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光化門 앞 鐵路, 日帝 殘滓 아니라 眞正한 遺産|新東亞

光化門 앞 鐵路, 日帝 殘滓 아니라 眞正한 遺産

[노정태의 뷰파인더] 歷史는 아무리 더러운 歷史라도 좋다

  • 노정태 經濟社會硏究院 專門委員·哲學

    basil83@gmail.com

    入力 2023-03-25 10:00:01

  • 글字크기 설정 닫기
    • 金洙暎과 이사벨 버드 비숍

    • ‘무엇이 傳統인가’라는 質問

    • ‘고궁지選’이 日帝 殘滓?

    • ‘미스터 선샤인’의 追憶

    • 忠實히 살던 朝鮮 사람들

    서울 종로구 경복궁 광화문 앞 문화재 발굴조사 현장에서 발견된 일제강점기 전차 철로 모습. 일제가 1917년 전차용으로 개통한 두 철로는 광화문 월대(궁궐 앞에 놓인 기단) 앞에서 만나 세종로 방향으로 연결된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일제가 월대 시설물을 훼손하고 철로를 깐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김동주 동아일보 기자]

    서울 鍾路區 景福宮 光化門 앞 文化財 發掘調査 現場에서 發見된 日帝强占期 戰車 鐵路 모습. 日帝가 1917年 電車用으로 開通한 두 鐵路는 光化門 月臺(宮闕 앞에 놓인 基壇) 앞에서 만나 세종로 方向으로 連結된다. 이에 對해 서울市는 “日帝가 月臺 施設物을 毁損하고 鐵路를 깐 事實을 確認했다”고 밝혔다. [김동주 동아일보 記者]

    “나는 이사벨 버드 비숍 女史와 戀愛하고 있다.”

    詩人 金洙暎이 한 말이다. 1921年生인 그가 時代를 앞선 國際 戀愛라도 했다는 뜻일까. 그렇지 않다. 위 文章은 그의 代表作 中 하나인 ‘巨大한 뿌리’의 한 대목이다. 金洙暎은 이사벨 버드 비숍의 旅行記인 ‘朝鮮과 그 이웃 나라들’을 읽고 新鮮한 感興에 사로잡혔다.

    그의 詩를 조금 더 따라가 보자. “그女는 1893年에 朝鮮을 처음 訪問한 英國 王立地學協會 會員이다.” 버드 비숍이 바라본 서울은 男子와 女子가 거리를 다니는 時間帶가 달랐다. 人定殿의 鐘소리가 울리면 “轎軍꾼, 內侍, 外國人의 종놈, 官吏들”을 除外한 男子들은 바깥 出入을 못 했다. 하지만 深夜가 되면 女子가 사라지고 男子들이 “誤入”, 卽 婚外 性關係를 하러 돌아다녔다. 버드 비숍이 記錄한, 金洙暎이 읽고 새삼 驚歎한 舊韓末 朝鮮은 그런 나라였다.

    뜬금없이 時 타령을 하는 理由가 있다. 3月 6日 文化財廳과 서울市가 發表한 바, 光化門 앞에 月臺를 ‘復元’하기 위해 땅을 파고 工事를 하던 中 鐵路가 發見됐다. 1917年부터 1966年까지 存在했고 使用됐던 戰車 鐵路다. 文化財廳은 3月 16日부터 18日까지 사흘間 申請者에 限해 該當 遺物을 觀覽할 수 있게 했으나 哀惜하게도 筆者는 直接 보지 못했다.

    言論 報道에 따르면 서울市는 “日帝가 月臺와 三軍府 等 主要 施設物을 毁損하고 그 위에 鐵路를 깔았다는 事實을 確認할 수 있다”고 說明했다. 그러니 鐵路에 對한 서울市와 文化財廳의 立場은 이미 定해진 듯하다. 우리가 ‘復元’해야 할 朝鮮의 遺物을 ‘毁損’韓 痕跡, 말하자면 ‘日帝 殘滓’라는 것이다. 아마도 저 鐵路는 ‘復元’의 過程에서 사라지지 않을까 싶다.



