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일수
(崔一秀,
1924年
6月 6日
~
1995年
4月 21日
)는
大韓民國
의
文學 評論家
이다. 本名은 傭男(龍男), 日數는 筆名이다.
生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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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年 6月 6日
全羅南道
木浦
에서 2男 中 長男으로 태어났다. 北郊公立尋常小學校(現在의
木浦北郊初等學校
)를 卒業한 것으로 推定되고,
목포상업학교
에 進學했지만 家庭 事情으로 卒業을 하지는 못했다. 1930年代 後半부터 木浦
용당동
에 살던 女性 作家
박화성
의 집에 드나들며 讀書에 耽溺했다. 以後 水利組合 等에 臨時職으로 일하면서 中等學校 卒業 資格
檢定考試
에 合格했다.
1954年 《
朝鮮日報
》 文化部 記者를 始作으로 1973年까지 《
서울新聞
》 文化部 次長, 企劃 委員,
韓國新聞倫理委員會
審議 委員 等을 歷任했다. 1955年 《조선일보》 新春文藝에 評論 <現代文學과 民族意識>李 當選되어 本格的으로 評論 活動을 始作했고, 1957年
現代文學賞
新人文學賞(評論 部門 1回)을 受賞했다.
1959年 9月
高原
,
장호
,
홍윤숙
,
新東엽
,
한재수
等과 ‘時劇硏究會’를 結成했고, 1962年 11月 ‘KBS예술극장’에 라디오 드라마 <기다리는 사람>, 1963年 2月 <同時 合格> 等의 臺本을 執筆했다. 그해 6月 ‘時劇硏究會’를 發展的으로 解體하고 ‘詩劇同人會’를 結成하여 10月에 舞踊 時 <焚身>을, 1966年 2月에는 申東曄의 作品 <그 입술에 파인 그늘>의 演出을 맡기도 했다.
1972年 그가 脚本을 쓴 <水神祭>가 ‘KBS舞臺’에서 드라마로 放映되었고, 1976年 첫 評論集 《現實의 文學》(螢雪出版社)을 出刊했다. 1977年부터 1988年까지 서울藝術專門大學에 出講했다. 1980年
韓國文學評論家協會
第2代 會長으로 就任했고, 1981年 著書 《獨立運動 叢書?學藝, 言論 鬪爭》을 執筆했다. 1983年 두 番째 評論集 《民族文學 新論》(동천사)을 펴냈고, 1993年 세 番째 評論集 《分斷 헐기와 固陋살期의 文學》(願방각)을 펴냈으며 自由文學賞을 받았다.
1995年 2月
膽道癌
判定을 받고 鬪病 生活을 하다 4月 21日
서울特別市
풍납동
의
서울중앙병원
에서 死亡했다.
[1]
各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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