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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선의 演劇人 列傳]劇作家 김은성 “革命的인 作品을 쓰고 싶다”|동아일보

[심규선의 演劇人 列傳]劇作家 김은성 “革命的인 作品을 쓰고 싶다”

  • 東亞日報
  • 入力 2017年 4月 2日 18時 27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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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성은 이 시대를 대표하는 극작가라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본인은 아직도 무명이라고 말한다. 겸손한 것도 있지만, 연극은 아직도 마이너 리그라는 뜻이다. 그런 조건 속에서도 그는 동시대의 불편한 진실에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댄 작품들을 잇달아 내놓아 호평을 받고 있다. 다음에는 형식과 내용 모두가 ‘말도 안 될 정도로’ 새로운 혁명적인 작품을 쓰고 싶다고 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김은성은 이 時代를 代表하는 劇作家라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本人은 아직도 無明이라고 말한다. 謙遜한 것도 있지만, 演劇은 아직도 마이너 리그라는 뜻이다. 그런 條件 속에서도 그는 同時代의 不便한 眞實에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댄 作品들을 잇달아 내놓아 好評을 받고 있다. 다음에는 形式과 內容 모두가 ‘말도 안 될 程度로’ 새로운 革命的인 作品을 쓰고 싶다고 했다. 장승윤 記者 tomato99@donga.com

그가 쓴 戱曲 6篇을 내리 읽었다. 언제나 울림을 주는 單語를 만났다. 맨 마지막에 쓰여 있는 한 글字, ‘막’이라는 單語였다. ‘끝’을 ‘膜(幕)’이라고 쓰는 장르는 演劇이 唯一하다. 그러나 ‘막’이라는 말은 直接 演劇을 觀覽할 때는 接할 수 없고, 戱曲을 읽어야만 만날 수 있다. ‘막’이라는 글字는 내게 “어때? 괜찮았지” 하는 劇作家의 뿌듯함과 안道路 다가오기도 하고, “근데, 통할 수 있을까” 하는 不安과 焦燥로도 읽힌다. 그런데 一生동안 한 篇이라도 戱曲을 읽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러니 ‘막’이란 글字까지 읽었다는 것은, 劇作家에 對한 내 나름의 獻辭다.

내가 읽은 그의 戱曲은 ‘始動라사’(2006年) ‘延邊엄마’(2011年) ‘달나라連續劇’(2012年) ‘뻘’(2012年) ‘木蘭언니’(2012年) ‘썬샤인의 戰士들’(2016年)이다. 데뷔作인 ‘始動라사’부터 ‘썬샤인의 戰士들’까지 10年밖에 안 걸렸다. 그러니 이 作家는 젊은 게 틀림없다. 그렇다. 그는 올해 40살이 됐다. 첫 作品부터 注目을 받았고, 이때껏 期待를 저버리지 않고 있다. ‘그’는 劇作家 김은성이다. 3月 22日 동아일보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有名作品을 底本(底本)삼아 새로운 作品을 써내는 再創作 分野와 오리지널 創作 分野, 兩쪽 모두에서 才能을 發揮하고 있다. 먼저 再創作에 對해 물어봤다.

“再創作에 對해서는 別로 意味를 附與하고 싶지 않다.”

期待하지 않던 對答을 듣는 것은 인터뷰어의 큰 기쁨이다.

