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성
(李敏成,
1973年
6月 23日
~ )은
大韓民國
의 隱退한
蹴球
選手出身 蹴球 指導者이다. 國家代表 選手 時節 當時 포지션은
守備手
였다. 現在
大戰 하나 시티즌
의 監督을 맡고 있다.
槪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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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京畿道
시흥군
書面 出生으로
始興國民學校
,
문일中學校
,
문일高等學校
,
亞洲大學校
를 卒業했다. 外貌가
아랍人
을 닮았다고 하여 '下山'이라는 別名이 붙었다. 똑똑하다는 理由로 '民똘'이라는 愛稱을 附與하기도 하였다.
클럽 經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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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6年
釜山 大宇 로얄즈
에서 데뷔하여,
1997年 K-리그
優勝에 貢獻하였다.
1999年
常務
에 入隊해
2001年 6月
軍服務를 마치고
釜山 아이콘스
에 復歸하였고, 1年 再契約을 締結했다.
[1]
2003年
浦項 스틸러스
로 移籍하여,
[2]
守備型 미드필더를 맡으며
2004年 K-리그
準優勝에 貢獻하였다.
2005年
FC 서울
로 移籍하여
[3]
中央 守備手를 맡았고,
2006年
4月 8日
蔚山 현대 虎狼이
와의
K-리그
8라운드 競技에서 프로 通算 200競技 出場 記錄을 세웠다.
[4]
2007年
부터 守備型 미드필더로 포지션을 變更했다.
2007年
4月 4日
慶南 FC
와의 遠征競技에서 무릎 十字靭帶가 破裂되는 重傷을 입어 6個月間 競技에 뛸 수 없다는 診斷을 받았고,
[5]
3個月間
獨逸
에서 再活治療를 받다가 同年 7月에 歸國했다.
[6]
2008年 K-리그
準優勝에 貢獻하였고, 시즌이 끝난 뒤 隱退하였다.
[7]
2010年
부터
내셔널리그
에 參加하는
龍仁市廳 蹴球團
의 初代 監督
정광석
의 勸誘로
龍仁市廳
에 入團하여 플레잉코치로 活躍하게 되며 蹴球界에 復歸하여 1시즌間 活躍하였다.
國家代表팀 經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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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年
2月 19日
,
다이너스티컵
에서
中國
과의 競技로
A매치
데뷔戰을 치렀다. 以後,
1998年 FIFA 월드컵
과
2002年 FIFA 월드컵
等에 出戰했다.
國家代表
첫 得點은
1997年
9月 28日
도쿄 大捷
으로 알려진
日本
과의
1998年 FIFA 월드컵 아시아 地域 豫選
最終라운드로 이 競技에서 劇的인 逆轉골을 터뜨리며 大韓民國의 월드컵 4回 連續 本選 進出에 힘을 보탰다.
指導者 經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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龍仁市廳
에서 플레잉 코치 職을 맡으며 指導者 經歷을 始作하였다. 2012年엔
이장수
監督을 따라
광저우 헝다
에서 暫時 코치職을 맡았다. 같은 해 6月에
江原 FC
의 코치로 選任되며 "2006年부터 2008年까지 3年 間 FC 서울에서
이을용
코치와 함께 뛰었다"며 "當時의 因緣과 呼吸을 記憶하며 選手들을 熱心히 指導하고 싶다"고 밝혔다.
2013年부터 2014年까지
全南 드래곤즈
코치로 歷任하였다.
2015年부터
蔚山 현대
首席코치로 在任하다가 2016年 中 이장수 監督이 歷任中인
창춘 野타이
首席코치로 赴任하였다.
2018年 3月 5日,
김학범
監督이 이끄는
大韓民國 U-23 蹴球 國家代表팀
의 首席코치로 赴任하였다.
2021시즌을 앞두고
K리그2
의
大戰 하나 시티즌
의 監督으로 赴任했다.
[8]
經歷 目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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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經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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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家代表팀 經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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受賞 內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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個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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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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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家 代表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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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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參考 資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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各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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外部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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