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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出生
| 1929年 10月 25日
(
1929-10-25
)
全羅北道
扶安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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死亡
| 2014年 2月 4日
(
2014-02-04
)
(84歲)
서울特別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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性別
| 男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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活動 期間
| 1952年 ~ 2014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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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권상
(朴權相,
1929年
10月 25日
~
2014年
2月 4日
)은
大韓民國
의 言論人이다. 第12·13代 KBS 社長을 歷任하였다.
學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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握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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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羅北道
扶安郡
에서 태어났으며
全州高等學校
와
서울大學校
英語英文學科를 卒業하고,
1952年
合同通信
記者로 言論界에 발을 들였다. 이 後 世界通信 政治部長(
1957年
),
韓國日報
論說委員(
1960年
),
東亞日報
論說委員(
1962年
)을 거쳐
1971年
부터
1973年
까지 동아일보 編輯局長으로 就任했다.
1980年
에
第5共和國
이 斷行한
言論統廢合
으로 인해 强制解職되었고, 이 後 海外에서 硏究院 生活을 하다가
1989年
에 週刊誌 《
시사저널
》의 主筆로 言論에 復歸했다. 1998年
國民의 政府
出帆 以後
한국방송공사
社長으로 就任했다가 2003年에 任期를 1年 앞두고 退職했다.
1988年
에
第6共和國
이 그에게 KBS 理事職을 勸誘했으나 이를 辭讓하고 新生言論 《시사저널》의 主筆에 就任한 것이나, KBS 社長 時節에 保守勢力의 反撥에도 不拘하고
第1共和國
,
第3共和國
,
第4共和國
,
第5共和國
을 批判하는 歷史關聯 프로그램을 放送하도록 한 것 때문에 剛直한 言論人의 典型으로 불리는 사람이다.
한국언론재단과 韋菴 張志淵 先生 記念事業會 會長을 歷任했으며, 오랜 鬪病으로
2014年
2月 4日
午前, 別世했다. 享年 86歲. 夫人은 최규엽이다.
[1]
各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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外部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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