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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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려
國籍 大韓民國
出生 1911年 8月 14日 ( 1911-08-14 )
日帝强占期 平安北道 龍川郡 양하면 입암리
死亡 1995年 12月 25日 ( 1995-12-25 ) (84歲)
大韓民國 서울特別市 中區 저동2街 인제대학교 서울白病院 [1]
職業 外科 醫師
醫學者
大學 敎授
著述家
經歷 고신대학교 醫科大學 招聘敎授
서울가톨릭대學校 醫科大學 外來敎授
子女 장가용 (次男)

장기려 (張起呂, 1911年 8月 14日 ~ 1995年 12月 25日 )는 大韓民國 外科 醫師 이다. 釜山복음병원 院長, 釜山청십자病院 名譽院長 等을 지냈다. 本貫은 安東 (安東).

經歷 [ 編輯 ]

一生과 業績 [ 編輯 ]

醫學 工夫 [ 編輯 ]

장기려는 1911年 平安北道 용천에서 아버지 장운섭과 어머니 최윤경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出生하였으며, 1928年 松都高普 를 卒業하고 1936年 경성의학전문학교 를 卒業하였고, 그 後 外科醫師 백인제 의 弟子로서 修鍊하였다. 當時 病院에 入院 中이던 小說家 春園 이광수 가 장기려를 알게 되어 小說 《사랑》 의 主人公 "安貧" 의 모델로 삼았다는 說이 有力하나, 장기려 自身은 春園이 創作한 小說 속의 人物이 아니라며 否認하였다. [2]

韓國 最初 肝癌 切除術 [ 編輯 ]

1932年 경성의학전문학교를 首席 卒業하고, 當代 最高의 外科醫師였던 백인제 敎授의 指導를 받아 外科學에 入門했다. 1936年까지 約 270件의 實驗에 바탕한 “蟲垂炎 및 蟲垂炎性 腹膜炎의 細菌學的 硏究”로, 1940年 나고야 帝國大學 에서 醫學博士 學位를 받았고, 1947年 平壤醫科大學 , 金日成綜合大學 의 外科 敎授를 지냈다. 1950年 12月 韓國動亂의 混亂 中에 妻子를 두고 次男 장가용 과 함께 越南하였고, 서울大學校 醫科大學 外科 敎授가 되었다. 1951年 1月 釜山 西區 암남동에 現 고신의료원의 前身인 복음병원을 세워 避難民 等 가난한 사람을 無料診療하면서 1976年 6月까지 25年間 복음病院 院長으로서 仁術을 베풀었다.

以後 韓國人에게 發病率이 매우 높은 肝癌으로 硏究를 넓혀 1943年 韓國 最初로 肝癌 患者의 肝癌 덩어리를 에서 떼어내는데 成功하였고, 1959年 에는 肝癌 患者의 間 大量切除術에 成功하였다. 後續 硏究로 ‘간내 血管 및 淡關係의 形態學的 硏究’를 비롯해 ‘肝 切除術의 節制段의 處置法’과 ‘肝硬變症視 간 節制의 限界 및 間의 急性 失調視 對象의 方法들에 關한 實驗’ 等을 進行했다. 이러한 硏究를 바탕으로 1959年 원발性肝癌에 對한 肝右挾切除手術(肝 大量 切除手術)에 成功했다. 以後에도 肝 硏究를 持續하여 1979年에는 20年間 韓國에서 實施된 189件의 間 大量 切除 手術醫 事例를 蒐集 및 分析하여 肝癌의 部位에 따라 手術法을 달리하는 方法을 開發하기도 했다.

1974年 韓國間硏究會 創立을 主導하여 初代會長을 맡았으며, 大韓民國 最初의 醫療 協同組合인 청십자 를 運營하기도 했고, 장미회 [3] 創設, 釜山 生命의 電話 設立, 障礙者再活協會 釜山支部 創立에도 앞장섰다.

