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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物流·飜譯 難題 사라져… 出版도 美서 競爭해야”|신동아

“物流·飜譯 難題 사라져… 出版도 美서 競爭해야”

文學博士→科學 出版 代가… 한성봉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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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재석 記者

    jayko@donga.com

    入力 2023-04-08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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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非線形的으로 뒤틀린 삶

    • 人文·社會書 하고 싶었지만…

    • 少壯 科學者 世代와 만나다

    • 유튜브·챗GPT 時代, 冊의 길

    • 國民 50% 冊 읽던 時代 끝나

    • 트렌드·어젠다의 最小公倍數

    2월 27일 ‘신동아’와 인터뷰하기에 앞서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한 한성봉 동아시아 출판사 대표. [홍중식 기자]

    2月 27日 ‘신동아’와 인터뷰하기에 앞서 寫眞 撮影을 위해 포즈를 取한 한성봉 東아시아 出版社 代表. [홍중식 記者]

    人生엔 두 가지 길이 있다. 線形的(線形的)인 길, 非線形的(非線形的)인 길. 線처럼 一列로 나아가는 삶에는 突出이 없다. 出發線과 到着善이 直線으로 이어진다. 때 되면 昇進하고 때 되면 退職한다. 앞선 者의 삶이 敎本이다. 不確實性에서 자유롭다. 하루씩 젊음과 生氣를 잃지만 돈과 밥과 經歷을 얻는다. 버티는 者가 勝者다. 陳腐해도 기껍게 받아들이면 그만이다. 大多數가 擇하거나 羨望하는 길이다.

    한성봉 東아시아 出版社 代表는 一列로 나아가는 삶을 拒否한 사람이다. 30代의 그는 韓國文學 硏究者였다. 大學에서 現代小說을 講義했다. 暫時 日本에 滯留했을 뿐, 40年 가까이 故鄕(全北 益山)을 떠난 적이 없다. 그러다 새千年을 한 해 앞두고 線에서 離脫했다. 그의 말마따나 “非線形的으로 뒤틀린 삶”을 擇했다. 危殆로운 二分法의 복판으로 굳이 걸어 들어갔다.

    “두려운 選擇이었죠. 마흔 살에 시골집에 아내와 初等學生이던 두 아이를 남겨놓고 서울에 와서 出版社를 차렸으니까요. 3~4年間 ‘라꾸라꾸’ 寢臺에서 잤습니다. 月~金은 서울에 있고 金~일은 益山에 가는 生活을 反復했고요.”

    때 이른 기러기였네요. 驛(逆)기러기라고 할까….

    “學校라는 世上에서 마흔까지 살다보니 바깥 世上에 나와서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어요. 다행스럽게도 冊 읽는 걸 좋아했고 興行 事業에 興味가 많았죠. 映畫를 工夫할 생각도 했었고요. 只今이야 出版이 衰落했다고는 해도 한때 트렌드의 中心에 있었잖아요. 出版界에 들어와 苦生했지만 그런 文化的 흐름 안에 있다는 느낌이 좋았죠.”

    ‘宇宙로부터의 歸還’

    그와의 인터뷰는 2月 27日에 進行됐다. 이날은 두 番째 만남이다. 그를 처음 만난 날은 1月 4日이다. 知人의 紹介로 點心을 함께했다. 東아시아 出版社가 있는 충무로에서였다. 東아시아 程度의 出版社라면 坡州出版團地에 있어야 할 게 아닌가.



    坡州出版團地에 社屋을 두지 않은 理由라도 있습니까.

    “제가 出版界에 들어오기 前부터 坡州出版團地는 敷地가 確定됐고, 節次가 꽤 進行되고 있었어요. 그 뒤에라도 들어갈 수는 있었죠. 그런데 저는 坡州出版團地에서 魅力을 못 느꼈어요. 디지털 時代에도 出版은 知識人 間 交流의 張입니다. 出版社는 著者와 讀者의 다리 구실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冊도 大衆과 呼吸하는 미디어입니다. 충무로는 地方에서 오기도 便하고 서울 東西南北과도 다 통하죠.”

    東아시아라는 이름은 東아시아 共同體에 對한 關心에서 由來했단다. 2000年代 初盤 韓中日 等 東아시아 域內 國家 사이의 協力을 追求하자는 主張이 제법 流行했다. 一種의 代案 談論으로 注目받았다. 歷史·文化 圖書와 어울리는 뒷이야기다. 정작 東아시아를 키운 건 科學冊이다.