“再創作을 하게 된 것은 演劇 工夫를 始作할 때 西歐의 名作들을 읽으면서 韓國的 狀況에 맞춰 이렇게 바꿔보면 어떨까, 저렇게 써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고, 公演이 原作의 깊이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아쉬움도 컸기 때문이다. 韓國人이 外國 作品을 한다는 것은 어떤 過程을 거치지 않으면, 語塞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名作을 舞臺에 올리려면 컨템퍼러리하게(동시대적으로) 演出家가 再解釋을 해주거나, 作家가 再創作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테네시 윌리엄스의 ‘琉璃動物園’(1945年 初演)을 처음 읽을 때부터 ‘매우 韓國籍’이라고 생각했고, 이 作品을 ‘달나라連續劇’으로 再創作해 好評을 받았다. 美國 大恐慌期에 沒落하던 中産層을 따뜻한 透明 필름을 통해 보여주는 듯한 ‘琉璃動物園’은 그의 字板을 거쳐 서울 이문동 多世帶주책의 屋塔房에서 벌어지는 ‘달나라連續劇’으로 바뀌면서 성큼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또 있다. 그는 안톤 체호프의 ‘바냐아저씨’를 아직 섬이었던 서울 蠶室에서 農事를 짓는 老總角 ‘순우三寸’(2010年)‘으로, 같은 作家의 ’갈매기‘를 1981年의 全南 筏橋로 가져와 光州民主化運動을 加味한 ’뻘‘로, 세르비아 作家 류보미르 시모備置의 ’쇼팔로비치 流浪劇團‘을 6·25戰爭이 일어나기 前날의 全南 寶城으로 데려와 左右對立으로 녹여낸 ’로風贊 流浪劇團‘(2012年)으로 바꾸기도 했다. 그리고 成功했다. 그는 ’分明‘ 그 方面에 재주가 있는 것이다.

그는 再創作에 對해 “原作에서 놓치고 있는 것들, 存在하고 있는 것들, 所重한 것들을 재미있게, 쉽게 再解釋함으로써 原作의 本質에 다가갈 수 있도록 하는 作業”이라고 했다.
지난해 공연한 서울시극단의 ‘함익’(김광보 연출)은 햄릿을 모티브로 했지만 창작에 가깝다. 이 작품에서 김은성은 햄릿을 재벌 2세 여교수로 바꿔버렸다(사진 오른쪽에서 세 번째). 함익은 자신이 지도하는 대학 연극반 위에 군림하다가 오히려 거부당하며 충격을 받는다. 그 과정이 본인이 그토록 증오하던 아버지가 권력을 휘두르는 모습과 오버랩되면서 결국은 자살을 택하게 된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지난해 空然한 서울市劇團의 ‘函益’(김광보 演出)은 햄릿을 모티브로 했지만 創作에 가깝다. 이 作品에서 김은성은 햄릿을 財閥 2歲 女敎授로 바꿔버렸다(사진 오른쪽에서 세 番째). 函익은 自身이 指導하는 大學 演劇班 위에 君臨하다가 오히려 拒否當하며 衝擊을 받는다. 그 過程이 本人이 그토록 憎惡하던 아버지가 權力을 휘두르는 모습과 오버랩되면서 結局은 自殺을 擇하게 된다. 世宗文化會館 提供

그런 點에서 지난해 超然한 ’函益‘(김광보 演出)은 微妙하다. ’햄릿‘을 再解釋한 것까지는 맞는데 原作의 本質에 다가갔다고 봐야 하는지는 疑問이어서다. 그래서 再創作, 脚色, 創作 等 規定이 多樣하다. 時代, 人物, 背景을 비트는 것은 흔한데 그는 햄릿을 男子가 아닌, 財閥2歲 女敎授로 바꿔버렸다. 김은성은 햄릿의 女性性에 注目했다고 하나, 글쎄? 나는 創作 이라고 본다. 햄릿과 函익의 關係는 好奇心을 刺戟해 觀客을 劇場으로 데려오는 데까지만 有用한 것은 아닐지.

나는 그에게 이런 質問을 했다. “函익이 아버지의 權力을 憎惡하면서도 어느새 本人이 똑같은 사람으로 變해 버린데 對한 自己嫌惡感度 作品을 理解하는 한 軸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函익은 세 가지 葛藤 構造 속에 놓여 있다. 自身과 自身, 自身과 家族, 自身과 外部가 그것이다. 그 中에서도 나는 函익에게 掌握당한 듯하다가 結局은 函익에게 反撥하는 大學 演劇班과의 葛藤을 重視한다. 김은성은 ’自己嫌惡感‘에 關한 나의 問題提起에 同意하며 “그게 그女가 自殺하는 根據의 全部”라고까지 했다. 그렇다면 元來 他者에 對한 復讐가 테마인 햄릿과는 달리, 函익은 自身에 對한 復讐로 方向을 틀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김은성은 他者와의 關係 속에서 나온 “사느냐, 죽느냐”라는 大使를 函益 自身의 問題로 置換한 “살아있는가, 죽어있는가”라는 大使로 바꿨을 것이다.

