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다이라 다다나오
(
日本語
:
松平忠直
,
1595年
7月 16日
(
分路쿠
4年
陰曆 6月 10日
) -
1650年
10月 5日
(
게이안
3年
陰曆 9月 10日
))는
에도 時代
初期의
다이묘
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의 庶子
유키 히데야스
의 長男으로,
후쿠이番
第2代 번주이다.
生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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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95年
(
分路쿠
4年) 出生하였다. 아버지는
유키 히데야스
, 어머니는 유키 히데야스의 側室 나카가와氏(中川氏)이다.
1607年
(
게이初
12年) 아버지 유키 히데야스가 死亡하자 12歲의 나이에
에치젠
(越前)
후쿠이番
75萬 席의 다이묘가 되었다.
1611年
(
게이初
16年) 16歲 때 叔父이자 2代 쇼군
도쿠가와 히데타다
(?川秀忠)의 3女
가쓰히메
(勝?)를 正室로 맞아들였다.
1614年
(게이初 19年)
오사카 戰鬪
에 參與하였다. 첫 戰爭인 오사카 겨울 戰鬪(大坂冬の陣)에서는 軍卒들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장수로서 未熟한 모습을 보여 할아버지인
도쿠가와 이에야스
에게 꾸지람을 들었으나, 이듬해 오사카 여름 戰鬪(大坂夏の陣) 때에는 도요토미 側의 장수인
사나다 노부시게
等을 죽이고
오사카城
에 第一 먼저 入城하는 等 功을 세웠다.
그러나 戰爭이 끝난 뒤 論功行賞에 不滿을 품으면서 漸次 幕府에 對해 反抗的인 態度를 보였다.
1621年
(
겐나
7年)에는 病을 핑계로
에도
로의
참근交代
義務를 게을리하였고
[1]
,
1622年
(겐나 8年)에는 쇼군의 딸이자 自身의 아내인 가쓰히메의 殺害를 企劃하였다 摘發되었으며, 軍事를 調鍊하고 家臣들을 理由 없이 罰주는 等 紀行을 거듭하였다. 結局
1623年
(
겐나
9年) 쇼군 히데타다에 依해 隱居를 命令받고 동생
다다마사
에게 다이묘 職을 물려준 뒤 出家하였다.
1650年
享年 56歲로 死亡하였다.
子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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各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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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후쿠이 地方의 鄕土 資料인 『片聾記』에 따르면 銀賞에 對한 不滿에서 비롯된 핑계가 아니라 實際로 病을 앓았었다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