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遁走曲(遁走曲) 80年代|新東亞

李文烈 長篇小說

遁走曲(遁走曲) 80年代

第1部 / 帝國에 비끼는 노을 | 8話. 兆朕 或은 慘事

  • 入力 2018-02-11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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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박용인]

    [일러스트·박용인]

    1.
    土曜日이라 서둘러 編輯을 끝내고 첫 校正紙를 내려보내며 退勤을 準備하는데 電話벨이 울렸다. 서울 主去來 出版社의 盧 部長이었다. 

    “不休 氏, 緊急이에요. 조용히 듣고 對答만 하세요.” 

    “예?” 

    “社長님 지신데요, 얼른 退勤해서 집으로 가셔야겠어요.” 

    그가 登壇한 첫해부터 社長을 도와 文藝編輯人 兼 에이전트 役割을 하며 作家 管理와 創作企劃 및 弘報販促까지 거들어와서 그런지, 그와는 桐甲內긴데도 새로운 提案을 할 때는 손위 누이같이 굳은 얼굴로 指示 套가 되는 盧 部長이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왠지 盧 部長의 목소리가 多急하고 切迫하게 들렸다. 



    “안 그래도 只今 막 退勤하려고 하는 中인데, 갑자기 서울서 남의 職場에까지 長距離 電話를 걸어 얼른 退勤하라니요. 그것도 社長님이 直接 指示로 盧 部長을 시켜….” 

    “오늘 宅에 계셔서는 안 될 것 같은 일이 있어 그래요. 아직 新聞社 退勤 前이면 집에 電話해서 師母님과 아이들부터 얼른 불러내세요. 食口대로 最小限 사나흘은 밖에서 지낼 생각하고 準備해서 나오라 하시고.” 

    그제야 그도 섬뜩한 느낌이 들어 절로 떨려오는 목소리를 弄談調에 감추며 물었다. 

    “아니, 盧 部長 무슨 일이요? 最小限 사나흘은 食口대로 밖에서 지내야 한다니, 누가 우리 집에다 爆擊이라도 한답디까?” 

    “제 얘기 深刻하게 들어주세요. 그러고 보니 不休 氏가 只今 바로 집으로 가는 것도 境遇에 따라서는 危險할 수 있겠네요. 그러지 말고 師母님께 차분하게 電話해서 아이들 데리고 市內로 나오라고 하세요. 師母님과 아이들 모두 옷가지 좀 챙기고 日用品도 急히 쓸 것은 함께 싸서 汽車驛이나 市外버스 停留所 附近으로. 週末 나들이 같은 것으로 둘러대, 現金도 있는 대로 긁어모아 모두 들고나오게 하는 게 좋겠네요. 어쨌든 아이들과 함께 急히 가야 할 곳이 있다고 하고. 時間 없어요. 그래서 집 밖에서 師母님과 아이들 만나거든 다시 제게 電話 주세요.” 

    “이거 무슨 間諜 接線 指令이라도 받는 것 같네. 아니, 盧 部長님. 都大體 왜 그러시는지 斟酌이나 좀 할 수 있게 해주시오.” 

    “未安해요. 어서 新聞社부터 떠나세요. 다시 말해 누구든 只今 이 時刻 不休 氏가 있을 곳이라 斟酌되는 곳에서 速히 떠나라고요. 집에 거는 電話도 新聞社 나간 뒤 公衆電話를 利用하는 게 좋겠고, 내게도 公衆電話로 해야 이렇게 수선 떠는 까닭이라도 차분히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러고는 電話를 철커덕 끊어버렸다. 

    그제야 그에게도 서울에서 무언가 尋常찮은 일이 벌어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으나 그게 무슨 일인지는 全혀 斟酌이 가지 않았다. 盧 部長의 말套나 指示 內容이 너무 嚴重하고 威脅的이라 그 原因이 될 만한 일을 떠올려볼 엄두조차 나지 않은 지도 모를 일이었다. 귓속에서 무언가가 윙 하며 울려대는 것 같은 소리까지 들으며 新聞社를 나와 첫 番째 만난 公衆電話에서 아내와 아이들을 불러내는 電話부터 했다. 

    공연히 사람 놀라게 할 수도 없어 當場은 週末 나들이를 핑계로 아이들과 함께 가까운 동대구역으로 나오게 하니 아내가 좋아하면서도 조금은 걱정스러워하는 목소리로 물었다. 

    “어머님은요? 어머님은 只今 섬들(島坪) 작은 外家에 갔는데요.” 

    “그건 이따가 따로 電話드리지. 며칠 嶺東아재 宅에 머물러도 좋고, 집으로 돌아오셔서 홀로 계셔도 되고.” 

    그러자 아내는 금세 밝은 語調로 돌아가 집 안에 남은 現金이 그리 많지 않은 것만 걱정했다.

    집을 비워두고 아이들과 며칠 나들이할 채비가 그리 簡單하지 않을 것 같아 아내와는 한 時間 뒤 동대구역 待合室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조금 餘裕를 찾은 그는 다시 서울 出版社로 電話를 걸어 盧 部長을 찾았다. 그렇게 들어서 그런지 盧 部長도 그 사이 조금 鎭靜된 듯했다. 平素처럼 安定을 되찾아 들뜨거나 誇張된 氣色 없이 그 한 時間 前에 서울 出版社에서 있었던 일을 들려주었다. 

    “그러니까 아까 10時 半쯤에 空輸部隊 上司 하나가 下士 둘을 데리고 3層 經理部를 찾아왔어요. 때마침 우리 編輯部는 午前 中으로 마쳐야 할 여름號 特輯 마무리 矯正 校閱에 바빴고, 아시죠? 戒嚴 擴大와 뒤이은 光州事態로 턱없이 까다로워진 檢閱 때문에 ‘우리時代 文學’ 여름號가 한 보름假量 늦춰진 것, 經理 金 孃은 銀行에 간 터라 새로 經理部 收拾 中인 朴 孃만 남아 있었는데, 거기 검은 베레모를 쓰고 正裝한 그들 셋이 한꺼번에 덮치듯 들이닥친 거예요. 그리고 칸막이 넘어서 編輯會議 中이던 우리나 3層 이쪽저쪽에서 일하던 營業部 寺院까지도 그들이 온 걸 느끼지 못한 사이에 그 봄 女商을 갓 卒業한 그 修習社員의 작은 冊床 앞을 에워싸듯 둘러서 그 애와 무언가를 두런두런 얘기를 주고받았다더군요. 

    그러다가 얼마 뒤에 굳은 듯이 앉아 있는 經理部 收拾 朴 孃만 남기고 軍靴발 소리를 저벅거리며 사라져버렸다는 것인데, 알 수 없는 일은 그때부터 그 어린 朴 孃이 그대로 冊床 앞에 앉은 채 눈물도 닦지 않고 하염없이 울기 始作한 거예요. 한 10分 뒤 銀行에 갔던 經理 金 孃이 돌아올 때까지요. 金 孃이 異常해 물으니 그때까지 소리 없이 흐느끼던 朴 孃이 갑자기 서럽게 소리 내어 울며 말하더랍니다. 空輸部隊員들이 이不休 先生 住所와 電話番號를 알아갔다고, 自己가 다 말해주었다고. 그리고 金 孃이 그 까닭을 묻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밝히더라는 거예요. 그 空輸部隊員이 自身에게 이죽거리듯 했다는 말로. 

    ‘너 아니? 우리가 바로 얼마 前 光州에 갔던 그 空輸部隊야. 所聞 들었지? 밤새 갈아 날 세운 大檢으로 女大生의 乳房을 도려내고 妊産婦의 배를 갈라 胎兒를 꺼냈다는 그 惡鬼들 말이야. 밤새 칼을 갈아 날을 세운 까닭은 그냥 軍用大檢으로는 女大生의 乳房도 못 잘라내고 妊産婦의 배를 갈라 胎兒를 꺼내지도 못하거든.’
     
    그러고는 손으로 얼룩무늬 軍服 윗도리 가슴께나 불룩한 주머니가 달린 作業服 허벅지 쪽을 쓰다듬어 금세라도 시퍼런 帶劍을 빼 들 것 같은 시늉을 하며 덧붙이더라는 거예요. 

