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숙 (籠球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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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숙
박찬숙(2008年)
센터
個人 情報
出生 1959年 6月 3日 ( 1959-06-03 ) (64歲)
大韓民國 慶尙南道 南海郡
國籍 大韓民國
190cm
몸무게 82kg
選手 經歷
高等學校 숭의女子高等學校
大學校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學校
프로 選手 經歷 1978~1985
클럽 經歷
選手
1978-1985 대한민국 태평양화학
1988 중화 타이베이 바이晋州바오
1992-1993 대한민국 태평양화학
國家代表팀
1975-1988 대한민국 大韓民國
指導者
1988 중화 타이베이 바이晋州바오 (플레잉코치)
1992-1993 대한민국 태평양화학 (코치)
1993-1996 대한민국 태평양화학 (플레잉코치)
1997 대한민국 염광女子中學校 (코치)
2005 대한민국 大韓民國
2006 대한민국 大韓民國 (코치)

박찬숙 (朴贊淑, 1959年 6月 3日 ~ )은 大韓民國 籠球 選手, 指導者이다. 現役 時節에는 國家代表 女子 籠球 選手였다. 포지션은 센터였다.

生涯 [ 編輯 ]

慶尙南道 南海郡 出生으로 崇義國民學校 5學年 때 籠球를 始作하여 1975年 숭의女子高等學校 1學年 在學 中 最年少 國家代表로 拔擢되었다. 1979年 서울 에서 열린 世界 女子 籠球 選手權 大會 에서 銀메달을 따는 데 決定的인 役割을 하는 等 以後 國家代表팀의 主戰 센터로 活躍했다.

1984年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에서는 準決勝戰에서 中國 을 꺾고 大韓民國 最初의 올림픽 球技 種目 銀메달을 獲得했다. 이듬해 暫時 隱退했다가 다시 復歸하여 1988年 서울 올림픽 에도 出戰했다.

所屬팀은 實業팀 태평양화학 이었으며, 現役 隱退 後에는 臺灣 의 蘭若플라스틱, 白金寶石에서 選手 生活을 했다. 태평양화학에서는 洪영순 , 홍혜란 等 숭의여고 先輩들과 함께 太平洋化學의 '無敵 艦隊' 時期를 이끌었다. 그는 女子 選手들이 結婚과 함께 일찍 隱退하던 時節에 海外에 進出했고, 國內에 復歸한 뒤에도 코치 兼 選手, 主婦 選手 等으로 늦게까지 選手 生活을 하면서 좋은 龜鑑이 되었다.

박찬숙은 1960年代에 活動한 박신자 와 함께 女子 籠球 選手로는 가장 有名했던 選手 中 하나로, 大韓民國 女子 籠球를 代表하는 人物이다. 그가 活躍하던 1970年代부터 1980年代까지 大韓民國 女子 籠球 國家代表팀 은 國際 大會에서 좋은 成跡을 거두었으며, 이는 長身에 柔軟性을 함께 갖춘 박찬숙이 本來 東洋 選手들이 脆弱하던 이 포지션에서 外國 選手들을 壓倒했기 때문이다.

1985年 現役에서 1次 隱退한 뒤에는 太平洋化學의 코치와 염광女中 코치를 지냈다. 2005年 마카오 에서 열린 東아시아 大會 에 國家代表 女子 籠球팀 監督으로, 2006年 中華民國에서 열린 윌리엄 존스컵 大會에는 코치로 參加했다.

出身 學校 [ 編輯 ]

家族 關係 [ 編輯 ]

딸은 치어리더 出身으로 放送人, 俳優로 生活하는 鉏驍名 (藝名:庶民서)이다. 아들은 DCM 모델로 데뷔 2015年부터 YG Kplus 所屬 모델이다. 이름은 西水原이다. 俳優로 데뷔하기 위해 演技 授業 中 軍入隊 하였다. 現在 陸軍 憲兵으로 入隊하여 軍 生活 中이다.

事件 [ 編輯 ]

2014年 乳房癌 手術로 籠球敎室 講義 를 못해 輸入이 줄어드어 債務 12億 7千萬원을 갚지 못하겠다며 法院 破産 · 免責 申請을 했으나, 돈을 빌려준 債權者 들은 박찬숙氏가 거짓 破産 申請을 했다며 法院에 異議를 提起했고, 法院 調査에서 박찬숙氏는 2013年∼2015年 다른 籠球敎室 講義를 하며 月 200萬∼300萬원을 벌고 있었고 所得을 숨기고자 月給을 딸의 計座 로 入金 받아 숨긴 事實이 드러나서 法院은 박찬숙氏의 破産·免責 申請에 不許可 決定을 내렸다. [1] 그러나 박찬숙은 不服해 抗告 하였고 서울中央地法 은 抗告審에서 不許可 決定을 내린 1審을 깨고 2016年 12月 16日 許可 決定을 내렸다. [2]

經歷 [ 編輯 ]

放送 出演 [ 編輯 ]

家族 關係 [ 編輯 ]

  • 配偶者 : 서재석 ( ~ 2009年)
    • 딸 : 庶民서 (改名 以前 鉏驍名) (1986年 5月 22日 ~ )
    • 아들 : 서수원 (1996年 ~ )

各州 [ 編輯 ]

參考 文獻 [ 編輯 ]

배한성 (인터뷰), 박길자 (整理) (2007年 12月 10日). " 女프로籠球 10年間 女指導者 없는 건 構造的 問題" - <배한성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 韓國籠球 100年史를 빛낸 籠球人, 박찬숙” . 노컷뉴스 . 2007年 12月 15日에 確認함 .  

外部 링크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