    斟酌하다시피 筆者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우리는 傳統을 ‘復元’하기에 앞서, ‘무엇이 傳統인가’라는 質問을 던져야 한다. 우리가 復元해야 할 過去는 그 누구도 記憶하지 못하는 想像 속의 朝鮮時代 月臺가 아니다. 朝鮮王朝의 沒落과 滅亡, 日帝의 統治와 戰爭의 아픔 等을 모두 겪어낸 저 鐵路야말로 우리가 지켜야 할 過去의 遺産이라고 생각한다.

    고애신과 有進 초이

    버드 비숍이 朝鮮을 訪問한 것은 1893年의 일. 그가 鏡城의 電車를 보았을 理는 없다. 鏡城의 電車는 1899年 5月 3日 試驗 運行했고 그해 5月 20日 開通式을 치른 後 運行을 始作했기 때문이다. 京城戰車, 一名 經典(京電)이라 불린 그 交通手段은 1968年 完全히 사라지기 前까지 約 70餘 年間 서울 市民의 발 노릇을 했다.

    景福宮 앞까지 들어온 것은 京城電車의 地選 中 하나인 ‘고궁지選’으로, 이는 日帝 때 만들어진 것이 맞다. 하지만 鏡城의 戰車 시스템 全體를 놓고 본다면 이를 日帝 殘滓로 일컫는 것은 不當한 일이다. 1899年부터 1910年까지 11年은 大韓帝國 時代였고, 1945年부터 1968年까지 13年은 大韓民國이었으니 말이다. 日帝 36年의 記憶만큼이나 日本의 植民地가 아니었던 26年의 記憶도 담고 달리던 交通手段이 바로 電車라는 뜻이다.

    電車는 韓半島 居住民들이 最初로 實感한 近代의 産物 中 하나였다. 定해진 時間에 맞춰 運行하고, 人情事情 봐주지 않으며, 莫强한 物理力을 隨伴한다는 點에서 그랬다. 鐵路 위에 불꽃을 튀기며 달리는 電車를 처음 본 사람들은 神奇해하며 달려들었는데, 그러다가 結局 開通 後 열흘 만에 다섯 살 아이가 電車에 치여 死亡하는 事件이 벌어졌다. 우리 歷史에 記錄된 最初의 鐵道 交通事故다. 아이의 아버지를 비롯해 憤怒한 大衆들이 도끼를 들고 달려들면서 큰 混亂이 벌어졌다.

    그럼에도 不拘하고 낯설고 두려운 交通手段은 時間이 흐르면서 漸漸 친숙한 무언가가 되어 갔다. 우리는 이미 여러 映像物을 통해 그 時代를 살던 사람들에게 電車가 얼마나 所重한 交通手段이었고 生活의 一部였는지 잘 알고 있다. 代表的인 境遇를 하나만 꼽아보자.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은 韓日合邦을 앞두고 벌어지는 外交戰과 暗鬪를 다루는데, 그 複雜한 渦中에도 고애신(金泰梨 分)과 有進 초이(이병헌)는 電車를 타고 오가며 서로의 마음을 알아간다. 種種 停電이 發生하지만 그래도 電氣가 들어오기 始作한 漢城에서, 電車를 탄 사랑이 싹튼 것이다.

    ‘동아일보’ 1923년 10월 4일자 3면에 실린 사진. 전차가 철로를 따라 광화문 앞을 지나는 모습이다. [동아DB]

    ‘東亞日報’ 1923年 10月 4日子 3面에 실린 寫眞. 電車가 鐵路를 따라 光化門 앞을 지나는 모습이다. [東亞DB]

    小說家 구보 氏의 一日

    電車의 路線과 乘客은 日帝의 朝鮮 倂合 以後에도 繼續 늘어났다. 日帝는 滿洲로 向하기 위해 鐵道를 大幅 增設했고, 同時에 電車도 크게 늘렸다. 電車는 京城으로 불리던 서울의 主要 交通手段이었다. 우리는 그 時代에 쓰인 小說 等을 통해 當代人들이 電車라는 近代 文物을 통해 느꼈던 感情을 斟酌해볼 수 있다.

    假令 ‘小說家 구보 氏의 一日’을 펼쳐보자. 小說家 朴泰遠은 갑자기 다가온 近代化된 社會, 그러나 할 일도 없고 世上을 바꾸기 위해 달려들 勇氣도 없는 한 知識人 百獸의 內面을 表現하기 위해, 小說家 구보 氏를 東大門行 電車에 태웠다. 그리고 驅步는 漠然한 想念에 사로잡히고 마는 것이다.

