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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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란 (李廷鸞, 1529年 ~ 1600年 )은 朝鮮 中期의 文臣으로 壬辰倭亂 때 功을 세웠다.

本貫은 全義 , 字는 문보, 諡號는 충경으로 全北 全州 出身이다. 1568年 增廣文科에 兵科로 及第해 敎書精子, 咀嚼博士를 거쳐 成均館戰績을 지냈으나 사이가 안 좋은 정여립 의 排斥으로 해미 縣監, 양재찰房, 開城府道士 等을 지냈다.

1592年 壬辰倭亂 이 倭軍이 웅치 戰鬪 에서 官軍과 義兵을 무찌르고 全羅道 에 侵入하자 64歲의 老軀로 府民을 거느리고 全州城 을 지켰고 이 공으로 太常寺僉正에 올랐고 군기시정을 거쳐 水原 府使와 公州 牧師가 되었으나 賑恤과 農政이 허술하다는 理由로 罷職되었다.

1597年 丁酉再亂 때에는 倭軍이 全州城 을 包圍하여 큰 混亂이 일어나자 守城部長이 되어 全州城 을 지키다가 全州府尹이 죽자 全州府尹 兼 三道召募使로 除授되었다.

事後 全州 限界서원 에 配享되었고, 鎭安郡 마령면 에 祠宇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