내가 햄릿과 函익에 對해 이런, 섣부르지만 强한, 主張을 하는 데는 理由가 있다. 어쩌면 햄릿을 韓國에서 가장 먼저 解體해서 再構成한 것이 1976年 南山 드라마센터에서 公演한 ’下滅太子‘(飜案·演出 안민수)일 것이다. 當時 公演을 觀覽했던 나는 매우 新鮮하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評壇에서는 ’새로운 里程標‘라는 讚辭와 ’國籍不明‘이라는 非難이 克明하게 엇갈렸다. 그때는 原作의 敍事構造는 尊重하면서 人物과 場所만 韓國的으로 바꾸었는데도 그랬다. 그 後 40年 間 햄릿은 韓國에서 數없이 解體됐고 只今도 數없이 再構成되고 있다. 요즘의 햄릿은 ’下滅太子‘와는 比較도 안 될 程度로 멀리 와 있다. 김은성의 函익도 그 中의 하나다. 그러니 햄릿을 모티브로 삼았다고는 하나 햄릿의 片鱗을 찾기 힘든 作品에 ’創作‘이라는 말을 쓰지 못할 理由가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春香傳, 沈淸傳, 興夫傳을 英國 宮中을 背景으로 한 王과 貴族間의 葛藤構造로 바꾸고, 英國的 사랑과 英國的 孝, 英國的 兄弟愛로 變奏를 해서, 英國의 傳統 服裝을 입고 公演한다면 이것은 再創作인가, 創作인가. 이런 疑問이 函익을 創作이라고 말하는 理由이기도 하다.

아무튼 그는 再創作을 통해 그의 이름을 알리는데 큰 도움을 받았다. 그런 그가 再創作에 對해 “別로 意味를 附與하고 싶지 않다”고 한 것은 意外다. 앞으로는 創作에 더 沒頭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렇지만 그는 내가 던진 낚싯바늘에 선선히 걸려줬다. 그래도 再創作하고 싶은 作品이 있지 않겠는가. 그는 선뜻 헨릭 입센의 ’社會의 기둥들‘(1877年 作)이라는 作品을 꼽았다. 김미혜 敎授의 飜譯으로 2014年 國內에서 初演된 作品이다. 仔細한 줄거리는 省略하겠으나 所謂 ’社會의 기둥들‘이라는 사람들의 背信과 欲望, 不道德을 告發하는 作品이다. 그의 說明을 듣고 있자니 ’琉璃動物園‘ 以上으로 ’韓國籍‘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더욱이 미스터리 要素까지 들어 있으니 錦上添花다(그래서 그의 ’燭‘李 作動했겠지만 언제 再創作할지는 未知數다).

그의 創作은 위에서 言及한 ’始動라사‘ ’延邊엄마‘ ’木蘭언니‘ ’썬샤인의 戰士들‘이다. 二重 ’始動라사‘는 2006年 韓國藝術綜合學校 演劇院을 卒業할 當時 卒業公演을 演出하기 위해 쓴 作品인데, 그해 韓國日報 新春文藝에 應募해 當選됐다. 劇作家 김은성의 誕生이다. 當時 이 作品의 審査를 맡았던 김미도 演劇評論家는 “新春文藝 應募作치고는 너무 水準이 높아서 當選者에게 큰 好奇心이 생겼다”고 했다(’연극평론‘ 2012年 여름號, 3月 28日~4月 22日 두산아트센터 公演 ’木蘭언니‘의 팸플릿에서 再引用).

’始動라사‘는 江原道 洪川의 始動(詩洞·假想의 마을)에 있는 ’時代落伍的인‘ 라사點(맞춤洋服店)을 運營하는 裁縫師가 主人公이다. 이 作品은 나중의 다른 세 作品과는 雰圍氣가 다르다. ’始動라사‘의 테마가 사라지는 것에 對한 아쉬움이라면, 뒤의 세 作品은 사라져야 할 것에 對한 憤怒가 테마다.

