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춘석
(朴椿石,
1930年
5月 8日
~
2010年
3月 14日
)은
大韓民國
의
作曲家
이다. 本名(本名)은
박의병
(朴義秉), 號(號)는 白虎(白皓)이다.
生涯
[
編輯
]
박춘석은 1930年 5月 8日
서울特別市
에서 태어나
경기고등학교
를 卒業하여
서울大學校
音樂學科에 入學했으나 끝내 中退하고
慶熙大學校
英語英文學科에 編入學을 한 以後
學士
學位를 마쳤다.
1952年
美8軍
舞臺에서 피아니스트 첫 데뷔한 그는 1955年
백일희
가 부른 《黃昏의 엘레지》를 作詞, 作曲하면서 作曲家로 데뷔하여 그 以後에 《
비 내리는 湖南線
》,《
麻布終點
》,《초우》를 包含한 2700餘個 作品을 作曲하였다. 特히 歌手
李美子
의 노래를 많이 作曲했으며, 《한番 준 마음인데》와 《섬마을 先生님》을 作曲한 作曲家로 有名하다.
[2]
[2]
그는 以後 國內 最高의 作曲家로 발돋움하였고, 日本에서도 有名해져 日本의 國民歌手
미소라 히바리
에게 曲을 吹入해 주기도 하였다.
KBS 歌謠大賞과 KBS 歌謠, 家事, 音盤奇劃上, MBC 10代 歌謠祭 特別賞 等 歌謠界에서 受賞을 많이 했으며, 1995年에는
獄官文化勳章
(4等級)을 받기도 하였다.
1990年에는 世界 法保社 會長을 맡기도 했고, 1992年에는
통일국민당
創黨 發起人과 統一國民黨 文化藝術行政特任拷問, 以後 1996年
自由民主聯合
文化藝術行政特任拷問 職位로 暫時 活動한 經歷이 있다.
平生 獨身으로 살았으며, 1994年
腦卒中
으로 쓰러진 以後 作曲 活動을 暫定 中斷했고, 동생 박금석의 보살핌을 받다가 2010年 3月 14日에 自宅에서 81歲의 나이로 他界했다.
박춘석 先生의 屍身은 2010年 3月 18日에 京畿道 남양주시 화도읍 月山里
모란공원
에 묻혔으며,
[1]
2010年 事後
銀冠文化勳章
이 追敍되었다.
受賞
[
編輯
]
學歷
[
編輯
]
經歷
[
編輯
]
- 1990年 世界 法保社 會長
- 1992年 統一國民黨 創黨 發起人
各州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