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회 文件 流出 事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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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회 文件 流出 事件 朴槿惠 政府 에서 정윤회 가 正式 職位가 없는 秘線 實勢로서 國政에 介入한다는 疑惑이 담긴 靑瓦臺 作成 文件이 世界日報 와 朴槿惠의 동생인 박지만 에게 流出된 事件이다.

2015年 1月 3日 檢察은 박관천 前 靑瓦臺 公職紀綱祕書官室 行政官을 大統領記錄物管理에관한법률위반, 公務上祕密漏泄, 公用書類隱匿, 誣告 嫌疑로 拘束起訴, 1月 5日 趙應天 前 靑瓦臺 公職紀綱祕書官을 大統領記錄物管理에관한법률위반, 公務上祕密漏泄 嫌疑로 不拘束 起訴, 서울警察廳 情報紛失 所屬 經緯 한○○를 방실侵入·搜索 및 公務上祕密漏泄 嫌疑로 不拘束 起訴했다. [1]

정윤회 文件은 靑瓦臺 公職紀綱祕書官室 行政官이었던 박관천에 依해 만들어졌고, 以後 流出되어 文件의 內容을 世界日報 가 報道하였다. [2] 이 文件은 정윤회 와 靑瓦臺 祕書官 等 10人이 每달 江南의 한 中食堂에서 모임을 가지며 國政 運營을 論議했다는 內容을 담고 있었으며, 이 文件의 內容을 調査한 靑瓦臺와 檢察은 이 文件이 虛僞라고 結論 내렸으며, 檢察은 趙應天 公職紀綱祕書官과 박관천 前 公職紀綱祕書官室 行政官에 依해 流出되었다며 두 사람을 起訴했다.

以後 2016年, 정윤회의 前 配偶者 최순실 이 國政에 介入했다는 朴槿惠-최순실 게이트 事件이 發生했다. 靑瓦臺가 이 疑惑을 報道한 世界日報 의 社長을 交替시킨 嫌疑는 朴槿惠 大統領 彈劾 訴追 事由에 包含되었다. [3]

世界日報 정윤회 文件 [ 編輯 ]

2014年 11月 28日 世界日報 의 김준모·조현일·박현준 記者는 <[單獨] 정윤회 ‘國政 介入’은 사실>이라는 記事를 내보내며 정윤회가 이재만 大統領祕書室 總務祕書官, 정호성 大統領祕書室 第1附屬祕書官, 안봉근 大統領祕書室 第2附屬祕書官 等 靑瓦臺 內部 人士 6名, 政治權에서 活動하는 靑瓦臺 外部 人士 4名 等과 서울 江南圈 中食堂과 日食집 等에서 만나 靑瓦臺 內部 動向과 朴槿惠 政府 動向을 論議한 것으로 把握됐다고 報道했다. 세계일보는 이같은 內容은 11月 27日 入手한 靑瓦臺 內部 文件에 따른 것이라고 하였다. [4] 이에 記事가 나온 11月 28日 이재만을 비롯한 大統領祕書室 祕書官, 行政官 8人은 虛僞事實 適時로 인한 名譽毁損罪로 세계일보 記者 等을 檢察에 告訴하였으며, 2014年 12月 3日 정윤회度 같은 理由로 檢察에 告訴하였다. [1]