    出版社를 創業하면서 科學에 注目한 理由가 있습니까.

    “運이 좋았죠. 韓國 出版業은 運動의 性格이 剛했습니다. 1970~80年代를 거치며 學生運動圈 出身들이 들어오면서 人文·社會 分野 圖書의 퀄리티(quality·질)가 莫强해졌죠. 人文·社會 圖書를 하고 싶었지만 관계없는 사람이 進入하기에는 障壁이 너무 높았어요.”

    文學博士에게도 人文社會의 障壁이 높았다?

    “그럼요. 文學은 말할 것도 없었고요. 日本에 있을 때 冊을 많이 읽었는데, 敎養科學書가 참 재밌었어요. ‘宇宙로부터의 歸還’(다치바나 다카시) 같은 冊을 正말 재밌게 읽었죠. 出版社를 차리기로 마음먹고 교보문고를 돌다보니 敎養科學서 市場이 없더라고요. 그러면 進入障壁이 낮은 거잖아요. 그래서 始作한 겁니다.”

    著者의 問題를 解決해야 했을 텐데요.

    “예나 只今이나 敎養科學서의 境遇 外서(外書)의 퀄리티가 훨씬 높습니다. 當然한 일이죠. 科學者와 大衆 著述家 層이 厖大하니까요. 그中에서 골라 飜譯해 出刊하면 좋죠. 그런데 新生 出版社 代表한테는 두 가지 어려움이 있어요. 제가 일을 始作할 때는 인터넷 時代가 열리기 前이었잖아요. 좋은 情報는 ‘이너서클’이 다 갖고 있는 거예요. 韓國의 大型 出版社가 當然히 美國·日本의 大型 出版社와 커넥션이 있었죠. 저로서는 海外에서 무슨 冊이 나오는지도 모르거니와, 거기에 接近할 方法도 없었어요. 첫 番째 어려움이죠. 두 番째 어려움도 連結되는 問題인데, 情報에 接近했다 해도 先印稅 競爭을 할 資本이 없어요. 外書를 안 하려던 게 아니라 ‘넘사壁’이어서 國內書에 集中했는데, 그러면서 意識이 생기기 始作했어요.”

    只今은 科學 著述家를 自處하는 이가 많다. ‘셀럽’ 班列에 오른 人物도 있다. 어느 時點을 契機로 그룹이라 할 만한 規模의 科學 著述家들이 同時에 登場했다. 그럴만한 人力 풀이 있었다는 얘기다. 거기에는 世代 要因이 介入한다.

    김대식, 김상욱, 김승섭의 登場

    과학 출판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필자들인 김대식 카이스트(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 김상욱 경희대 물리학과 교수, 김승섭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왼쪽부터). 동아DB

    科學 出版 市場에서 가장 注目받는 筆者들인 김대식 카이스트(KAIST) 電氣 및 電子工學部 敎授, 김상욱 경희대 物理學科 敎授, 김승섭 서울대 保健大學院 敎授(왼쪽부터). 東亞DB

    “國內에서 敎養 科學書를 執筆하는 科學者들은 大部分 所長(少壯)입니다. 韓國은 日帝强占期부터 科學技術과 科學 知識體系를 日本을 통해 받아들였어요. 1950~60年代에는 ‘電波科學史’ 같은 걸 中譯해 읽었죠. 1970年 以後 出生 世代는 美國서 工夫하거나, 英語를 통해 스스로 西歐 科學 談論을 接했습니다. 1960年代 後半 出生 科學者까지는 大體로 國家가 키웠어요. ‘科學立國’이라는 말이 나올 때죠. 이 時代를 거친 科學者들은 科學을 國家를 위해 獻身하는 道具로 생각했지, 科學을 哲學的·社會學的으로 바라보지 않았어요. 다음 世代 學者들은 달랐죠. 德分에 科學 分野에도 스타 著述家라고 할 사람들이 登場했고요. 이 時點과 제가 科學 出版을 始作한 時點이 잘 맞아떨어졌죠.”

    東아시아를 代表하는 著者들은 김대식 카이스트(KAIST) 電氣 및 電子工學部 敎授, 김상욱 경희대 物理學科 敎授, 김승섭 서울대 保健大學院 敎授다. 김대식은 1969年生, 김상욱은 1970年生, 김승섭은 1979年生이다. 이들의 冊에는 86世代의 感受性이 없다. 各各의 專攻인 腦科學, 物理學, 社會力學을 밑절미 삼아 社會的인 談論을 說破한다.