’延邊엄마‘는 延邊에서 딸을 찾으러온 53歲 朝鮮族 복길순의 슬픔과 苦痛을, ’木蘭언니‘는 韓國 社會에서 適應을 하지 못하고 北韓으로 돌아가려는 26歲 脫北 女性 조목란의 挫折을, ’썬샤인의 戰士들‘은 1940年부터 最近까지 悲劇的인 事件에 露出된 少年 少女들의 죽음과 犧牲을 통해 桎梏의 歷史를 證言한다. ’썬샤인의 戰士들‘에 對해서는 “세월호 事件을 겪으면서 내가 내린 作家라는 存在에 對한 答을 내리고 싶었다”고 할 程度로 세월호 事件에 對한 問題意識이 짙게 배어 있다(’썬샤인의 戰士들‘은 作中에서 主人公의 딸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드라마다).

나는 세 作品의 共通點을 ’同時代性‘ ’짙은 그늘‘ ’視線의 차가움‘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只今의 김은성을 規定하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同時代性‘은 세 作品 모두가 오늘의 問題를 다루고 있고, ’짙은 그늘‘은 오늘의 問題 中에서도 唯獨 不便한 眞實을 水面 위로 끌어올리고 있다는 것이며, ’視線의 차가움‘은 悲劇的인 事例를 極大化함으로써 只今의 우리 社會에 批判的인 칼날을 들이대는 걸 躊躇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一部에서는 그가 보여주는 階級性이 溫和하다는 評도 하지만, 나는 同意하지 않는다. 그는 다른 인터뷰에서 “同時代를 살아가는 우리의 問題를 極(劇)으로 드러낼 때, 主題意識에 있어서는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을 것” “藝術家는 時代의 그늘을 向해 일어서는 사람” “演劇은 至毒할 程度로 醜惡한 人間의 本性까지 受容해 낼 수 있는 장르”라고도 했다. 내가 그를 보는 視角과 그가 自身을 보는 視角이 別般 다르지 않다. 作家는 이들 作品을 통해 主人公의 不幸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不幸을 몰고 온 集團的 暴力과 社會的 構造, 時代의 狂氣를 告發하고 싶은 것이다.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보라는 얘기다.
지난해 초연한 ‘썬샤인의 전사들’은 한국이 겪은 현대사의 사건과 질곡들을 소년 소녀들의 눈을 통해 고발하고 있다. 사진은 스토리의 첫 주인공인 제주소년 나선호가 4.3사건 당시 동굴에 피신해 있던 중 발각되지 않으려고 여동생의 입을 막았는데, 나중에 죽은 걸 확인하고 오열하는 장면이다. 그 후 선호는 카투사로 입대한다. 그가 만든 ‘수첩’은 뒷사람들에게 계속 전달되면서 극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모티브가 된다. 두산아트센터 제공
지난해 超然한 ‘썬샤인의 戰士들’은 韓國이 겪은 現代史의 事件과 桎梏들을 少年 少女들의 눈을 통해 告發하고 있다. 寫眞은 스토리의 첫 主人公인 濟州少年 나선호가 4.3事件 當時 洞窟에 避身해 있던 中 發覺되지 않으려고 女同生의 입을 막았는데, 나중에 죽은 걸 確認하고 嗚咽하는 場面이다. 그 後 選好는 카투사로 入隊한다. 그가 만든 ‘手帖’은 뒷사람들에게 繼續 傳達되면서 劇을 이끌어가는 重要한 모티브가 된다. 斗山아트센터 提供

그의 作品을 세 가지 키워드로 接近하려는 데 對해 그는 大體로 首肯했다. 그러나 나는 곧바로 다른 質問을 던졌다. 그를 인터뷰한 記事는 作品에 對한 意見을 묻거나 作品 自體를 評價하는 것이 많다. 그래서 賞讚이 많고, 그의 말을 그대로 受容한다. 그러나 나는 作品을 評價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인터뷰하는 것이니 다른 質問을 할 수밖에 없다. “當身은 왜 오늘의 問題를, 그렇게 어두운 視線으로, 그토록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것인가.”

그는 웹진 ’演劇in‘에서 ’김은성의 演劇데이트‘라는 코너를 맡아 2年間 42名의 演劇人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도 이 코너에서 演劇 作品보다는 演劇人에 포커스를 맞춰 好評을 받았으니 내 質問을 理解해 줄 것으로 믿었다(그는 定해진 時間에 定해진 일을 꾸준히 해본 것은, 卽 規則的인 生活을 해본 것은 이 일이 처음이라고 했다).

