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제동 住宅 火災 事故
는
2001年
3月 4日
3時 47分
서울特別市
西大門區
홍제1洞
의 多世帶住宅에서 放火로 인해 發生한
[2]
[3]
聯立建物 火災·崩壞 事故로
消防官
6名이 殉職하고 3名이 負傷을 입었다. 불을 낸 犯人은 求해달라고 要請한 집主人의 아들이었고 事故 現場에 있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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事故 原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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火災가 난 聯立建物은 골목에 位置하고 있었으며 不法駐車·占用으로 인해 當時 消防車輛이 裏面道路에 進入하기 힘든 構造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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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消防官들은 집主人의 아들이 火災 建物에서 脫出하지 못했다는 말을 듣고 火災現場에 進入했다가 4時 12分 建物이 崩壞되어 埋沒되었으나 建物主 等 8名은 이미 火災 直後 모두 脫出한 狀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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思考 結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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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場에 進入하였던 서울은평消防署(當時 서울西部消防署) 所屬 消防官 9名이 埋沒되어 6名의 殉職者와 3名의 負傷者를 낳았으며
2001年
3月 6日
서울市廳에서 永訣式이 擧行된 以後
國立大前賢充員
에 殉職者 全員 安葬되었다.
現在 서울特別市 서초구 所在 서울消防學校에 殉職者들에 對한 忠魂塔이 있고 恩平消防署에는 銅板을 세웠다.
影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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以後
2001年
3月 7日
釜山廣域市
연산동 빌딩火災로 消防官 1名이 殉職
[9]
하면서
義務消防隊
의 設置 契機가 되었고 事故 當時 消防官들이
防火服
이 아닌
防水服
(一種의 비옷)을 支給받고 있다는 點도 指摘되어 2番의 火災 事故 以後
防火服
이 支給되었다.
[10]
2012年
11月 國立大前賢充員에서 殉職한 消防官들을 이달의 顯忠人物로 指定하였으며
[11]
大韓民國 消防行政
을 批判하는 데 꾸준히 引用되고 있다.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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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4]
殉職者 名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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階級
은 殉職 當時의 階級이다. 以後 1階級 追敍되었다.
- 地方消防腸 박동규
- 地方消防校 김철홍
- 地方消防校 박상옥
- 地方消防校 김기석
- 地方消防士 장석찬
- 地方消防士 박준우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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各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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外部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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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韓民國의 火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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