    ‘已往 惡鬼가 된 거 두 番 되기가 뭐 그리 어렵겠니? 그러니 그 새끼 住所하고 電話番號 빨리 臺. 記憶을 못 하면 經理 帳簿라도 펼쳐 찾아보라고. 여기서 주는 賞 받고 여기서만 冊을 낸 作家라면 그 새끼한테 原稿料도 보내고 印稅도 보냈을 거 아냐? 暴徒件 民主鬪士件 성난 數十萬 市民을, 그들 안마당에서, 그것도 겨우 數千의 兵力으로 터무니없는 威力鎭壓을 꾀한 罪가 있으니, 우리가 光州에서 惡鬼가 된 것은 그래도 어떻게 참아낼 수도 있어. 하지만 이런 개새끼는 絶對로 容恕할 수 없어. 作家라는 탈을 쓰고 우리가 하지도 않은 짓을 지어내어 우리 人格뿐만 아니라 存在 自體를 抹殺하려 드는 이런 芒種은, 우리가 女大生의 乳房을 자르고 妊産婦의 배를 갈라 胎兒를 꺼냈다고 덮어씌운 者들보다 더 惡質이라고. 그렇게 光州에 阿諂해서 무얼 얻어걸리려고 하는지는 모르지만, 이런 새끼를 찾기 위해서라면 正말 나라 지키라는 大檢이라도 얼마든지 빼 들 수 있다고, 알아? 그러니 빨리 말해. 시퍼렇게 간 大檢으로 젖통이건 아랫도리件 확 쑤셔 그어버리기 前에….’ 

    그러니 그 어린 게 얼마나 놀랐겠어요. 놀라 제精神도 아니게 不休 氏 住所하고 電話番號 알려주고는 그리 넋을 놓고 울어댄 거예요. 그런데 不休 氏 都大體 어디다 뭘 쓴 거죠?” 

    盧 部長의 그런 말을 듣자 그는 새삼 가슴 안이 써늘해지며 지난달 서울에서 만난 김형우 作家의 빈정거림이 얼어붙은 겨울 하늘을 찢는 천둥소리처럼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光州를 ‘休暇兵 列車’로 報告, 兵役 義務를 벗고 집으로 돌아가는 除隊兵을 維新의 桎梏에서 벗어나 自由民主의 옛날로 돌아가려는 光州市民으로 對峙하면, 그런 除隊兵들로 가득 찬 客車를 暴力으로 占據한 空輸部隊와 어우러져 그대로 1980年代 初盤 우리 社會를 演出해낼 수 있는 멋진 政治·社會的 알레고리 空間이 完成된다…. 

    “除隊兵 身分으로 經驗한 休暇兵 列車 속 얘긴데, 登壇 前부터 가지고 있던 斷片입니다. 우리 同人誌 ‘入門(立文)’에 原稿를 넘긴 것도 光州事態 일어나기 한 달 前인 4月 中旬이고, 그게 실린 同人誌 創刊號도 5月 末에는 이미 나왔는데….” 

    입으로는 盧 部長에게 그렇게 切實하고도 懇曲한 解明을 하고 있었지만, 그러는 自身도 그런 解明이 통하리라는 期待는 全혀 품지 못했다. 盧 部長도 무턱대고 그를 篇 들어 樂觀的인 展望만 내놓지는 못했다. 

    “設令 檢閱에서 問題가 되고, 그게 新軍部의 心氣를 건드렸다 해도 別로 걱정할 일은 아닌 듯하다네요. 社長님이 여기저기 알아보고 계신데, 戒嚴司 檢閱 쪽이든 保安隊, 安企部건 正式 經路를 통해 立件하고 搜査에 들어간 痕跡은 아직 없는 것 같다는 거예요. 于先 발등에 떨어진 불인 光州 일로 딴 곳을 돌아볼 틈이 없어서일 수도 있겠지만. 가만히 따져보면 出版社로 찾아온 空輸部隊員들만 해도 그래요. 正式 搜査라면 아무것도 모르는 收拾經理를 그렇게 無知莫知하게 윽박질러 住所하고 電話番號만 빼갔겠어요? 搖亂하게 짖는 개가 물지는 않는다고, 어쩌면 光州로 出動한 서울 近郊 空輸部隊 한구석에서 일어난 個別的인 逸脫行動日 수도 있어요. 休暇나 外出 나온 김에 한 番 손봐주고 온다는 式의…. 어쨌든 이番 週末은 已往 나선 김에 아이들하고 어디 좋은 데 물놀이라도 갔다 오세요. 아직은 6月 中旬이라 좀 이르기는 하지만. 그리고 亦是 社長님 當付인데, 月曜日 午後 다시 제게 電話 주신 뒤에 去就를 決定하도록 하시라는 데요. 그때까지면 어디를 쑤시든 뭘 좀 알아낼 수 있을 것 같다나요.” 

    그런 말로 慰勞와 希望 어린 展望을 代身했다.

    2.
    盧 部長과 通話를 끝내는 대로 택시를 잡아탄 그가 동대구역 廣場에 내렸을 때는 1時 가까울 무렵이었다. 그 무렵 그가 새로 채비韓 國産 낚시 세트까지 기대 세운 크고 작은 旅行 가방 둘을 내려놓고 아이들과 함께 待合室 入口 쪽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내는 흔치 않은 食口들만의 週末 나들이를 쑥스러워하면서도 환하기 그지없는 얼굴이었다. 아이들은 더했다. 둘 다 여름休暇라도 떠나는 것 같은 차림에 큰놈은 챙 넓은 帽子에 작은 背囊까지 메고 있었다. 

    “어디로 가려고요? 汽車驛으로 나오라니 얼른 斟酌이 가지 않아서….” 

    아내가 그러면서 그의 눈치를 살폈다. 質問을 받고 보니 實은 自身도 明確히 定한 데가 없어 暫時 머뭇거리다가 對答했다. 

    “密陽으로 한番 가보았으면 해. 크게 變하지 않았다면, 남천강 줄기가 邑內 한가운데를 지나가고 있으니까 가까이에 며칠 머물 物價가 있을 거야. 아니, 邑內에 宿所 定하고 每日 江가로 나가도 되고.” 

    “그것도 좋겠네요. 密陽은 나도 한番 가보고 싶었던 곳인데. 거기 가는 汽車 時間은 어떻게 돼요?” 

    “京釜線 下行(下行)이니까 그리 기다리지 않아야 될걸. 보자….” 

    그가 그러면서 맞은便 列車 時間表 아래로 다가가 가까운 下行 列車를 알아보았다. 密陽은 아직 邑이지만 統一號 無窮花號도 서는 곳이라 늘 時間에 쫓기는 그로서는 거의 習慣的으로 特級 쪽부터 살폈다. 釜山으로 내려가는 特級은 한 時間 넘게 있어야 오고 普及(普急)도 30分은 기다려야 하는 것으로 나와 있었다. 

    “이거 꽤 기다려야 되겠네. 그럼 特級으로 汽車票부터 끊고 어디서 點心이라도 먹을까.” 

    그가 그러면서 賣票口 쪽으로 걸음을 옮기려는데, 보고 있던 時間表 아래쪽으로 이어진 緩行列車 時間表가 퍼뜩 눈에 들어왔다. 特級이나 統一號 無窮花號 같은 標示가 없어 좀 前에 지나쳐본 發着 時間表 아래 칸에 15分 뒤 지나가는 普通列車가 있었다. 

    “아, 저기 緩行이 있었구나, 15分 뒤에 지나가는. 저걸 타자. 點心은 오랜만에 汽車 칸 벤토(도시락) 한番 먹어보지 뭐.” 

    그가 그렇게 말하자 잠깐 아내의 얼굴에 뭔가 疑訝해하는 낯빛이 비쳤다 스러졌다. 그러나 까닭을 묻지는 않고 旅行 가방에 기대놓은 낚시道具 세트 주머니를 그쪽으로 살그머니 밀었다. 거기 달린 멜빵끈을 받아 쥐며 그가 辨明하듯 아내의 궁금症을 풀어주었다. 

    “여기서 密陽까지는 緩行이나 急行이나 그게 그거야. 괜히 사람들 눈에 띄는 待合室에 食口대로 몰려 있는 것보다 아무거나 잡히는 대로 汽車를 타고 사람들 사이에 섞여 멀리 가버리는 게 좋아.” 

    그러자 다시 아내의 얼굴에 반짝, 하듯 疑訝해하는 氣色이 떠올랐다. 그러나 이番에는 공연히 多急해진 그에게 그걸 풀어줄 餘裕가 없었다. 낚시道具 주머니를 어깨에 걸치며 아내를 재촉하듯 말했다. 

