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템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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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템플
캔터베리 大主敎
任期 始作 1942年
任期 終了 1944年
前任者 윌리엄 랭
後任者 제프리 피셔
誕生 1881年 10月 15日 ( 1881-10-15 )
死亡 1944年 10月 26日 ( 1944-10-26 ) (63歲)

윌리엄 템플 ( 英語 : Wiliam Temple , 1881年 10月 15日 ~ 1944年 10月 26日 )은 英國 聖公會 主敎 이다. 캔터베리 大主敎 로 司牧하였다.

生涯 [ 編輯 ]

學窓時節과 聖公會에서의 司牧 [ 編輯 ]

윌리엄 템플은 1881年 캔터베리 大主敎 프레더릭 템플 (Frederick Temple, 1821年 ~ 1902年 ) 主敎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럭비高等學校(Rugby School), 발리올 컬리지(Balliol College), 옥스퍼드 大學校 에서 受學하였고, 高全科目에서 두 次例 首席을 하였다. 옥스퍼드 퀸스칼리지(Queen's College)에서 1904年 부터 1910年 까지 哲學 分野 硏究院과 講師를 지냈으며, 1909年 司祭 敍品을 받았다. 1910年 에서 1914年 사이에 렙톤 스쿨(Repton School) 校長을 지냈으며, 1921年 敎區議會에서 맨체스터 敎區 主敎로 選出되었다. 1929年 에 요크(york)大敎區의 大主敎가 되었으며 1932年 부터 1933年 까지 人文學 講演인 기포드 講演 을 하였다.

業績 [ 編輯 ]

또한 1942年 에는 首席 랍비 였던 조셉 허츠(Joseph Hertz)와 함께 基督敎와 유대敎 委員會(the Council for Christians and Jews)를 設立하여 狂信的인 反유대主義 에 맞섰다. 템플은 1928年 炭鑛에서 일하는 勞動者 들과 資本家 勞動爭議가 일어나자 仲裁하려고 애쓰는 等 勞動階級 의 運動을 保護하였고, 富裕層들의 지나친 貪慾을 警戒하고 社會經濟的 脆弱階層들을 配慮하는 經濟 와 社會改革을 支持하였다. 勞動者 敎育 協議會(Workers' Educational Asso-ciation)의 初代 代表(1908~1924)로서 그는 英國 勞動黨 에 加入하였다. 그는 또한 敎會 一致 運動인 에큐메니컬 運動 에 參與, 1927年 로잔會議(the Lausanne Conference of 1927)에 參席하였고, 1937年 에딘버러 (Edinburgh)에 있었던 世界 敎會 協議會 (the World Conference of Churches)를 推進하는 데 一助하였다. 世界敎會協議會 信仰과 職制委員會에서 活動하기도 했다. 1944年 여름 그의 노르망디 訪問은 그로 하여금 中世 以後 처음으로 戰爭地域을 訪問한 캔터베리 大主敎 가 되게 하였다. 그는 켄트州의 '웨스트게이트-溫-市(Westgate-on-Sea)'에서 1944年 10月 26日에 別世하였다. 그의 屍身은 켄트주에 있는 체어링 火葬터(Charing Crematorium)에서 火葬 (火葬)으로 葬禮 를 치렀다. 그는 全 英國 敎會史에 걸쳐 化粧된 첫 캔터베리 大主敎가 되었으며 英國에서뿐만 아니라 基督敎人 들에게 큰 影響을 주었다. 그의 屍身을 火葬한 재는 캔터베리 大聖堂 코로나 南쪽에 묻혔다. 템플은 11世紀 後半에서 12世紀 初盤에 活躍한 神學者 안셀름 以後 가장 훌륭한 캔터베리 大主敎로 看做되기도 한다.

著書 [ 編輯 ]

名望있는 敎師이며 說敎 自認 윌리엄 템플 大主敎의 代表的인 著書는 《 基督敎人 의 市民社會的 責任》( Christianity and Social Order )( 1942年 ) [1] 이다. 그 冊은 聖公會 의 社會宣敎 卽, 基督敎 思想에 뿌리를 둔 社會參與와 戰爭 後 社會를 再建하는 데 對한 靈感을 주는 冊으로 卽 福祉國家 를 設計한 冊으로 많이 活用되었다. 그外 著書로는 《敎會와 國家》( Church and Nation , 1915年), 《人格的인 宗敎와 弟子로서의 삶》( Personal Religions and the Life of Fellowship , 1926年)", 《基督敎와 國家》( Christianity and the State , 1928年), 《自然, 人間 그리고 하느님》( Nature, Men and God , 1934年)", 《勞動없는 人間》( Men without Work , 1938年),《敎會의 展望》( The Church Looks Forward , 1944年)"가 있다. 그러나 그의 가장 力作은 最近에 出版된 聖書 主席 [2] 人 《요한 福音書 읽기》( 1945年 , 1952年 , 1985年 )이다. 案內書와 주석서로서 그것은 그 스스로 四福音서 에 있는 예수 說敎 와 예수戰勝(福音書 著者들이 執筆資料로 使用한 예수이야기.입에서 입으로 내려져온 口傳形態나 記錄된 文書形態로 傳承되었기 때문에, 예수傳承이라고 부른다.)를 깊이있게 調査하여 讀者들의 理解를 돕고 있다.

語錄 [ 編輯 ]

" 禮拜 는 우리 모든 自然的 性質의 하느님에 對한 順從이다. 그것은 그분의 거룩河心에 依해 일깨워지는 良心 이며, 그분의 眞理 로 자라는 마음의 兩分이며,그분의 아름다움에 依한 想像 의 淨化이며, 그분의 사랑 에 對한 마음 의 열림이며, 그분의 目的에 意志 를 純宗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驚歎 속에서 모아진 이 모든것들은 人間으로서의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偉大한 表現이다."

"Worship is the submission of all of our nature to God. It is the quickening of conscience by His holiness, nourishment of mind by His truth, purifying of imagination by His beauty, opening of the heart to His love, and submission of will to His purpose. And all this gathered up in adoration is the greatest of human expressions of which we are capable."

하느님 에 對한 잘못된 믿음 을 가진 基督敎人 보다 無神論 을 主張하는 사람 이 낫다.

[3]

各州 [ 編輯 ]

  1. 윌리엄 템플 지음, 김형식 옮김 (2010). 《基督敎市民의 社會的 責任》 . 韓半島國際大學院大學校 出版部. ISBN   8994170014 .  
  2. 主席(exegesis)은 直譯하면 聖書 이야기(egesis)의 뜻을 밖(ex)으로 내보낸다는 뜻이다. 卽, 主席은 聖書 를 통해 계시된 하느님의 말씀을 異性 學問 으로 聖書를 客觀的으로 批評하는 作業을 함으로써 發見해가는 일을 뜻하는 것으로, 個人이 聖書를 읽고 느낀 主觀的인 感性을 말하거나 記錄하는 默想과는 다르다.
  3. 基督敎思想 2011年 2月號, 大韓基督敎敍懷

外部 링크 [ 編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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