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峨嵯山
入口의 溫達과 平岡公主 銅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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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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溫達(溫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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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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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溫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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別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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未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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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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未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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出生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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未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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出生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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未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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死亡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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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0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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死亡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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未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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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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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句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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配偶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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平康公主
(平崗公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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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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未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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宗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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未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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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달
(溫達, ?~
590年
)은
高句麗
(高句麗)의
무신
(武臣)으로 第25代
太王
(太王)
평원왕
(平原王)의
駙馬
(駙馬)이다.
平康公主
(平崗公主)와는 溫達說話(溫達說話)로 널리 알려져 있다.
生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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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이 苟且하여 求乞로 母親을 奉養했고 남루한 옷차림으로 거리를 다녀서 '바보 溫達'로 불리었다.
뒤에
평원왕
(平原王)의 反對를 무릅쓰고 溫達을 찾아온
平康公主
(平岡公主)와 婚姻하고 學問과 武藝를 익히고 해마다
陰曆 3月 3日
(
三짇날
)에 열리는 사냥 大會에 參加하여 좋은 成跡을 올렸다.
北周
(北周, 557年 ~ 581年)의
無題
(武帝)가
高句麗
에 侵入하자 溫達이 앞장서서 나아가 크게 이겼으므로 第1의 專攻者가 되고
大型
(大兄) 爵位를 받았다.
영양왕
(?陽王)
[1]
卽位年(
590年
)
新羅
에게 빼앗긴
漢江
以北의 땅을 收復하고자 出戰하였으나
아單性
(阿旦城)에서 新羅 軍士들이 쏜 화살이 溫達을 맞춰 아單性에서 戰死하였다.
傳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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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溫達說話'는 平民의 身分으로 公主를 아내로 맞이하여 駙馬에 오르고 武裝으로 이름을 떨친 溫達將軍의 人物說話이며 歷史上 實存人物을 다루었기 때문에 歷史說話라고도 할 수 있다. 英雄傳說의 一般的인 構造처럼 溫達의 죽음으로써 이야기의 結末을 맺는다. 바보溫達로 口傳되는 人物傳說은
江華島
一帶와 中部地方에서 主로 傳承되며, 葛藤構造上 同一 類型으로 把握되는 쫓겨난 딸과 숯구이總角에 얽힌
民譚
은 全國的인 分布를 이루고 있다.
家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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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 :
蜂聲 溫氏
(金溝 溫氏)
- 丈人 :
평원왕
(平原王)
- 아들 : 온軍(溫軍)
- 孫子(推定) :
온沙門
(溫沙門)
溫達이 登場한 作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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外部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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參考 文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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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三國史記』 卷45, 「列傳」5, 溫達
- 朝鮮上古史
第 9篇, 高句麗의 新羅에 對한 侵略과 바보 溫達의 戰死
- 平康, 高句麗의 어머니, 2018年, 洪男權, 온하루出版社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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各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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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三國史記
에는 兩强王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24代 王인
양원왕
이어서 時間 上 맞지 않는다. 그런데 《
三國史節要
》 卷7의 590(庚戌)年條에는 "이 때에 이르러 太子 원(元)李 王位를 이어 받으니….”라고 되어 있다. 太子 원(元)은
영양왕
을 가리킨다. 그래서 영양왕이 맞는 것으로 보고 있다.
外部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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