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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名
| 임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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出生
| 1978年 12月 17日
(
1978-12-17
)
(45歲)
캐나다
서스캐처원州
새스커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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性別
| 男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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職業
| 歌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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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 발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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活動 時期
| 1998年
~
2013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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所屬社
| LIM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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所屬 그룹
| 싸이코抛닉(Psychophon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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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Louis,
本名
:
임상훈
[1]
,
1978年
12月 17日
~ )는
1998年
데뷔한
大韓民國
의
歌手
이다. 1998年 正規 音盤 《Possibility》로 데뷔하였으며, 2000年 두 番째 正規 音盤 《天才少年》을 發賣하였다. 以後 앨컴(Alchem)과 함께 프로젝트 그룹 싸이코抛닉(Psychophonic)을 結成하여 2001年 《Psychophonic》을 發賣하였고
[2]
, 이듬해에는 2人組 그룹 春婦라더쓰를 프로듀싱하였다.
生涯
[
編輯
]
데뷔 移轉
[
編輯
]
루이스는 1978年 12月 17日
캐나다
서스캐처원州
새스커툰
에서 태어나 幼年期를 보내다가, 大韓民國으로 와 서울特別市 강남구의
서울압구정초등학교
를 卒業하였다.
[3]
아홉 살의 나이에
피아노
를 獨學으로 익혔고, 中學校 1學年이던 해에는
作曲
을 始作하였다.
[3]
그는
狎鷗亭中學校
를 다니던 途中 3學年을 다 마치지 않고 캐나다로 留學을 가, 故鄕인 새스커툰에 있는 월터 머레이 컬리지엣(Walter Murray Collegiate)으로 編入하여 音樂을 工夫하였다.
[3]
[4]
以後
美國
뉴저지州
버건 軍
테너플라이
에 있는 테너플라이 高等學校(Tenafly High School)에 進學하였고, ‘Dead End’라는 록 그룹을 結成하여 1994年과 1995年 두 番 地域 音樂 競演 大會에 나가기도 하였다.
[3]
[4]
그러나 卒業하지 못하고 大韓民國으로 歸國하였으며
[5]
, 서울特別市 용산구 용산동2街에 있는
韓國基督敎100周年記念外國人學校
에 進學한 뒤 修了할 때까지 未發表 自作曲을 만들었다.
[3]
[4]
檢定考試
로 高等學校 卒業學歷을 땄으며
[5]
, 다시 美國으로 돌아가
텍사스州
에 있는 텍사스 컬리지(Texas College)에 在學하였다.
[3]
1998-99: 데뷔와 中國 活動
[
編輯
]
1998年 初 루이스는
서영은
의 데뷔 音盤 收錄曲 〈餘韻〉의 作曲을 맡아 作曲家로 데뷔하였다.
[6]
1998年 3月 31日
[7]
첫 番째 正規 音盤 《Possibility》가 發賣되었다. 이 音盤에는
김준선
이 作曲者로 參與하였다.
[8]
2番 트랙 〈20〉은 루이스가 作詞 및 作曲을 맡고
羽狀文
이 編曲한 自傳的인 歌詞의
록 발라드
曲으로, 피아노와 기타에
서재형
과
김재만
이 參與하였다.
[9]
8番 트랙 〈루이스의 사랑〉은 김준선이 作詞와 作曲을 맡고 羽狀文과 김준선이 編曲한 록 댄스 曲으로,
N.EX.T
의
김세황
이 기타를 擔當하였다.
[9]
以後 루이스는 大韓民國과
中國
을 오가며 活動하였다.
[6]
1998年 6月 25日 中國
랴오닝省
선양시
로 出國하여
[10]
6月 末 콘서트를 進行하였다.
[11]
11月에는 中國에서 新曲 〈???(等着?)
→랄랄라(널 기다리며)
〉를 타이틀 曲으로 하는 音盤을 發賣하였는데, 루이스가 作詞와 作曲을 한 이 노래는 男女 사이의 슬픈 사랑을 表現한 曲이다.
[9]
1999年에는 中國에서 〈Yao, yao !! (搖搖)〉라는 댄스 音樂 曲을 公開하였다.
[12]
이 曲은
스티비 원더
의 〈Sir Duke〉 一部分을 全州에 應用하였다.
[13]
같은 해 여름에는 大韓民國에서 新曲 〈
中華斑點
〉을 公開하였다.
[14]
[15]
[16]
이 曲은 中國風 멜로디와 한국풍 트로트 리듬이 才致 있는 歌辭와 함께 섞인 것이 特徵이다.
[16]
인트로는
노브레인
과 위퍼(Weeper)의 合作 音盤 《OUR NATION 2》의 9番 트랙 〈無題〉로부터 모티브를 얻었다.
[17]
2000-05:
天才少年
, 프로듀서와 그룹 活動
[
編輯
]
2000年 5月 18日
[18]
두 番째 正規 音盤 《天才少年》李 發賣되었다.
[16]
루이스 自身이 프로듀싱韓 이 音盤은 元來 1999年 8月 中旬에 發賣될 計劃이었다.
