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보통신대學校

한국정보통신대學校
Information and Communications University
한국정보통신대學校 大學本部
種類 私立
存在했던 期間 1998年~2009年 3月  ( 2009-03 )
總長 이혁재 (總長職務代行)
學校法人 韓國情報通信學院
國家 大韓民國
位置 大田廣域市 儒城區 門址로 193
웹사이트 http://www.icu.ac.kr/
Map 한국정보통신대學校의 位置

한국정보통신대學校 (韓國情報通信大學校, Information and Communications University)는 大韓民國 大田廣域市 大德硏究團地 內에 設立된 IT系列 特性化 大學이다. 情報通信部 및 多數의 IT關聯業體, ETRI 等의 主導로 만들어졌다. 情報通信部 長官이 理事長을 맡아왔으나 2007年 10月 에 理事職을 辭任하였다. 以後 2009年 3月 1日 , KAIST 와 統合되면서 KAIST-ICC 가 設立되었다.

本來는 韓國情報通信大學院大學校 로, 大學院 過程만 存在하였으나, 2002年 에 工學部와 IT經營學部 等 學部 課程을 設立하여 한국정보통신대學校 로 校名을 改正하였다. 學部生은 每年 120名 程度를 받아들였다.(공학부 90名, IT經營學部 30名) 大學院 外國人 比率은 10%를 훨씬 上廻하며, 學部는 과학고, 外國語高 等 特殊目的高 出身 學生이 折半을 넘게 차지했다. [1] 定時募集 의 境遇 大學修學能力試驗 에서 2個 領域 以上에서 1等級을 받은 學生에게 志願資格이 주어졌다(초기에는 全體等級 1等級이 支援 最小 資格이었다). 專攻 全科目은 英語로 進行되며, 1年 3學期制를 導入, 3年 早期卒業이 可能하다. 年次 以內의 學生에 한하여 全額 奬學金을 支援했다. 2006年 當時 學部生, 大學院生 總 學生數는 約 1500名 程度였다.

沿革 [ 編輯 ]

  • 1998年 韓國情報通信大學院大學校 個校
  • 2002年 한국정보통신대學校 로 校名 變更
  • 2009年 韓國科學技術院과 統合

ICU- KAIST 統合 [ 編輯 ]

2004年 監査院 情報通信部 의 ‘情報化勤勞事業 및 情報化促進基金 事業’에 對한 監査에서 國家機關 및 公共團體는 私立學校를 設立할 수 없음에도 不拘하고 情通部가 規定을 어기고 私立學校 形態의 ICU를 세워 基金의 一部를 運營費로 支援하는 不合理性을 보였다'며 私立大인 ICU가 國家 基金人 情報化勤勞事業 및 情報化促進基金에 依存해 設立되었다는 點이 衡平性에 어긋나며 不法行爲라고 指摘했다. [2] [3]

이에 한나라黨 金映宣 議員은 國會에서 꾸준히 問題를 提起하였다. 2007年 道 豫算案에는 KAIST와의 統合을 前提로 ICU에 對한 豫算支援을 國會에서 承認하였으나 2008年 道 豫算案의 ICU 國費 支援案은 企劃豫算處에서 全額削減되었다. [3] 이에 對한 解決策으로 特別法을 制定하거나, 引受希望者 等의 後援者를 求하거나, 韓國科學技術院 과의 統合하는 方案이 提示되었다. [4] 特別法 制定은 國會에서 反對로 힘든 形便이고, 引受希望者度 없는 實情이라, 韓國科學技術院 과의 統合方案이 唯一한 解決策의 하나로 떠올랐다. 當時 理事會에서는 거듭 決定을 演技하고 있었고 一部 理事陣과 總長이 統合에 反撥하였다. 虛 總長은 兩校 統合과 關聯, ICU 學部生의 96%가 KAIST와의 下向式 統合에 反對하고 있다는 內容을 담은 設問調査 結果를 理事會에 提出했다. [5] 또한 第17代 大統領職 引受委員會 의 政府組織 改編案은 兩 大學에 混亂을 加重시키고 있었다. [6] [7] [8] 한동안 統合 論議가 中斷되었으나, 2008年 4月 에 政府가 KAIST-ICU 統合이 이뤄진다면 그間 ICU에 支援해오던 每年 75億의 豫算을 3年間 支援하기로 約束하여 論議가 再開되었다. 2008年 5月 22日 , 統合에 關한 MOU가 交換되어 統合이 旣定事實化되었고, 2009年 1月 16日 에는 韓國科學技術員法 改正案이 國會를 通過하여 統合이 法的으로 可能하게 되었다. 2009年 3月 ICU는 KAIST와 合倂하여 KAIST ICC(IT Convergence Campus.KAIST 門址캠퍼스)로 바뀌었다. 統合 以後 旣存 ICU 工學部는 KAIST 情報科學技術大學 情報通信工學課로 變更되었으며, 旣存 ICU 工學部 在學生은 希望에 따라 KAIST 電算學科 또는 電氣및電子工學科로 前科가 可能했다.

