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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라이프 마이 스타일]國內 唯一의 카운터테너 이철수氏|東亞日報

[마이 라이프 마이 스타일]國內 唯一의 카운터테너 이철수氏

  • 入力 1999年 12月 7日 18時 29分


▼이철수 <44·국내 유일의="" 카운터테너="">▼

난 女性音色을 가진 男性歌手다. 투박하고 텁텁하게 생긴 아저씨에게서 가늘고 고운 音이 나는 게 낯설은 것도 當然한 일. 이제껏 男性의 간들어진 목소리는 거세(去勢)한 男子의 ‘代名詞’였으니….

96年 大邱에서 國內 最初로 열린 카운터테너 獨唱會를 떠올리면 只今도 얼굴이 달아오른다. 첫 曲 카치니의 ‘아마릴리, 내사랑’의 첫 小節이 채 끝나기 前, 公演場은 술렁댔다. 앞자리에서 앉아 아예 ‘키득키득’하는 모습도 보였다. 到底히 안되겠다 싶어 노래를 멈췄다.

“카운터테너는 異常한 소리가 아닙니다. 正常的 成人 男性이라면 練習을 통해 누구나 낼 수 있는 소리예요. 外國에선 이미 普遍化돼 있어요.”

場內는 곧 平穩을 되찾았지만 後半部에 테너曲을 불러 내가‘완벽한 男子’임을 證明해야 했다.

▼偏見과 實在▼

事實 내가 카운터테너임을 公言한 뒤 맘苦生이 甚한 건 아내다. 내게 물어보면 될 것을 親知들이 아내에게만 살짝 “저 親舊, 異常없죠?”라며 疑惑의 눈길을 보내는 거다.

勿論 나도 쉽지만은 않았다. 2年 前 大學에서 ‘音樂의 理解’ 講義를 마친 뒤 “궁금한 內容 있으면 質問하세요”했더니 한 女學生이 警戒하는 눈빛으로 묻는 게 아닌가. “저, 子女는 있나요?”

아, 나를 게이 쯤으로 여긴 것이다….아들 尹(13)과 딸 姓은(12)이가 알게 된다면 참 憫惘한 일이다.

9月 國內 最初로 카운터테너 音盤을 냈을 때 慶北大 恩師도 “징그럽다”는 게 첫 反應이었다.

아무래도 映畫 ‘파리넬리’ 때문인 것 같다.사실 난, 파리넬리완 全혀 다르다. 아무리 좋은 소리를 얻을 수 있다해도 去勢가 前提條件이라면 絶對 選擇하지 않았을 거다. 카운터테너는 테너의 古音發聲을 내기 위해 假聲을 使用하다 內 可能性을 認定해준 恩師의 도움으로 91年부터 始作한 것인데.

▼꼴찌에게 喝采를▼

中學時節까지 成績은 거의 꼴찌를 맴돌았다. 또 級友들의 코피를 터뜨려 곧잘 “父母님 모시고 와”라는 말을 들어야했다. 그런 말썽꾸러기에게 中3 때 아버님이 癌으로 돌아가시자 다른 世上의 門이 열었다. 大學을 抛棄하고 夜間高校에 다니며 낮에는 派出所에서 淸掃와 심부름을 했다. 人生이란 참 妙한 것이다. 結局 그 夜間高校 德分에 聲樂家가 될 수 있었으니….

아, 고마우신 김용환 音樂先生님. 1學期 中間考査 實技試驗에서 내 實力을 看破한 뒤 3年 동안 土曜日마다 한 時間씩 個人레슨으로 大學을 ‘꿈꿀 수’ 있게 해주셨다. 結局 軍隊(軍樂隊)와 남의 집 벨도 누르지 못했던 冊外販員時節 等을 거쳐 82年 스물일곱의 나이로 경북대 藝術隊에 入學했다.

▼노래가 運命을 決定한다▼

좋은 테너는 힘차고 우렁차게 소리를 내질러야 한다. 파바로티는 ‘世上을 號令하듯’ 가슴을 쫘악 펴고 온몸에서 소리를 모아 뿜어내지 않는가.

그러나 카운터테너는 다르다. 抒情的인 音色을 위해 最大限 ‘操心操心’ 節制한다. 가슴과 목에 最大限 힘을 빼는 것은 勿論 上體를 조금 굽히고 順次的이고 부드러운 音의 連結을 위해 몸짓도 부드러워지는 거다.