醫療敎育 [ 編輯 ]

서울大, 釜山大, 가톨릭대 等 여러 醫科大學의 外科學 敎授로 在職하며 南北韓 醫療 人材 養成에도 貢獻했으며, 現在 大韓肝學會의 前身인 ‘韓國間硏究會’의 創立(1981)에도 寄與했다. 學問的 業績에 對한 功勞를 認定받아 1948年 北韓에서 國家學位授與委員會의 推薦에 따라 博士學位를 授與받은데 이어, 南韓에서는 1960年 保健의날 功勞賞과 1961年 大韓醫學協會 學術賞(大統領賞) 等을 受賞했다. 또한 그가 간 大量 切除術에 成功한 10月 20日은 '肝의 날'로 指定되어 그의 業績을 기리고 있으며, 2006年 科學技術人 名譽의 殿堂에 獻呈되었다.

奉仕活動 [ 編輯 ]

그는 最高의 實力을 갖춘 外科醫師였지만 平生 낮은 곳에서 淸貧한 삶을 살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仁術을 베푼 社會奉仕者였다. 1951年 福音診療所(現在의 고신대학교 복음병원)의 開設을 始作으로 청십자社會福祉會, 障礙者再活協會 等 各種 福祉團體를 세우고 1976年에는 청십자病院을 設立하여 疏外階層과 地域社會의 福祉增進에 獻身했다. 零細民과 障礙人들의 福祉 增進에도 心血을 기울여 醫療福祉事業, 就業 斡旋, 奬學事業, 託兒所 運營 等을 통해 障礙人들도 健全한 社會 一員으로서 삶을 누릴 수 있게 하는 等 一生동안 不遇한 이웃을 위해 몸소 사랑을 實踐했다. 特히, 가난한 患者를 救濟하기 위해 1968年 韓國 最初의 社說 醫療保險組合인 釜山 청십자醫療協同組合을 設立해 國內 最初의 醫療保險組合이자 現行 醫療保險制度의 嚆矢를 탄생시켰다. 1976年 청십자醫療원을 設立하였다.

基督敎 信仰에 基盤해 65年間 仁術을 베풀며 奉仕, 博愛, 無所有를 實踐했으며, 手術費가 없는 患者를 위해 自身의 돈으로 手術을 해주고, 그 마저 堪當할 수 없게 되면 밤에 몰래 患者를 脫出時키祈禱 했다. 平生 醫師로 일하면서 그는 "意思를 한 番도 못 보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爲해, 뒷山 바윗돌처럼 恒常 서 있는 醫師가 되겠다." 라는 名言을 남기기도 하였다. 1976年 國民勳章동백장을, 1979年 막사이사이상 (社會奉仕部門)을 받았으며, 1995年 世上을 떠나던 해에 人道主義 實踐 醫師 賞 等을 받았다. 平生 自己 집 한 채 가지지 않고 病院 屋上 舍宅에서 살았던 그는 1995年 12月 25日 聖誕節 새벽에 서울白病院에서 85歲를 一期로 世上을 떠났다.

墓地는 京畿道 마석의 모란공원 內에 있다. 1996年 에 國民勳章 無窮花腸이 追敍되었으며, 2006年 에는 " 科學技術人 名譽의 殿堂 "에 獻額되었다.

그는 現在까지 李永春 , 문창모 , 안영모 , 김찬우 , 이태석 , 안수현 等과 함께 " 韓國 슈바이처 "라 稱頌되고 있다.

宗敎 活動 [ 編輯 ]

장기려는 改新敎 長老敎 所屬 工大委員長(共同代表委員長) 이었지만, 無敎會主義 를 標榜하는 함석헌 , 김교신 等과 交際했으며, 32年間 無敎會主義 性格의 "釜山모임" 集會를 自身의 病院 社宅(舍宅)과 事務室에서 主管했으며, 無敎會主義 敎育機關인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後援會長을 맡기도 하였다. [4]

家族 關係 [ 編輯 ]

受賞 [ 編輯 ]

