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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구석에 통닭 한 番 사들고 온 적 없어요”|신동아

‘혼밥判事’의 한끼 | 家庭不和의 尺度 ‘통닭’

“집구석에 통닭 한 番 사들고 온 적 없어요”

  • 入力 2019-03-11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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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裁判은 傷處로 始作해서 傷處로 끝난다. 當事者들 傷處에 비할 순 없지만 判事도 傷處를 입는다. 그럴 때면 나는 혼자서 맛있는 飮食을 먹으러 가곤 한다. 정갈한 밥 한 끼, 뜨끈한 탕 한 그릇, 달달한 빵 한 조각을 천천히 먹고 있으면 鬱寂함의 조각이 커피 속 角雪糖처럼 스르륵 녹아버리고 慰勞를 받는다. 그러면서 “判事는 判決로 말한다”고 해서 法廷에서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맞은便 빈자리에 앉은 누군가에게 한다.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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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夜勤을 마치고 집 안에 들어서니 컴컴한 居室에 익숙한 양념냄새가 振動했다. 불을 켜 보니 아니나 다를까 食卓 위에 양념통닭 箱子가 놓여 있다. 군데군데 양념이 묻은 흰 箱子 안에는 통닭 서너 조각이 黃金 알처럼 반짝거렸다. 턱 아래 침이 고였다. 아내와 아이들이 먹다가 남겨놓은 것이다. (或是 더 먹고 싶은데도 나를 爲해 일부러 남겨놓은 것일까) 나는 양념이 찐득찐득하게 묻은 가슴 조각을 입에 넣고 씹었다. 肉質은 텁텁하고 양념은 必要 以上으로 剛했다(나를 위해 부러 남겨놓은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러고 보면 나이 들어 맛있는 통닭을 먹은 記憶이 없다. 통닭이 變한 걸까, 내가 變한 걸까. 내가 어릴 때 통닭을 남기는 것은 映畫를 보다가 中間에 劇場을 나가는 것만큼 想像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 아버지 包含 많은 아버지가 月給날마다 3000원짜리 통닭을 直接 사들고 왔다. 검은 비닐封套를 열면 닭 한 마리가 통째로 들어가 있는(그래서 ‘통닭’이다) 종이封套가 나왔다. 封套 안쪽에서부터 번진 기름얼룩 때문에 ‘시스루룩’李 돼 힐끔힐끔 속이 비쳤고 그 안으로 드러나는 통닭의 屈曲과 볼륨은 내 食慾의 불꽃에 기름을 부었다.

    빵빵한 비닐封套에 式촛물과 함께 담긴 ‘치킨 무’는 가슴살처럼 퍽퍽한 部分을 먹을 때 많이 먹힌다. 銀箔紙를 열면 케첩과 마요네즈가 뿌려진 ‘사라다’가 들어 있었다. 소금은 그 當時 藥局의 藥封紙처럼 正四角形 종이를 對角線으로 여러 番 접은 것 속에 싸여 있었다. 후추가 適當히 섞여 있어야 보기도 좋고 맛도 좋았다.


    黃土色度, 褐色도 아닌 통닭色

    어머니가 맨손으로 뜨거운 통닭에 손을 댔다 떼기를 反復하면서 통닭을 끄집어내고 나면 모두가 둘러싸고 한동안 통닭의 모습과 냄새를 鑑賞하며 침을 삼켰다. 통닭 色깔도 重要하다. 黃土色度, 褐色도, 붉은色도 아닌, 누가 봐도 ‘아, 저것은 통닭色이구나’ 하는 色이 存在한다. 그것은 마치 파란色도, 하늘色도, 群靑色度 아닌, 저건 바다色이구나 하는 色이 存在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통닭의 꽃은 亦是 닭다리다. 가장 두툼하면서 肉質도 다른 어떤 部分보다 더 쫄깃쫄깃하다. 사람으로 치자면 똑똑하면서도 謙遜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카리스마가 있는 것처럼 洋緞의 모든 것을 갖춘 것이다.



    어머니가 맨손으로 먼저 닭다리 하나를 잡고 뜯는다. 굵은 허벅지가 몸통에서 떨어져나가면서 통닭 껍데기에 地震이 일어나고 살과 힘줄이 툭툭 끊겨나간다. 마침내 어머니가 닭다리를 포핸드를 치는 테니스채처럼 들어 올리면 모두 그것이 누구에게 갈지 觸角을 곤두세운다. 닭다리를 누가 먹는지가 통닭을 둘러싼 사람들의 序列關係를 反映한다. 첫 닭다리는 어김없이 아버지 앞에 갔다.

    問題는 두 番째 다리였다. 이것을 그냥 어머니가 먹으면 괜찮은데 그것을 굳이 맏아들인 내게 주곤 했다. 女同生은 속으로 서운했을 것이다. 或者는 當時 女子가 닭다리를 먹으면 안 되는 雰圍氣가 있었다고 한다. 어느 할머니에게선 “當時 집 ‘食母’가 닭다리가 너무 먹고 싶어 祭祀床에 올릴 닭다리 하나를 몰래 싱크臺 밑에 숨겨놓았다가 냄새 때문에 들킨 적이 있다”는 말도 들은 적 있다. 家父長的 文化가 (사람은 勿論 통닭) 뼛속까지 깊숙이 스며들어 있던 時節이었다.