세계일보가 入手한 靑瓦臺 文件에서는 江原道 洪川에 隱居 中인 정윤회가 每月 2回 上京하여 江南 J中食堂 等에서 안봉근, 김춘식 等으로부터 靑瓦臺 內部 動向, 政府 人士 動向 等을 報告받고 大統領의 國政 運營, 靑瓦臺 內部에 對한 自身의 意見 等을 안봉근에게 傳達하여 施行토록 하고 있다고 記載되었다. 또한 文件에서는 정윤회가 情報誌 關聯者들을 만나 情報流布를 하라고 指示하였으며, 정윤회가 參席하는 모임 場所와 時間에 對한 連絡과 準備는 모임의 막내인 김춘식이 擔當한다고 作成되었다. 그러나 檢察 調査에서 정윤회 및 다른 告訴人들은 서로 團體로든 個別的으로든 朴槿惠 政府 出帆 以後 만난 事實이 없고, 이재만, 정호성, 안봉근 外의 告訴人들은 정윤회와 全혀 모르는 사이라고 陳述하였다. 檢察은 文件 內容의 眞僞 與否를 糾明하기 위하여 文件에 記載된 J中食堂의 代表 및 支配人을 調査하고, J中食堂 前 支店의 豫約帳簿 等 關聯資料를 確保하여 分析하였다. 또한 檢察은 정윤회의 最近 1年間 通信內譯을 包含해 告訴人들의 業務用 및 本人 名義加入 携帶電話 全體에 對한 通信事實 資料를 回信받아 檢察 統合디지털證據分析시스템(IDEAS)을 利用하여 分析하였다. 檢察은 發信基地局 位置, 相互間 通信內譯, 通話相關關係 分析 等을 調査하였으며, 借名電話 使用 可能性도 點檢하였으나 정윤회는 이재만과 안봉근과 通話 時 本人 名義의 電話를 使用한 것으로 確認되었다. 搜査 結果 정윤회 및 告訴人 中 어느 누구도 J中食堂을 訪問한 事實이 없었고, 이재만과 안봉근이 시사저널 과 세계일보에 정윤회 關聯 報道가 나간 以後인 2014年 3月 24日 ~ 4月 3日 및 11月 24日 ~ 29日 정윤회와 收賄 通話한 것을 除外하고는 정윤회와 告訴人들間의 通話 事實이 全혀 없었다. 또한 發信基地局 位置上 정윤회와 告訴人 中 一部가 모임을 가졌다고 볼 만한 情況도 發見되지 않았으며, 發信地 通貨 內譯으로 볼 때 정윤회의 居住地가 서울이었던 것으로 判斷되며 洪川과 橫城에서 發信한 內譯은 1年間 總 4回에 不過하여 정윤회 文件 內容 中 ‘現在 江原道 洪川 隣近에서 隱居 中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는 部分도 虛僞 事實로 確認되었다. [1]

이와 같은 事實에 對해 文件 作成者인 박관천 大統領祕書室 公職紀綱祕書官室 行政官은 박동열 大田地方國稅廳長으로부터 들은 말을 그대로 文件에 記載하였다고 主張하였으며, 박동열은 ‘ 李貞鉉 이 다른 首席들과 사이가 좋지 않다, 金淇春 辭退설이 있다’는 지라시 內容과 國稅廳 人事에 對한 個人的 小會 等을 말했을 뿐 祕書室長 辭退說 流布 指示 等 정윤회의 言動은 言及한 적이 없다고 陳述하였다. 檢察 調査에서 정윤회가 大統領祕書室長 辭退를 指示하였다는 客觀的인 證據는 發見되지 않았다. [1]

文件 作成 經緯 [ 編輯 ]

박동열 大田地方國稅廳長에게 情報擔當 警察官, 個人事業者 等 6名이 '證券街 지라시'와 風聞을 傳達하였고, 趙應天 大統領祕書室 公職紀綱祕書官은 박관천 公職紀綱祕書官室 行政官에게 動向把握을 指示하였다. 이에 박관천은 박동열에게 關聯 事實을 確認하였고, 박관천은 박동열로부터 傳達받은 風聞과 情報를 誇張하고 追加하여 정윤회의 言動人 것처럼 作成한 뒤 趙應天에게 報告하였다. 檢察 調査에서 조응천은 2014年 末 무렵 大統領祕書室長 또는 대筒祕書室 民政首席祕書官으로부터 大統領祕書室長 辭退說의 經緯를 把握해보라는 指示를 받은 것으로 記憶한다고 主張했으나, 金淇春 大統領祕書室長은 어느 누구에게도 이 같은 指示를 한 事實이 없다고 告訴 代理人을 통해 陳述하였으며, 홍경식 前 民政首席祕書官 亦是 祕書室長으로부터 이런 指示를 받거나 自身이 趙應天에게 指示한 事實이 없다고 陳述하였다. [1]

關聯 事實 [ 編輯 ]

정윤회와 朴槿惠 [ 編輯 ]

정윤회는 1995年 최태민 의 5女 최순실 氏(1956年生)와 結婚했다가 1998年 부터 15代 國會議員 朴槿惠 候補 立法補佐官을 지냈다. 2002年 朴槿惠 議員이 한국미래연합 을 創黨한 後에는 總裁 祕書室長을 歷任했다. 2004年 박근혜 議員이 한나라黨 에 復黨한 後에는 公式 職銜이 없이 活動하였고, 2007年 한나라당 第17代 大統領候補 競選 時期 活動을 中斷하고, 朴槿惠 當時 候補와도 連絡을 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014年 中盤 최순실과 離婚하였다.

정윤회에 對해서 2007年 大選 當時 한나라당 競選 때부터 박근혜가 大統領이 되면 정윤회를 비롯한 최태민 一家가 職權을 濫用할지 모른다는 疑惑이 提起된 바 있다. [5] [6]

民主黨 안민석 議員은 2013年 열린 乘馬 國家代表 選拔戰에서 딸을 國家代表로 뽑히도록 하기 위해 乘馬協會에 壓力을 넣었다는 疑惑을 提起하였다. [7] 以後 2014年 3月 시사저널은 정윤회가 大統領의 동생 박지만 氏를 尾行했다는 疑惑을 提起하였었다.

