준다. 더욱 神祕한 것은 水路가 始作되는 地點인 出入口, 水路의 中間 地點인 人工 蓮못, 그리고 水路의 끝 地點인 英妙가 風水的으로 모두 名當 穴(穴)에 該當한다는 點이다. 타지마할을 象徵하는 3곳의 核心 建築物이 各各 名當 穴에 配置돼 있을 뿐만 아니라 豐饒와 生命을 象徵하는 水路를 통해 한 묶음으로 連結돼 있다는 것은 매우 意圖的인 表現이다. 이는 타지마할의 建築家가 風水的 眼目으로 建築 設計를 했음을 보여준다. 蓮못을 거쳐 靈廟 本堂으로 들어갔다. 內部는 8角形 房을 中心으로 皇帝 夫婦의 記念碑가 있고 地下 納骨堂에 眞짜 石棺이 있다고 한다. 神聖한 空間이라고 해서 덧신을 신어야 入場할 수 있고 內部 寫眞 撮影도 嚴格히 禁止돼 있다. 타지마할은 日出과 日沒, 달이 뜨는 보름 等 時間에 따라 빛깔과 姿態가 變한다. 主要 資材로 쓰인 大理石이 빛을 透過시키거나 굴절시키는 現象에 依한 것이라고 한다. 皇帝는 世上에서 가장 아름다운 墓地를 지어주겠다고 한 約束을 이렇게 지켰던 것이다. 하지만 皇帝는 그 代價를 치렀다. 皇帝가 아버지에게서 權力을 빼앗았듯, 그 自身도 아들 손에 廢位되고 만다. 다른 夫人에게서 얻은 아들 아우랑제브가 타지마할을 짓는 데 國庫를 蕩盡했다는 理由로 叛亂을 일으켜 王位를 簒奪했다. 아우랑제브는 아버지를 아그라 誠意 監獄(捕虜의 塔)에 流杯했다. 城壁이 붉은 沙巖으로 만들어져 ‘붉은 城’으로 불리는 이곳의 監獄은 野蕪나 江邊을 따라 타지마할과는 約 2km 떨어져 있다. 샤자한은 8年 동안 아내의 渺漫 바라보며 살다가 숨을 거뒀다. 아들은 屍身만큼은 아내 옆에 있도록 해주었다. ● 奴隸 王이 세운 쿠트브미나르무굴帝國의 아그라처럼 印度의 首都 델리도 야무나강을 끼고 있다. 델리는 17∼19世紀頃 印度의 옛 首都 地域을 올드델리, 20世紀 英國 植民時代에 開發된 곳을 뉴델리로 區分 짓기도 한다. 올드델리에는 ‘쿠트브미나르 遺跡群’이 있다. 델리에서 浮沈했던 英雄들의 歷史를 담고 있는 곳이다. 먼저 登場하는 人物이 印度 最初의 이슬람 王朝인 ‘델리 술탄國’을 建國한 쿠트브 아이바크(1150∼1210)이다. 이 王朝는 微賤한 奴隸 出身이 세웠다고 해서 奴隸王朝(1206∼1290)로 불리기도 하는데, 向後 600年間 이어지는 북인도 이슬람 帝國의 基盤을 마련한 王朝로 評價받고 있다. 쿠트브 아이바크는 宗敎的 熱情이 剛한 人物이었다. 그는 指導者 술탄이 되기 前인 1192年 북인도 地域을 占領한 뒤 맨 먼저 ‘쿠와트 알 이슬람’(이슬람의 힘) 모스크를 建設했고, 이듬해인 1193年에는 쿠트브미나르라는 둥그런 塔을 造成했다. 이 모스크와 塔은 元來 있던 27個 힌두敎와 자이나교 寺院 等을 무너뜨리고 지어졌다. 印度 傳統 宗敎에 對한 이슬람의 勝戰을 象徵하는 措置였다. 쿠트브미나르의 威容은 대단하다. 元來 이 塔은 2層 規模의 壁돌塔이었는데, 그의 後繼者에 依해 3層을 더해 5層짜리 塔으로 完成됐다. 높이 73m인 이 塔은 아래 지름 14.32m, 위쪽 지름 2.75m로, 위로 갈수록 줄어드는 形態를 띠고 있다. 塔 안쪽으로는 379個의 原形 階段이 있는데 一般 觀光客에게는 開放되지 않는다. 모스크人 쿠와트 알 이슬람은 다양한 宗敎의 樣式이 담겨 있어 눈길을 끈다. 1205年에 完成된 이 모스크는 東西 43m, 南北 32.4m 規模의 回廊型 死角 構造다. 現在는 正面에 세웠던 石造 아치 壁과 안뜰의 回廊 等 一部만이 남았다. 回廊에 세워진 列柱들은 힌두敎 寺院들을 破壞해 얻은 石材를 그대로 使用했기에 힌두敎 傳統 文樣이 새겨져 있다. 