내 豫想은 맞았다. 그는 答했다. “내가 元來 그런 사람이어서 그렇다. 어렸을 때부터의 成長 過程이 여러모로 힘들었다. 家族의 不和와 經濟的인 어려움은 어린이에게는 좋은 敎育 環境이 아니었다. 世上을 안 좋게 보며 자랐다. 中學校 때부터는 韓國現代史와 政治에 對해 關心을 갖게 됐고, 일찍부터 社會와 階級性, 政治的 不合理에 對해 눈을 뜨게 됐다.” 그러면서 그는 “中心보다는 外郭에 있으면서 觀望하거나 分析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이를 本人은 ’邊두리氣質‘이라고 했다.

김은성은 全南 寶城에서 아버지가 라사點을 經營하는, 먹고 살만한 집에서 태어났으나 얼마 안가 家勢가 기울며 初等學校 3學年 때 도망치듯 서울로 올라왔다. 그리고 面目千 뚝방 옆 多世帶 住宅街의 姨母 집에 얹혀살며 일찌감치 어른들의 世界에 露出됐다(그는 비록 10年 밖에 寶城에서 살지 않았지만, 全羅道 말과 全羅道 情緖를 잘 理解하고 活用하는 劇作家라는 評價도 받는다).

나는 “自然人 김은성은 ’邊두리氣質‘李 맞는 것 같은데, 作品에 投影된 김은성은 오히려 中心으로 파고드는 ’反骨氣質‘에 가까운 것 같다”고 했다. 이는 印象 批評이 아니라 그의 作品들을 읽고, 보고, 分析하고 내린 내 나름의 結論이다. 그래서 “當身의 反骨氣質은 眞짜인가”라고 물었다. 作品에서만 反골인 척 하는 것은 아니냐는, 대단히 失禮되는 質問이었다.

“쓴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깨닫지 못하면서도 막 썼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생각을 하기 始作한 것도 얼마 되지 않는다. 些少한 便紙도 責任을 지는데 只今껏 나는 어마어마한 일을 해왔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作品과 違背되는 삶을 살고 싶지는 않다. 只今까지는 그렇지 않았는데, 앞으로 잘 할 수 있을지는 걱정이다.”

그는 인터뷰 末尾에 “이런 말을 한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그가 成長 過程을 숨긴 적은 없다. 여러 인터뷰에 나와 있다. 그러니 ’처음‘이라는 것은 그런 成長 過程이 自身의 作品에 決定的인 影響을 줬다고 認定한 게 처음이라는 뜻이다. 나는 特定 作家가 갖고 있는 思考 體系나 價値觀을 評價할 資格은 없다. 다만, 나는 그가 自身을 잘 들여다보고 있고, 그 事實을 밖으로 말할 수 있는 自信感과 餘裕를 갖고 있음은 確認했다. 인터뷰어의 役割은 거기까지일 것이다.

그는 自身이 “타고난 作家란 아니라는 事實에 콤플렉스를 갖고 있다”는 말도 했다. 小說家나 詩人 中에는 타고난 글쟁이들도 꽤 있는데, 本人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作家로서는 怯이 너무 많은 것 같다고 했다. 여기서 怯이 많다는 것은 作品의 主題가 鮮明하지 않다는 뜻으로 誤解하면 困難하다. 앞서 指摘했듯 그의 作品은 主題가 분명하고, 매우 批判的이다. ’怯이 많다‘는 것은 作品을 낼 때까지의 過程을 말하는 것이다.

“2011年 첫 番째 戱曲集 ’始動라사‘를 낼 때 ’怯 낼 줄 아는 作家가 되겠다‘고 했다. 그런데 요즘은 怯이 너무 많아진 것 같다. 지나치게 工夫를 많이 하고, 너무 많이 調査를 한다. 내가 이렇게 쓰면 讀者들이 어떻게 反應할 지를 너무 의식한다. 作家는 作品 世界에 좀더 沒入해서 感覺的, 直感的으로 써 내려가야 하는데 말이다.”