    “내 얼른 賣票口로 뛰어가서 汽車票 끊어 올 테니, 어서 아이들 데리고 改札口 앞으로 가 줄 서 기다려.” 

    하지만 結果로 보아서는 解明으로 늑장을 부리지 않은 게 잘한 일이 되었다. 土曜日이라 그런지 그날따라 賣票口와 改札口가 다 붐벼 그가 허둥대며 汽車票를 끊어 改札口 쪽으로 갔을 때는 아내와 아이들 앞에도 제법 긴 줄이 서 있었다. 플랫폼으로 나가자 그곳도 混雜하기는 마찬가지, 아이들 손을 잡고 食口대로 한 客車에 몰려 타기도 그리 쉽지 않을 程度였다. 

    客車 通路에서 북적이는 사람들 사이에 부대끼던 그들 네 食口는 汽車가 淸道驛에 到着해서야 겨우 함께 앉을 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다. 가방과 짐은 列車 시렁에 얹고, 그사이 心思가 나서 칭얼거리기 始作하는 둘째를 안아 옆자리를 비워주면서 아내가 操心스레 물었다.

    [일러스트·박용인]

    [일러스트·박용인]

    “저, 오늘 무슨 일이죠? 왜 우리 食口는 남의 눈에 띄는 곳에 모여 있으면 안 돼요? 아니, 어째서 집에 돌아와 같이 짐을 싸지도 못하고, 나만 이렇게 精神없이 褓따리를 싸서 뛰어나오게 만들었어요? 그리고 왜 그렇게 무슨 죄진 사람처럼 四方을 곁눈질하는 거죠?” 

    여보, 當身이나 아이 아버지, 或은 아무개 아빠 같은 말을 잘 쓰지 못해 對稱(對稱) 代名詞가 아예 빠진 말로 아내가 그렇게 물었다. 무언가 좋지 않은 豫感에 正色을 한 表情이었다. 그도 더는 미룰 일이 아니다 싶어 盧 部長에게 들은 말을 아내가 알아듣기 좋게 풀어서 말해주었다. 그러나 듣고 난 아내는 空輸部隊가 아파트로 들이닥칠지도 모른다는 말에 놀랐는지 낯빛까지 하얘졌다. 

    “그럼 食口대로 密陽으로 가서 避해 있으면 모두 解決되는 거예요?” 

    그런 물음에 그도 難堪해져 對答을 머뭇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窓밖으로 무슨 아이디어가 반짝 떠오르듯 하얀 판에 검은 글씨로 쓰인 里程標 하나가 鐵路街에 떠오르듯 비쳤다가 사라졌다. 유천 4km. 그걸 보고 그가 무슨 갑자기 急한 信號라도 받은 사람처럼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密陽이 아니라 유천(楡川)이야. 아니 幽天으로 바꿔야겠어. 우리 유천에서 내려.” 

    아내가 얼결에 따라 일어서며 더 알 수 없다는 얼굴로 물었다. 

    “유천? 유천이 어디예요?” 

    “여기서 十 里만 가면 나오는 汽車驛이야. 거기서 내려.” 

    “아는 곳이에요?” 

    “그래. 이제 생각해보니 密陽役보다 그곳에 내리는 게 나을 것 같아.” 

    그가 그렇게 말하며 客車 시렁에서 旅行 가방을 내리자 아내도 안고 있던 둘째를 椅子에 내려놓고 큰아이의 背囊과 그의 낚싯대 가방을 챙겨 車에서 내릴 채비를 했다. 

    汽車는 그때부터 채 5分도 안 돼 有賤役에 섰다. 歷史는 1950年代 末에 새로 지은 것이라고 들었는데, 그가 보기에는 植民地 時節에 지은 木材 簡易歷史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壁體가 예전같이 木造 기둥에 灰壁 미장 마감을 한 것이 아니라, 시멘트 블록을 쌓고 미장을 한 뒤에 灰漆을 한 것 같았다. 낡은 制服에 除毛까지 쓰고 出札口를 맡고 있던 늙은 驛員이 到着地가 密陽으로 된 汽車票를 잠깐 살펴보더니 말없이 그들 一家를 내보내주었다. 

    歷史를 벗어나자 6月 中旬 한낮의 따가운 햇살이 벌써 제법 初여름 티를 냈다. 簡易驛이라 그런지 歷史 뒤便으로 흔히 ‘역전앞’이란 겹말로 불리는 널찍한 空터가 있었으나, 逆轉거리라고 부르는 旅人宿 골목과 膳物用 과일 가게, 그리고 술밥을 함께 파는 食堂家 같은 것은 없었다. 江邊 쪽으로 가는 길가로 雜貨店에 담배包와 낚시用品을 곁들인 가게가 하나 있었는데, 마당에 넓은 平牀이 펼쳐 있고, 그 곁에 솥 걸린 火덕이 있는 걸로 보아 손님이 몰릴 때는 국밥이나 국수, 라면 같은 單品 料理도 끓여내는 듯했다. 

    여남은 채 民家가 흩어져 있는 저便 마을 쪽 出口에도 酒幕과 雜貨 가게를 겸하는 것 같은 곳이 있었지만, 그는 家族들과 함께 物價 쪽 出口에 있는 雜貨 가게로 갔다. 그리고 마당의 平牀에 짐을 부려놓으면서 가게를 보고 있는 中年 아주머니에게 조금 늦어진 點心으로 라면 네 個를 끓이게 하고 따로 막걸리 한 大砲를 請했다. 點心時間이 많이 지난 것 같지 않은데도, 大邱에서 그곳까지 오는 동안 버드나무 껍질 곽에 든 追憶의 도시락을 파는 홍익회 職員을 만나지 못한 탓이었다. 

    “여기는 어떻게 알아요? 여기도 살아본 적 있어요?” 

    그동안 저만치 긴 다리가 놓인 물가 쪽을 有心히 보고 있던 아내가 아직도 水深을 털어내지 못한 얼굴로 물었다. 조금 餘裕가 생긴 그가 짐짓 느긋한 말套로 대꾸했다. 

    “여기도 密陽이야. 살아보지는 않았지만 어릴 때 이 附近에 몇 番 와본 적은 있지.” 

    “그럼 地理도 잘 알아요?” 

    “大綱은. 國民學校 다닐 때 저기 보이는 山등성이 너머 어디쯤인가 逍風을 와본 적이 있어. 거기 天然記念物 第 몇 號라던가 하는 白松(白松)李 두 그루 있었거든. 대단한 古木도 아니고, 風采도 그리 신통찮았던 것 같은데 왜 거기로 逍風을 갔던지. 附近에 무슨 亭子도 있었던 것도 같고. 내가 유천이라는 地名을 처음 들은 것도 그 逍風 때였을 거야.” 

    “國民學校 아이들이 逍風을 올 程度라면 密陽 邑內에서 멀지 않은 곳이겠네요. 그런데 어떻게 이리 都市와는 먼 閑寂한 山골 마을 같을까.” 

    “저기 보이는 저 물 있지? 저것과 그 北쪽 어디에서 만나는 다른 물줄기가 또 있는데, 그中에 하나는 淸道(淸道) 쪽에서 내려오는 청도천이고 다른 하나는 雲門寺 쪽에서 내려오는 桐(東) 무슨 千이라 하던가. 그것들이 저기 보이는 山모퉁이 너머 어디쯤에서 만나 남천강 上流가 되어 密陽 邑內 嶺南樓 앞으로 흘러내려 간다고 들었어. 그런데 거기까지가 모두 한 끈에 꿰인 것처럼 이어진 놀기 좋은 物價야. 긴늪이라고, 아름드리 솔밭(소나무 숲)과 길고 깊게 고인 물이 그윽하게 어우러져 또 다른 逍風 行先地가 되는 곳도 있고, 그 아래로 어른들의 좋은 銀魚 낚시터가 되는 물줄기를 따라 先拂, 龍頭目(龍頭年), 참물샘이, 꼬꾸랑바우(바위)로 해서 嶺南樓 앞까지 邑內 아이들의 荒唐한 冒險談이 서린 名所가 이어지지. 여름의 물놀이, 겨울의 썰매타기, 兩쪽으로 다.” 

    그러는 그의 목소리에 애틋한 追憶이 빚어내는 축축함과 또 그 때문에 느슨해진 現實感이 묻어났던 것인지, 말을 마치고 아내를 살피니 境界와 不安으로 그들 네 家族의 安危와 關聯된 地理的 情報를 캐듯 물어오던 그女의 눈길이 異常하리만치 조용하게 가라앉은 情緖를 드러내고 있었다. 

