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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年 11月
)
|
이정란
(李廷鸞,
1529年
~
1600年
)은
朝鮮
中期의 文臣으로
壬辰倭亂
때 功을 세웠다.
本貫은
全義
, 字는 문보, 諡號는 충경으로
全北
全州
出身이다.
1568年
增廣文科에 兵科로 及第해 敎書精子, 咀嚼博士를 거쳐 成均館戰績을 지냈으나 사이가 안 좋은
정여립
의 排斥으로
해미
縣監, 양재찰房, 開城府道士 等을 지냈다.
1592年
壬辰倭亂
이 倭軍이
웅치 戰鬪
에서 官軍과 義兵을 무찌르고
全羅道
에 侵入하자 64歲의 老軀로 府民을 거느리고
全州城
을 지켰고 이 공으로 太常寺僉正에 올랐고 군기시정을 거쳐
水原
府使와
公州
牧師가 되었으나 賑恤과 農政이 허술하다는 理由로 罷職되었다.
1597年
丁酉再亂
때에는 倭軍이
全州城
을 包圍하여 큰 混亂이 일어나자 守城部長이 되어
全州城
을 지키다가 全州府尹이 죽자 全州府尹 兼 三道召募使로 除授되었다.
事後
全州
의
限界서원
에 配享되었고,
鎭安郡
마령면
에 祠宇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