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弘
(朴弘,
1941年
2月 27日
~
2019年
11月 9日
[1]
)은
大韓民國
의 敎育者이며
天主敎
예수회
所屬 聖職者이다.
天主敎
新婦로서 政治 關與 發言을 많이 했고, 서강대 總長을 지냈으며
反共主義
,
保守主義
性向의 言論人이기도 했다.
1994年
主思派
發言으로 話題가 되었다.
履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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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니스트로 間或 言論에 글을 寄稿하기도 했다.
1980年
代부터 運動圈 學生들과 論爭을 하였다.
1989年
부터 8年間
서강대학교
總長으로 在職하였다.
[2]
1994年
서강대학교
總長으로 在職中, 主思派 關聯 發言으로 話題가 되었다.
[3]
민주평통 諮問委員으로 宗敎分課委員長을 지냈으며, '主思派'發言 以後 警察官 2名이 그를 密着하며 身邊을 保護하기도 하였다.
[4]
1997年
總長職에서 退任하였다.
[5]
1997年
5月
박홍이 提訴되자 言論인
이도형
은
노재봉
, 辯護士
오제도
等 保守人士 70餘名이 後援會를 꾸렸는데 이때 當時 後援人團 代表를 맡았던 그는 '代表的인 反左翼人士인 朴 前 總長에 對한 彈壓을 물리치기 위해 後援會를 만들었다'고 說明하였다.
[4]
論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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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기훈 遺書代筆事件 背後 發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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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1年
예수회
薄紅 神父(當時 서강대 總長)는 “只今 우리 社會에는 죽음을 煽動하는 어둠의 勢力이 있다”며 聖經위에 손을 올리고 記者會見을 벌이기도 했다.
[6]
[7]
薄紅 神父의 記者會見 以後부터 김기설 學生의 焚身 自殺에 背後가 있다는 報道가 言論에 塗褙질을 하기 始作했고, 강기훈 전민련 總務部長의 이름이 登場했다. 檢察과 警察은 合同으로 搜査本部를 꾸려 大大的인 公安몰이 搜査를 벌여 "강기훈 氏가 金 氏의 遺書를 代身 썼다"며 姜 氏를 拘束起訴했다.
[8]
강기훈은 法院으로부터 目擊者 等 直接的인 證據도 없이 國科搜의 筆跡 鑑定結果와 情況에 따라 自殺幇助 및
國家保安法
違反으로 懲役 3年에 資格停止 1年 6月을 宣告받고
1994年
8月 17日
滿期 出所했으나 事件 發生 16年 만인
2007年
11月 13日
大韓民國 眞實和解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는 第58次 全員委員會 會議에서 ‘강기훈 遺書代筆 疑惑事件’에 對한 眞實糾明 決定을 내리고 國家의 謝過와 再審 等의 措置를 取할 것을 勸告했다.
[6]
이에 따라 2012年 大法院의 再審이 開始되었으며, 2014年 2月 13日 再審 判決에서 서울高等法院은 當時 檢察이 提示한 筆跡 感情이 信憑性이 없으며, 遺書 代筆 및 自殺 幇助에 對해 無嫌疑·無罪로 재판결하였다.
[9]
[10]
이에 檢察이 判決에 不服하여 大法院에 上告하였고 2015年 5月14日 大法院은 檢察의 上告를 棄却하고 再審에서 강기훈의 無罪를 宣告한 原審을 確定했다.
[11]
主思派 發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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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年 大韓民國은
우루과이라운드
批准 問題로 큰 紅疫을 치렀다. 當時 農民과 大學生等은
우루과이라운드
가 通過되면 農家 沒落으로 이어진다며 激烈한 反對 示威를 벌였다. 學生과 農民들의 反對示威가 增幅되며 野黨까지 反對에 加勢하며
우루과이라운드
通過가 不透明해 보였다.
[12]
그 때
예수회
薄紅 神父(當時 서강대 總長)가 7月 18日 "
우루과이라운드
反對 示威 背後에
主思派
가 있고 主思派 背後는 金正日이다"는 發言으로 世上을 놀라게 했다.
[13]
薄紅 總長의 發言 以後 公安政局이 造成되며
우루과이라운드
反對 示威는 小康狀態에 접어들고 그해 12月 國會에서
WTO
批准案이 國會를 通過한다.
告解聖事 祕密漏泄 嫌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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薄紅 總長의 '主思派 發言'으로 엄청난 社會的 波長이 運動圈 人士들은 薄紅 總長에게 根據를 대라며 追窮했다. 이에 對해 薄紅 總長은 "主思派 關聯 內容을 告解聖事 때 들은 內容"이라고 答했다. 이에 天主敎 正義具現全國聯合 金東周 共同議長 等 神도 6名이 薄紅 神父를 '告解聖事 祕密 漏泄 嫌疑'로 서울大敎區에 告發했다. 當時 서울大敎區 事務處長이었던 廉洙政 樞機卿은 事件 調査를 擔當했고 薄紅 總長에 對해 無嫌疑 處理했다.
[14]
以外 活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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超宗敎포럼 活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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改新敎界에서 最大 異端으로 指目하고 있는
統一敎
가 主軸이 된 韓國宗敎協議會는 超宗敎포럼을 만들어 每年 포럼을 開催하고 있다. 이 超宗敎포럼은 宗敎間 對話를 통해 宗敎間 統一을 摸索하는 곳이다. 이 포럼의 1代 招待 講師가 예수회의 薄紅神父다.
[15]
以後에도 그는 이 超宗敎포럼에서 講演을 하며 꾸준한 活動을 하였다.
2000年代 以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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間或 言論에 칼럼을 寄稿하기도 한다.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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各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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