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카가 요시아키
(
日本語
:
足利義昭
덴分
6年
陰曆 11月 13日
(
1537年
12月 15日
) ~
게이初
2年
陰曆 8月 28日
(
1597年
10月 9日
))는
日本
무로마치 幕府
의 第15代 利子 마지막
쇼군
이다.
生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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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第12代 쇼군
아시카가 요시하루
의 次男으로 일찍이 出家하여
이치조人 가쿠케이
(
一?院?慶
)라는 法名을 받아 僧侶로 살고 있었으나, 兄이자 第13代 쇼군
아시카가 요시테루
가
마쓰나가 히社히데
에게 암살당하자,
호소카와 후지타카
等 幕府의 元老들의 도움을 받아
나라
로 脫出하여 몸을 숨겼다. 以後 還屬하여 요시아키(
義秋
)로 이름을 定했고, 제14대 쇼軍人
아시카가 요시히데
가 重病에 걸리자,
美露國
의 다이묘
오다 노부나가
의 도움으로 擁立되어
1568年
9月, 요시히데를 몰아내고 무로마치 幕府의 第15代
程頥大將軍
에 오른다.
그러나
오다 노부나가
는
天下抛무
(
天下布武
)의 旗幟를 내어걸고 日本 全國을 統一하려 하는 等 野心을 드러내자, 이를 警戒한 요시아키는
다케다 신겐
,
아사쿠라 要視카게
와 內應하여 노부나가 包圍網을 結成, 노부나가를 고립시킨다. 그러나 다케다 신겐이 죽은
1573年
, 이 包圍網은 急激하게 瓦解되었고 背後에 쇼軍人 요시아키가 있음을 알아챈 노부나가는 그의 權限을 정지시키고 그를 다시 僧侶로 출가시켰다. 以後 쇼山(
昌山
)이라는 法名을 出家하였으나 程頥大將軍의 官職을 아직 辭任하지 않았고 이는 노부나가가
아케치 미쓰히데
에게 죽은
魂露地의 便
이 일어난
1582年
以後에도 그랬다.
1588年
, 관백 兼 태정대신人
도요토미 히데요시
가 요시아키를 皇室의 姻戚에 準하는 待遇를 하는 地位인
準삼후
에 봉하자, 요시아키는 程頥大將軍 職을 비로소 辭任하였다. 그 後,
1597年
, 61歲를 一期로
오사카
에서 死亡하였다.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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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鳶島는 在任年度이다. 아시카가 요시키와 요시打네는 同一人이며, 아시카가 요시아키의 將軍으로서의 職權이 事實上 停止된 해는 1573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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