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일 (通譯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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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일
金鮮一
出生 1970年 9月 13日 ( 1970-09-13 )
大韓民國 釜山廣域市
死亡 2004年 6月 22日 ( 2004-06-22 ) (33歲)
이라크 이라크 안바르 週 팔루자
死因 武裝團體 에 依한 被殺
性別 男性
國籍 대한민국의 기 大韓民國
學歷 韓國外國語大學校 아랍語科 (學事)
職業 通譯士
宗敎 改新敎 ( 예장合同 )
父母 김종규(簿), 우금순(某)

김선일 (金鮮一, 1970年 9月 13日 - 2004年 6月 22日 )은 週 이라크 美軍과 去來하는 業體인 株式會社 가나貿易 所屬으로 이라크 現地에서 勤務하는 通譯士 였다.

生涯 [ 編輯 ]

그는 誠心外國語專門大學 을 卒業해 專門學士 學位를 딴 뒤 大學 學歷認定 各種學校였던 釜山신學校 를 卒業하고, 以後 韓國外國語大學校 에 編入하여 아랍語 를 專攻하여 2003年 2月 學士學位를 받았다. 그는 가나貿易 에 就職하여 2003年 6月 15日에 이라크로 갔다.

2004年 5月 30日 , 이라크 首都 바그다드 에서 西쪽으로 50킬로미터 떨어진 팔루자 附近에서 아부 무사브 알자르카위 가 이끄는 이슬람敎 系列 武裝 團體인 唯一神과 聖戰 (現在의 이슬람 國家 )의 人質로 拉致되었다. 이 團體는 자이툰 部隊 派兵國인 大韓民國 政府 에게 이라크 로의 追加 派兵 中斷 및 現在 駐屯하는 韓國軍을 卽刻 撤收시키라고 脅迫하였고, 盧武鉉 政府가 派兵을 强行하자 6月 22日 에 그를 斬首 하였다. 뒤에 버려진 屍身은 美國軍에게 發見되어 美軍 輸送機로 쿠웨이트로 移送되었고, 以後 韓國으로 金 氏의 屍身이 送還되었다.

김선일의 아버지와 누나 等 遺家族 側近 4名은 大韓民國을 相對로 損害賠償 請求訴訟을 提起하였으나, 2007年 김선일의 被殺 過程에서 國家의 過失 또는 不法 行爲는 없었다는 原告 敗訴 判決이 내려졌다. [1]

家族 [ 編輯 ]

  • 아버지: 김종규(1935 ~ 2016年 12月)
  • 어머니: 우금순(1941 ~ 1978年)
  • 繼母 : 신명자
  • 누나 : 김향림, 김미정
  • 妹兄 : 정창우, 진경주

같이 보기 [ 編輯 ]

各州 [ 編輯 ]

  1. 백나리 記者 (2007年 12月 3日). “法院 "故 김선일氏 被殺, 國家 過失 없다 " . 聯合뉴스 . 2007年 12月 3日에 確認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