그의 말에 同意한다. ’썬샤인의 戰士들‘에는 論文 水準의 註釋이 달려 있다. 그는 “’썬샤인의 戰士들‘은 처음부터 그렇게 쓰겠다고 作心하고 썼다”고 했다. 作家 김은성은 分明 “내가 이렇게 調査를 徹底하게 해서 썼으니 이 演劇은 說得力이 있다”고 主張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그가 最高의 演劇으로 꼽는 아리엘 도르프만의 ’寡婦들‘은 칠레 피노체트 獨裁政權 時節에 男便을 잃은 女人들의 抵抗을 그린 演劇이다. 그렇지만 도르프만은 이 演劇에서 얼마나 많은 男子들이 不當한 죽임을 當했는지를 主張하지 않는다. 10餘名의 寡婦들이 나와 自身의 이야기만을 할 뿐인데도 政權의 殘酷함과 抵抗의 崇高함을 雄辯한다. 演劇의 힘은 統計와 調査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劇的 敍事‘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는 “나와 남에게 쓰기로 約束한 2篇의 作品을 마무리하면 革命을 하고 싶다”고 했다. 말도 안 되는 作品, 卽 內容이나 形式이 모두 엄청나게 果敢한 作品에 挑戰해 보고 싶다는 것이다. 本人과 쓰기로 約束한 作品은 緻密한 素材를 갖고 近似한 名品으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나는 “革命的인 作品에 挑戰했다가 亡해도 먹고 살수 있게 그 前에 準備를 해두려는 것이냐”고 물었다. 그는 “作品과 生活, 兩쪽에서 準備를 잘 해 둬야 劇作家라는 職業을 지킬 수 있다”고 했다. 成功한 劇作家도 生活을 걱정해야 한다는 말이다(그동안 그는 大山文化財團 創作基金(延邊엄마), 서울문화財團 文學創作基金, 두산 軟鋼藝術尙, 斗山아트센터 ’創作者育成프로그램‘ 支援作家, 東亞演劇賞 戱曲賞(木蘭언니), 大韓民國演劇對象 作品賞(木蘭언니), 차범석 戱曲賞(썬샤인의 戰士들) 等을 受賞했다).

그가 말한 ’革命的인 作品‘李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그는 4月 1日 斗山아트센터에서 ’木蘭언니‘의 再公演이 끝난 뒤 觀客과의 對話 時間에서 거칠게나마 다음 作品의 構想을 밝혔다.

“政治에서 和合을 말하지만 잘 느껴지지 않는다. 藝術에서 먼저 始作해야 할 것 같다. 우리가 입은 만만찮은 傷處와 龜裂을 따뜻하고 進取的인 스케일로 表現하고 싶다. 하나는 滿洲벌판, 美 大陸 等에서 돈키호테처럼 獨立運動하는 人物이 떠오르고, 다른 하나는 씨앗 하나가 큰 나무로 자라나는, 雜草 같은 人物이 떠오른다. 하나는 視野를 멀리 두는 것이고, 하나는 顯微鏡으로 보는 것이다. 너무 政治的인 것은 이제 지겹다.” 實際로 그런 作品이 나온다면, 그의 作品 世界는 2期로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김은성은 “앞으로는 臺本을 아끼겠다”는 말도 했다. 只今까지 그의 作品은 主로 전인철, 不새롬이 演出했다. 부새롬과는 2011年 ’달나라冬柏꽃‘이라는 劇團을 만들어 共同代表를 맡고 있다. 實質的 劇團 運營은 不새롬이 맡고 있고, ’邊두리 氣質‘李 있는 그는 主로 뒤에서 企劃을 한단다.

“앞으로는 어떤 演出家를 想定하고 글을 쓰거나, 아니면 서너 名의 演出家가 完成 臺本을 보고 서로 ’너무 너무 하고 싶다‘고 말할 程度의 作品을 쓰고 싶다. 그러려면 나도 正말 熱心히, 재미있게 써서 臺本을 뜨겁게 對하는 演出家에게 줘야 할 것이다.”

그가 演劇에 對해 갖고 있는 생각은 複雜하다.

于先 마이너 리그라는 것은 認定한다. 그가 自身을 아직도 無名作家라고 부르는 理由다.