事實 즐겨 부르는 노래는 생각과 生活을, 그리하여 人生까지 송두리채 바꿔버린다는 게 내 믿음이다. 마치 軍人이 軍歌를 부르며 씩씩한 軍人이 되고 基督敎人이 讚頌을 하며 信心을 기르듯…. 그래서 나는 靈魂을 울리는 맑은 소리를 내기로 決心했다. 카운터테너가 내게는 一種의 ‘社會淨化運動’인 셈이다.

〈整理〓이나연記者〉larosa@donga.com

▼카운터테너 이철수氏와 一問一答▼

▽Q(記者)〓왜 카운터테너를 選擇했나요?

▽A(李氏)〓國內에만도 數千名의 테너가 이름도 없이 사라져갑니다. 前 國內 最初의 카운터테너로 記憶될 것입니다. 또 카운터테너가 注目받는 것이 世界的 趨勢이기도 합니다.

▽Q〓練習方法과 練習時間은?

▽A〓有名한 카운터테너의 CD를 듣고 따라합니다. 初期엔 模倣이 最善의 學習입니다. 처음엔 1時間만 練習해도 쉰 목소리가 나 練習을 繼續할 수 없었습니다. 이젠 테너練習은 하지 않고 카운터테너만 每日 3∼4時間 練習합니다.

▽Q〓假聲을 많이 쓰면 喉頭癌에 걸릴 危險이 크다는데?

▽A〓담배를 피우는 것보다는 危險이 적습니다.

▽Q〓카운터테너를 始作한 뒤 삶이나 性格에서 달라진 點은 없는지요?

▽A〓달라진 點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이상스럽습니다.

▽Q〓카운터테너로서 아직은 不足한 點이 많다는 評價인데….

▽A〓첫 公演 때를 생각하면 只今도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석달 前보다도 소리가 完全히 달라졌다고 생각합니다.

▼카운터테너란 카스트라토와는 全혀 달라▼

國內에 잘 알려진 카운터테너 曲은 현대자동차 ‘베르나’의 廣告에 使用된 背景音樂. 獨逸의 안드레아스 숄이 作曲해 부른 ‘白蛤처럼 하얀’이다.

흔히 男性이 女性의 목소리로 노래할 땐 映畫 ‘파리넬리’에 登場했던 카스트라토를 떠올리지만 카스트라토와 카운터테너는 全혀 다르다.

카스트라토란 6∼8歲의 男子아이를 去勢해 變聲期를 거치지 않게 하는 것. 成人이 된 뒤에도 女性 소프라노처럼 眞性(眞聲)으로 노래한다. 그러나 카운터테너는 正常的으로 變性을 거친 男性이 假聲(假聲)만을 利用해 노래하는 것이다. 따라서 變成된 音聲과 假聲을 둘 다 낼 수 있다. 카스트라토가 ‘피아노’ 소리처럼 輕快하다면 카운터테너는 ‘파이프오르간’처럼 公明(共鳴)한다.

美國의 權威있는 音樂事典人 ‘Grove Dictionary’에 따르면 카운터테너는 14世紀 單性(單聲)音樂에서 多聲(多聲)音樂으로 發展할 때 테너(基本音)의 바로 위 聖父(聲部)로 처음 생겨났다. 卽 基本音에 ‘大寒(counter)’ 音이라는 뜻.

이에 비해 카스트라토는 敎會에선 男性만이 노래할 수 있도록 許諾한 카톨릭敎會의 傳統 때문에 생겨났다. 17世紀에 처음 登場한 以後 200餘年 동안 全盛期를 맞은 反面 카운터테너는 자연도태됐다. 그러다 20世紀 初 로마카톨릭 敎皇廳이 카스트라토를 公式 禁止시킨 뒤 카운터테너에 對한 關心이 다시 높아졌다.

國內에서도 19日 訪韓하는 日本의 요시카즈 메라의 ‘로망스’가 11月까지 約 2萬餘張이 팔려 클래식分野 單獨 아이템으로는 7位를 차지(미디어新나라 集計)할 만큼 固定팬이 急速히 擴散되고 있다.

〈이나연記者〉laros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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