    “電車 안에서 驅步는, 于先, 제 자리를 찾지 못했다. 하나 남았던 座席은 그보다 바로 한 걸음 먼저 車에 오른 젊은 女人에게 占領當했다. 驅步는, 次長臺 가까운 한구석에 가 서서, 自己는 大體 이 東大門行 車를 어디까지 타고 가야 할 것인가를, 代替, 어느 곳에 幸福은 自己를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 본다.”

    1920年代였다면 驅步는 좀 더 明朗하고 즐거운 雰圍氣 속의 京城을 누볐을지도 모르겠다. 日本에 主權을 빼앗겼다는 아픔도 暫時, 日本이 朝鮮을 完全 倂合하기 위해 鐵道를 깔고 工場을 지으면서 社會 全般에 一帶 活氣가 돌았던 것이 1920年代이기 때문이다. 그 雰圍氣는 1931年 滿洲事變과 함께 끝났다. 日本 軍部는 戰爭을 통해 中國을 占領하고자 했다. 中國과의 戰爭이 채 收拾되지도 않은 狀況에서 美國을 때리는 無謀한 挑戰을 했다가 沒落하고 말았다는 것은 우리가 아는 歷史의 줄거리다.

    그 事實을 念頭에 둔 채 다음 句節을 읽어 보자. ‘小說家 구보 氏의 一日’은 1934年 發表된 作品으로, 戰爭의 먹구름이 드리워지고 있는 京城의 雰圍氣를 電車에 탄 驅步의 눈으로 捕捉해내고 있던 것이다.

    “이제 이 車는 東大門乙 돌아 京城 運動場 앞으로 해서...... 驅步는, 次長臺, 運轉대로 向한, 안으로 파아란 융을 받쳐 댄 窓을 본다. 戰車課에서는 그곳에 뉴스를 揭示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요사이 蹴球도 野球도 하지 않는 模樣이었다.”

    軍事獨裁 時節의 速度戰

    解放 後에도 電車는 如前히 서울 市民의 발 노릇을 했다. 本格的인 經濟 開發이 始作되기 前이었으므로 旣存의 設備를 모두 活用하지 않을 道理가 없었다. 서울에서 戰車의 運行은 1968年에 이르러서야 終了됐다.

    作詞家 정두수가 노랫말을 짓고 銀방울姊妹가 부른 노래 ‘麻布終點’을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본 젊은 世代는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 “밤 깊은 麻布終點”으로 始作하는 첫 小節만은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 그런데 그 ‘麻布終點’이라는 곳이 버스가 아닌 電車의 終點이라는 것은 意外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밤 깊은 麻布 終點 갈 곳 없는 밤 戰車.”

    서울의 戰車 運行은 1968年 完全 終了됐다. 光化門 앞의 戰車 路線은 그보다 조금 이른 1966年에 사라졌다. 린든 베리 존슨 美國 大統領의 訪韓에 맞춰 道路를 整備하는 過程에서 撤去하지도 않고 곧장 덮어버렸기 때문이다. 工事를 主導한 사람은 ‘불도저 市場’이라는 別名으로 有名했던 김현옥 前 서울市長. 急迫한 工事 日程을 맞추기 위한, 軍事獨裁 時節이었기에 可能했던 速度戰이었다.

    이렇게 電車는 서울에서 사라졌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 模型으로만 만날 수 있을 뿐이다. 3月, 光化門 月臺 ‘復元’ 工事 途中 묻혀있던 鐵路가 發見되기 前까지는 그랬다. 勿論 鐵路가 發見됐다 해서 電車가 되살아나는 건 아니다. 하지만 70年의 歷史를 싣고 달렸던 鐵路가 고스란히 땅에서, 그것도 大韓民國의 中心地인 光化門에서 出土됐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光化門 月臺를 ‘復元’하겠다는 工事를 벌이는 中 나왔다는 點은 더욱 意味深長하다. 大體 우리가 지키려 하는 ‘傳統’이 무엇인지 새삼 되묻지 않을 수 없는 狀況이 되었으니 말이다.