  • 保健의날 功勞賞 (釜山市長)
  • 大韓醫學協會 學術賞 (大統領賞)
  • 釜山市 第1回 先韓市民賞
  • 第4回 保健의날 國民勳章 동백장 (大統領)
  • 引渡場 金賞 (大韓赤十字社)
  • 라몬 막사이사이 社會奉仕上
  • 第23回 釜山市 文化相 (地域社會開發部門賞)
  • 國際라이온스 人道上
  • 人間常綠樹 (靑年地域社會開發상록회)
  • 第1回 호암상 , 社會奉仕部門 (삼성복지재단)
  • 자랑스러운 서울大人 上 (서울대학교 總長)
  • 第4回人道主義實踐義士賞 (人道主義實踐醫師協議會)
  • 재미韓國人醫師會 奉仕賞
  • 國民勳章 無窮花章 (大統領)
  • 科學技術人 名譽의 殿堂 獻額

特技 事項 [ 編輯 ]

  • 外科 專門醫 資格을 辭讓하고 平生 일반의로 奉職하였다.

著書 및 關聯書籍 [ 編輯 ]

  • 平和와 사랑 (규장문화사 : 1980. 10. 15)
  • 生命과 사랑 (규장문화사 : 1980. 02. 05)
  • 나의 回顧錄
  • 외길限平生 (奬學士 : 1981. 07. 20)
  • 할아버지 손은 藥손 (少年 한국일보 : 1992. 10. 01)
  • 外科學 (韓國外科學硏究所 : 1969. 08. 20)
  • 간醬 및 淡關係 疾患 (最新醫學社 : 1982. 02. 25)
  • 아름다운 사람 (문화문고 : 1998 12. 25)
  • 偉人傳記全集 - 韓國篇 장기려 (래더敎育 : 1997. 03. 22)
  • 《장기려 - 우리 곁에 살다간 聖者》, 김은식 知音, 이윤엽 그림, 봄나무
  • 장기려, 그 사람 》/지강유철 지음. 홍성사 , 2007年 2月 20日 發行

參考資料 [ 編輯 ]

大韓民國 科學技術有功者 홈페이지 [1]

韓國의 슈바이처 故 장기려 博士 [2]

語錄 [ 編輯 ]

2007年 發行된 장기려 評傳 《장기려, 그 사람》(지강유철 지음, 홍성사 )에는 장기려 醫學博士의 語源이 各州 內容과 같이 收錄되어 있다. [5]

各州 [ 編輯 ]

  1. 「韓國의 슈바이처」張起呂(장기려)博士 別世 , 東亞日報
  2. “나를 두고 《사랑》의 主人公 安貧의 모델이라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것은 事實과 좀 어긋나는 이야기가 아닌가 한다. ……春園이 入院하고 있었을 때 ……나는 개를 對象으로 胃와 알레르기에 對한 動物 實驗을 하고 있었는데 《사랑》 속에 安貧이 , 토끼 , 고양이 를 對象으로 해서 恐怖의 感情 實驗으로 ‘안피노톡神 第1號’를 發見했다는 句節이 있다든가, 安貧의 人間像에서 나를 聯想케 하는 點이 많다는 等의 理由로 同僚들 中에는 내가 安貧의 모델이라고 하는 이도 있지만……작품 人物들도 著者가 創造해 낸 人物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장기려, 그 사람》/지강유철 지음/홍성사,2007년 刊
  3. 癎疾患者 治療모임
  4. 뿐만 아니라, 國際 敎會改革 모임인 종들의 모임에서 活動했는데, 이는 " 宗敎 改革 " 과 같은 基督敎 系의 變革이 必要하다는 信念에 依한 것이다. [ 出處 必要 ]
  5. “나를 두고 《사랑》의 主人公 安貧의 모델이라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것은 事實과 좀 어긋나는 이야기가 아닌가 한다. ……春園이 入院하고 있었을 때 ……나는 개를 對象으로 胃와 알레르기에 對한 動物 實驗을 하고 있었는데 《사랑》 속에 安貧이 , 토끼 , 고양이 를 對象으로 해서 恐怖의 感情 實驗으로 ‘안피노톡神 第1號’를 發見했다는 句節이 있다든가, 安貧의 人間像에서 나를 聯想케 하는 點이 많다는 等의 理由로 同僚들 中에는 내가 安貧의 모델이라고 하는 이도 있지만……작품 人物들도 著者가 創造해 낸 人物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장기려, 그 사람》/지강유철 지음/홍성사,2007년 刊

같이 보기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