“설과 秋夕에 家族들을 만나는데 그때마다 내가 하는 일이 世上 사람들이 關心을 두는 일은 아니구나 하는 것을 느낀다(가족들이 ’썬샤인의 戰士들‘은 ’太陽의 後裔‘ 같은 거냐고 물어본 적도 있다고 한다). 얼마 前 처음으로 美國에 갔다 왔는데 同胞들의 關心은 온통 ’도깨비‘라는 드라마였다. 그걸 쓴 作家가 마침 내 이름과 비슷한 김은숙 氏였다. 演劇과 드라마는 다른 價値를 가진, 다른 장르라고 慰安을 하면서도 가슴이 아팠다. 속으로 ’너는 왜 何必 戱曲을 쓰기 始作했니‘라고 물을 때도 있다.”

그러나 演劇의 可能性도 否認하지 않는다.

“演劇이란 장르는 이 時代에 人氣를 얻지 못하고 있다. 돈이 안 된다는 말이다. 逆說的으로 獨立的인 藝術이다. 눈치 안 보고 팍팍 쓸 수 있다. 좀더 거칠게 쓸 수도 있고, 憫惘하게 왜 그런 얘기를 꺼내, 하는 테마까지도 쓸 수 있는 適當한 裝置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못해서 人氣가 없는 게 아니라, 다른 장르와 다를 뿐이다. 마이너라고 초라하게 생각할 게 아니라, 마이너이기에 할 수 있는 것도 있다고 생각한다.”
2012년에 공연한 ‘목란언니’에서 탈북자인 주인공 조목란(가운데)이 북한으로 돌아가기 위해 브로커와 만나는 장면이다. 그는 속아서 북한으로 가지 못하고 결국은 중국으로 팔려가는 신세가 된다. 아래에 앉아 있는 아이는 조목란과 이름이 같은 ‘유목란’이라는 열 살짜리 탈북 아동이다. 같은 이름을 붙인 것은 유목란이 조목란과 같은 나이가 됐을 때 한국은 그대로인지, 아니면 변했는지를 묻기 위한 것이라고 김은성은 말한다. 두산아트센터 제공
2012年에 公演한 ‘木蘭언니’에서 脫北者인 主人公 조목란(가운데)李 北韓으로 돌아가기 위해 브로커와 만나는 場面이다. 그는 속아서 北韓으로 가지 못하고 結局은 中國으로 팔려가는 身世가 된다. 아래에 앉아 있는 아이는 조목란과 이름이 같은 ‘遊牧란’이라는 열 살짜리 脫北 兒童이다. 같은 이름을 붙인 것은 有목란이 조목란과 같은 나이가 됐을 때 韓國은 그대로인지, 아니면 變했는지를 묻기 위한 것이라고 김은성은 말한다. 斗山아트센터 提供

이 말에서 나는 그가 主題意識을 剛하게 내 보이는 理由를 斟酌한다. 그는 演劇이라는 장르를 어떻게 活用할지, 이 時代의 劇作家는 어떤 役割을 할지에 對해 분명한 立場을 갖고 있는 것이다.

“몇 番 만나 보지는 못했지만, 나의 精神的 멘토는 小說家 윤흥길 先生이다. 그를 보면서 힘든 歷史를 背景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넌지시 갈 길을 提示하는 것이 作家와 藝術家가 할일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劇作家가 됐다.”

그래서 그는 自身의 墓碑銘에 ’우리 歷史를 생생하게 살아온 사람들의 뜨거움을 재미있게 풀어낸 이야기꾼‘이라고 새겨지길 期待한다.

그에게 自身의 作品에서 가장 印象的인 臺詞를 꼽아달라고 했다. 딱히 없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있다. ’始動라사‘에서는 裁縫師의 스승이 말했다는 ’옷에는 指紋이 있어야 한다. 옷에는 事緣이 깃들어야 한다‘는 臺詞가, ’木蘭언니‘에서는 돈을 줄 테니 國會議員의 自敍傳을 小說처럼 써 달라는 注文에 小說家인 허태양이 “니들은 小說을 가질 수가 없어. 왜냐? 니들 人生에는 모티브가 없으니까”라고 외치는 場面이다.

