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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錫悅이냐 李在明이냐’ 아닌 ‘잘하냐 못하냐’ 電線|新東亞

‘尹錫悅이냐 李在明이냐’ 아닌 ‘잘하냐 못하냐’ 電線

[윤태곤의 總選 읽기] 來年 總選은 大統領 中間評價다

  • 윤태곤 醫製瓦戰略그룹 ‘더모아’ 政治分析室長

    入力 2023-11-11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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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尹 政府 1年 半, 거칠었고 콘텐츠·비전 貧弱

    • 候補 時節엔 中道, 只今은 保守的 人物로 비쳐

    [Gettyimage]

    [Gettyimage]

    지난해 3月 9日 大統領選擧에서 尹錫悅 國民의힘 候補가 當選된 以後 政治 日程은 다음 과 같이 進行됐다. 5月 9日 尹 大統領 就任했고, 6月 1日 地方選擧에서 與黨이 壓勝을 거두는 한便 大選에서 敗한 李在明 민주당 候補가 仁川 桂陽乙 國會議員 再補選에서 勝利해 國會에 入城했다. 8月 28日 민주당 全黨大會에서도 李在明 候補가 壓勝을 거둬 代表로 選出됐다. 올해 들어 치러진 3月 8日 國民의힘 全黨大會에서는 ‘親尹’을 앞세운 金起炫 候補가 選出됐다. 그리고 10月 11日 치러진 서울 講書區廳長 再補闕 選擧에서 진교훈 민주당 候補가 김태우 國民의힘 候補를 17.15%포인트 差로 勝利했다. 다음 日程은 來年 4月 10日 總選이다.

    大選 以後 여러 출렁거림이 있었지만 現在까지 與野 方向性은 明確했다. 政府 與黨은 尹錫悅 大統領의 掌握力이 漸漸 强化되는 方向으로, 野黨 亦是 李在明 代表의 掌握力이 强化되는 方向으로 움직였다. 與黨에서 大統領이, 지난 大選에서 아깝게 惜敗한 候補가 野黨에서 位相이 公告해지는 것은 異常한 일이 아니지만 지난 1年 半 展開는 매우 特異했다.

    陣營 內 掌握力 높이고 陣營 밖 統合力 强化

    歷代 大統領들의 境遇 政權 初盤에는 未來에 對한 期待가 反映된 높은 支持率과 人事權, 政治力 等을 바탕으로 確固하게 自己 位相을 다졌다. 大體로 陣營 內에서는 掌握力을 높이고 陣營 밖으로는 統合力을 强化하는 式이었다. 內·外部 活動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갔다. 1盧 3金, 4字 競爭 構圖 選擧에서 36.6%라는 歷代 가장 낮은 得票率로 大權을 쥔 노태우 大統領이 그 같은 傳統을 만들기 始作했다. 全斗煥 政權 時節 謙遜한 2人者 포지션으로 大選候補 자리를 꿰찬 그는 大統領 當選 以後 民主化의 烈風과 巨大 野黨의 壓迫을 前任者에게 轉移시키는 政治力을 發揮했다. 國家元老諮問會議까지 만들어놓고 ‘上王’ 노릇을 準備한 전두환은 百潭寺로 幽閉됐고, 親姻戚과 直系 側近들도 大擧 除去됐다. 김영삼의 統一민주당, 金鍾泌(JP)의 신민주공화당을 끌어안은 3黨 合黨은 畫龍點睛과 다름없었다.

    民主鬪士에서 巨大 與黨 민주自由黨 候補로 變身해 當選한 김영삼 大統領도 이 같은 國政 運營 패턴에서는 노태우의 充實한 繼承者였다. 하나회 解體, 歷史 바로 세우기에 이어 전두환·노태우 두 前任者의 拘束으로 自身을 胚胎한 3黨 合黨의 構造를 스스로 깨버리고 負債를 지워버렸다. 代身 李會昌, 李明博, 李在五, 洪準杓, 義意和 等 各 分野에서 實力을 인정받은 新進 人材를 大擧 拔擢해 軍部와 斷絶한 新保守 槪念의 신한국당 體制를 構築했다.

