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公安當局, “리湖南은 偵察總局 所屬 工作員, 흑금성은 偵察總局 連繫 間諜”
-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會長도 베이징에서 리湖南과 接線(接線)
- 李海瓚 安熙正 李華泳 相對로도 工作 活動, 한나라당에도 接近해
- 리湖南이 흑금성을 包攝했나, 흑금성이 리湖南을 包攝했나
南北을 搖動하게 한 굵직한 事件엔 恒常 ‘그’가 있었다.
리湖南. 北韓 慘事. 1953年生.
北韓에서 立身하려면 出身成分이 重要하다. 리湖南의 아버지는 軍部에서 잔뼈가 굵었고, 匠人은 中央檢察所長을 지냈다. 아내는 노동신문 記者.
그는 김일성대를 卒業한 엘리트다. 1990年代 中盤부터 南北輕俠 現場에 모습을 드러냈다. 김일성대 上級敎員으로도 일했다. 經濟學部 政治經濟學科에서 經濟學을 가르쳤다.
리湖南과 接觸한 韓國 人士들은 政界·官界·經濟界를 網羅한다. 사람들은 그를 對外經濟協力推進委員會 慘事, 民族和解協議會 慘事로 記憶한다.
리湖南은 이름도 여럿이다. 리湖南 外에 리철, 리철운, 강호진…. 情報當局에 따르면 韓國에서 열린 南北經濟協力推進委員會 會議 때는 里鐵이란 이름으로 參席했다. 當時엔 民族經濟協力聯合會 慘事 職銜을 썼다.
職銜이 여럿이고, 이름도 제各各인 이 사내의 實名은 뭘까? 所屬은 어딜까?
리湖南의 本名은 里鐵이다. 1990年代 中盤부터 한동안 使用한 리철운, 2006年부터 本格的으로 使用한 리湖南은 假名이다.
조철준 前 北韓 政務員(現在 名稱은 內閣) 建設部 部長(長官)의 아들로 1994年 韓國으로 歸順한 조명철 對外經濟政策硏究院 國際開發協力센터 所長은 김일성대 博士院에서 리湖南과 同門受學했다.
“咸鏡南道 責任祕書를 지낸 里길宋의 사위다. 1980年代 後半 김일성대 敎授(上級敎員)로도 함께 일했다. 性格이 豪放하고 豁達하다. 頭腦回轉度 빠르다. 敎授로 일한 지 몇 年 안 돼 對外經濟 일을 맡은 合營總局으로 옮겨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