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弘 (新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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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弘
出生 1941年 2月 27日 ( 1941-02-27 )
日帝 强占期 慶尙北道 大邱
死亡 2019年 11月 9日 ( 2019-11-09 ) (78歲)
大韓民國 서울峨山病院
居住地 대한민국의 기 大韓民國 서울特別市
國籍 대한민국의 기 大韓民國
敎派 天主敎 (洗禮名 : 루카)
職業 宗敎人, 社會 運動家, 大學 敎授

朴弘 (朴弘, 1941年 2月 27日 ~ 2019年 11月 9日 [1] )은 大韓民國 의 敎育者이며 天主敎 예수회 所屬 聖職者이다. 天主敎 新婦로서 政治 關與 發言을 많이 했고, 서강대 總長을 지냈으며 反共主義 , 保守主義 性向의 言論人이기도 했다. 1994年 主思派 發言으로 話題가 되었다.

履歷 [ 編輯 ]

칼럼니스트로 間或 言論에 글을 寄稿하기도 했다. 1980年 代부터 運動圈 學生들과 論爭을 하였다.

1989年 부터 8年間 서강대학교 總長으로 在職하였다. [2] 1994年 서강대학교 總長으로 在職中, 主思派 關聯 發言으로 話題가 되었다. [3] 민주평통 諮問委員으로 宗敎分課委員長을 지냈으며, '主思派'發言 以後 警察官 2名이 그를 密着하며 身邊을 保護하기도 하였다. [4] 1997年 總長職에서 退任하였다. [5]

1997年 5月 박홍이 提訴되자 言論인 이도형 노재봉 , 辯護士 오제도 等 保守人士 70餘名이 後援會를 꾸렸는데 이때 當時 後援人團 代表를 맡았던 그는 '代表的인 反左翼人士인 朴 前 總長에 對한 彈壓을 물리치기 위해 後援會를 만들었다'고 說明하였다. [4]

論難 [ 編輯 ]

강기훈 遺書代筆事件 背後 發言 [ 編輯 ]

1991年 예수회 薄紅 神父(當時 서강대 總長)는 “只今 우리 社會에는 죽음을 煽動하는 어둠의 勢力이 있다”며 聖經위에 손을 올리고 記者會見을 벌이기도 했다. [6] [7] 薄紅 神父의 記者會見 以後부터 김기설 學生의 焚身 自殺에 背後가 있다는 報道가 言論에 塗褙질을 하기 始作했고, 강기훈 전민련 總務部長의 이름이 登場했다. 檢察과 警察은 合同으로 搜査本部를 꾸려 大大的인 公安몰이 搜査를 벌여 "강기훈 氏가 金 氏의 遺書를 代身 썼다"며 姜 氏를 拘束起訴했다. [8] 강기훈은 法院으로부터 目擊者 等 直接的인 證據도 없이 國科搜의 筆跡 鑑定結果와 情況에 따라 自殺幇助 및 國家保安法 違反으로 懲役 3年에 資格停止 1年 6月을 宣告받고 1994年 8月 17日 滿期 出所했으나 事件 發生 16年 만인 2007年 11月 13日 大韓民國 眞實和解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는 第58次 全員委員會 會議에서 ‘강기훈 遺書代筆 疑惑事件’에 對한 眞實糾明 決定을 내리고 國家의 謝過와 再審 等의 措置를 取할 것을 勸告했다. [6] 이에 따라 2012年 大法院의 再審이 開始되었으며, 2014年 2月 13日 再審 判決에서 서울高等法院은 當時 檢察이 提示한 筆跡 感情이 信憑性이 없으며, 遺書 代筆 및 自殺 幇助에 對해 無嫌疑·無罪로 재판결하였다. [9] [10] 이에 檢察이 判決에 不服하여 大法院에 上告하였고 2015年 5月14日 大法院은 檢察의 上告를 棄却하고 再審에서 강기훈의 無罪를 宣告한 原審을 確定했다. [11]

主思派 發言 [ 編輯 ]