    김대중 大統領은 부채라고 할 수 있는 JP와의 內閣制 約束을 깨고 執權 基盤이던 DJP聯合 構造를 解體했다. 代身 自己 勢力에다가 이만섭·김중권 等 保守系 人士와 忠淸圈 李仁濟 等을 糾合하고, 任鍾晳·宋永吉 等 386 젊은피를 輸血해 새천년민주당이라는 새 틀을 짰다. 盧武鉉 大統領은 아예 與黨인 새천년민주당을 脫黨하고 自身의 直系인 개혁당, 한나라당 脫黨派까지 합쳐 열린우리당을 創黨했다.



    企業인 出身 李明博 大統領은 相當히 獨特했다. 그에게는 부채라고 할 것도 없었지만 새로운 構造 創出에 對한 關心도 커 보이지 않았다. 親李系 中心의 再編, 정운찬·김태호 等을 통한 政權 再創出 試圖가 限界에 부딪히자 곧바로 非主流이자 陣營 內 2大 株主인 박근혜에게 主導權을 넘겼다.

    박근혜와 文在寅은 確固한 陣營 내 位相을 바탕으로 執權에 成功한 케이스다. 朴槿惠 大統領은 國定敎科書 推進 外에는 새로운 構造 創出을 위한 비전을 제대로 보이지 못했다. 그뿐만 아니라 金武星, 劉承旼, 南景弼 等 自身과 다른 콘셉트의 次期 走者軍도 容納하지 않았다. 擴張的이라기보다 數蓄積 行步의 말로는 悲劇的이었다. 文在寅 大統領은 國會 議席과 進步 陣營의 社會的 파이 等을 物理的으로 늘리는 데는 成功했지만 새로운 國家 비전을 提示하지 못했고, 後繼 構圖에는 크게 介入하지 않았다.

    執權 1年 半이 지난 現在 尹錫悅 大統領은 어떠할까. 政治 新人의 身分으로 아무 基盤 없는 巨大 政黨에 入黨해 大選候補 자리를 꿰찬 사람은 尹 大統領이 唯一하다. 1997年 大選 當時 한나라당 이회창 候補와 類似點이 있지만 이 候補는 大法官 以後 監査院長·總理·執權黨 代表를 지냈고, 現職 大統領과의 葛藤에도 不拘하고 스스로 黨을 掌握한 狀況에서 與黨 候補가 됐다. 大選에서는 落選했다. 陣營 內에서 特別한 負債가 없다는 點에서는 李明博 大統領과 類似한 點도 있다.

    歷代 大統領이 걸어온 行跡을 살펴봤듯이 大統領으로 當選한 以後 與圈, 나아가 自己 陣營 再編에 나선 사람은 尹 大統領뿐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政治 地形을 바꾸려 試圖하지 않은 大統領이 없을 程度다.

    新年 記者會見도, 就任 1周年 記者會見도 省略

    尹 大統領 處地에선 本人이 入黨하기 한 달 半 먼저 代表로 選出됐다는 理由로 오너십이랄 것도 없고 國會 經驗도 없는 젊은 黨代表가 競選과 本選 過程 내내 自身을 牽制하던 모습을 잊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런 點에서 보면 尹 大統領 就任 後, 李俊錫 前 代表와의 葛藤과 親政 體制 構築은 豫見된 일이나 다름없다. 지난 1年 半이 그런 時間이었다.

    歷代 다른 大統領과 比較해 볼 때 尹 大統領의 1年 半은 스타일 面에선 너무 거칠었고, 콘텐츠와 비전에선 너무 貧弱했다. 大衆과 疏通이라는 觀點에서 特히 深刻했다. 大統領의 親政 體制 構築 自體가 問題가 아니라 그 內容과 水準이 問題였다.

