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직
(李根直,
1903年
1月 12日
~
1964年
3月 16日
,
慶北
金泉
)은
日帝强占期
와
大韓民國
의 官僚이다.
生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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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日本
에 留學하여 法學을 工夫하였다.
1928年
에 大學을 卒業한 뒤
江原道
에서
朝鮮總督府
官吏로 勤務하였고, 日帝 强占期 末期인
1943年
에
平昌郡
수,
1944年
에
原州郡
手로 任命되었다.
1945年
에
太平洋 戰爭
이 終戰되고
美軍政
이 始作되면서 江原道 祕書課長 兼 鐵工課長으로 拔擢되어 그대로 關係에 머물렀다. 이듬해에는 江原道 鐵工部長, 上空國葬, 土木局長 等을 지냈으며, 大同建設株式會社라는 建設 企業을 運營하면서
1947年
에는 江原道商工會議所 副回頭를 맡기도 했다.
第1共和國
出帆 後인
1949年
에 江原道 産業局長과 內務局長을 지냈으며,
1950年
에는
서울市
産業局長으로 前任하였다.
1952年
에는
審計院
第2局長을 거쳐 副統領이던
이시영
의 祕書室長을 歷任하였다.
1955年
慶尙北道
知事,
1957年
內務部
長官,
1959年
農林部
長官에 올랐다.
第1共和國 末期에 內務部와 農林部 長官을 지낸 核心 閣僚 中 한 名이었다.
1960年
4·19 革命
으로 第1共和國이 崩壞했을 때,
3·15 不正選擧
關聯 嫌疑者로 指目되어 收監되었다. 이근직은 다른 國務委員들과 함께 票 造作을 論議했다는 嫌疑를 받았으나, 法廷에서 이를 否認하였다.
[1]
1964年
3月 16日
自宅에서 死亡했다.
[2]
2008年
에 發表된
民族問題硏究所의 친일인명사전 收錄豫定者 名單
中 官僚 部門에 包含되었다.
各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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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不正選擧 5回 公判 - 前國務委員 李根直·孫昌煥도 감표論議를 夫人”. 朝鮮日報. 1961年 8月 9日. 3面面.
- ↑
“前農林李根直氏”. 東亞日報. 1964年 3月 16日. 3面面.
參考 資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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