    “密陽으로 가면 왜 안 돼요?” 

    “거긴 아무래도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더러 있을 것 같아서.” 

    “그럼 우리가 只今 密陽보다 더 구석진 곳으로 避하는 셈인가요?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으면 그들이 누구에게 이르기라도 할까 봐서요?” 

    그러는 아내의 얼굴에는 다시 어두운 그늘이 졌다. 그제야 精神이 퍼뜩 든 그는 다시 애써 대수롭지 않다는 表情을 지으며 아내를 안심시켰다. 

    “뭐, 그렇게까지 亂離 만난 거는 아니고, 於此彼 土曜日에 아이들 데리고 나섰으니 邑內 旅館에 食口대로 모여 있는 거보다는 物價 洞네에 民泊 定하고 애들하고 고기잡이나 하는 게 더 자연스럽지 않겠어?”

    3.
    食口대로 묵을 곳을 찾아가다 만난 냇가 야트막한 둔덕에서 河床이 갑자기 넓어지며 탁 트인 江邊이 펼쳐지는 것을 보고 그는 暫時 걸음을 멈추었다. 늙고 젊고를 가리지 않고 한나절 川獵과 물놀이에 맞춤한 맑은 냇물과 넓고 시원한 자갈江邊이며 군데군데 굽이진 모래톱 같은 것들이, 저만치 돌아가는 또 다른 물줄기가 맞은便 높지 않은 山발치를 후벼 파서 만든 푸른 소와 어울려 멀리서도 近郊 物價 遊園地로 遜色없는 立地임을 드러내 보여주고 있었다. 

    거기다가 유천 다리가 만드는 한낮의 그늘과 그 裳板 아래로 흐르는, 炊事하기에 좋은 여울 같은 것들은 이미 가까운 都市 사람들을 적잖이 그리로 끌어들이고 있는 듯했다. 물가에서 멀지 않은 몇 號 되지 않는 마을에는 都會地의 허름한 旅人宿보다는 設備가 훨씬 나은 宿泊業所도 하나 있었다. ‘有天障(楡川莊)’이라는 看板을 달고 있는 그 旅館 두 칸 長房에 짐을 푼 그들 네 食口는 準備한 炊事道具와 낚시道具를 챙겨 가까운 다리 밑 物價를 찾아 나섰다. 

    到着이 2時 남짓이었는데 라면이지만 食口대로 點心을 끓여 먹고, 旅館 찾아 褓따리 풀고 다시 物價 나들이로 채비하다 보니, 벌써 午後 4時가 넘어 해가 西便으로 기웃해져 있었다. 旅館 主人이 그가 메고 나서는 낚시 道具 세트를 보며 한마디 參見을 했다. 

    “파리 낚시 있어예? 물 건너 쏘(소) 쪽으로 갈 꺼 아이라 카믄, 저녁답(저녁때) 자갈밭 여울물에 찌낚시는 잘 안 될 낀데예. 글타고 해 질 녘에 돌 뒤베(뒤집어서) 물 벌거지(벌레) 잡아 뜬 낚시 하거나, 마구다지(마구잡이) 채낚시로 들이댈 만한 모래바닥 여울살이도 엄꼬오(없고)….” 

    그러더니 親切하게도 작은 洋초 덩어리가 달린 낚싯줄에 人組 파리 여섯 마리가 한 뼘 남짓한 間隔으로 묶인 것을 包裝한 얇은 비닐 封套 하나를 내밀었다. 값을 물어도 對答하지 않고 그냥 내미는 걸로 보아 처음부터 어설픈 낚시 손님을 위해 서비스로 마련해둔 것 같았다. 그런 斟酌으로 고맙다고 人事하는 그에게 主人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그 파리 낚시의 出處를 일러주었다. 

    “李 집에서 묵고 가는 물놀이 손님 中에는 이따금 쓰던 語句나 낚시채비를 떠라놓고(남겨두고) 가는 사람들이 있어예. 이거 말고 고기 잡는 魚缸도 누가 두고 간 게 있는데 드릴까요? 깻묵 한 封紙하고.” 

    그 바람에 고기잡이 魚缸까지 얻어 낚시 가방과 함께 메고 들고나오는데, 아내가 또 제법 배가 불룩한 작은 旅行 가방을 들고 따라나섰다. 그가 疑訝한 눈길로 아내와 가방을 번갈아 살피자 아내가 알아차리고 말했다. 

    “이거요? 우리 새로 장만한 登山用 코펠하고 바나(버너)예요. 거기에 집에서 먹던 조림 飯饌 좀 싸고, 밖에서 먹을 푸성귀와 調理하는 데 쓸 양념도 있는 대로 넣어왔어요. 쌀도 한 웅쿰(움큼) 封紙에 담고.” 

    “무슨 솥단지이고지고 나서는 避難民 褓따리도 아니고. 或是 이불은 안 넣어 왔어?” 

    “큰 가방에 차렵이불도 얇은 걸로 한 채 넣어 왔어요.” 

    “아예 移徙짐을 싸지 그래.” 

    그는 그렇게 핀잔처럼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문득 그런 아내가 안쓰럽게 느껴졌다. 아직은 斟酌이 가지 않는, 그러나 뜻밖으로 가까이 다가와 있을지도 모르는 危害가 갑자기 한 實體로 느껴진 탓이었다.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물놀이 期待만으로 들떠 있는 아이들과 되도록 水深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쓰는 아내를 데리고 진작부터 눈여겨보아둔, 2車線 國道를 지고 있는 다리 쪽으로 갔다. 해가 西쪽으로 제법 뉘엿하게 기울었는데도 그 다리와 건너便 저만치 山발치를 감아 도는 곳에 있는 소 사이의 江邊 여기저기에 아직 꽤 많은 사람이 남아 있었다. 淸道와 密陽의 境界에 놓여 있다고 들은 그 다리 北쪽은 제법 넓은 여울을 낀 橋脚 사이 裳板 그늘에 依支해 家族 單位나 작은 規模의 親知 모임 같은 것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들은 大綱 두 部類의 素朴한 行樂客으로 構成되어 있는 듯했다. 한쪽은 그 무렵 家族 休暇用으로 大衆化되어 한창 팔리고 있는 簡便한 레저用 텐트와 炊事道具 세트를 갖춘 이웃 都市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한 工場에서 나온 듯 울긋불긋한 텐트를 치고, 入口에는 石油버너와 손잡이 있는 알루미늄 냄비를 크기대로 네댓 個 次例로 집어넣은 플라스틱 天幕천 주머니를 펼쳐, 그 안에 들어 있는 量은 밥空器까지 잔뜩 펼쳐놓고 있었다. 

    다른 한쪽은 十 里 안쪽 隣近 農村 마을에서 모내기 뒤의 반짝 農閑期에 한숨을 돌리려고 川獵놀이를 나온 親知나 家族들인 듯했다. 헌 돗자리에 洋銀솥 얇은 스텐 食器 같은 것을 간醬 됫甁이나 작은 된醬독과 함께 플라스틱으로 찍은 큰 함지나 큰 대야에 담고, 바지게로 지고 왔다. 그리고 왁자하게 廣木 遮日 앞에 부려놓고는 솥을 건다, 장만해 온 料理 材料를 손본다, 분주했다. 

    여울 南쪽, 멀리서 보면 제법 물길 푸르게 보이는 소 언저리는 南쪽으로 이어진 다리 끝에서 저만치 떨어져 있어 依支할 裳板 그늘이 없어선지 主로 텐트가 쳐져 있었다. 個中에는 제법 큰 軍用 텐트까지 있어 北쪽 여울가보다 規模가 훨씬 큰 團體들의 野外 모임 때도 利用되는 듯했다. 소가 깊고 넓어 보여 애初 아이들과 함께 갈 수 없는 곳이라 여기고 제쳐두기는 하지만, 斟酌으로는 水泳이나 낚시뿐만이 아니라 큰 고기를 잡기 爲한 投網이나 찌낚에도 훨씬 津津한 재미가 있을 것 같았다. 