1994年 大韓民國은 우루과이라운드 批准 問題로 큰 紅疫을 치렀다. 當時 農民과 大學生等은 우루과이라운드 가 通過되면 農家 沒落으로 이어진다며 激烈한 反對 示威를 벌였다. 學生과 農民들의 反對示威가 增幅되며 野黨까지 反對에 加勢하며 우루과이라운드 通過가 不透明해 보였다. [12] 그 때 예수회 薄紅 神父(當時 서강대 總長)가 7月 18日 " 우루과이라운드 反對 示威 背後에 主思派 가 있고 主思派 背後는 金正日이다"는 發言으로 世上을 놀라게 했다. [13] 薄紅 總長의 發言 以後 公安政局이 造成되며 우루과이라운드 反對 示威는 小康狀態에 접어들고 그해 12月 國會에서 WTO 批准案이 國會를 通過한다.

告解聖事 祕密漏泄 嫌疑 [ 編輯 ]

薄紅 總長의 '主思派 發言'으로 엄청난 社會的 波長이 運動圈 人士들은 薄紅 總長에게 根據를 대라며 追窮했다. 이에 對해 薄紅 總長은 "主思派 關聯 內容을 告解聖事 때 들은 內容"이라고 答했다. 이에 天主敎 正義具現全國聯合 金東周 共同議長 等 神도 6名이 薄紅 神父를 '告解聖事 祕密 漏泄 嫌疑'로 서울大敎區에 告發했다. 當時 서울大敎區 事務處長이었던 廉洙政 樞機卿은 事件 調査를 擔當했고 薄紅 總長에 對해 無嫌疑 處理했다. [14]

以外 活躍 [ 編輯 ]

超宗敎포럼 活動 [ 編輯 ]

改新敎界에서 最大 異端으로 指目하고 있는 統一敎 가 主軸이 된 韓國宗敎協議會는 超宗敎포럼을 만들어 每年 포럼을 開催하고 있다. 이 超宗敎포럼은 宗敎間 對話를 통해 宗敎間 統一을 摸索하는 곳이다. 이 포럼의 1代 招待 講師가 예수회의 薄紅神父다. [15] 以後에도 그는 이 超宗敎포럼에서 講演을 하며 꾸준한 活動을 하였다.

2000年代 以後 [ 編輯 ]

間或 言論에 칼럼을 寄稿하기도 한다.

같이 보기 [ 編輯 ]

各州 [ 編輯 ]

  1. “保管된 寫本” . 2019年 11月 9日에 原本 文書 에서 保存된 文書 . 2019年 11月 9日에 確認함 .  
  2. [西江大] 薄紅神父 總長 復歸 有力 :: 네이버 뉴스
  3. 1等新聞 대전일보 59年 正統言論
  4. “한겨레 21” . 2006年 2月 26日에 原本 文書 에서 保存된 文書 . 2008年 7月 31日에 確認함 .  
  5. 네이버 뉴스
  6. 政策弘報팀 (2007年 11月 13日). “강기훈 遺書代筆疑惑 事件 眞實糾明決定” . 眞實和解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 2012年 4月 29日에 確認함 .   [ 깨진 링크 ( 過去 內容 찾기 )]
  7. 全國民族民主遺家族協議會 拷問 박정기, 口述作家 송기역 (2012年 4月 5日). “靈安室서 김귀정 주검 지키며 警察 侵奪 맞서 / 박정기” . 한겨레 . 2012年 4月 29日에 確認함 .  
  8. “그들은 왜 遺書代筆事件을 만들었나?” (노컷뉴스) . 2015年 5月14日에 確認함 .  
  9.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9&aid=0003137599
  10.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2&aid=0002441789
  11. “‘遺書代筆 事件’ 강기훈氏 無罪…大法院, 上告 棄却” (경향신문) . 2015年 5月14日에 確認함 .  
  12. “大學街 運動圈 잇단 示威計劃, 公安當局 緊張” (聯合뉴스) . 1994年 4月9日에 確認함 .  
  13. “朴弘總長 "主思派背後는 金正日 " (聯合뉴스) . 1994年 7月18日에 確認함 .  
  14. <한겨레新聞>1994年 8月31日子 19面
  15. “朴弘 서강대理事長 "이 時代 葛藤 宗敎間 和解로 풀어야”” (세계일보) . 2005年 11月17日에 確認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