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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橫說竪說/홍찬식]스탈린과 김일성의 南侵|東亞日報

[橫說竪說/홍찬식]스탈린과 김일성의 南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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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入力 2010年 6月 19日 03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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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戰爭을 누가 일으켰는지에 對해서는 學術的으로 糾明이 끝난 狀態다. 1990年代 公開된 옛 蘇聯의 記錄들이 決定的으로 寄與했다. 戰爭 1年 前인 1949年 3月 北韓의 김일성은 모스크바를 訪問했다. 1993年 公開된 蘇聯 外交文書에는 蘇聯의 最高指導者 스탈린과 김일성이 當時 나눴던 對話 內容이 記錄돼 있다. 김일성은 “이제 狀況이 무르익어 全 國土를 武力으로 解放할 수 있게 됐습니다. 우리의 軍隊는 剛하고 南朝鮮에는 强力한 빨치산 部隊의 支援이 있습니다”라며 南侵을 承認해달라고 要求한다. 스탈린은 “南侵은 不可하다”며 南韓이 攻擊해오면 反擊 機會를 노리라고 注文한다.

▷北韓은 中國과의 連帶에도 나섰다. 中國은 1949年 5月 北韓의 支援要請에 對해 “國民黨을 敗退시켜 中國을 完全히 支配할 때까지 決定的인 行動을 기다려 달라”고 밝혔다. 中國 共産黨은 國民黨 政府와 戰鬪 中이었다. 1949年 가을 中國의 共産革命이 成功하면서 事態는 急變한다. 김일성은 1950年 4月 다시 모스크바를 訪問해 南侵에 對한 同意를 얻어내고 支援 約束까지 받았다. 北韓은 1950年 5月 中國에도 支援을 要請한다. 中國 指導部는 蘇聯이 同意해준 것이 맞는지 確認해본 뒤 戰爭을 承認했다. 6·25는 김일성 스탈린 마오쩌둥의 合作이었다.

▷韓國에서도 1980年代 以後 分斷과 戰爭의 責任을 美國과 南韓(李承晩)에 더 많이 지우는 修正主義가 登場해 現代史 硏究의 헤게모니를 차지했지만 蘇聯과 中國의 資料가 公開됨으로써 誤謬를 바로잡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北韓은 ‘北侵’을 捏造해 主張하고 있다. 北韓 敎科書 ‘現代朝鮮歷史’는 ‘리승만(李承晩 大統領)은 1950年 6月 23日부터 38度線의 共和國 地域에 對해 集中的인 砲射擊을 했으며 6月 25日에는 全面戰爭으로 擴大됐다’고 적고 있다.

▷中國은 敎科書에 戰爭 勃發 原因을 뚜렷하게 다루지 않고 있다. 北韓 主張에 暗默的으로 同調한 것이다. 中國의 官營媒體인 환추(環球)試補의 英文版 글로벌타임스가 6·25에 對해 ‘韓半島에 친(親)소련 政權을 심고자 했던 스탈린과 김일성이 일으킨 것’이라고 報道해 關心을 끌고 있다. 中國 學者들은 私席에서 韓國 學者를 만나면 南侵을 認定한다. 中國 政府도 6·25에 對해 明確한 姿勢를 보일 때가 됐다.

홍찬식 首席論說委員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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