    다리 北쪽 入口 裳板 아래 여울가에 자리 잡고 물놀이로 아이들과 함께 남은 날을 보낼 생각을 한 그는 아이들을 데리고 진작부터 눈여겨보아둔 다리 아래 橋脚 사이에 들고 간 짐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몇 걸음 뒤처져서 따라오는 아내의 짐을 받으려고 돌아서서 나오며 살피니, 멀리서 보기에는 해가 뉘엿한데도 떠날 氣色이 없는 것 같던 사람들이 實은 알게 모르게 자리를 싸 말 채비에 들어가고 있었다. 아직 餘興이 식지 않아 노랫가락을 이어가는 자리도 있고, 그 한구석에는 太平으로 잠들어 있는 사람까지 있었지만, 그들도 곁에서 자리를 말고 뒷설거지를 始作하는 사람들을 곁눈질했고, 더러는 잠든 사람을 難堪해하는 눈길로 흘깃거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막 자리를 잡은 뒤였고, 또 서둘러 돌아가야 할 곳도 없었다. 그들을 못 본 척 아내의 짐을 받아오는 대로 모랫바닥에 작은 비닐 돗자리를 깔아 아이들이 앉을 곳을 마련하고, 野外用 炊事道具와 더 以上 물러지게 해서는 안 되는 菜蔬나 飯饌 도시락 같은 것을 꺼내놓았다. 

    “火덕부터 먼저 만들어주세요, 큰아이와 함께 땔감도 좀 모아주고요. 오늘 저녁은 여기서 끓여 먹고 들어가는 수밖에 없겠네요.” 

    아내가 그렇게 말하며 炊事 準備를 물놀이에 앞세웠다. 그는 物價에, 特히 흐르는 江물가에 서면 언제나 느끼는 그 알지 못할 설렘과 들뜸을 억누르고 먼저 굵은 돌 몇 個를 주워 와 알루미늄 냄비를 얹을 크고 작은 아궁이를 얽었다. 이어 일곱 살 난 아들놈도 일손이라고 함께 데리고 냇가 자갈밭을 누비며 바짝 마른 나뭇가지들을 주워 아궁이 곁에 한 아름 쌓아놓았다. 그런 다음 語句를 꺼내 本格的인 물놀이 準備를 하려는데, 아내가 다시 이제 막 始作되려는 父子間의 신나는 川獵을 말 그대로의 漁撈(漁撈)로 바꾸어놓았다. 

    “물고기부터 좀 잡아주세요. 저는 둘째와 함께 다슬기를 주울 테니. 急하게 오느라 저녁 찌개거리를 장만해 오지 못해서 그래요. 그렇게라도 매운湯거리를 마련하지 못하면 맨 된醬 국물에 神 김치하고 볶은 지 오래되어 푸석푸석한 멸치 卒林만으로 저녁을 먹어야 돼요.” 

    그 바람에 그들 父子는 민물고기 漁夫가 되어 그로부터 두 時間 가까이 家族의 끼니를 돕기 위한 고기잡이에 專念해야 했다. 

    그는 처음 손쉬운 漁港과 손에 익은 찌낚에 依支해 生産性 있는 ‘漁撈’를 圖謀해보았다. 그 물줄기는 그가 初等學校 上級班 3年을 붙어살다시피 한 남천강에서 몇十 里 안 되는 上流 支川(支川)이고, 그 뒤 20年의 歲月이 지났어도 그곳에서의 고기잡이는 自身이 있었다. 그러나 어찌 된 셈인지 한 時間도 안 돼 그날의 試圖는 始作부터가 어림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깻묵을 넣은 고기잡이 魚缸은 세 番이나 물에 넣었다 건져도 새끼손가락만 한 피라미 몇 마리에 쉬리 두 마리가 고작이었다. 그가 自身 있어 했던 떡밥 찌낚度 여울살은 勿論 제법 깊이 있는 웅덩이에서도 입질조차 없었다. 물이 너무 맑은 데다 周邊에 投網질을 하거나 줄에 꿴 나무오리로 고기몰이를 하는 川獵꾼들이 搖亂을 떨어 더욱 그런 듯했다. 

    그제야 多急해진 그는 남천강에서뿐만 아니라 故鄕의 山골 溪谷 여울 웅덩이에서도 失敗한 적이 없는 꺽지 낚시로 轉換했다. 物價 여울살의 돌을 뒤집어, 거기에 붙은 굵은 모래를 體液으로 단단하게 굳혀 만든 벌레집을 뜯고, 그 안에서 자라는 흔히 ‘물벌레’라고 하는 둥글고 검푸르게 반짝이는 마디를 가진 반딧불이 幼蟲을 잡아 미끼로 쓰는 낚시였다. 챔질은 찌낚과 채낚시의 中間쯤이었는데, 미끼 附近 몇 미터 안에 꺽지만 있다면 百發百中人 그 낚시法도 거기서는 통하지 않았다. 아직 남은 行樂客들의 물가를 떠나기 前에 피우는 마지막 수선이 더해져 더욱 그랬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도 저도 글러 버리자 그는 아들과 함께 다리에서 5里쯤 떨어진 上流로 올라가며 요란스러운 고기몰이를 하는 사람들을 避해 이런저런 고기잡이 道具를 바꾸어 써보았다. 하지만 如前히 빈손이나 다름없이 돌아와 보니 橋脚 近處는 그사이 텅 빈 것처럼이나 사람들이 줄어들어 있었다. 그새 저녁밥을 다 지어놓고 마늘 파 양념에 배추속대와 상추 잎만 몇 張 떠 있는 매운湯 국물만 졸이고 있던 아내가 滿船을 기다리다 失望한 漁夫의 아낙처럼 그들 脈 빠져 돌아온 富者를 맞았다. 

    “前에는 곧잘 잡히더니, 아쉬워지니까 그것도 뜻대로 안 되네요. 밥 식기 前에 있는 飯饌으로 그냥 먹어요.” 

    아내가 그렇게 말하면서 구겨진 자리를 펴고 어떻게 저녁床이라고 차려보려는 시늉을 했다. 

    “가만 있어 봐. 아직 旅館집 主人에게 얻어온 파리 낚시를 제대로 해보지 않았어. 그런데 저 物價 좀 봐. 피라미 떼가 여기저기 하얗게 튀어 오르는 게 ‘날 잡아 잡수’ 그러는 것 같지 않아? 거기다가 어두워질 때까지는 아직 한참 남은 것도 같고.” 

    그가 그렇게 잘 나오지도 않는 우스갯소리를 하며 낚싯대에서 찌낚 줄을 걷고 다시 파리 낚시 줄로 갈아 달았다. 6月 中旬의 긴 해가 마지막으로 철렁, 하며 빠져들 듯 西便 붉은 山 그리매 너머로 가라앉을 무렵이었다. 그런데 그 파리 낚시에서 뜻밖의 反轉이 始作되었다. 한 時間 前만 해도 찌낚에 새끼손가락만 한 피라미만 이따금 걸리던 곳이었는데, 어디서 왔는지 거멓게 몰린 고기 떼가 물기 始作했다. 처음에는 한 마리씩 툭툭 물더니 갑자기 무엇에 急해졌는지 두 마리 세 마리가 한꺼번에 물기 始作했다. 

    파리 낚시에는 미늘이 없어 물리는 대로 物價 白沙場에 낚싯줄을 흩뿌리면 물고기는 절로 모랫바닥에 떨어지고 아내와 아이들은 歡聲으로 모래 위에 펄떡거리는 물고기들을 주워 담았다. 歡聲에 궁금해진 그가 낚시를 하면서 흘깃 건너보니 피라미 크기가 한 뼘은 되어 보였다. 그런데 짧은 瞬間의 곁눈질이지만 피라미의 지느러미 形態와 色깔이 왠지 낯선 데가 있었다. 한 스무 마리 남짓 건져 올리고 난 뒤에 그는 暫時 낚시를 거두고 아내와 아이들 쪽으로 다가가 그間에 잡힌 고기들을 살펴보았다. 한 뼘은 될 듯한 길이의 고기들은 뜻밖으로 피라미가 아니라, 그의 故鄕 쪽에서는 ‘먹치’라고 부르는 갈겨니였다. 

    갈겨니를 먹치라고 부르는 것은 입 周邊에 鬚髥 代身에 나 있는 검은 色 돌기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갈겨니는 무엇보다 길고 맵씨 있는 지느러미와 産卵期 갈겨니 수컷의 배 兩便에 비치는 燦爛한 무지개 같은 婚姻色으로 사람의 눈길을 끈다. 이미 어둑해오는 해 저문 냇가지만, 그런 갈겨니의 婚姻色은 如前히 눈부셨다. 

