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王께서 아무도 거느리실 수 없게 될 만큼 慘酷한 꼴을 當했는지도….”
이番에는 장이도 自身 없는 듯 그렇게 말끝을 흐렸다. 그 말을 듣자 暫時 굳어 있는 듯하던 韓信의 머리가 비로소 돌아가기 始作했다.
“性古城은 깨어지고 大軍은 陷沒하여 漢王 홀로 남게 되었다….”
韓信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일의 앞뒤를 헤아리고 재보았다. 以內 實相이 잡혀왔다.
(그렇다. 모든 將卒을 잃고 쫓기게 되면서 한王은 내가 거느린 조나라 軍士들이 必要해졌다. 하지만 홀몸으로 내 眞彩를 찾아오게 되자 갑자기 나를 믿지 못하게 된 듯하다. 내가 거느린 5萬 大軍과 내 兵略이 두려워 나름대로 나를 奇襲한 것이다. 내가 딴 마음을 먹을 틈을 주지 않고 내 兵權을 빼앗으려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문득 韓信의 肝膽이 서늘해왔다. 그 奇襲의 適切하고도 迅速한 方式 때문이었다. 漢王 乳房은 相對便이 뜻하지 아니한 때와 곳으로 나아간다(出其不意)는 兵法의 要諦를 實로 絶妙하게 펼쳐 보이고 있었다. 거기다가 客廳에 모여 있다는 將帥들을 생각하자 韓信의 가슴은 더욱 섬뜩해졌다.
韓信이 처음 한王에게서 떨어져 나와 曹나라로 떠날 때는 軍事도 장수도 모두가 한王에게서 받은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韓信이 위(魏)나라에 이어 臺(代)나라를 쳐부수면서 한王은 韓信에게 주어 보낸 將卒들을 거둬들이기 始作했다. 그리하여 얼마 前까지만 해도 한꺼번에 몇 萬씩 뽑아간 軍事뿐만 아니라 장수들까지도 한王에게서 받은 사람은 韓信에게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런데 그 무렵 들어 病暇(兵家)인 阪神으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 몇 番 있었다. 衡陽에 包圍되어 있다가 겨우 몸을 빼 落陽으로 간 한王이 機張(騎將) 官營에게 軍事 몇 千을 주어 한단(邯鄲)으로 보낸 일부터가 그랬다. 제 코가 석 字라고, 霸王 項羽에게 쫓겨 觀衆으로 달아나는 處地에 官營 같은 盲腸과 騎馬隊를 빼내 曹나라로 보낸 게 病暇의 理致에 全혀 맞지 않았다. 그런데 다시 梧倉을 지키던 早參이 曹나라로 쫓겨 오고 뒤이어 楚나라 軍士들로부터 用度(甬道)를 지키던 周鉢까지 悖君(敗軍)을 이끌고 그리로 찾아왔다. 겨우 보름 사이에 風牌(豊沛)의 盲腸 中에서도 손꼽을 만한 세 사람이 적지 않은 軍士들과 함께 阪神 아래로 몰려든 것이었다.
(나를 疑心하면서도 홀몸으로 나를 찾아온 것이 官營과 조참, 周鉢 세 사람이 있기 때문이었다 해도 한王은 여느 君王을 넘는 機智와 果斷性을 갖춘 사람이다. 하지만 그들 세 사람에게 나를 찾아가게 한 것이 바로 한王이라면, 그리고 그렇게 한 것이 오늘과 같은 날을 위한 對備였다면, 그는 實로 무서운 사람이다….)
韓信이 그렇게 혀를 차며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는데 그 사이 옷을 갖춰 입은 장이가 앞장서며 말했다.
“우리도 客廳으로 가서 大王을 뵙도록 합시다.”
그 말에 韓信도 퍼뜩 精神이 들었다. 긴 다리를 성큼성큼 내디뎌 장이를 앞서듯 하며 客廳으로 갔다. 官營과 조참, 周鉢의 護衛를 받으며 장수들의 配置를 大綱 바꾸고 난 다음 한숨을 돌리고 있던 한王이 客廳으로 들어오는 韓信과 장이를 보고 물었다.
글 李文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