    날개 먹으면 바람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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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닭다리를 男子들에게 주는 代身 어머니는 “날개 먹으면 바람피운다”면서 날개만큼은 女同生에게 주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날개와 바람이 무슨 相關關係가 있는지 궁금했다. 날개를 퍼덕여 바람을 일으킨다는 뜻인지, 날개를 먹으면 둥지(家庭)를 두고 훨훨 날아간다는 뜻인지. 내 아내는 다리를 못 먹던 女子들이 날개라도 確保하려고 만든 말이 아닐까라고도 推測한다.

    어머니는 목을 먹었다. 내가 닭다리를 먹는 게 마음이 不便해서 어머니에게 드시라고 强勸하면 어머니는 “목을 먹어야 노래를 잘한다” “나는 목이 第一 맛있다”며 서둘러 목 조각을 집어 들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노래를 잘하진 못했다.

    내가 닭다리나 목보다 더 좋아한 部位는 껍데기였다. 씹을 때마다 바그樂바그樂, 와스락와스락 크래커 먹을 때보다 더 搖亂한 소리가 난다. 動物性 기름에 눅눅하게 젖은 데다 그 밑에 엷게 脂肪層度 붙어 있어서 맛이 없으려야 없을 수 없다. 마늘통닭은 그 배 위에 기름에 절인 다진 마늘이 듬뿍 발려 있다. 마치 캔버스 위 油性물감처럼, 통나무집에 하다가 만 페인트漆처럼, 투박하고도 두껍게 묻은 마늘은 통닭의 거친 皮膚에 保護膜을 입히고 潤氣를 附與한다. 손이 트면 어머니가 잔뜩 발라주던 ‘안티프라민 軟膏’ 같이 透明하면서도 不透明하다.

    以後 다양하게 發展된 통닭이 登場했다. 1980年代 中盤 登場한 ‘멕시칸 양념통닭’은 마치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처럼 旋風的 人氣를 불러일으켰다. 1990年代 들어서는 春川닭갈비가 流行하고, 2000年代에는 安東찜닭이 휩쓸고, 언제인지 모르지만 닭다리만 소복이 모아놓은 치킨度 나왔고, 最近에는 파와 함께 먹는 ‘派닭’도 나왔다. 그러나 그 옛날 통닭보다 나은 맛을 찾지는 못했다.

    생각해보면 아무하고나 밥을 한 끼 먹을 수도 있고 술을 한盞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하고나 (술按酒도, 끼니도 아닌) 통닭 한 마리를 나눠 먹지는 않는다. 어지간히 親한 사이이거나, 어지간히 親한 사이가 되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통닭 한 마리를 가운데 놓고 다리를 讓步해가면서 뼈를 발라내지는 않는다. 통닭을 함께 먹는 사이는 그만큼 특별한 것이다. 그것을 50代 主婦 A의 離婚訴訟을 裁判하면서 깨달았다.


    “집구석에 통닭 한 番 사들고 온 적이 없어요.”

    原稿 A가 媤집살이가 너무 힘든데 男便은 疏通이 全혀 되지 않는다고 吐露할 때 지나가듯 불쑥 내뱉은 말이다. A는 큰아이가 自閉였고 둘째 아이는 腦性痲痹였다. 25年 동안 媤父母를 모시고 사는 것은 勿論 詩集을 가지 않은 媤누이까지 함께 살았는데 媤누이는 種種 入院해야 할 程度로 甚한 憂鬱症이 있었다. 그런데도 男便 B는 經濟的으로 豐足한데 A가 大體 왜 힘들다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立場이었다. 나도 B와 이야기를 조금 해보자마자 壁에 대고 말하는 느낌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A는 本人 말로 큰 富者집에 媤집을 갔다. 詩集 財産이 200億 원이 넘는다고 했다. 그래서 A는 財産分割金으로 그 折半인 100億 원을 請求했다. 男便 B는 父母로부터 牧場을 물려받았다. 그 牧場 안 大邸宅에 살면서 趣味로 外製 지프를 타고 사냥을 다녔다. 이 程度로 B가 富者이긴 했지만 A가 생각하는 程度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다. B의 財産 資料를 찾아보니 都合 10億 원이 되지 않았다. 財産 大部分이 牧場을 비롯한 林野였는데 이를 팔고 싶어도 살 사람이 없었다. 그 資料를 보고도 A는 B가 어딘가에 大部分의 財産을 숨겨놓았다고 믿고 있었다.