모스크 뜰에는 굽타 王朝 때 만들어진 鐵柱가 눈에 띈다. 높이 7.2m에 무게 10t인 이 鐵기둥은 402年 찬드라굽타 2歲가 비슈누 寺院에 세웠던 것을 10世紀頃 힌두敎 寺院을 新築할 때 只今의 자리로 옮겨온 것이다. 찬드라굽타 2世는 活潑한 征服 活動으로 굽타帝國을 이끈 偉大한 王으로 記錄되는 英雄이다. 그는 힌두敎의 最高 申 中 하나인 비슈누 神에 對한 믿음이 確固했고, 비슈누 神殿을 지으면서 이 쇠기둥을 세웠다고 한다. 이 鐵기둥은 純度가 매우 높아 1600年이 지난 只今까지도 地上 部分이 녹슬지 않은 것으로 有名하다. 現在 鐵柱가 있는 자리는 대단한 에너지가 감돌고 있는 明堂 터다. 영험한 鐵柱로 소문나 많은 사람들이 撤酒를 껴안는 바람에 接近을 禁止하는 鐵柵까지 만들었다고 한다. 1993年 유네스코 文化遺産에 登載된 쿠트브미나르 遺跡群에는 이 外에도 이슬람 文化의 傑作으로 評價받는 알라이 다르瓦子 文, 未完成 塔인 알라이 미나르, 日투트微視 王의 무덤 等이 있다. 한便 뉴델리에도 빼놓으면 서운한 名所들이 적지 않다. 붉은 沙巖 甓돌로 周邊을 두르고 108個에 達하는 階段이 땅 밑으로 뻗어 있는 階段形 우물인 아그라센 키 바올리는 引渡 젊은이들의 데이트 코스로 有名하고, 世界에서 가장 큰 힌두寺院으로 꼽히는 스와미나라얀 악샤르담, 冊에서나 보았던 印度 藝術의 眞品들이 陳列된 印度 國立博物館 等은 눈을 풍요롭게 해준다.안영배 記者·風水學 博士 ojong@donga.com}

    • 2023-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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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隱遁의 王國 부탄, 히말라야의 氣 가득한 힐링 旅行[水土奇行]

    世界 最貧國 中 하나이지만 스스로는 가장 幸福하다고 믿는 나라, 炭素排出輛 제로인 炭素中立을 넘어서서 排出보다 吸收가 많은 ‘炭素吸收國’을 實現한 나라. 印度와 中國 사이에 낀 히말라야의 小王國 부탄을 가리키는 말이다. 부탄 사람들은 韓國人처럼 몽골斑點을 가지고 있고, 男子가 婚姻하면 女子의 집으로 들어가 사는 高句麗式 데릴사위制를 只今도 維持하고 있다. 왠지 낯설지 않은 旣視感(旣視感)까지 들게 하는 이 神祕한 나라로의 旅行은 그 自體로 幻想的인 探險이다.부탄은 入國에서부터 心臟이 쫄깃해지는 經驗을 하게 한다. 海拔 2241m 峽谷 사이를 비집고 들어선 波로 國際空港은 視界飛行으로만 짧은 滑走路에 着陸해야 한다. 飛行機가 山에 부딪혀 墜落할 것만 같은 아찔한 曲藝의 瞬間을 거쳐 滑走路에 바퀴가 닿아서야 비로소 멈췄던 숨이 쉬어질 程度다.한반도 5分의 1 面積(3萬8816㎢)에 人口 約 75萬 名의 작은 王國인 부탄은 눈이 닿는 곳마다 茂盛한 綠色 溪谷, 구름과 눈으로 살짝 가려진 우뚝한 山봉우리, 히말라야 雪山(雪山)에서 發源한 透明하고도 깨끗한 江이 펼쳐진다.‘천둥 用意 땅’이라고 불리는 부탄은 佛敎 文化가 隆盛한 나라다. ‘종(Dzong)’이라고 불리는 傳統 社員이 文化遺産의 大部分을 차지한다. 種은 大體로 언덕 위 或은 山비탈에 요새처럼 造成돼 있는 形態다. 종이 外勢의 侵略에 맞서는 軍事 및 行政 機能까지 遂行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宗敎와 政治가 分離되지 않는 神政一致制의 痕跡이라고 할 수 있다.