小說家 하일지(동덕여대 文藝創作科 敎授) 氏는 佛敎 信者는 아니지만 틈날 때마다 坊坊曲曲의 査察을 찾아가 글을 쓴다. 여름에는 特히 그렇다. 慶南 陜川郡 年號社, 全南 和順郡 雙峯寺, 忠南 서산시 浮石寺와 逸樂社 같은 절들을 찾곤 했다.
그는 올여름에는 陜川郡 伽倻山 海印寺의 知足癌에 머물고 있다. 高麗時代에 처음 지어진 절이다.
河 氏는 “2001年 여름 濟州 約天使를 찾았다가 만난 成功 스님이 이 庵子의 住持로 와 있어 7月 中旬에 여기로 왔다”며 “얼마 前 大邱에 사는 小說家 장정일 氏가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머리 위 나뭇가지에서 뱀이 떨어진 일이 있을 程度로 山이 깊어 좋다”고 말했다.
河 氏는 庵子 아래 가파른 비탈에 客僧을 위해 세운 肅謝 2層의 房 한 칸을 쓰고 있다. 여기서 들窓을 가린 감나무 이파리들을 보면서 哲學書인 ‘나에 對한 省察’(假題)을 마지막으로 손질하고, 長篇小說 ‘우주피스(Uzpis) 共和國’(假題)을 한참 써 내려가고 있다.
그는 거의 脫稿된 ‘나에 對한 省察’에 對해서 흐뭇해했다. 미리 읽고 好評을 한 사람들이 있는 데다 이곳에 와 보탠 대목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都大體 나란 무엇인가에 對해 한番쯤 묻고 싶어 現象學이나 記號學에서 接近해 본 글”이라고 說明했는데 깊은 절에서 붙잡고 늘어질 만한 話頭인 것 같다.
그는 “왜 ‘나’라는 存在는 ‘絹物(見物)이면 生心(生心)일까’ 하고 自問해 봤다”고 말했다. “그런데 여기 와 계시던 혜광 스님이 ‘山은 山이 아니요, 물은 물이 아니라는 말도 있잖습니까’ 하고 말해주더군요. 뭔가 퍼뜩 머릿속으로 지나갔습니다.” 山을 보고 不動産을, 물을 보고 溫泉 開發을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그는 “知足癌으로 올라오는 갈림길의 다른 쪽으로 向하면 聖哲 스님이 오래 머무르신 백련암이 나온다”며 “(性徹 스님이 남긴 말씀인) ‘山은 山, 물은 물’임을 정작 깨치는 것은 얼마나 힘든 것일까요” 하고 말했다.
그는 現在 쓰고 있는 ‘우주피스 共和國’에 對해선 말을 아꼈다. 河 氏는 美國 親舊가 있는 리투아니아를 여러 番 訪問했는데 “‘우주피스’는 리투아니아 말로 ‘江 건너’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 作品은 ‘할’이라는 男子가 自己는 全혀 居住한 記憶이 없는 우주피스 共和國에서 撮影된 옛날 自己 寫眞을 보고 그 共和國을 찾아가는 旅路를 다뤘다. 河 氏는 “‘나’라는 存在에게 記憶이란 무엇인가 하는 問題를 다루려고 한다”고 말했다.
海印寺 境內는 스님들이 大部分 잠도 자지 않은 채 面壁하는 ‘勇猛精進’에 들어가 텅 빈 듯하다. 河 氏는 글을 쓰기 前에 海印寺까지 山길을 걷는다. 海印寺 판展에 保管 中인 八萬 大藏經 가운데 初期 佛經들은 文字 없던 時節 부처님을 따르던 阿難尊者가 純全히 記憶만으로 口傳한 부처님 말씀이다. 河 氏는 “山길을 떠나 ‘記憶이란 뭔가, ‘나’와 記憶은 어떤 關係인가’ 하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版殿 近處”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문학이 오래 붙잡아 온 民族主義나 리얼리즘과는 다른 얼굴의 小說을 쓰고 싶다. 그래서 一旦 情報가 遮斷된 깊은 곳으로 찾아왔다”고 말했다.
깊은 밤 그가 앉은뱅이冊床 앞에서 글을 쓰는 사이 노란色과 하얀色의 나방들이 날아왔다. 河 氏는 房바닥에서 날개 접고 잠이 든 나방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여긴 元來 나방들의 房이지요. 우리는 여길 暫時 빌려 쓰고 있는 거랍니다.”
海印寺=권기태 記者 kk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