2014年 4月 歲月號 沈沒 事故 發生 當日, 朴槿惠 大統領이 정윤회와 만났다는 主張을 산케이新聞 가토 다쓰야 서울支局長이 칼럼을 통해 提起하였다. 산케이신문의 報道 直後 韓國 保守團體에 依해 名譽毁損 嫌疑 等으로 서울中央地檢에 칼럼을 쓴 산케이신문 서울支局長 가토 다쓰야를 告發하였다. 以後, 서울中央地檢은 산케이신문의 主張이 事實無根이라고 結論 내리고, 虛僞事實 流布嫌疑 等으로 가토 다쓰야를 起訴하였다.

6月, 문창극 國務總理 候補者 波動 發生 時 朴智元 새政治民主聯合 議員이 '萬挽回'가 政權 實勢라는 疑惑을 提起하였다. '萬挽回'는 靑瓦臺 이재만 總務祕書官, 大統領 동생 박지만 氏, 정윤회 를 합쳐서 만든 造語이다. 또한, 정윤회가 서울高等學校를 卒業하였고, 서울高等學校를 卒業한 문창극 을 國務總理로 靑瓦臺에 推薦하였다는 疑惑이 提起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정윤회는 서울高 隣近의 보인상고 를 卒業한 것으로 밝혀졌다.

趙應天과 박관천 [ 編輯 ]

趙應天 殷 檢事로 在職하던 1993年 박지만의 痲藥 搜査 中 박지만을 알게 되었다. 2005年 辯護士로 開業해 金앤張에서 活動하던 조응천은 2011年 박근혜 캠프에 合流하면서 박지만을 다시 만나게 된다. 조응천은 朴槿惠의 大統領 當選 뒤 公職紀綱祕書官으로 任命되었고, 박관천은 이때 警察에서 派遣된 公職紀綱祕書官室 行政官이었다. 2014年 4月 2日과 4月 4日, 세계일보에 金品, 饗應을 받거나 勤務地 離脫, 公金 流用, 利敵 團體 加入 等의 非違를 저지른 10名의 行政官 中 大部分이 處罰 없이 元 所屬部處로 復歸했다는 記事가 나왔으며 [8] [9] , 이에 조응천은 文書 流出에 責任을 지고 公職紀綱祕書官職에서 辭任했다.

박관천은 2013年 4月 公職紀綱祕書官室 行政官으로 靑瓦臺에 派遣되기 前, 警察廳 知能犯罪搜査隊張으로 여러 賂物事件에서 成果를 올렸다. [10] 하지만 박관천은 2014年 3月, 1年도 채 안 되는 靑瓦臺 勤務를 마치고 警察로 復歸하였고, 復歸 後 昇進을 豫想하고 南山에 있는 情報紛失에 박스 등의 짐을 갖다 놨으나 期待가 挫折되자 이 짐을 自身의 勤務地인 서울 道峰警察署 情報課로 옮겼다.

各州 [ 編輯 ]

  1. 靑瓦臺 文件 關聯 事件 中間 搜査結果 (報告書). 서울중앙지방검찰청. 2015年 1月 5日. 2018年 3月 28日에 原本 文書 에서 保存된 文書 . 2018年 3月 28日에 確認함 .  
  2. “[單獨] 정윤회 ‘國政 介入’은 사실” . 《世界日報》. 2014年 11月 28日.  
  3. 박승주 (2016年 12月 9日). “[朴大統領 彈劾訴追 理由] 歲月號 對應 失敗·賂物收受” . 《 뉴스1 . 2016年 12月 10日에 確認함 .  
  4. 김준모·조현일·박현준 (2014年 11月 28日). “[單獨] 정윤회 ‘國政 介入’은 사실” . 《世界日報》.  
  5. “朴槿惠, '최태민 波紋'에 20億 損害賠償 請求” . 《프레시안》. 2007年 6月 18日.  
  6. “비선組織·財産形成 等 疑惑 잇따라” . 《한겨레》. 2013年 7月 21日.  
  7. ““정윤회가 乘馬協會 左之右之한다”” . 《시사저널》 (1277號). 2014年 4月 8日.  
  8. “[單獨] 靑瓦臺 行政官은 非理 '免責特權 ' . 《世界日報》. 조현일·김채연. 2014年 4月 2日.  
  9. “[單獨] 非理·利敵團體 加入한 靑職員 5名 더 있다” . 《世界日報》 조현일 . 2014年 4月 4日.  
  10. “첫 召喚된 박관천 警正은 누구?” . 《聯合뉴스TV》. 2014年 12月 4日.  

같이 보기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