부탄 旅行은 各 地域에 散在한 種으로의 ‘探險’이 核心이다. 獨特한 地形的 特色을 갖춘 種은 聖스러운 에너지가 감도는 明堂일 뿐만 아니라, 種과 關聯돼 傳해지는 奇異한 傳說이나 일화는 부탄의 神祕感을 더해 준다.왕이 眞心으로 尊敬받는 나라派로 空港에서 파로講을 따라 이어지는 道路를 타고 1時間 程度 달리면 부탄의 首都 팀푸에 到着한다. 우리나라의 小都市 規模인 팀푸에서부터 부탄의 代表的인 種으로의 旅程을 始作했다.먼저 찾은 곳이 높이 51.5m의 靑銅 佛像인 도르덴마賞이다. 팀푸 市內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山 頂上에 세워진 이 佛像은 世界 最大 높이를 자랑한다. 이 佛像은 팀푸 市內 大部分 地域에서 바라보이는데, 팀푸 市民들의 精神的 依支處가 된다. 마치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코르코바두 언덕에 세워진 超大型 그리스도像을 보는 듯하다.도르덴마상 內部로 들어서면 12萬5000期에 達하는 小規模 佛像들이 四方으로 빽빽이 들어서서 長官을 이룬다. 信仰心 깊은 부탄 사람들이 佛像을 가져와 이곳에 모셔 놓은 것이라고 한다. 佛像 터의 기운을 살펴보니 나무랄 데 없는 明堂이다. 風水的으로 權力과 富의 에너지가 넘쳐나는 곳이다. 부탄人 現地 가이드는 “元來 이 땅은 부탄의 長官 等 高級 官吏들이 살던 官舍 터였다”고 說明했다.팀푸 市內로 내려와 부탄의 3代 國王 지그메 도르지 왕추크(在位 1952~1972年)를 기리는 國立追慕塔(National Memorial Chorten)을 찾았다. 佛經이 새겨진 마니차를 돌리거나, 追慕塔을 돌면서 부처像 앞에서 절을 올리는 부탄 사람들의 모습이 印象的이다. 이곳은 癌으로 世上을 떠난 第3代 國王을 위해 그의 어머니가 1974年에 조성한 塔이라고 한다.이 追慕塔에서는 부탄 사람들이 왜 眞正으로 國王을 尊敬하고 사랑하는지를 알 수 있다. 絶對王政國家였던 부탄에서 第3代 國王은 進步的인 政策을 펼쳤다. 權力을 國民에게 돌려주기 위해 國會(國民議會)를 設立했고, 自身이 가지고 있던 땅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無償으로 나눠졌다. 王位를 이어받은 4代 國王 지그메 싱기에 왕추크(在位 1972~2006年)도 아버지의 路線을 따랐다. 4代 國王은 또 “GNP(國民總生産)보다 GNH(國民總幸福)가 더 重要하다”며 政府 機構로 ‘國民行複廳’을 設置했다. 그는 2年마다 國民總幸福指數를 調査 發表하며 民生을 具體的으로 살폈다. 現在 5代 國王 지그메 케사르 嵐氣엘 왕추크는 한발 더 나아가 2008年 絶對君主制를 抛棄하고 立憲君主制로 轉換했다. 王이 스스로 決斷해 權座에서 내려온 것은 世界史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다.두물머리 明堂의 푸나카 종수도 팀푸를 中心으로 東쪽 圈域으로는 푸나카 種과 侈靡랑카 種이 重要 포인트다. 먼저 1637年에 建設된 푸나카 種은 부탄에서 가장 雄壯하고, 歷史的으로도 重要한 요새 中 하나다. 이 鐘은 푸나카가 부탄의 首都였던 1955年까지 부탄 行政 및 宗敎의 中心 機能을 遂行했다.강 위로 놓인 사다리 門을 통해서만 進入할 수 있는 푸나카 種은 某秋江(어머니江)과 蒲槌江(아버지姜)李 合流하는 地點에 位置하고 있는 天然 要塞이기도 하다. 