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男子가 女子를 두들겨 팬다. 한 瞬間의 狂氣의 바람이 잦아들었을 때 男子는 섹스를 要求하고 女子는 짐승 같은 男子에게 몸을 許諾한다. 참으로 알 수 없는 아이러니다. 그 瞬間에 男子는 어떻게 섹스를 생각하게 되는 걸까? 그렇게 當하고도 女子는 어떻게 섹스에 應하게 되는 것일까?
男子는 女子의 몸에 自身을 밀어 넣어 그女의 存在 안에서 ‘그래도 넌 내 거야!’를 외치며 自身의 存在를 다시 確認시키고자 한다. 女子는 그런 男子를 自己가 아니면 누가 救援 하겠느냐는 條件 없는 母性愛에 휩싸인다. 犯罪者 술꾼 暴力輩와 같은 問題 많은 男子들의 곁에도 늘 女子가 끊이지 않는 것은 바로 어린 羊을 救援하겠다는 想像의 마리아가 女性의 마음 속에 存在한다는 것을 意味한다. 이 事實은 男子와 女子의 섹스에 對한 態度를 가장 克明하게 드러내 주는 例다.
男子에게 섹스는 强迫이다. 重力을 拒否하며 힘차게 勃起한 男性의 심벌은 뻗치는 힘을 주체할 수 없어 한다. 男子에게 그 뻗치는 힘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나누어 주어야 할 그 무엇으로 생각된다. 화수분처럼 솟아나는 테스토스테론을 마치 慈善 事業 하듯 여러 女子에게 나누어준다. 男子에게 섹스란 하나의 行爲일 뿐이다. 垂直으로 上昇하다 垂直으로 곤두박질치는 섹스 에너지 만큼이나 單純하다.
女子에게 섹스는 選擇이다. 로맨스의 한 部分일 뿐이다. 女性의 심벌은 隱密하다. 男性처럼 性的 興奮 狀態가 눈으로 測定되지도 않는다. 女子에게 섹스는 複雜하고 微妙한 마인드 게임이다. 中뿔 난 짐승 같은 男性을 받아들이는 女性은 마치 꿈꾸는 植物 같다. 그 暴發的 에너지를 부드럽게 끌어안는 女性의 힘은 무얼까?
‘男子는 섹스를, 女子는 로맨스를 願한다.’ 바로 그 事實을 寸鐵殺人의 한 컷으로 보여 준 廣告가 있다.
에콰도르에서 製作된 돌체앤드가바나(D&G) 陳 廣告를 보자. 사랑하는 男女의 뒷모습이 보인다. 두 男女는 同牀異夢에 빠져 있다. 女子는 하트로 代辯되는 달콤한 사랑을, 男子는 거꾸로 된 하트가 形象化한 女性의 엉덩이, 卽 섹스를 생각하고 있다. 女子는 달콤한 蜜語를 나누면서 몸과 精神과 靈魂이 하나 되는 瞬間을 머리 속에 그리고 있을 것이다. 男子는 어떤 手順으로 女子를 攻略할 것인가를 머리 속에 굴리고 있을 것이다.
하트 模樣의 위 아래만을 바꿈으로써 男女의 性에 對한 各其 다른 생각을 記號化한 아이디어가 傑出하다. 女性의 엉덩이 輪廓을 그대로 드러낸 돌체앤드가바나의 붉은 色 秦의 形態는 그 女性이 머리 속에 그리고 있는 것과 正反對인, 盲目的 섹스머신의 머리 속을 차지하고 있는 거꾸로 된 하트 模樣을 하고 있다. 마치 當身이 想像하는 로맨스는 錯覺이라는 듯….
섹스는 男女를 하나 되게 하는 咬合 코드다. 그러나 恒常 男性이 君臨하는 形態로 刻印된 섹스 이미지는 男性을 主體로, 女性을 對象化된 存在로 드러냈다. 實際로 그럴까? 確實한 것은 男子든 女子든 性的 體驗의 場所는 女子의 몸 안이라는 點이다. 그 몸 안에서 오로지 섹스만을 생각하는 수컷을 암컷은 抱擁하면서 包容한다. 섹스의 瞬間 女子는 이처럼 男子의 肉體와 精神을 함께 감싸 안는다. 어디 男子뿐이랴. 알베르 카뮈의 小說 ‘幹部(姦婦)’에 나오는 쟈닌, 그女는 높은 望樓에서 하늘을 向해 몸을 벌리고 宇宙와 情을 통하며 宇宙를 품에 넣지 않던가!
김홍탁 廣告評論家·제일기획 크리에이티브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