    尹 大統領은 政治權에 뛰어들기 以前부터 保守 陣營 內에서 一種의 大勢論이 形成돼 있었다. 曺國 事態 等을 거치면서 前 政府의 對蹠點에 선 人物 中 確固한 ‘源톱’이었기 때문이다. 競選 過程에서도 洪準杓, 유승민 等 黨內 競選 走者들과 比較할 때 民心보다 오히려 黨心에서 優位를 보였다. 朴槿惠 前 大統領 彈劾 以後 自由韓國黨과 바른未來黨의 分裂, 洪準杓 體制와 黃敎安 體制의 연이은 失敗, 두 前職 大統領의 收監, 太極旗部隊와 强勁 유튜버들의 跋扈 等으로 인해 徹底히 무너진 保守 陣營은 尹 大統領을 자연스럽게 리더로 받아들였다.

    尹 大統領 亦是 當選 卽時 自己 컬러로 旅券을 再編하기 始作했다. 尹 大統領에게는 媤어머니 노릇을 할 前任者가 없었다. 누군가에게 갚아야 할 政治的 빚도 없었다. 게다가 全 政府에서 檢察總長을 지낸 本人의 이미지도 相對的으로 中道的이었고 風貌와 사람을 對하는 스타일도 疏脫했기에 ‘尹錫悅의 與黨, 尹錫悅 政府’는 人的인 面에서나 內容的인 面에서 歷代 保守 政府에 비해 中道的이고 力動的日 것이라는 豫測이 많았다.

    只今까지는 豫想과 完全히 다르다. 一旦 內容과 비전 面에서 보자. 맨 처음 내세운 靑瓦臺 開放과 大統領室 龍山 移轉은 거칠긴 했지만 올려볼 만 한 旗발이었다. 하지만 只今 용산 大統領 執務室과 官邸가 機能과 이미지 面에서 大韓民國의 心臟部이자 랜드마크 구실을 하고 있는지는 疑問이다.

    執務室 追加 리모델링을 통한 象徵性 强化나 龍山 權力의 再構造化 이야기도 이젠 들리지 않는다. 이런 雰圍氣라면 大統領 執務室 再(再)以前 問題는 다음 大選의 主要 이슈가 될 것이다. 脫原電 廢棄, 所得主導成長 廢棄, 韓美同盟 强化, 北韓에 對한 原則 再正立, 價値와 安保 中心 外交 路線 再整備 等 全 政府의 레거시를 뒤집은 事案들은 論爭的日 수밖에 없지만 所信과 實踐 意志가 분명해 보인다. 다른 事案들에 비해 支持度도 높은 便이다. 그런데 그게 全部다.

    改革을 强調하고 있지만 勞動, 敎育, 國民年金 等 主要 事案에 對해 아직까지 現 政府의 ‘案’ 自體가 없다. 野黨이 발목을 잡았다고 하지만 野黨 때문에 推進하지 못한 政策 自體가 不分明하다는 이야기다. 代身 理念과 價値에 對한 言及은 그 頻度와 强度가 모두 높아졌다. 自由에 對한 强調는 어느 날부터 ‘共産全體主義를 盲從하는 反國家 勢力’에 對한 叱咤로 넘어갔다. 尹 大統領은 與黨 硏鑽會에 參席해서는 “第一 重要한 게 理念입니다. 철 지난 理念이 아니라 나라를 제대로 끌고 갈 수 있는 그런 哲學이 바로 理念입니다”라고 말했다. 候補 時節에는 保守政黨에 뛰어든 中道的 人士 이미지였는데 只今은 保守政黨에서 第一 保守的인 人物이 돼버렸다.

    人力 풀도 그렇다. 檢事 出身이라고 하지만 한동훈 法務部 長官, 李卜鉉 金融監督院長은 實務 力量이나 年齡, 이미지 面에서 新鮮한 感이 分明히 있었다. 그런데 時間이 흐를수록, 企劃財政部 公務員 出身들 말고 大統領이 直接 拔擢한 것으로 보이는 人士들의 面面은 新鮮感이 深刻해지고 있다. 過去 保守 政府 出身 人士는 그렇다 치더라도 大選 때 寄與한 것도 아니고, 保守 陣營 內에 象徵性이나 持分이 있는 것도 아니고, 大衆的 人氣나 實力이 있는 것도 아니라 都大體 人選 背景을 알 수 없다는 人物 數가 漸漸 늘어나고 있다.