  • 2007年 10月 5日 學部生 200餘名은 서울 情報通信部 建物 앞에서 早速한 統合을 促求하는 示威를 벌였다. 이들은 “ICU가 學校 正體性과 關聯해 法的·政治的 問題로 危機에 處해 있다”며 “學生과 學父母들은 KAIST와의 統合을 願하고 있지만 總長과 經營陣 等에 依해 推進되지 못하고 있다”고 主張했다. [9]
  • 2007年 10月 8日 이날 열린 理事會에 허운나 總長은 統合에 反對하며 總長職에서 辭任意思를 表明했다. [10]
  • 2008年 3月 27日 KAIST 서남표 總長이 'ICU의 要求가 過多해 統合이 어렵게 됐다'고 發表, ICU 混亂 加重 [11]
  • 2009年 3月 1日 KAIST에 統合되어 KAIST-ICC 設立 [12]

著名한 同門 [ 編輯 ]

같이 보기 [ 編輯 ]

各州 [ 編輯 ]

  1. “入試統計現況” . 2007年 7月 6日에 原本 文書 에서 保存된 文書 . 2007年 1月 28日에 確認함 .  
  2. 김권호 (2007年 4月 3日). “KAIST, ICU 統合 五里霧中” . 카이스트 타임즈 . 2007年 10月 8日에 確認함 .   [ 깨진 링크 ( 過去 內容 찾기 )]
  3. 이희택 (2007年 10月 10日). “ICU-카이스트 統合 可視化 觀測 優勢” . 중도일보 . 2007年 10月 10日에 確認함 .  
  4. 류현성 (2007年 9月 10日). “<인터뷰> 유영환 情報通信部 長官” . 聯合뉴스 . 2007年 10月 8日에 確認함 .  
  5. 김양우 (2007年 12月 4日). “ICU 統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카이스트 타임즈.  
  6. 김양수 (2008年 1月 30日). “ICU 와 KAIST 統合 '不透明 ' . 뉴시스通信社 . 2014年 11月 8日에 確認함 .   [ 깨진 링크 ( 過去 內容 찾기 )]
  7. 박희범 (2008年 2月 4日). “NASA와의 共同 硏究 協約 KAIST 總長 單獨 인터뷰” . 電子新聞 . 2008年 2月 4日에 確認함 .  
  8. “KAIST-ICU 統合論議 '헛바퀴' 政府組織改編案 따른 上級機關 通·廢合… 進路 不透明” . 忠淸타임즈. 2008年 1月 31日 . 2014年 11月 8日에 確認함 .  
  9. 노형일 (2007年 10月 6日). “ICU ‘KAIST 統合輿論’ 불 붙었다 學部生들, 情通部 決斷促求 大大的 上京集會” . 대전일보. 7面 . 2007年 10月 8日에 確認함 .   [ 깨진 링크 ( 過去 內容 찾기 )]
  10. 이희택 (2007年 10月 9日). “ICU 學生들 自退書...“KAIST와 統合을” 虛 總長 辭表… 正統 長官 理事會 不參 次期日程도 未知數” . 중도일보 . 2007年 10月 9日에 確認함 .  
  11. 신하영 (2008年 4月 3日). “KAIST-ICU 統合 물건너가나” . 韓國大學新聞 . 2008年 4月 3日에 確認함 .  
  12. 노형일 (2009年 3月 2日). “포토 - KAIST-ICU 統合大學 出帆 記念式” . 아시아經濟 . 2009年 3月 2日에 確認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