    主로 1970年代生에서 새로운 分野의 筆者가 나온 건 必然的이었다는 뜻입니까.

    “必然的입니다. 社會가 分化되고 讀者 欲求도 늘면서 出版社도 變化를 꾀할 수밖에 없어요. 只今은 醫師 執筆價도 많고 科學者 中에서도 페미니스트 科學者들이 冊을 쓰잖아요. 2000年代 初에는 想像 못 했던 일이죠.”

    1月에 처음 만났을 때 그의 입담(과 함께 마시던 술)에 醉했다. 그는 鄭重하되 正鵠을 찌르는 話術을 갖췄다. 均衡感도 있다. 이런 재주는 타고나는 걸까, 鍛鍊된 걸까. 아무래도 後者 쪽 같다. 編輯者는 相對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自己主張을 貫徹해야 하는 職業이다. 編輯은 市場(獨自)과 藝術性(著者) 사이에서 均衡點을 찾는 過程이다. 그가 건너온 밥벌이의 旅程이 그의 말套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런 그가 늦은 나이에 進入한 韓國 出版界는 특수한 事情이 있는 곳이다. 軍部獨裁 時期 出版은 民主化運動이었다. 1980~90年代까지도 主要 人文·社會 出版社의 人力 充員은 大學 運動圈을 中心으로 이루어졌다. 發行人과 編輯者, 營業職員이 運動圈 서클 先後輩인 境遇가 非一非再했다. 進入을 꾀하는 사람 處地에서는 障壁처럼 느껴질지도 모를 일이다.

    運動圈 네트워크는 結束力이 剛한데 壁을 느껴본 적은 없습니까.

    “出版도 産業인데, 社長끼리 兄·동생을 해요. 晉라면 工場 社長과 삼양라면 工場 社長 사이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죠.(웃음) 한국출판인회의가 1999年에 만들어졌는데, 올해 처음 選擧로 會長을 뽑았어요. 그前까지 ‘다음엔 當身이 해’라고 이어져온 거죠. 單一 목소리를 낼 때는 有用한 組織이지만, 前近代的 文化라고 말할 수도 있죠. 그럼에도 리버럴한 곳입니다. 冊과 文化를 얘기하는 사람들이니까요. 出版을 始作한 後輩들에게 가끔 그런 얘기를 해요. ‘첫 冊을 낼 때 經濟的 要素를 생각하지 말고 出版界에 네가 누구인지 보여줄 수 있는 콘셉트와 어젠다를 提示하라’고요. 제가 했던 出版을 業界에서 좋게 봐준 것 같아요. 그래서 學緣·遲延 때문에 不便한 적은 없습니다.”

    同質的 經驗을 한 사람들이 主流를 꿰차고 있으면 그들의 苦悶이 生産物로 이어지지 않겠습니까. ‘社會科學의 時代’를 건너온 運動圈 出身이 내는 冊은 性格이 大同小異할 테고요. 네트워크 바깥에 있으니 科學 出版이 可能했던 게 아닐까요.

    “一定 部分 同意해요. 뒤집어 얘기하면 그분들은 그것(人文·社會 圖書)밖에 못하는 거예요. 1970年代 이름 날린 社會科學 出版社들이 1980年代 中盤 以後 싹 사라지잖아요. 저는 그런 네트워크에 屬한 사람이 아니었으니 좀 더 自由롭게 苦悶할 수 있었죠.”

    韓國 人文社會科學서의 주된 讀者層은 40~50代 男性 아닙니까. 자칫 40~50代 男性의 목소리가 過大 代表 된다고 볼 餘地도 있어 보이고요.

    “오히려 最近 10年에 限定해 보면 人文社會科學서는 勿論 小說 市場까지 20~40代 女性이 主要 讀者層을 形成하고 있습니다. 全 世界的으로 페미니즘 圖書가 이렇게 많이 出刊되고 그만큼 많이 팔린 나라는 大韓民國뿐이에요. 팬덤도 主로 女性 作家에게 쏠려요. 男性 讀者가 거의 없어요. 그러다보니 科學을 主題로 삼되 纖細한 文章과 感性으로 接近하는 冊이 流行하게 된 거죠. 에세이 形態의 과학책이 잘 팔리는 거예요. 모든 걸 에세이로 풀기만 해서야 되겠느냐는 問題 提起도 있죠. 저희 會社도 責任을 避할 수는 없어요.”