    갈겨니는 食感이 유별나게 좋은 것도 아니고 맛이 뛰어난 것도 아니었지만 어쩌다 잡게 되면 공연히 氣分 좋은 고기였다. 아무리 傷處 없이 잡아도 觀賞用으로 기를 수가 없고, 養魚場에서 食用으로 기르기에도 터무니없이 效用性이 떨어졌지만, 어쩌다 몇 마리 잡고 나면 까닭 모르게 속이 뿌듯하고 자랑스럽기까지 하던 記憶이 있었다. 그런 갈겨니를 스무 마리 넘게 物價 白沙場에 흩뿌리고 나니 갑자기 異常한 飽滿感까지 들었다. 

    “이만하면 우리 食口 매운湯은 充分하겠네. 낚시는 이제 그만둬야겠어. 實은 이 먹치, 지느러미 치레고 婚姻色 치레地, 맛은 別로야.” 

    그가 그렇게 말하며 낚시를 접으려 하자 아내가 그새 죽은 갈겨니들을 주워 담은 냄비를 내밀었다. 

    “아이들에게도 이 매운湯 그리 먓난 飮食은 못 될 거예요. 이 물고기 倍나 좀 따 씻어주세요. 그다음엔 어두우면 等으로 쓸 수 있게 랜턴 電池 바로 準備해주고요.” 

    그가 서둘러 배를 딴 갈겨니들을 건네주자 그女가 얼른 물에 헹궈 언제부터인가 끓고 있는 매운湯 냄비에 털어 넣었다. 그사이 낚싯대를 말고 낚시 道具 세트 가방에서 랜턴으로 쓸 수 있는 플래시를 찾아 배터리를 點檢해 돗자리 附近 큰 돌 위에 얹어둔 그는 아이들을 그리로 불러 앉혀 저녁 먹을 채비를 하게 했다. 오래잖아 날이 저물고 매운湯도 다 끓었는지 아내가 랜턴 비치는 비닐 돗자리 위에 늦은 저녁床을 차리기 始作했다.

    [일러스트·박용인]

    [일러스트·박용인]

    4.
    늦은 저녁 설거지까지 마치고 이미 어두워진 物價를 더듬어 旅館으로 돌아오니 8時가 훌쩍 넘어 있었지. 아이들 大綱 씻기고 재울 때는 9時가 넘었고, 곤히 잠든 아이들 곁에 누운 우리 夫婦가 다시 아무 근심 걱정 없는 사람들처럼 平穩하고 깊은 잠에 빠져든 것도 10時 넘긴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을 거라…. 다음 날 아침잠에서 깬 그가 담배에 불을 붙여 물면서 남의 일 보듯 前날 밤 일을 떠올리고 그렇게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어지러운 꿈 한 자리 없이, 참으로 잘도 잤구나. 

    大邱를 떠날 때까지만 해도 무슨 끔찍한 災難이나 殘忍한 追跡子들로부터 쫓기는 듯 切迫한 心境이었는데, 어떤 心理機制가 그들에게 그토록 平穩하고 便安한 밤을 보낼 수 있게 했을까. 追跡子가 누군지 어디서 어떻게 오는지 모르는 荒唐한 逃走에 너무 오래 무겁게 짓눌려 진작에 지쳐버린 것일까. 아니면 두려움의 對象이 너무 特定되지 못하고 한便으로는 좀 엉뚱하기도 해 오히려 鈍感해지고 警戒心이 痲痹된 것일까. 

    거기다가 잠에서 깨어난 뒤에도 두려움이나 不安은커녕 아무런 警戒心이나 自己 團束의 覺醒조차 일지 않은 것은 스스로도 까닭을 斟酌하기 어려웠다. 投宿客들이 共同으로 쓰는 浴湯과 洗面臺가 있는 곳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간 아내도 그랬다. 前날 이따금 그女의 表情을 어둡게 했던 愁心과 不安은 말끔히 걷히고 아이들을 씻기며 어르고 도닥이는 게 어김없이 閑寂한 물가로 아이들과 함께 週末 나들이를 나온 젊은 엄마였다. 

    “가서 洗手하고 아침 먹으러 가요. 여기서 아침이 된대요. 어제 點心 저녁을 제대로 먹지 않아 오늘 아침은 이 집 韓定食으로 한 床 받아요.” 

    그러면서 旅館 부엌으로 가서 이제 아침을 들여도 좋다는 말을 하고 왔다.

    그들이 食口대로 前날 午後에 자리 잡았던 다리 裳板 밑 橋脚 사이 여울가를 찾아갔을 때는 日曜日이어서 그런지 前날보다 사람이 더 많이 몰려 있는 것 같았다. 멀리서는 끼어들 자리가 없을 것처럼 북적이는 것 같은데도, 前날 저녁 날이 저문 뒤까지 그들이 머물렀던 자리는 多幸히 그대로 비어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다시 짐을 부려놓으면서 가만히 둘러보니 거기 있는 사람들 가운데는 前날 밤 거기 남아 野營한 사람도 더러 있는 것 같았다. 그中에 親舊들끼리 몰려온 것 같은 사람들 몇이 아이들을 알아보고 알은체를 해 그들 內外도 반갑게 人事를 받아주었다. 

    자갈 江邊 건너 南쪽으로 푸르게 물이 고인 소 곁 모래밭에도 어제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모여 웅성거렸다. 個中에는 큰 軍用 텐트에 스피커까지 準備해온 團體가 있어 무슨 大會라도 하는지 마이크가 거슬리는 機械音과 함께 삑삑거렸고, 그 곁에는 또 다른 팀이 高性能 野外用 電蓄이라도 들고 나왔는지 高音 좋은 女歌手의 트로트 가락이 간드러졌다. 江邊 건너 저쪽에 세워진 天幕 앞으로 무언가 검은 글씨 붉은 글씨가 크게 쓰인 懸垂幕이 걸려 있어 눈길을 모아 읽어보니, 大邱 直轄市 무슨 區(區) 의사회 夏季練修란 글씨가 보였다. 그 곁 멀지 않은 나무 그늘에는 附近 都市 로타리클럽의 親睦大會 懸垂幕도 걸려 있었다. 그리고 그 밖에도 크고 작은 個人 텐트들이 펼쳐 있어 멀찍이서 보기에는 제법 작은 天幕村처럼 보였다. 

    그새 익숙하게 느껴지는 어제의 그 橋脚 附近에 짐을 풀자 아이들이 이것저것 집어내 먼저 물놀이 氣分을 냈다. 그들 夫婦도 그때껏 마음 한구석을 짓누르고 있는 陰鬱한 想念을 깨끗이 털어버리고 穩全히 새로워진 氣分으로 다시 愉快한 물놀이에 기꺼이 하루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인지 날씨도 和暢해 아직 午前 10時도 안 되었는데 氣溫은 물놀이에 全혀 부담되지 않을 만큼 따뜻했다. 

    山골에서 집 밖을 모르고 자라 물 길러 가는 개울가밖에는 物價를 잘 모르는 아내와 갓 國民學校(初等學校)에 入學한 아들을 데리고 어두운 想念에 빠지는 일 없이 한나절을 보내기에는 江 上流, 아직은 내(川)라고 불리는 物價보다 나은 곳도 없을 것이다. 그날 유천 물가에서 보낸 한나절, 그는 初等學校 上級班 3年을 붙어살다시피 한 密陽 남천강의 여러 물굽이와 그 뒤 他鄕을 떠돌면서도 1年에 한 番씩은 반드시 들러 親和를 두텁게 해오는 동안에 반변천(半邊川) 上流 故鄕 물가에서 익힌 모든 漁獲 手段과 技術을 아내와 아들에게 펼쳐 보였다. 

    아들에게는 前날 해보지 못한 옛날 시골 方式의 沙鉢無知로 뜬 고기와 바닥고기, 비늘 있는 고기와 비늘 없는 고기 할 것 없이 모두 잡아볼 수 있게 해주었고, 前날 失敗한 꺽지 낚시도 成功해 반딧불이 애벌레를 미끼로 외진 物價 바위틈에서 손바닥만 한 꺽지를 直接 끌어올려 보는 놀라움도 맛보게 해주었다. 파리 낚시를 여울에 据置해 과일 따듯 낚싯줄에 걸린 피라미를 잡아내거나, 반딧불이 애벌레 아닌 또 다른 물벌레를 찌를 떼낸 찌낚 줄에 미끼로 달아 견지낚시처럼 당겼다 풀어주었다 하며 江을 거슬러 오르는 누치나 모래무지를 노려보기도 했다. 

