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희
(權喜,
1794年
~
1839年
9月 3日
)는
朝鮮
의
天主敎
迫害
때에
殉敎
한
韓國 天主敎
의
103位 成人
中에 한 사람이다.
洗禮名
은
바르바라
(Barbara)이다.
그女는
殉敎者
집안 사람이다. 그女는
이광헌 아우구스티노
의 夫人이며
이 阿伽陀
의 어머니이며
이광렬 요한
의 兄嫂이다.
生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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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희는 한 異敎徒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1817年
經에 그女의 男便과 함께
天主敎
信者가 되었다.
迫害
에도 不拘하고 그女는 危險을 무릅쓰고
앵베르
主敎
와
宣敎師
들에게 宿食을 提供해주었다. 또한 그女는 그 사람들이 그女의 집을
미사
및
成事
그리고
敎理
授業을 위한 모임 場所로 使用하도록 許諾해주었다.
1839年
己亥迫害
로
4月 7日
에 권희는 모든 家族과 함께
逮捕
되어
捕盜廳
과
刑曹
에서 여러 次例 酷毒한
拷問
을 받았다. 그女에게 있어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같이 逮捕된 그女의 16歲 된 딸과 보다 어린 아들이 悽慘한 拷問과 배고픔, 목마름 그리고 추위를 겪는 것을 보는 일이었다. 刑吏들은
法
에 刑曹에서 어린이들을
審問
하는 것이 禁止되어 있었다는 口實로, 拷問 中에 그女와 子息들을 再會케도 하며 그女에게 背敎를 强要했다. 얼마 後에 권희의 媤어머니와 아들은 釋放되었지만, 딸은 남아서 어머니와 함께 慘酷한 收監 生活과 拷問을 마저 견뎠다.
권희는 모든 誘惑과
刑罰
그리고 拷問을 견뎠으며 5個月 間의 獄苦 끝에
1839年
9月 3日
에
西小門
밖으로 끌려나가 다섯 名의 敎友들과 함께
斬首
되었다. 그女가
殉敎
의 榮冠을 썼을 때의 나이 46歲였다.
諡福 · 詩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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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희 바르바라는
1925年
7月 5日
에
로마
聖 베드로 廣場
에서
敎皇
비오 11歲
가 집전한 79位
[2]
諡福式
을 통해
福者
품에 올랐고,
[3]
1984年
5月 6日
에
서울特別市
汝矣島
에서
韓國 天主敎
創立 200周年을 記念하여 訪韓한
敎皇
요한 바오로 2歲
가 집전한
미사
中 이뤄진 103位
諡聖式
을 통해
成人
품에 올랐다.
參考 文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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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各州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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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