    古代 그리스 哲學者는 모두 科學者

    1993年生으로 浦項工大 出身인 김초엽은 近來 가장 注目받는 小說家다. 2017年 ‘管內紛失’과 ‘우리가 빛의 速度로 갈 수 없다면’이 韓國科學文學賞 中短篇 對象·佳作을 同時 受賞하며 文壇에 나왔다. 韓國科學文學賞의 産婆 中 한 名이 한 代表다. 그는 김초엽의 作品을 처음 읽고 “衝擊을 받았다. 韓國 小說家가 이런 作品을 쓴단 말이야?”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韓國科學文學賞은 어쩌다 만든 건가요.

    “제가 最初에 만들었다기보다는 머니투데이에서 SF에 對한 賞을 만들자고 저에게 提案하면서 始作됐죠. 只今 敎養書 市場이 많이 죽었는데요. 유튜브에 讀者를 빼앗겨서 그래요. 이 狀況에서 出版은 무엇을 해야 할까. 저는 全 國民의 50%가 冊을 읽던 時代는 돌아오지 않겠지만, 知識人의 文字 言語가 더욱 高級化하고 藝術化하는 時代가 오리라고 생각해요. 그런 時代가 오면 大衆 科學書의 位置가 어떻게 될까요. 高級化한다 해도 學術 저널이 될 수는 없겠죠. 大衆은 저널을 읽을 수도 없고요. (模糊한 位置로 인해) 限界가 뒤따를 텐데, SF를 통해 이를 克服할 수 있다고 봐요. 저는 科學을 가장 쉽게 接近할 수 있는 장르가 SF라고 생각합니다.”

    ‘科學을 文化로 解釋하겠다’는 생각에서 나온 겁니까.

    “大衆 科學書를 더 많은 사람이 읽을 수 있도록 여러 手段을 써보는 겁니다. 빵에 比喩하면, 어쩔 땐 ‘팥빵’으로 만들고 어쩔 땐 ‘도너츠’로 만들기도 하고. 科學은 本來 여러 學問과 連結돼 있잖아요. 古代 그리스의 哲學者들도 모두 科學者였잖습니까. 哲學과 神話에 이미 科學이 있는 겁니다. 그런 要素를 그間 놓쳐온 게 아닌가 싶어요. 김상욱 敎授의 冊 題目이 ‘떨림과 울림’입니다. ‘김상욱이 말하는 쉬운 科學 이야기’가 아니고요. 文化的 코드를 입힌 거죠. 실은 ‘떨림과 울림’李 아주 科學的인 얘기거든요. 科學을 社會問題와 連結하는 作業도 많이 했죠. STS(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에 關한 冊을 낸 것도 그 一環이죠. 김승섭 敎授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은 疾病과 社會問題를 連結한 試圖이고요.”

    疑問距離는 있다. 敎養書 亦是 거슬러 올라가면 學術書나 論文에 가닿는다. 비(非)專攻者인 讀者가 學術書나 論文을 찾아 읽을 必要는 없다. 그렇다고 敎養이라는 名目下에 ‘要約本’ ‘解除本’만 좇아도 困難하다. 進化論을 要約한 冊이 팔리고 進化論의 精髓를 論한 冊이 外面받는다면 ‘敎養科學서’ 全盛時代의 그늘이 아닌가.

    科學을 要約·說明하는 冊은 選好하나, 本格 ‘科學 談論書’는 큰 反應을 얻지 못하지 않습니까.

    “最近 國內에 들어오는 外서만 봐도 正말 좋은 冊이 많아요. 다만 아직까지는 그렇게 쓸만한 國內 著者가 많지 않습니다. 出版社 責任도 있어요. 재밌어 보이면 一旦 無條件 契約해 버리니까요. 누군가 4~5年 걸려 力作을 썼는데 1000部 나가면 印稅가 얼마겠어요. 當事者에겐 남는 게 거의 없는 일이죠. 讀者들은 本格的인 과학책을 읽지 않고, 그러니 筆者도 그와 같은 冊을 쓸 誘引이 없는 一種의 惡循環이죠.”

    한성봉 동아시아 출판사 대표는 미국 시장에 진출하겠다면서 “곧 아마존에 ‘코리아북스’라는 출판사를 낼 생각”이라고 말했다. [홍중식 기자]

    한성봉 東아시아 出版社 代表는 美國 市場에 進出하겠다면서 “곧 아마존에 ‘코리아북스’라는 出版社를 낼 생각”이라고 말했다. [홍중식 記者]

    韓國에서 科學的 技倆과 大衆的 글쓰기를 兼備한 사람이 나오기 쉽지 않겠습니다.

