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해종
(全海宗, 1919年 12月 21日
(
1919-12-21
)
~ 2018年 1月 5日
(
2018-01-05
)
)은 大韓民國
歷史學
者 兼
大學 敎授
이며
著述家
이다.
[1]
生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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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해종은
이기백
等과 함께 大韓民國 國史學 分野에서 "서강학派"를 主導한 韓國史學者 兼 동양사학자이다.
1919年 中華民國 萬藷芋 脂肪 옌볜 朝鮮族自治區 옌지
젠다오 區域
에서 獨立運動家
전성호
의 次男(둘째아들)으로 出生하였고 그 後 29歲 時節이던 1947年 서울대 史學科를 나온 以後 서울대 史學科 敎授로 在職하였으며 西洋畫家
長髮
[2]
畫伯 等의 勸誘를 받아 旣存의 프로테스탄트 長老會에서 로마 가톨릭으로 改宗하였으며 그 後 서강대 敎授職에 移職하였다. 以後 停年이 지나자 1985年에 서강대 名譽敎授가 되었다.
韓中(韓中)關係詞에 精通하였으며, 《韓中關係史 硏究》 · 《東亞(東亞)文化의 比較私的 硏究》 等의 著書를 펴내는 等의 業績을 남기면서 大韓民國의 東洋史 硏究 關聯 기틀을 다지고 歷史學의 水準을 끌어올렸다.
國民政府 時代 中華民國 滿洲 地方 지린 省 옌지 出生이지만 元來
大韓帝國
獨立運動家
집안의 後孫이기도 하였던 그는
韓國獨立黨
初級行政委員 時節
의친왕 李堈
(義親王 李堈) 當時 韓國獨立黨 最高委員 兼 前任顧問을 師傅(師父)이자 主君(主君)으로 섬기기도 하였다. 그 當時
의친왕
乙 主君이자 사부로 섬기는 等 함께했던 이들은
前在日
,
이오산
,
以上귀
,
김주로
,
전성호
,
구상본
,
전경찬
,
도상봉
,
이상오
,
김찬도
, 전해종,
서상교
等이다.
獨立運動家였던 祖父(
前在日
)와 父親(
전성호
)으로 인해 國家로부터 받은 遺族 支援金에 私財를 더해서 서울大學校 · 서강대학교 · 東洋史學會에 總 5億원의 "東洋史 硏究基金"을 寄贈 및 喜捨하였다.
또한 大韓民國 學術院賞, 용재 學術賞, 大韓民國 國民勳章 無窮花章 等을 받았다.
主要 經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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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7.06 ~ 1948.06 - 韓國獨立黨 初級行政委員
- 1960.05 ~ 1960.09 - 大韓民國 문교부 編修局 局長 兼 이사관
- 1966 ~ 1967 - 初代 東洋史學會 會長
- 1971 ~ 1973 - 第3代 東洋史學會 會長
- 1976.03 ~ 1999.02 - 國際世界歷史學術會議 大韓民國 委員會 委員長
- 1977.06 ~ 1985.02 - 大韓民國 國史編纂委員會 代表常任委원
學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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以外 履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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著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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單獨 著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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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韓國近世 對外關係 文獻요비》, 서울대학교출판부, 1964
- 《韓中關係史 硏究》, 일조각, 1970
- 《韓國과 東洋》, 지식산업사, 1972
- 《동아文化의 比較私的硏究》, 일조각, 1976
- 《歷史와 文化》, 일조각, 1976
- 《韓國과 中國》, 지식산업사, 1979
- 《동이전의 文獻的硏究》, 일조각, 1980
- 《東아시아史의 比較와 交流》, 지식산업사, 2000
共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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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本史》, 指紋角, 1964
- 《歷史의 理論과 敍述》, 서강대학교出版部, 1975
- 《中國의 天下思想》, 민음사, 1988
曆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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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 Schapiro, 《러시아의 將來》, 1957
- E. O. Reischauer and J. K. Fairbank, 《東洋文化史 (上)》, 을유문화사, 1964 (共譯)
- J. K. Fairbank , 《東洋文化史 (下)》, 을유문화사, 1969 (共譯)
- 黃宗羲, 《明夷待訪錄》, 三星문화문고, 1971
- 《中韓關係論집》, 北京社會科學出版社, 1997
各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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外部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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