種 아래로 물이 흐르기 때문에 實際 물 위에 떠 있는 形局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양수리(두물머리)처럼 두 江이 合水되는 明堂 터에 있는 이곳은 風水的으로 ‘蓮花浮水形(蓮花浮水形·蓮꽃이 물 위에 떠 있는 形象)’이라고 일컬을 만하다. 푸나카 種은 새하얀 外壁의 불그스름한 建物이 玉色 물빛과 어우러져 마치 아름다운 蓮꽃처럼 보인다.이 社員은 부탄의 初代 國王 戴冠式이 열린 곳이자, 國會가 最初로 開院된 곳이기도 하다. 이런 政治的 象徵性 때문에 2011年 現在의 5代 國王이 平民 出身의 女性과 結婚式을 擧行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 社員은 幸福 宮殿으로도 불린다.푸나카 種에서 江을 따라 南쪽으로 6.5km 떨어진 곳의 侈靡라캉 社員은 ‘得子(得子·子息을 얻음)’ 祈禱處로 有名한 곳이다. 寺院 入口 쪽 마을에는 집집마다 奇妙한 形象의 男根(男根)李 그려져 있는데, 亦是 子息 生産의 意味가 담겨 있다.이 社員은 15世紀 때 高僧인 람 둑파퀸리(1455~1570)의 奇異한 事緣으로도 有名하다. ‘히말라야의 乞僧’으로 紀行을 일삼았던 그는 5000名의 女子와 섹스를 通한 탄트라 修行을 해왔고, 入寂할 때는 自身의 男根을 잘라 나무에 封印했다고 한다. 아이를 갖기를 願하는 많은 夫婦들이 이곳에서 祈禱를 하면 所願을 이룬다고 한다.절벽에 세워진 虎狼이 둥지 修道院팀푸 西쪽 圈域으로는 卓上 社員이 있다. 海拔 3120m 絶壁 한가운데에 危殆롭게 붙어 있는 卓上 社員은 부탄의 象徵으로 여겨지는 名勝地다.李 社員은 ‘虎狼이 둥지’라고 불린다. 8世紀頃 부탄에 佛敎를 傳播한 티베트 佛敎의 傳說的인 人物인 파드마 삼바바가 虎狼이를 타고 내려와 寺院을 建立했다는 얘기에 따른 것이다.호랑이 둥지로의 旅行은 만만치 않은 트레킹 코스다. 高地帶라서 숨이 쉽게 가빠지는 데다,비탈진 길이 쉼없이 이어진다. 아찔한 絶壁 사이로 난 길을 한참 오르면 中間 休憩所 格인 카페테리아에 닿는다. 入口에서 이곳까지는 約 1時間 程度 걸리는데, 돈을 내면 말을 타고 오를 수도 있다. 그런데 막상 말을 타고 山비탈 길을 오르고 나면 말에게 眞心으로 未安한 마음이 들기 때문에 그냥 속 便하게 걷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카페테리아에서 또다시 1時間 程度 呼吸을 調節하며 오르면 社員에 到着한다. 社員은 바라만 보아도 神聖한 기운이 절로 배어나는 듯하다. 파드마 삼바바가 이곳에 머물며 冥想을 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그의 발자국이 아직도 洞窟 中 하나에 남아 있다고 한다.이곳은 1998年 火災로 消失된 以後 只今의 모습으로 復元된 것이다. 옛 사람들은 영험한 기운이 밴 場所를 虎狼이, 龍, 코끼리 等 動物을 끌어들여 象徵的으로 描寫했는데, 이곳 亦是 虎狼이 둥지 터라고 해서 明堂임을 立證하고 있다. 事實 絶壁 위에 새 둥지처럼 지어진 卓上 社員은 사람의 힘으로 어떻게 建設했는지 敬畏感을 불러일으킨다.이 外에도 ‘步石 위의 要塞’라는 뜻의 波로 種, 佛敎 寺院이자 政府廳舍 役割을 하고 있는 他詩抄 種, 妖怪를 바위 밑에 가두고 세웠다는 尋討카 種 等도 들러 볼 만하다.부탄으로 가려면●교통=한국에서 부탄으로 가는 直航 便은 없다. 泰國 방콕이나 印度 델리, 네팔 카트만두를 經由해야 한다. 부탄 國營航空社 드루크 에어(Druk Air)가 就航하고 있다.