’썬샤인의 戰士들‘에서는 스승인 송시춘이 小說家이자 主人公인 한승우에게 (숱하게 많은 悲劇과 曲折이 있었던 것은) ’니보고 쓰라고 氣란 기다. 니 作家 만들라고 그런 일들이 있었던 기다‘라고 하는 臺詞가 斷然 記憶에 남는다. 김은성은 “이 臺詞는 小說家 송기원 先生이 實際로 나에게 한 말에서 빌려왔다”고 말했다. 김은성의 外할머니는 寶城 場터에서 坐板을 열었는데 그 옆에서 장사하던 분이 바로 宋 先生의 어머니였다고 한다. 歲月이 흘러 全南 潭陽의 ’글을 낳는 집‘에서 宋 先生을 만났을 때 얘기를 나눠보니 宋 先生도 김은성의 집안 來歷을 어느 程度 알고 있었다고. 김은성이 술에 醉해 身世 恨歎을 하자 宋 先生이 “너보고 쓰라고 그랬나보다”라고 말했고, 그는 그 말을 ’썬샤인의 戰士들‘의 末尾에 집어넣었다.

나는 그의 作品들을 읽으며 김은성 特有의 장난氣를 여러 곳에서 發見했다. 그는 自身의 故鄕인 全南 寶城이나 아버지의 가게인 라사點을 作品의 背景으로 삼았다. ’函益‘과 ’썬샤인의 戰士들‘에는 高級膾감의 代表格으로 똑같이 요코하마 出身 廚房長이 내놓는 ’이시가리(줄가자미)‘를 등장시킨다. 또 ’썬샤인의 戰士들‘에 나오는 大事 中 一部는 ’뻘‘에서 가져왔고, ’函益‘에 나오는 햄릿 文庫判은 實際로 그가 入隊할 때 가져가 愛之重之하던 것이다. 그는 이런 것들을 一種의 ’寶物찾기‘라고 했다. 實際로 그런 것을 알아채 質問하는 觀客도 있다고 했다.

또 하나 注目하는 것은 모티브에 關한 이야기다. ’썬샤인의 戰士들‘에서는 누구나 알 수 있듯 죽은 者에게서 산 字로 傳達되는 ’手帖‘李 劇을 이끌어가는 重要한 모티브다. 手帖처럼 분명하지는 않지만 ’延邊엄마‘에서는 ’손手巾‘李 그렇다. 自身의 눈물을 닦기에도 힘든 복길순이 다른 사람에게 손手巾을 건네는 場面이 7番이나 나온다. 이 손手巾은 結局 배신당하는 善意의 象徵이 아닐까. ’木蘭언니‘에서는 조대자가 갖고 있는 쇠망치가 關心이다. 김은성은 이 망치에 對해 잘못된 産業化를 象徵하기도 하지만, 未來에 對한 期待도 들어있다고 說明했다.

심규선 기자
심규선 記者
김은성은 北韓學科를 다니다 劇作家가 됐다. 그 經驗은 ’延邊엄마‘와 ’木蘭언니‘에 投影됐을 것이다. 그의 進路 修正은 韓國 演劇界에는 잘 된 일이라는 것을 證明했다. 그가 더 큰 劇作家가 되려면 本人이 말하듯 스타일보다는 스토리에 더 穿鑿해야 하고, 技術보다는 靈魂에 더 置重해야 할 것이다. ’靈魂‘보다 더 高次元的인 이름이 ’哲學‘이라면 ’哲學‘道 가져와야 한다. 그가 正말로 成功했다고 할 수 있는 날? 그의 作品을 外國人 作家가 재창작하는 날로 定하면 어떨까. 그는 2012年에 펴낸 作品集 ’木蘭언니‘의 序文에 이렇게 썼다. “期必코 좋은 作家가 되고 싶다.”

(그의 主要 作品은 다음과 같다. ’죽도록죽도록‘ ’始動라사‘ ’순우三寸‘ ’찌질이新派劇‘ ’延邊엄마‘ ’달나라連續劇‘ ’木蘭언니‘ ’뻘‘ 로風贊流浪劇團’ ‘뺑뺑뺑’ ‘앞집아이’ ‘썬샤인의 戰士들’ ‘函益’ 等)

심규선 記者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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