    아내는 함께 다슬기를 줍다가 군데군데 진흙바닥이 있는 여울 下流로 내려가, 남천강 支流에서 이따금 찾아낼 수 있는 주먹만 한 민물조개 하나를 찾아내 놀라게 해주었고, 다르게는 자배기 代身 작은 플라스틱 대야로 옛적 故鄕의 ‘버지기(자배기)無知’를 흉내 내어 그女를 感歎하게 만들었다. 아이 주먹만 한 구멍을 뚫은 褓자기를 자배기 비슷한 플라스틱 대야에 씌우고, 그 안에 生된장과 먹다 남은 밥덩이이며 참깻묵 부스러기 같은 것을 비벼 넣은 뒤 橋脚 附近 깊은 물에 두 時間이나 묻어두어, 중고기나 미유기같이 그女에게 낯선 물고기를 볼 수 있도록 해준 게 그랬다. 

    어쩌면 그 午前 내내 그가 한 일은 아내나 아들을 놀라게 하고 감동시키기보다는 그 自身을 위해 한나절 沒頭할 거리를 찾은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點心때를 넘기면서 모든 것은 달라졌다. 午前 내내 냇물 속을 허우적거리며 휘젓고 다니다가 끼니때를 놓치고, 1時 넘어 아이들의 재촉을 받고서야 허둥지둥 지은 點心을 먹고 나서부터였다. 무엇보다도 네 食口 모두의 몸부터가 午前의 그 몸이 아니었다. 無慮 네 時間을 물살 쎈 여울부터 허리까지 車는 느린 목 웅덩이를 가리지 않고 내달은 데다, 늦은 點心으로 오래 비어 있던 위에 饅頭며 魚묵 토막까지 넣어 더욱 느끼해진 라면을 채워 넣어서였을 것이다. 

    숟가락을 놓으면서부터 아이들은 벌써 움직임이 느려졌을 뿐만 아니라 눈꺼풀까지 조금씩 내려앉는 것 같았다. 고단하고 졸리氣는 物價까지 온 雜商人으로부터 燒酒 한 甁을 사 飯酒로 마신 그도 마찬가지였다. 25度 燒酒라도 빈속에 마신 술이라 醉氣가 더 甚한 줄 알았으나, 그의 눈꺼풀을 무겁게 내려앉게 하는 것도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졸음이었다. 

    “그렇게 눈 억지로 부릅뜨고 한盞 더할 窮理 말고 차라리 아이들과 한숨 자둬요. 저물 때까지 날은 기니까.” 

    아내가 그들 三父子의 내려앉는 눈꺼풀을 알아보고 그렇게 勸했다. 듣고 보니 딱히 마다할 까닭도 없어 그는 먼저 플라스틱 돗자리 위에 누워 있는 아이들 곁에 몸을 뉘었다. 6月이 한 해의 딱 折半이 되는 날이지만 햇살은 따갑고 바람조차 없어, 그들 家族이 자리 잡은 橋脚 그늘은 시원한 洞口 밖 느티나무 아래 못지않았다. 無斷히 배가 부르거나 쓸데없이 따뜻한 것을 싫어하는 아내만 물가에 앉은 채로 설거지한 냄비와 그릇들의 물氣를 닦아 元來 들어 있던 주머니에 집어넣고 있었다.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어도 되는가. 두 손 놓고 속절없이 打者(他者)로부터의 信號만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가…. 잠들기 前 반짝 그런 諮問(自問)李 일었으나 醉氣와 졸음이 망설임 없이 그를 달랬다. 내버려 두어라. 浮動性의 原理에 맡겨두어라. 모든 일은 解決되게 되어 있다. 어쨌든 오늘은 지나갈 것이고 來日은 새로운 週日이 始作된다. 出版社 朴 社長은 그 마당발과 이미 여러 해 擴張해둔 高級 情報網으로 여기저기 쑤셔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를 알려줄 것이고, 解決도 始作될 것이다. 다시 한番, 모든 問題는 마침내는 풀리게 되어 있다….

    언제부터인가 周邊의 尋常치 않은 수선거림이 그를 여름 江邊에서 請한 깊지 못한 낮잠에서 깨어나게 했다. 마침내 居之半 깨어난 狀態에서 눈만 감고 있는 그에게 周邊에서 벌어진 尋常찮은 일을 먼저 알아차리게 한 것은 그날 午前 내내 시끄럽던 江邊 南쪽 소(沼) 附近의 音響機器 騷音이었다. 잠들 무렵만 해도 졸다가 깜짝깜짝 깨어날 程度였는데, 깨어서 들으니 멀리서도 느낄 만큼 소리를 죽여두었거나 아예 꺼버린 듯했다. 

    社會, 紹介, 感謝 人事, 짧은 講演, 公知, 注意, 案內 等으로 끊임없이 왕왕거리던 醫師協會 마이크도 꺼져 있고, 江邊 北쪽 橋脚 아래 사람들까지도 공연히 들뜨게 하던 野外電蓄 앰프音도 숨을 죽이고 까닭 모르게 서글퍼지는 가락만 낮게 흘려보냈다. 間間 들리는 것은 무언가 注意를 주거나 警告를 하는 핸드마이크 소리와 그곳 사람들의 알아듣기 힘든 웅성거림뿐이었다. 오히려 아직 눈을 감고 있는 그에게 더 뚜렷하고 刺戟的인 것은 橋脚 附近의 자갈 덮인 모래江邊을 공연히 서성대는 이便 사람들 사이의 소리 죽인 수군거림 쪽이었다. 

    “저다가(저기가) 왜 節打(저렇다) 캅디꺼?” 

    “사람이 물에 빠진 模樣이더마는.” 

    “저런, 누가요? 우짜다가?” 

    “무슨 親睦契 모임 버스 運轉手라 카든江. 點心 잘 묵고 덥다 카미 물에 들어갔는데 아직 안 나온다 카네.” 

    “보자, 하마 午後 3時에 가까우이 點心 묵고 바로 물에 들어갔다면 아직 그 안에 들가(들어가) 있기는 어려울 끼고…. 그래, 令狀(屍體)은 껀졌다 캅디꺼?” 

    “그기 바로 問題라, 저래 들쌀臺는(난리치는) 거 아이가? 옷은 진작에 쏘(소) 禹(危) 한쪽 진 곳에 벗어논 걸 찾아냈다 카는데, 사람을 찾을 수 없는 기라, 사람을. 쪼매 前에 警察에 申告 옇고(넣고) 어디다 緊急 救助申請도 했다 카이, 곧 舊슨 具體(區處)가 나겠제.” 

    그 무렵에야 눈을 뜨고 일어난 그가 周邊을 살펴보니 함께 자던 큰아이는 그새 일어나 다시 물가로 나갔는지 안 보이고, 둘째만 아내의 무릎을 베고 자고 있었다. 方今 이야기를 주고받은 사람은 그들의 자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허연 廣木 遮日을 쳐놓고 매운湯 국수를 按酒로 술판을 벌이고 있던 靑年들 가운데 하나와 저쪽 物價 일이 궁금해 直接 가보고 온 바로 곁 물놀이 나온 家族 돗자리의 中年 家長이었다. 

    “멀리서 건네다 보기에는 詩퍼래도 물은 그리 깊지 않아 보였는데, 버스 運轉까지 하는 어른이 빠져 죽었는가 보네요. 그 참.” 

    아이에게 무릎을 내어주고 있던 아내도 그와 마찬가지로 멀지 않은 곳에서 그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있었던 듯 깨어난 그와 눈을 맞추며 그렇게 말했다. 

    “그러게. 종지 물에 코 박고 죽는다더니, 何必 여기까지 와서 그렇게 죽었네. 우리도 아이들하고 操心해야지.”
    그가 그렇게 맞장구를 치고 큰아이를 찾아보니 멀지 않은 上流 여울살에서 짧은 막대기로 물고기를 쫓고 있었다. 亦是 午前에 그가 가르쳐준 바 있는 맨손 고기잡이 祕法이었다. 

    比較的 물결이 잔잔하고 얕은 여울살의 피라미 떼 가운데서 區別하기 쉬운 한 마리를 골라 뒤쫓으며 그게 달아나는 方向으로 팔을 뻗거나 짧은 막대기 그림자로 遮斷하면, 大部分의 피라미는 뒤쫓는 사람의 意圖대로 方向을 바꾸며 쫓기게 된다. 그렇게 해서 한 5分 남짓만 몰아가면 마침내 지친 피라미는 배를 희뜩희뜩 뒤집으며 돌 틈에 아무렇게나 숨어드는데, 그때쯤은 別로 힘이 없어 맨손으로도 쉽게 잡을 수가 있다. 하지만 잡는 데 품이 많이 드는 것에 비해 所出이 너무 적고, 피라미를 願하는 곳으로 몰아가는데도 나름의 技術이 必要해, 일곱 살 아이가 흉내 내기에는 어려운 고기잡이 方式이었다. 