●부대 條件=부탄에서는 背囊旅行 等 個別 旅行을 禁止하고 있다. 旅行客은 반드시 부탄人 가이드와 同行해야 한다는 條件이 따라붙는다. 게다가 ‘持續可能한 發展 費用(SDF)’ 名目으로 하루 1印堂 200달러씩 旅行 稅金을 내야 한다. 부탄 當局은 SDF로 確保한 資金은 自然, 文化 傳統 保護, 觀光 인프라 構築 事業 等에 使用된다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부탄 旅行은 이런 部隊 條件을 勘案한 旅行社의 패키지 商品 투어로 가는 것이 더 유리할 수 있다. 現在 印度·부탄·네팔 專門 旅行社인 ‘다이너스티 코리아’가 부탄과 印度 旅行을 結合한 패키지 商品을 運營하고 있다.●부탄 情報=부탄 사람들은 부탄語인 ‘종카어’와 英語를 함께 使用하고 있어서 大部分 英語로 意思疏通이 可能하다. 또 부탄의 社員으로 들어가려면 깃이 있는 티셔츠와 긴 바지가 必要하므로 미리 準備해야 한다. 이 外에 부탄에 關한 더 仔細한 情報는 부탄 外交部가 公式 承認한 韓國부탄友好協會(會長 김민경) 홈페이지(www.koreabhutan.com)를 利用하면 된다.안영배 記者·風水學博士 ojong@donga.com}

    • 2023-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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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幸福한 隱遁의 王國 부탄… 淸淨 氣로 힐링 滿喫[水土 奇行]

    世界 最貧國 中 하나이지만 스스로는 가장 幸福하다고 믿는 나라, 炭素排出輛 제로인 炭素中立을 넘어서서 排出보다 吸收가 많은 ‘炭素吸收國’을 實現한 나라. 印度와 中國 사이에 낀 히말라야의 小王國 부탄을 가리키는 말이다. 부탄 사람들은 韓國人처럼 몽골斑點을 가지고 있고, 男子가 婚姻하면 女子의 집으로 들어가 사는 高句麗式 데릴사위制를 只今도 維持하고 있다. 왠지 낯설지 않은 旣視感(旣視感)까지 들게 하는 이 神祕한 나라로의 旅行은 그 自體로 幻想的인 探險이다. 부탄은 入國에서부터 心臟이 쫄깃해지는 經驗을 하게 한다. 海拔 2241m 峽谷 사이를 비집고 들어선 波로 國際空港은 視界飛行으로만 짧은 滑走路에 着陸해야 한다. 飛行機가 山에 부딪혀 墜落할 것만 같은 아찔한 曲藝의 瞬間을 거쳐 滑走路에 바퀴가 닿아서야 비로소 멈췄던 숨이 쉬어질 程度다. 韓半島 5分의 1 面積(3萬8816㎢)에 人口 約 75萬 名의 작은 王國인 부탄은 눈이 닿는 곳마다 茂盛한 綠色 溪谷, 구름과 눈으로 살짝 가려진 우뚝한 山봉우리, 히말라야 雪山(雪山)에서 發源한 透明하고도 깨끗한 江이 펼쳐진다. ‘천둥 用意 땅’이라고 불리는 부탄은 佛敎 文化가 隆盛한 나라다. ‘종(Dzong)’이라고 불리는 傳統 社員이 文化遺産의 大部分을 차지한다. 種은 大體로 언덕 위 或은 山비탈에 요새처럼 造成돼 있는 形態다. 종이 外勢의 侵略에 맞서는 軍事 및 行政 機能까지 遂行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宗敎와 政治가 分離되지 않는 神政一致制의 痕跡이라고 할 수 있다. 부탄 旅行은 各 地域에 散在한 種으로의 ‘探險’이 核心이다. 獨特한 地形的 特色을 갖춘 種은 聖스러운 에너지가 감도는 明堂일 뿐만 아니라 種과 關聯돼 傳해지는 奇異한 傳說이나 일화는 부탄의 神祕感을 더해 준다. ● 왕이 眞心으로 尊敬받는 나라 波로 空港에서 파로講을 따라 이어지는 道路를 타고 1時間 程度 달리면 부탄의 首都 팀푸에 到着한다. 