    “自主的으로만 생각할 必要는 없어요. 海外를 노려야죠. 곧 아마존에 ‘코리아북스’라는 出版社를 낼 생각입니다. 英語로 冊을 낼 겁니다. 종이冊 없이 킨들 e-北으로 流通하려 해요. 一旦 實用書 中心으로 내고 最終的으로는 픽션을 낼 겁니다.”

    海外 進出은 그가 擇한 또 하나의 非線形이다. 굳이 가지 않아도 될 길이다. 一列로 나아가는 삶이 生來的으로 싫은 사람임이 분명하다.

    海外 進出을 決心한 理由가….

    “많은 科學者가 ‘저도 英語로 冊 쓸 수 있는데’라고 말해요. 거의 다 留學했잖아요. 只今은 가만히 앉아서 뉴욕의 出版社가 우리를 찜하기만 기다려야 하는 겁니다. 最大 難題가 물類였는데 이제 종이冊은 重要하지 않아요. 두 番째 難題가 飜譯이었지만 自動 飜譯 技術 水準이 宏壯한 境地에 올랐습니다. 飜譯된 內容을 사람이 조금만 손보면 됩니다. 電子冊을 내놓고 마케팅하다 보면 美國 出版社가 直接 우리를 컨택하겠죠. 消極的으로 앉아 있을 理由가 없어요. 美國 市場에선 무엇이 팔릴지 出版人의 感覺으로 찾는 거죠.”

    海外市場에 뛰어들면 消費者의 需要를 把握하는 時間도 節約되겠네요.

    “讀者는 勿論 著者도 찾을 수 있죠. 海外 讀者들이 ‘이 冊은 꼭 사야 한다’고 생각하는 企劃을 찾는 過程입니다. 防彈少年團(BTS)에 對한 冊이면 그들도 다 사겠죠. 그런데 그건 企劃이 아니잖아요.”

    챗GPT와 階級 隔差

    最近 出刊된 ‘챗GPT에게 묻는 人類의 未來’는 大體 얼마 만에 나온 겁니까.

    “原告 需給해서 나올 때까지 한 달 걸렸어요.”

    大槪 出版界는 느릿느릿 흘러가지 않습니까.

    “어떤 現象이 일어났다 칩시다. 新聞은 아무리 길게 써도 200字 原稿紙 25~30枚로 한 面에 채워 넣으면 끝나요. 出版은 200字 原稿紙 1000枚를 念頭에 두고 쓰는데, 아무리 빨리 마무리해도 1~2年 걸립니다. 現象은 끝난 뒤에요. 出版도 미디어라 하는데, 그렇게 뒤처지면 그게 무슨 미디어예요? 2016年 重力波가 發見됐을 때 한 달 만에 冊을 냈어요. 重力波가 發見될 걸 豫測하고 原稿를 準備했기 때문에 可能했던 일이죠. 알파고가 나왔을 때 正말 즐거웠습니다. 알파고에 關해 冊을 두 卷 냈는데, 사람들이 冊을 갖고 얘기했거든요. 科學의 大衆化를 增幅한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타이밍이 늦으면 效果는 半減됩니다. 冊은 깊은 知識을 담고 있어요. 깊은 知識을 讀者에게 빠르게 傳達할 수 있으면 가장 좋은 미디어죠.”

    그를 인터뷰한 날, 서울 光化門에서 김대식 카이스트 敎授의 記者懇談會가 열렸다. ‘챗GPT에게 묻는 人類의 未來’ 出刊을 記念한 行事다. 金 敎授의 發言 中 印象的인 대목은 이렇다.

    “챗GPT 때문에 記者와 作家가 사라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單, 챗GPT를 잘 使用하는 記者와 作家 때문에 챗GPT를 使用하지 않는 記者와 作家가 사라질 수는 있을 것 같아요. 生産性이 늘어나거든요. 하루에 記事를 數十 個 쓸 수 있어요. 想像을 超越할 程度로 뛰어난 道具입니다. 意圖가 있는 사람이 먼저 使用해 버리면 未來 社會에 좋지 않을 겁니다. 社會 煽動家, 非專門家가 活用하기 前에 여러분같이 팩트체크가 可能한 사람들이 먼저 써야 합니다.”