    人事聽聞特委 委員長의 許諾도 받지 않고 聽聞會場을 뛰쳐나간 뒤 落馬한 長官 候補者까지 登場했다. 親尹 核心이라는 사람들도 野黨 때릴 때 말고는 입을 다물고 있다. 全黨大會 때 羅卿瑗, 安哲秀 代身 大統領과 통한다는 强點 하나만 가지고 들어선 與黨 指導部와 大統領의 會同 消息도 들어본 지 오래다. 野黨은 큰 負擔 없이 大法院長 候補者 任命 同意案을 否決시켰다.

    與野 政治人은 勿論 言論이나 一般 國民과 스킨십, 疏通 部分은 가장 深刻하다. 事實 就任 前만 해도 스스럼없는 스킨십은 尹 大統領의 큰 强點으로 꼽혔다. 尹 大統領 就任 直後 野黨 重鎭議員은 筆者에게 “이제 尹 大統領이 龍山에서 우리 議員들에게 無差別로 電話를 걸어서 만나자고 하고 官邸에서 爆彈酒 만들어서 돌리며 各個擊破로 나서면 當해낼 方道가 없다”고 吐露했다. 執務室 出勤길 도어스테핑은 내로라하는 大衆政治人 出身 歷代 어느 大統領도 엄두를 내지 못한 果敢한 試圖였다. 就任 다음 날부터 6個月餘 동안 61次例의 出勤길 問答을 進行했다. 就任 100日에도 公式 記者會見을 열었다. 지난해 11月 도어스테핑 中斷 以後에는 完全히 달라졌다. 新年 記者會見도, 就任 1周年 記者會見도 省略됐다. 野黨은 勿論이고 與黨 指導部와 만났다는 이야기도 뜸하다. 3月 全黨大會 直後에는 尹 大統領과 金起炫 代表가 每月 두 次例씩 會同하기로 뜻을 모았다는 發表가 있었지만 實踐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새로운 소통 방식으로 선보인 도어스테핑이 지난해 11월 중단 이후 현재까지 재개되지 않고 있다. [동아DB]

    尹錫悅 大統領 就任 以後 새로운 疏通 方式으로 선보인 도어스테핑이 지난해 11月 中斷 以後 現在까지 再開되지 않고 있다. [東亞DB]

    總選 판勢 가를 세 가지 電線

    要컨대 尹 大統領은 1年 半 동안 歷代 다른 大統領들처럼 與圈을 完全히 自己 컬러와 人物로 再編했다. 그런데 다른 大統領들은 舊體制의 痕跡을 지우고 自己 權力 基盤을 鞏固히 하기 위해 時代에 걸맞은 새로운 旗발을 들고 새로운 人物을 布陣시키고 本人이 直接 大衆과 疏通했다. 하지만 尹 大統領은 좋은 쪽이 아니라 나쁜 쪽으로 달랐다. 勿論 尹 大統領 任期는 아직 30% 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大體로 單任制 大統領들의 氣勢는 ‘상고하저’다.

    來年 4月 總選은 尹 大統領에 對한 中間評價나 다름없다. 只今까지 政府 與黨은 세 가지 戰線에서 싸웠다. ‘李在明이 옳으냐 그르냐’의 戰線은 大體로 유리했다. ‘尹錫悅이냐 李在明이냐’의 戰線도 해볼 만했다. ‘尹錫悅이 잘하냐 못하냐’의 戰線은 大體로 不利했다.

    6個月 後의 州 戰船은 어디가 될까. 現在로선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분명한 것은 세 番째 戰線은 避할 수도 없고 避해서도 안 된다는 點이다. 게다가 總選 以後에는 繼續 맞닥뜨릴 前線이다. 억지로 外面하려는 試圖가 나타난다면 매우 좋지 않은 結果가 나올 可能性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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