    그가 말리려 하는데, 갑자기 江邊 건너便 길게 소가 파인 쪽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리더니 검은色 봉고 乘合車 한 代價 江둑을 따라 난 農路를 타고 南쪽 江邊으로 내려섰다. 그리고 검은色 制服을 입은 사람 서넛이 車에서 내려 마이크가 차려져 있는 곳으로 몰려갔다. 그들은 마치 물놀이 本部席처럼 되어 있는 마이크 設置臺 壇上 쪽에서 거기 사람들과 만나 무슨 말인가를 주고받는데, 아무래도 事故의 經緯를 알아보는 警察이나 救助隊 같았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소의 南쪽 끄트머리, 남천강 上流로 빠지는 여울이 펼쳐지기 바로 前의 깊지 않은 웅덩이 쪽에서 사람 몇이 웅성거리더니, 큰 소리로 마이크 있는 壇上 쪽에 대고 무어라 高喊을 질러댔다. 곧 마이크 쪽에 있던 사람들이 그리로 몰려가고 함께 간 검은色 制服 입은 사람들이 소 끄트머리 푸르스름한 곳에 入手해 무엇인가를 끌어냈다. 그러자 한層 높아진 그 附近의 웅성거림에는, 이제 이便 다리 裳板 아래에서 햇볕을 避하고 있는 사람들 귀에까지 들릴 만큼의 悲鳴과 歎息 소리까지 섞여들었다. 

    “저다서 머신(무엇인)가를 껀眞(건진)갑다.” 

    “純事故 構造班이고 구경꾼이고 다 한 덩거리로 몰리 저리 왁삭거리는 거 보이, 죽은 사람 令狀 껀眞 거 아이가?” 

    귀 밝고 눈치 빠른 사람들이 그쪽으로 넘어가 보지도 않고 單番에 그렇게 狀況을 整理했다. 

    “아까 옷 벗고 들어간 곳이 저기 소 위쪽 방구(바위) 있는 데라 안 캤나? 쏘 안쪽에서는 물살이 그래 안 씼을(세었을) 낀데 令狀이 언제 저마이(저만큼) 떠내려갔이꼬? 보이(보니) 안 된다 캐도 가스나들 體力章 달리기 區間(50m)은 넘겠구마는.” 



    “가마이 히(헤어) 보이 河馬 물에 잠겐 지 時(세) 時間이 안 넘었나? 날이 이만하이 물도 어지간히 뜨視할 끼고. 우짜믄 屍體가 바닥에서 떠 그마이(그만큼) 흘러갈 수도 있다.” 

    다른 쪽은 그렇게 제법 推理에 가까운 疑問과 豫測들을 쏟아냈고, 궁금症을 못 이긴 사람들은 몇 名씩 무리 지어 자갈 江邊 저쪽으로 구경을 나서기도 했다. 그도 자칫 거기 낄 뻔했으나 아내가 正色을 하며 살며시 옷깃을 잡는 바람에 그들을 따라나서지는 못했다. 그러나 큰아이를 注意 깊게 살피는 일은 거기서 中斷되고 말았다. 代身 어떤 낯모르는 사람의 갑작스럽고 흔치 않은 方式의 죽음에서 번진 悲劇性은 沈鬱함과 悲感으로 바뀌어 얼마 前 낮잠을 자면서 잠깐 빠져들었던 그 諮問으로 되돌아가게 만들었다.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어도 되는가. 어쩌면 저 사람은 대수롭지 않은 放心이나 엉뚱한 不運으로 목숨을 잃은 지도 모른다. 그런데 너는 臨迫한 災難의 兆朕에 잘 對處하고 있는가. 모든 悲劇이 抵抗할 수 없는 運命의 所産이라는 것은 그리스인들의 悲觀的인 決定論이다. 이 世上에 運命이라는 것은 없다. 世上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두 作爲의 連鎖다. 只今 너는 그런 作爲의 連鎖에 適切하게 對應하고 있는가. 그렇게 事故가 飛躍하면서 그는 이내 꼬리가 꼬리를 무는 無益한 想念으로 다시 빠져들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갑작스레 그런 그의 귓전을 스치는 소리가 있었다. 

    “자(저애)가 저기서 뭐할라 카는 기고? 저 다리 공굴(콩크리트) 가에 물구디(물구덩이)는 알라들 (아이들)한테는 개미구신(鬼神) 구디 맨키로 한番 빠지믄 다시 못 나오는데.” 

    그래서 힐끗, 소리 나는 쪽을 건네 보니 옆 遮日 밑에서 술을 마시던 靑年 가운데 하나가 저만치 보이는 橋脚 쪽을 보며 누구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도 보니 웬 어린아이가 橋脚 옆 센 물살로 둥그렇게 파인 파란 물구덩이 곁에 위태롭게 서 있었다. 한 발만 더 내디디면 시퍼런 물구덩이로 미끄러져 들어갈 것 같은데도 어린아이는 그 물속 무언가에 홀린 듯 눈을 팔고 있었다. 

    그런데 알 수 없게도, 그 아이가 위태롭기는 하지만 自身과는 無關한 일로 여겨져 그는 如前히 꼬리에 꼬리를 무는 自身만의 想念만 쫓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이番에는 그 靑年이 짜증 난 목소리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말했다. 

    “저 바라(봐라) 저거. 기어히 일냈다. 내 참.” 

    하지만 그때도 그는 如前히 自身과는 無關한 일로 여겨 끝도 없이 돌아가는 想念의 쳇바퀴에만 매달려 있었다. 暫時 뒤 橋脚둘레 물구덩이에 갔다 온 그 靑年이 까닭 모르게 성난 얼굴로 그를 노려보며 쏘아붙이듯 한마디 했다.
    “자는 저거 어마이, 아바이도 없나. 이 위태로운 物價에 자 혼자 놀러 오지는 안 했을 낀데.” 

    그 말에 그는 다시 機械的으로 橋脚 쪽을 돌아보았다. 물에서 건져낸 아이는 웅덩이가에서 뭔가를 몇 모금 吐해내더니 아직 精神이 돌아오지 않은 듯 멍한 눈길로 方今 救助받아 빠져나온 개미鬼神 구덩이 같은 橋脚 둘레 웅덩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까지 그와 함께 그 아이 쪽을 힐끔거리던 아내가 외마디 소리와 함께 울먹이며 그쪽으로 뛰어갔다. 

    “저거 우리 縣이에요. 우리 큰애라고요!” 

    그때 큰애를 救한 靑年이 宛然히 뒤틀린 목소리로 말했다. 

    “글케, 者가 그 집 아(아이) 틀림없는 거 같았는데, 一部로 그래나 싶으디(싶더니) 참말로 자를 못 알아본 模樣이쎄. 別일 다 있다.” 

    그리고 눈물이 줄줄이 흐르는 얼굴로 비틀거리며 큰아이를 부둥켜 않고 돌아오는 아내와 큰아이를 한꺼번에 싸안는 그를 보며 갑자기 무언가 으스스해하는 얼굴로 덧붙였다. 

    “或是 그 뻐스 運轉士 兩班, 혼자 가기 抑鬱해 두 분 눈에 멀(뭘) 씌워뿐 거는 아인강. 可望이 (모르게) 者 데리고 갔뿔라꼬. 그거 참말로 생각만 해도 무시무시하네요.”

    그로부터 한 時間 뒤 그들 네 食口는 뉘엿한 6月 햇살을 받으며 유천驛에서 大邱로 올라가는 汽車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보, 돌아가자. 턱없이 深刻한 亡命極(亡命劇) 逃避劇 흉내는 그만 내고. 돌아가서 正面으로 對應하자. 根源的으로 解決하자. 아무렴, 10年 만에 다시 맞은 봄이다. 이리 虛妄하게 다하지는 않을 거다.” 

    暫時 後에 汽車가 들어온다는 驛 構內放送을 들으며 그는 그때까지 몇 番이나 되풀이한 말을 아내에게 한 番 더 수군거렸다. 그러나 아내의 얼굴은 지는 햇살을 正面으로 받고 있는데도 짙은 구름 같은 水深으로 가득했다. <繼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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