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헌수
(梁憲洙,
1816年
~
1888年
)는
朝鮮
말의 無信이었다. 本貫은
南原
, 號는
下車
(荷居)였다.
화서
李杭魯
의 弟子이자 勉庵
최익현
의 動機였다.
1848年
武科에 及第하여,
1865年
濟州목
紗를 지내며 고을을 잘 다스렸다.
1866年
江華島
에
프랑스
軍隊가 쳐들어오는
丙寅洋擾
가 일어나자 500名의 軍隊를 이끌고
鼎足山城
에 숨어있다가 프랑스 軍隊가 오자 一齊히 攻擊해 프랑스軍을 무찔렀다. 이 戰鬪에서 프랑스軍이 6名이 戰死하고 30名이 부상당하는 被害를 입고 물러났다.
다만 프랑스軍 記錄에선 丙寅洋擾中 프랑스軍의 被害는 3名의 戰死者와 35名의 負傷者로 記錄되어있다.
양헌수는 그 뒤
黃海道
兵馬節度使와 어영 大將 等을 지냈으며,
1876年
江華島 條約
이 締結되자 決死 反對했다.
1884年
共助
板書
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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