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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은 天國의 表情|新東亞

웃음은 天國의 表情

[에세이]

  • 김희경 作家

    入力 2023-11-18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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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etty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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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바탕 가을 祝祭를 準備하기 위한 한낮의 뜨거움이 絶頂을 찍었다. 가을은 뜨거운 太陽으로 完成된다. 太陽을 품어야 익어가는 대추와 밤이 秋夕이 다가왔음을 알린다.

    强烈한 太陽은 과일의 속살과 果肉을 만드는 原初的 에너지다. 生命의 結實에 監査하는 가을이 왔다. 내 나이도 가을일까 생각하는 時間代에 서 있다. 結局 나는 가을에 서 있다. 가을은 반짝이는 꿈보다 追憶이 어울리는 季節이다.

    나는 누군가의 燈불이 된 적이 있을까. 나는 누군가의 웃음으로 動機 感應되어 티 없이 맑고 활짝 웃어보았을까. 나는 누군가의 가슴에 활활 타오르는 鎔鑛爐처럼 뜨거운 사람이었을까. 그저, 그곳에서, 그때는 그랬었지가 아닌 누군가의 記憶에 살아 있는 存在로 남고 싶은 가을이다. 가을이 오면 感性이 더 짙어지는 건 내 잘못이 아니라 가을이 내게 시킨 일이다.

    나는 누구에게 한 番쯤 가시가 된 적이 있나 생각한다. 또한 가시 속에 꽉 찬 밤처럼 內面이 알차고 달콤한 밤 맛이던 적이 있는지 생각한다. 밤나무는 해마다 生命을 먹여 살릴 밤을 만든다. 나는 누구에게 日用할 糧食을 膳物했는지 마음 高픔을 채워주었는지 苦悶하는 가을 時間이다.

    밤송이와 뜨거운 戰爭

    [Getty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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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이면 떠오르는 追憶이 있다.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밤송이들의 草綠은 싱그럽다. 뾰족한 가시는 人生의 屈曲과도 같고 自身을 지키려는 防禦手段 같기도 하다. 그저 귀엽게 매달려 있는 手榴彈 같기도 하다.



    中學校 때까지 가을마다 아버지랑 네 姊妹가 外郭으로 밤을 주우러 갔다. 밤송이 가시와 나의 戰爭도 어김없이 始作된다.

    아버지께선 이미 나무 위에 올라가셨다. 네 딸은 一齊히 엎드려 ‘쑤九里’ 姿勢에 突入했다. 밤송이에 맞아 다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한 對備 態勢다. 언니는 소쿠리를 뒤집어쓰고 낮은 匍匐 姿勢를 取한다. 동생은 雨傘을 받치고 悠悠自適 餘裕를 부린다. 막내는 입던 外套를 뒤집어쓴다. 난 온몸으로 밤송이를 다 받을 氣勢다. 가시가 주는 苦痛을 實感하지 못해서다.

    實은 무엇으로라도 아버지가 떨어뜨릴 밤송이에 그저 感謝하며 밤송이 받을 姿勢를 取한다. 밤나무는 소나기 오기 前 부는 세찬 바람을 맞고 서 있는 것처럼 마구 흔들리기 始作한다.

    밤송이들이 춤을 춘다. ‘늑대와 함께 춤을’이 아닌 밤송이와 한판 춤을 추어야 한다. 밤송이들이 아버지의 막대기 장단에 맞춰 투둑투둑 춤을 춘다. 한 곳이 아닌 四方八方으로 툭, 툭, 튕기기度 한다. 放心한 내 엉덩이를 攻擊하기도 한다. 찌릿하다. 미치도록 따갑다. 한데 밤송이들이 장난을 치는 것인지 아버지가 장난을 하는 건지 내 엉덩이만 공격당한다. 밤송이가 살로 파고든다. 强烈한 苦痛이 찾아온다. 따갑고 아프고 刺戟的이다. 이보다 더 따가울 수는 없다. 공격당한 곳은 더는 버틸 힘이 없다.

    “밤 줍기 놀이는 天國일까. 地獄이면 어쩐담.”

    다리가 후들거린다. 몸이 사시나무 떨 듯 떨리고 소름 끼친다. 攻擊한 곳만 다시 攻擊하는 밤송이.