우리나라의 小都市 規模인 팀푸에서부터 부탄의 代表的인 種으로의 旅程을 始作했다. 먼저 찾은 곳이 높이 51.5m의 黃金 佛像인 도르덴마賞이다. 팀푸 市內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山 頂上에 세워진 이 佛像은 世界 最大 높이를 자랑한다. 도르덴마上 內部로 들어서면 12萬5000期에 達하는 小規模 佛像들이 四方으로 빽빽이 들어서서 長官을 이룬다. 信仰心 깊은 부탄 사람들이 佛像을 가져와 이곳에 모셔 놓은 것이라고 한다. 佛像 터의 기운을 살펴보니 나무랄 데 없는 明堂이다. 風水的으로 權力과 富의 에너지가 넘쳐나는 곳이다. 부탄人 現地 가이드는 “元來 이 땅은 부탄의 長官 等 高級 官吏들이 살던 官舍 터였다”고 說明했다. 팀푸 市內로 내려와 부탄의 3代 國王 지그메 도르지 왕추크(在位 1952∼1972年)를 기리는 國立追慕塔을 찾았다. 佛經이 새겨진 마니차를 돌리거나, 追慕塔을 돌면서 부처像 앞에서 절을 올리는 부탄 사람들의 모습이 印象的이다. 이 追慕塔에서는 부탄 사람들이 왜 眞正으로 國王을 尊敬하고 사랑하는지를 알 수 있다. 絶對王政國家였던 부탄에서 第3代 國王은 進步的인 政策을 펼쳤다. 權力을 國民에게 돌려주기 위해 國會(國民議會)를 設立했고, 自身이 가지고 있던 땅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無償으로 나눠줬다. 王位를 이어받은 4代 國王 지그메 싱기에 왕추크(在位 1972∼2006年)도 아버지의 路線을 따랐다. 4代 國王은 또 “GNP(國民總生産)보다 GNH(國民總幸福)가 더 重要하다”며 政府 機構로 ‘國民行複廳’을 設置했다. 그는 2年마다 國民總幸福指數를 調査 發表하며 民生을 具體的으로 살폈다. 現在 5代 國王 지그메 케사르 嵐氣엘 왕추크는 한발 더 나아가 2008年 絶對君主制를 抛棄하고 立憲君主制로 轉換했다. 王이 스스로 決斷해 權座에서 내려온 것은 世界史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다. ● 두물머리 明堂의 푸나카 種 首都 팀푸를 中心으로 東쪽 圈域으로는 푸나카 種과 侈靡라캉 種이 重要 포인트다. 먼저 1637年에 建設된 푸나카 種은 부탄에서 가장 雄壯하고, 歷史的으로도 重要한 요새 中 하나다. 이 鐘은 푸나카가 부탄의 首都였던 1955年까지 부탄 行政 및 宗敎의 中心 機能을 遂行했다. 江 위로 놓인 사다리 門을 통해서만 進入할 수 있는 푸나카 種은 某秋江(어머니江)과 蒲槌江(아버지姜)李 合流하는 地點에 位置하고 있는 天然 要塞이기도 하다. 種 아래로 물이 흐르기 때문에 實際 물 위에 떠 있는 形局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양수리(두물머리)처럼 두 江이 合水되는 明堂 터에 있는 이곳은 風水的으로 ‘蓮花浮水形(蓮花浮水形·蓮꽃이 물 위에 떠 있는 形象)’이라고 일컬을 만하다. 푸나카 種은 새하얀 外壁의 불그스름한 建物이 玉色 물빛과 어우러져 마치 白色의 아름다운 蓮꽃처럼 보인다. 이 社員은 부탄의 初代 國王 戴冠式이 열린 곳이자, 國會가 最初로 開院된 곳이기도 하다. 이런 政治的 象徵性 때문에 2011年 現在의 5代 國王이 平民 出身의 女性과 結婚式을 擧行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 社員은 幸福 宮殿으로도 불린다. 