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언위
(崔彦?,
868年
~
944年
)는
新羅
末期와
高麗
初期의 儒學者이고 文身(文臣) 兼
鄕歌
作家이자
限時
詩人이며
書藝家
이다.
兒名
(兒名)은
최신지
(崔愼之)이고
시호
(諡號)는 문영(文英)이며 本貫은
慶州
(慶州)이다.
生涯
[
編輯
]
新羅 末 나이 18살 때 唐나라에 留學하고, 禮部豺狼(禮部侍郞)
설정규
(薛廷珪)가 主管한 過去에 及第하였다. 當時
渤海
(渤海) 宰相(宰相)
오소도
(烏炤度)의 아들
오광찬
(烏光贊)도 같이 過去에 及第했다.
나이 42歲에 新羅로 돌아오자, 執事省시랑(執事省侍郞)·瑞書院學士(瑞書院學士)로 任命되었다.
高麗 太祖
가 나라를 세운 後 그가 온 家族을 거느리고 돌아오니, 太子師父(太子師傅)로 任命되고 文翰(文翰)의 任務를 맡았다. 宮垣(宮院)의 扁額을 지었다. 벼슬은 對象(大相)·元俸太學士(元鳳太學士)·한림원령(翰林院令)·平章事에 이르렀다.
944年(惠宗 元年)에 죽으니 나이가 77歲였다. 정광(政匡)으로 追贈되었다. 諡號는 문영(文英)이다.
家族 關係
[
編輯
]
아들은 최광윤(崔光胤), 최행귀(崔行歸), 최광원(崔光遠), 최행종(崔行宗)이다.
같이 보기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