    終着驛에 다다른 크리에이터

    人工知能(AI)은 出版界와 言論界에 危機일 수 있습니다. 人間의 知的 活動이 機械의 活動과 어떻게 區別되느냐의 論爭거리도 생길 테고요.

    “챗GPT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에겐 깡筒이에요. 챗GPT로 인해 階級 間 隔差가 더욱 深化할 수 있다는 두려움도 있죠. 하지만 到來한 時代입니다. 2016年 알파고와의 對決에서 이세돌 9段이 딱 한 판을 이겼습니다. 그 뒤 人間이 한 番도 못 이겼어요. 알파고는 隱退해 버렸죠. 그런데 알파고가 나온 뒤로 人間의 바둑 實力이 日就月將했습니다. 全部 公平하게요. 人間은 繼續해서 機械와 맞짱 뜨는 겁니다. 過去에는 바둑을 배우려면 門下生이 돼야 했지만, 이제는 AI를 통한 敎育 機會가 모두에게 열렸죠. 챗GPT 時代에도 人間은 앞으로 나아갈 것 같아요.”

    그間 出刊한 數百餘 卷의 冊 中 가장 意味 있던 冊이 무엇인가요.

    “한 卷을 얘기하라면 ‘韓半島 火敎師’를 꼽습니다. 在日同胞가 差別당한다는 말은 많이 하지만 災旱 中國人에 對한 差別에는 無知해요. 冊을 찾아보니 없는 겁니다. 아니, 韓國 出版 歷史가 몇 年이고 그 많은 運動圈이 들어와 있는데 이런 冊이 없다고? 2010年부터 筆者를 찾기 始作했어요. 明洞 華僑學校 校長先生님부터 始作해 온갖 사람을 쫓아다녔지만 찾는 데 失敗했죠. 抛棄하던 車에 日本 교토대에서 華僑 問題로 博士學位 論文을 쓴 분이 나타난 겁니다. 그 冊이 없었다면 韓半島의 火敎師가 記錄으로 남지 않는 부끄러운 狀況을 맞이했을 겁니다.”

    과학책을 言及할 줄 알았는데 意外네요.

    “後輩들에게 ‘트렌드와 어젠다의 最小公倍數를 찾으라’고 얘기해요. 트렌드를 좇을 때는 果敢히 좇되, ‘이건 正말 해야 해’라는 어젠다는 分明히 밀고 가야죠. ‘韓半島 火敎師’는 出版人으로서 제가 志向한 어젠다를 實現한 몇 가지 中 하나죠.”

    빅데이터, AI 等 進化한 技術을 理解하고 과학책을 編輯할 수 있는 後續 世代 排出은 容易하게 이뤄지고 있나요.

    “가장 큰 問題죠. 編輯者가 없습니다. 人文社會度 마찬가지예요. 大學生부터 冊을 많이 읽지 않죠. 冊으로 熟考하는 時代가 아니잖아요. 300~400페이지 冊을 編輯할 수 있는 編輯者가 많이 登場하기 어렵죠. 다만 10餘 年 前에 비하면 優秀한 人材들이 出版界에 들어오고 있어요. 韓國 出版業이 成長하고 處遇도 좋아진다면야 더 많은 人材가 오겠지만, 狀況이 碌碌하지 않습니다. 勿論 冊이 없어지지는 않겠죠. 少數를 위한 産業으로 남을 것이고, 텍스트를 近間에 둔 産業을 志向하는 젊은 編輯者들도 있을 거예요.”

    그는 1960年生이다. 스스로의 現住所를 “終着驛에 다다르고 있다”고 했다. 여태 現場에 발 딛고 있지만, 마무리를 念頭에 둔 건 事實인 듯하다. 그의 마지막 말이다.

    “나가는 瞬間까지 冊에 關해 크리에이터이고 싶어요. 새 길을 摸索하고 方向을 轉換하려 努力하는 모습을 보이면 좋겠습니다. 사람은 繼續 椅子를 물려주면서 살아가는 存在니까요.”



    고재석 기자

    고재석 記者

    1986年 濟州 出生. 學部에서 歷史學, 政治學을 工夫했고 大學院에서 映像커뮤니케이션을 專攻해 碩士學位를 받았습니다. 2015年 下半期에 象牙塔 바깥으로 나와 記者生活을 始作했습니다. 流通, 電子, 미디어業界와 財界를 取材하며 經濟記者의 文法을 익혔습니다. 2018年 6月 동아일보에 入社해 新東亞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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