푸나카 種에서 江을 따라 南쪽으로 6.5km 떨어진 곳의 侈靡라캉 種은 ‘得子(得子·子息을 얻음)’ 祈禱處로 有名한 곳이다. 寺院 入口 쪽 마을에는 집집마다 奇妙한 形象의 男根(男根)李 그려져 있는데, 亦是 子息 生産의 意味가 담겨 있다. 이 社員은 15世紀 때 高僧인 람 둑파퀸리(1455∼1570)의 奇異한 事緣으로도 有名하다. ‘히말라야의 乞僧’으로 紀行을 일삼았던 그는 5000名의 女子와 섹스를 通한 탄트라 修行을 해왔고, 入寂할 때는 自身의 男根을 잘라 나무에 封印했다고 한다. 아이를 갖기를 願하는 많은 夫婦들이 이곳에서 祈禱를 하면 所願을 이룬다고 한다.● 絶壁에 세워진 虎狼이 둥지 修道院팀푸 西쪽 圈域으로는 卓上 社員이 있다. 海拔 3120m 絶壁 한가운데에 危殆롭게 붙어 있는 卓上 社員은 부탄의 象徵으로 여겨지는 名勝地다. 이 社員은 ‘虎狼이 둥지’라고 불린다. 8世紀頃 부탄에 佛敎를 傳播한 티베트 佛敎의 傳說的인 人物인 파드마 삼바바가 虎狼이를 타고 내려와 寺院을 建立했다는 얘기에 따른 것이다. 虎狼이 둥지는 바라만 보아도 神聖한 기운이 절로 배어나는 듯하다. 파드마 삼바바가 이곳에 머물며 冥想을 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그의 발자국이 아직도 洞窟 中 하나에 남아 있다고 한다. 이곳은 1998年 火災로 消失됐지만 復元해 只今의 모습이 됐다. 옛 사람들은 영험한 기운이 밴 場所를 虎狼이, 龍, 코끼리 等 動物을 끌어들여 象徵的으로 描寫했는데, 이곳 亦是 虎狼이 둥지 터라고 해서 明堂임을 立證하고 있다. 事實 絶壁 위에 새 둥지처럼 지어진 卓上 社員은 사람의 힘으로 어떻게 建設했는지 敬畏感을 불러일으킨다. 이 外에도 ‘步石 위의 要塞’라는 뜻의 波로 種, 佛敎 寺院이자 政府廳舍 役割을 하고 있는 他詩抄 種, 妖怪를 바위 밑에 가두고 세웠다는 尋討카 種 等도 들러 볼 만하다. 부탄으로 가려면교통 韓國에서 부탄으로 가는 直航 便은 없다. 泰國 방콕이나 印度 델리, 네팔 카트만두를 經由해야 한다. 부탄 國營航空社 드루크 에어(Druk Air)가 就航하고 있다. 部隊 條件 부탄에서는 背囊旅行 等 個別 旅行을 禁止하고 있다. 旅行客은 반드시 부탄人 가이드와 同行해야 한다는 條件이 따라붙는다. 게다가 ‘持續可能한 發展 費用(SDF)’ 名目으로 하루 1印堂 200달러씩 旅行 稅金을 내야 한다. 부탄 當局은 SDF로 確保한 資金은 自然, 文化 傳統 保護와 觀光 인프라 構築 事業에 使用된다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부탄 旅行은 이런 部隊 條件을 勘案한 旅行社의 패키지 商品 투어로 가는 것이 더 유리할 수 있다. 現在 印度·부탄·네팔 專門 旅行社인 ‘다이너스티 코리아’가 부탄과 印度 旅行을 結合한 패키지 商品을 運營하고 있다. 부탄 旅行 팁 부탄 사람들은 부탄語인 ‘종카어’와 英語를 함께 使用하고 있어서 大部分 英語로 意思疏通이 可能하다. 또 부탄의 社員으로 들어가려면깃이 있는 티셔츠와 긴 바지가 必要하므로 미리 準備해야 한다. 이 外에 부탄에 關한 더 仔細한 情報는 부탄 外交部가 公式 承認한 韓國부탄友好協會(會長 김민경) 홈페이지를 利用하면 된다. 안영배 記者 oj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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