    論難의 餘地가 큰 事案이다. 아니, 욕먹기 딱 좋은 소리다. 그래도 할 말은 해야겠다. 日帝가 朝鮮을 倂合할 當時 朝鮮의 賃金은 景福宮을 버리고 主로 德壽宮에 살았다. 그러다가 여러 外勢의 눈치를 보며 一國의 王이 러시아 公使館으로 逃亡가는 俄館播遷까지 저질렀다. 景福宮은 서울의 中心에 있는 朝鮮의 主星이었고, 高宗의 아버지 興宣大院君이 當百錢을 찍어가며 復元했지만, 基本的으로 버려진 宮闕이었다.

    그 앞에 生氣를 불어넣은 것은 電車를 타고 오가며 바쁜 삶을 살아가던, 비록 植民地의 百姓이 됐지만 希望을 놓지 않고 每日을 充實하게 살아가던 朝鮮 사람들이었다. 半世紀의 時間이 흐른 後 世上 빛을 본 서울電車의 鐵路는 바로 그 살아있는 歷史를 證明하고 있다. 여기 사람이 살았다. 모두 熱心히 살았다. 제대로 解體하지도 않고 急하게 덮어버렸지만, 그래서 더욱 생생한 遺物이 出土됐다.

    想像 속의 朝鮮을 넘어

    김수영으로 始作했으니 김수영으로 끝내보자. “傳統은 아무리 더러운 傳統이라도 좋다”고, 詩人은 외친다.

    “나는 光化門 네거리에서 屍口門의 진창을 聯想하고 人寰(寅煥)네 妻家집 옆의 只今은 埋立한 개울에서 아낙네들이 洋잿물 솥에 불을 지피며 빨래하던 時節을 생각하고 이 憂鬱한 時代를 파라다이스처럼 생각한다.”

    이것이 우리의 歷史다. 우리가 尊重해야 할 것은 想像 속의 朝鮮이 아니다. 朝鮮을 넘어 日帝 時代를 거쳐 大韓民國 사람이 된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生活이 담긴 그것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歷史는 아무리 더러운 歷史라도 좋다.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 나에게 놋周鉢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追憶이 있는 한 人間은 永遠하고 사랑도 그렇다.”

    出土된 鐵路에는 이미 ‘日帝 殘滓’라는 烙印이 찍혀 있다. 애初에 光化門 月臺를 復元하겠다며 始作된 工事로 世上 빛을 본 것이기도 하다. 最大限 좋은 待接을 받더라도 그 자리에서 뜯겨나간 채 博物館으로 向하지 않을까 싶다.

    筆者는 同意하지 않는다. 우리가 復元해야 할 것이 眞正한 ‘光化門’이라면, 그 光化門에 어울리는 것은 朝鮮의 賃金조차 使用하지 않았던 月臺가 아니다. 韓半島에서 살아간 수많은 이들을 실어 나른 電車의 鐵路야말로 우리의 眞正한 傳統 文化 遺産이다.

    月臺를 復元하면서 鐵路도 保存할 수 있는 方案은 全혀 없는 것일까. 創意的인 解法을 摸索해야 하지 않을까. 金洙暎의 마음으로 외치고 싶다. 傳統은 아무리 더러운 傳統이라도 좋다. 歷史는 아무리 더러운 歷史라도 좋다.


    노정태
    ● 1983年 出生
    ● 高麗大 法學科 卒業, 서강대 大學院 哲學科 碩士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韓國語版 編輯長
    ● 著書 : ‘不良 政治’ ‘論客時代’ ‘탄탈로스의 神話’
    ● 曆書 : ‘밀레니얼 宣言’ ‘民主主義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신동아 4월호 표지.

    신동아 4月號 表紙.



    댓글 0
    닫기

    매거진東亞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推薦記事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의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전통문화연구회 "울산대학교한국어처리연구실 옥철영(IT융합전공)교수팀"에서 개발한 한글한자자동변환기를 바탕하여 지속적으로 공동 연구 개발하고 있는 서비스입니다.
    - 현재 고유명사(인명, 지명등)을 비롯한 여러 변환오류가 있으며 이를 해결하고자 많은 연구 개발을 진행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이를 인지하시고 다른 곳에서 인용시 한자 변환 결과를 한번 더 검토하시고 사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변환오류 및 건의,문의사항은 juntong@juntong.or.kr로 메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Copyright ⓒ 2020 By '전통문화연구회(傳統文化硏究會)' All Rights reserved.
     한국   대만   중국   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