    200億 원도, 10億 원도 많은 財産이지만 둘의 差異는 決코 적지 않다. 이 認識 差異가 두 사람 사이에 적잖은 問題 素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假令 A는 B에게 子息을 위해 月 500萬 원짜리 課外를 한다고 속이고 C라는 40代 後半 女性에게 그동안 3億 원 程度를 몰래 가져다주었다. 한때 가톨릭 修女였다는 C는, 男便 B와 달리, A의 苦悶을 誠意 있게 들어주었다. 疏通이 잘 됐다. C는 自身에게 寄附를 많이 해야 A 아이들의 病이 낫는다고 했다. A는 100億 원을 받으면 그 돈으로 C와 함께 서로 마음을 慰勞하면서 살 豫定이라고 했다.

    한便 B는 이혼당할 理由가 없다고 맞섰다. 外道를 한 것도 아니고, 暴力을 行使한 적도 없고, 生活費를 안 준 적도 없는데 왜 離婚을 當해야 하느냐고 했다. 오히려 A에게 잘못이 더 많다고 指摘했다. 異常한 女子(C)에게 낚여 돈을 빼돌렸을 뿐만 아니라 憤怒調節障礙가 있어 甓돌로 車 琉璃, 집 居室 琉璃를 다 깨뜨려놓았다고 했다. 甚至於 自己 얼굴을 내리찍어 貫子놀이부터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면서 携帶電話로 찍은 寫眞도 보여주었다. A는 B가 너무 疏通이 되지 않아 답답함이 暴發해 瞬間的으로 失手했다고 말했다.

    法的으로는 B의 말이 一理가 있었다. 우리나라 大法院은 離婚을 認定하는데 있어서 ‘破綻主義’가 아니라 ‘有責主義’를 取한다. 簡單히 말해서 破綻主義는 婚姻關係가 破綻 나면 그 破綻에 責任이 있든 없든 離婚을 認定하는 것이고, 有責主義는 責任이 없거나 相對的으로 적은 사람만 離婚을 請求할 수 있는 것이다. 客觀的으로 드러난 證據만 놓고 따지자면 돈을 빼돌리고 甓돌로 器物을 破損하고 B에게 傷害를 加한 A의 責任이 더 컸다. 勿論 B에게도 ‘疏通이 잘 안 된다’는 問題가 있지만 그것은 客觀的으로 立證하기 어렵다. 判事가 말을 몇 마디 섞어보니 疏通이 안 되더라 해서 責任을 認定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疏通은 槪念上 雙方的인 것이라 두 사람 中 어느 한쪽에게만 疏通이 안 되는 責任이 있다고 말하기도 곤란하다.


    통닭 함께 뜯는 場面 그려지지 않아

    法的으로는 離婚請求가 棄却돼야 할 事案이었지만 아무리 봐도 두 사람이 같이 살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두 사람이 ‘통닭을 함께 뜯는’ 場面이 그려지지 않았다. 나는 거듭 合意離婚을 勸誘했다. 離婚 裁判을 하기 前에는 判事가 離婚을 하러 온 두 사람을 잘 화해시켜 잘 살도록 만드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지 몰랐다. 그러나 裁判 過程에서 都合 두어 時間 當事者들을 만나서 數十 年間 쌓인 夫婦 問題를 解決하는 것은 不可能에 가깝다.

    두 사람이 헤어지는 過程에서 子息들을 비롯해 不必要하게 追加로 傷處받는 일이 最少化되도록 해주는 것만 해도 훌륭한 判事다. 나는 家庭法院 判事가 不治病 患者를 手術하는 外科醫師가 아니라 苦痛을 덜 받고 死亡하도록 도와주는 호스피스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끝내 A는 離婚하겠다, B는 離婚할 수 없다는 말만 反復했다. 나는 結局 離婚請求를 棄却한다는 判決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訴訟 中 A가 “집구석에 통닭 한 番 사들고 온 적이 없어요”라고 말할 때 나는 A에게 그 통닭을 누구를 위해 사오기를 바랐느냐고 물어보았다. A는 瞬間 唐慌하면서 “아이들이요”라고 말을 흐렸지만 그 ‘아이들’에는 A의 마음속 아이도 包含된 것 같았다. A가 어릴 때 A의 아버지가 집에 통닭을 자주 사왔는지 궁금했지만 더 묻지는 않았다. 아마 아버지가 통닭을 자주 사왔기에 그러지 않은 B가 比較가 됐을 수도 있고, 아버지가 그러지 않았기에 B에게 아버지에 對한 怨望을 投射했을 수도 있겠다. 그렇게 追憶을 되새기며, 아내가 남겨놓은 닭날개와 닭목을 싹 먹어치웠다. 혼자서 흥얼흥얼거리면서. 아무리 목을 먹어도 노래는 如前히 別로네.

    * 이 글은 實際 事件을 一部 脚色한 에세이입니다


    정재민 | 혼밥을 즐기던 前職 判事이자 現 行政府 公務員. ‘사는 듯 사는 삶’에 關心 많은 作家. 쓴 冊으로는 에세이 ‘只今부터 裁判을 始作하겠습니다’, 小說 ‘보헤미안랩소디’(第10回 世界文學賞 大賞作) 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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