    나무 위에 선 아버지는 칭기즈칸 같았다. 밤송이를 털러 나무마다 올라가 흔들고, 막대기로 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세찬 눈보라가 와도 무너지지 않을 氣勢로 버티던 밤송이의 攻擊은 나를 쓰러뜨렸다. 지지 않을세라 언니와 동생들 몫까지 챙기려다 내 엉덩이는 불이 났다. 참기 힘들 程度로 화끈거렸다.

    苦痛 속에서 피어난 웃음의 힘

    아버지의 治療 時間이다. 내 엉덩이에 박힌 가시를 뽑아주는 時間이다. 無條件 엎드려 엉덩이를 하늘 높이 들게 하고 아버지는 핀셋과 손톱깎이로 밤송이 가시를 뽑았다. 가시 하나를 뽑을 때마다 産母의 苦痛을 느낄 수 있었다. 난 죽을 것처럼 아파 소리를 지르는데 그런 내 모습에 모두 즐거워한다. 언니와 동생들, 아버지까지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배를 잡고 웃고, 허리와 가슴까지 부여잡고 웃는다. 웃음을 참고 또 참다 한 番씩 펑 터뜨려 웃고 또 웃었다. 난 울면서 웃고, 웃다가 울었다. 울다가 웃으면 엉덩이 땡땡이라며 또 웃었다. 些少한 幸福에 모두 傳染돼 終日 幸福感에 젖었다. 그날의 記憶은 只今까지 살아오며 잊지 못할 追憶이 됐다. 내 머릿 속의 지우개가 犯接하지 못하는 所重한 追憶이다.

    웃음은 天國의 表情이다. 웃는 瞬間 世上은 깨어난다. 살아서 빛난다. 웃음은 生命을 깨우는 天國으로 案內하는 열쇠다. 내 人生이 고비를 맞을 그날의 追憶은 내게 힘을 주었다.

    엉덩이를 焦土化한 밤송이 가시가 뽑힌 자리는 모기에게 물린 듯 빨갛고 도드라진 뾰루지 같은 자국이 생겨 울퉁불퉁해졌다. 멍게가 되어 바다에서 헤엄치는 氣分이었다. 苦痛은 苦痛이고, 綠色의 가시 안에 숨겨진 달콤하고 하얀 生栗의 誘惑을 어찌 뿌리치랴. 新鮮하고 아삭거리는 生栗의 맛 德分에 아픔도 歡喜로 昇華한다. 가끔 들르는 正案休憩所에서 파는 달고 맛있는 날밤을 오물거리다 보면 그때 그 맛이 되살아나는 듯하다.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젊고 푸르던 아버지를 追憶으로만 만날 수 있다. 아버지에 對한 그리움만큼 시골의 밤나무도 훌쩍 커졌다. 꿈속에서 가끔 아버지를 만난다. 아버지는 運動會에서 雰圍氣를 살리는 치어리더로 變身해 날 웃음 짓게 만드신다.

    “김희경 이겨라.”

    “우리 딸, 김희경 이겨라.”

    아버지는 숱 많은 총채를 흔들며 應援하신다. 아버지의 應援은 내게 큰 힘이 된다. 고마운 마음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이런 꿈을 꾼 날은 終日 幸福하다. 아버지를 본 것만으로도 幸福하다.

    둘째 딸인 나는 出版社를 차렸다.

    出版社 이름은 ‘느티나무가 있는 風景’이다. 내 人生의 느티나무였던 아버지가 그립다. 가을은 追憶도 익게 만든다. 밤나무 위에 올라가 가지를 연신 흔들어대던 아버지가 활짝 웃으신다. 밤송이들이 후드득후드득 떨어진다.

    무더웠던 더위도 지나가고 높은 하늘 자리에 떠 있는 다양한 模樣의 흰 구름은 가을임을 强하게 알려준다. 追憶이 돼버린 어릴 적 일들은 가끔 나를 성장시키고 돌아보게 만든다. 가을은 天國의 入口에 서 있다.

    김희경
    ● 1965年 出生.
    ● 放送通信隊 國語國文學科 卒業.
    ● ‘詩로 表現하는 삶의 旅程’ ‘幸福한 나들이’ 等에 詩 寄稿하며 登壇
    ● 著書: ‘아름다운 만남 새벽을 깨우다’ ‘내 人生의 위로’ ‘잊지 못할 내 삶의 한瞬間’ (共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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