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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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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효원 (黃孝源, 1414年 ~ 1481年 )은 朝鮮(朝鮮) 文官(文官) 政治가(政治家) 是認(詩人) 利子 功臣(功臣)이다.

生涯 [ 編輯 ]

生涯 初期 [ 編輯 ]

그의 本館(貫鄕) 尙州(尙州) 이고 者(字) 는 自營(子永)이며 雅號(雅號) 는 所願(少原)이고 시호(詩號) 는 楊平(襄平)이며 1414年 京畿道 龍仁 에서 出生하였고 慶尙道 喪主 에서 暫時 幼年期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以後 京畿道 龍仁 에 다시 歸鄕하여 靑少年期를 지냈다.

家計 背景 [ 編輯 ]

그의 6大棗部 황석주(黃石柱)는 元 帝國 干涉期 高麗(元 帝國 干涉期 高麗) 時代 에 上柱國(上柱國)이라는 官職 을 지낸 豪族(豪族) 이다.

아울러 그의 親祖父 황을구(黃乙耉)는 高麗(高麗) 時代 末期 成均館 講讀館(成均館 講讀官)을 지내었으며 高麗(高麗) 滅亡 以後에는 高麗(高麗) 時代 末期 의 贊成事(贊成事) 職位 前歷者 안익(安翊), 高麗(高麗) 時代 末期 의 成均館 敎授(成均館 敎授) 職位 前歷者 강인(姜茵)과 함께 官職을 잃고 各自 落鄕하여 野人 柚子(野人 儒者) 身世를 지내고 있다가 朝鮮(朝鮮) 時代 初期 三峯 鄭道傳(三峯 鄭道傳) 의 薦擧로 인하여 안익(安翊)·강인(姜茵)과 아울러 朝鮮 朝廷에 重用되어 世子侍講院 講讀館(世子侍講院 講讀官)이라는 官職(官職) 을 지내었다가 第1次 王子의 亂 이 일어나자 안익(安翊), 강인(姜茵)과 同伴 退出되어 以後 京畿道 龍仁 에 落鄕한 學行級 官僚 職位子(學行級 官僚 職位者) 이고 1414年 京畿道 龍仁 에서 황을구(黃乙耉)의 孫子이며 황사간(黃士幹)의 아들로 出生한 그는 어린 時節에 아버지 황사간(黃士幹)을 여의고 祖父 황을구(黃乙耉)의 嚴訓(嚴訓) 下에 자라며 慶尙道 喪主 에서 暫時 幼年期를 보내었다.

科擧에 及第한 以後의 一生 [ 編輯 ]

그는 朝鮮 世宗大王(朝鮮 世宗大王) 治世 時期였던 1441年 에 28歲의 나이로 式年 文科에 壯元 及第를 하여 文宗(文宗) · 斷種(端宗) 賃金 時期에까지 中間級 官職을 지내었다가 以後 世祖(世祖) 때에는 功臣(功臣)에 책록되었고, 司憲府 大司憲, 六曹의 參判, 京畿,忠淸,江原道 觀察使, 個性有數, 漢城判尹, 兩館大提學,吏曹判書, 刑曹判書(工曹判書)를 거쳐 議政府 左贊成(議政府 左贊成)에까지 職位를 지낸 文官(文官) 이며 [朝鮮 成宗|成宗(成宗)]] 12年 1481年 에 享年 68歲로 下世하였다.

外部 링크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