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비아 王國
(
세르비아語
:
Кра?евина Срби?а / Kraljevina Srbija
크랄레비나 스르비야
)은
세르비아
와
마케도니아 共和國
에 있었던 옛 나라이다.
1882年
부터
1918年
까지 存在하였고, 1918年 몬테네그로 王國을 合倂하면서
유고슬라비아 王國
이 되었다.
歷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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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世紀 初期부터 남슬라브人에 屬하는 세르비아人의 獨立 運動이 活潑하였다. 세르비아人은 오스만 帝國의 衰退와
民族主義
의 擡頭에 刺戟을 받아 대세르비아주의를 내걸고 끊임없이 獨立 運動을 하였다.
1867年
에는 투르크軍을 撤收시키고 밀란 오브레노비치 4歲(
밀란 1歲
)를 세르비아 工作(公爵)으로 推戴하였다.
1875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의 叛亂 때 투르크와 再次 싸워 敗하였으나, 범슬라브주의와 結託하고
러시아-투르크 戰爭
때에
러시아 帝國
과 協力하여 투르크와 싸웠으므로
1878年
山스테파노 條約
,
베를린 會議
에서 마침내 獨立이 承認되었다.
이 나라는 民族的으로는
슬라브족
에 屬하고
오스트리아-헝가리 帝國
의 干涉에서 自由롭지 못하였으므로 범슬라브주의와 범게르만주의가 膠着되는 等 國內 情勢가 複雜하였다.
알렉山다르 1歲
가
1903年
에 암살당한 뒤, 다음 王인
페타르 1歲
(在位 1903-1918)는 이를 解決하기 위하여 必死的으로 努力하였으나, 오스트리아-헝가리의 勢力 擴張 政策과 유럽 列强들의 利害 對立이 발칸을 火藥庫와 같은 狀態로 몰아넣었다.
1908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가
오스트리아-헝가리 帝國
에 倂合되고,
1914年
에는 세르비아의 大學生인
가브릴로 프린치프
에 依해 오스트리아의 皇太子
프란츠 페르디난트
가 被殺되는 事件이 發生한다. 이를
사라예보 事件
理라 한다. 以後,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세르비아에 戰爭을 宣布,
第1次 世界 大戰
이 勃發하였다.
세르비아는 初期에 오스트리아軍의 攻勢를 成功的으로 防禦하였으나,
1915年
에
불가리아
가 參戰한 것을 契機로 繼續 敗北, 나중에 全 國土가 同盟軍에게 점령당한다. 以後 레지스탕스 組織이 세워져 오스트리아軍과 불가리아軍을 執拗하게 괴롭혔으며, 잃어버린 國土를 되찾았다. 前後 세르비아가 中心이 되어
1920年
에 '
세르비아人 크로아티아人 슬로베니아人 王國
'이 成立되고,
1929年
유고슬라비아 王國
으로 改名했다. 유고슬라비아 王國은
1941年
4月
樞軸國
이 侵攻하기 直前까지 存在하였다.
寫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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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代 君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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各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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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atakovi?, Du?an T. (2011). 《Minorities in the Balkans: state policy and interethnic relations (1804?2004): Les minorites dans les Balkans》. Balkanolo?ki institut SANU. 98쪽.
ISBN
978867179068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