[19]
타이틀 曲 〈Angelina〉(엔젤리나)는 루이스가 作曲한
칸소네
風의 록 발라드 曲이다.
[19]
[16]
6番 트랙 〈中華斑點〉은 1999年 여름에 公開되었던 曲을 실은 것이다.
2000年 6月 루이스는 共同 프로듀서 앨컴(Alchem), 매니저 이지노와 함께 實驗的인 인디 音樂을 追求하는 實驗獨立萬歲(實驗獨立萬歲)라는 團體를 創團하고, 그와 同時에 앨컴과 함께 싸이코抛닉(Psychophonic)이라는 2人組 그룹을 結成하였다.
[20]
싸이코抛닉은 2001年 4月 17日 첫 番째 正規 音盤 《Psychophonic》을 發賣하였다.
[21]
타이틀 曲 〈社(死)〉는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의 感情을 나타낸 曲으로
[2]
,
우순실
의 窓과
그것이 알고 싶다
에서 放映된 自殺 育成이 샘플링되어 있다.
[22]
3番 트랙 〈헤어지는 親舊에게〉는 元來 入隊를 앞둔 親舊를 위하여 썼던 曲으로, 國樂 打樂器 소리를 샘플링하여 굿거리 장단을 具現하였고, 直接 분 代金 소리를 샘플링하여 代金을 연주하는 것처럼 만들었다.
[22]
4番 트랙 〈성난 개구리가 길에서 만난 수레를 받다〉와 6番 트랙 〈고스톱 랩소디〉는 2001年 映畫 《7人의 追憶》에 揷入되었다.
[2]
5番 트랙 〈中華斑點 - 完存 詐欺 라이부 버전〉은 루이스의 두 番째 正規 音盤에 실린 〈中華斑點〉에 拍手와 喊聲 소리, 호니 플레이(Horny Play)의 管樂器 소리 等을 더하여 再編曲韓 曲이다.
[22]
7番 트랙 〈追憶 속에서〉는 自身의 追憶에 남아 있는 相對의 모습을 記憶하겠다는 內容으로
[22]
, 뉴에이지 테크노 장르의 雄壯한 曲이다.
[2]
9番 트랙 〈移動(移東)〉은 시베리아의 騎馬民族이 南東쪽으로 移動하여 韓半島에 定着하였다는 學說을 形象化한 演奏曲으로, 말발굽 소리, 눈 밟는 소리 等이 샘플링되었다.
[22]
12番 트랙 〈異常無〉는 音盤의 意圖에 關한 曲으로, 電動式 鉛筆깎이와 라디오의 소리가 샘플링되었다.
[22]
2001年 여름 루이스는 實驗獨立萬歲의 이름으로
日本軍 ‘慰安婦’
被害者를 위한 憲政 音盤인 《Tribute to 慰安婦 할머니》를 發賣하고
[6]
, 나아가 日本軍 ‘慰安婦’ 問題에 對한 關心을 喚起하기 위하여 8月 13日에 憲政 公演 “할머니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를 開催하였다.
[23]
루이스는 1999年, 日本軍 ‘慰安婦’ 被害者인 강덕경(姜德景)이 그린 《빼앗긴 純情》을 보고 衝擊을 받아, 韓國 文化와 歷史를 工夫하고, 日本軍 ‘慰安婦’에 關하여 다양한 資料를 찾기 始作하였다.
[5]
[24]
韓國挺身隊問題對策協議會
에서는 音盤의 企劃 趣旨에 맞게 문필기(文必琪)를 推薦하여, 문필기는 타이틀 曲 〈빼앗긴 純情〉의 歌唱에 參與하였다.
[6]
[25]
이 曲은 ‘난 아파요. 난 울었죠. 난 버렸죠. 날 街뒀죠.’ 等의 歌詞가 反復되는 曲으로, 《빼앗긴 純情》을 主題로 한다.
[1]
[26]
2番 트랙 〈證言〉은 日本軍 ‘慰安婦’ 被害者의 經驗을
권희덕
의 나레이션으로 옮긴 曲이다.
[24]
[26]
3番 트랙 〈조용한 아침의 나라〉는 同名의 詩를 主題로 한 曲으로, 우순실이 歌唱하였으며, 〈
눈물젖은 豆滿江
〉의 全州를 샘플링하였다.
[26]
4番 트랙 〈끌려감〉은 日本軍 ‘慰安婦’ 被害者인 김순덕(金順德)의 同名의 그림을 主題로 한 曲이며, 5番 트랙 〈엄마의 日記를 펴고...〉는 루이스의 旣存 音盤에 실린 것을 그대로 가져왔다.
[26]
그 밖에 7番 트랙으로 〈
아리랑
〉李, 10番 트랙으로 編曲된 〈
愛國歌
〉가 실려 있다.
[26]
2001年 10月, 루이스는 두 名의 靑年 맹춘식(
本名
:
최창국)과 孟春三(
本名
:
金俊昊)李 ‘椿府라더쓰’라는 이름으로 〈中華斑點〉을 립싱크하여 올린 獵奇 黑白 動映像을 偶然히 보았다.
[27]
[28]
둘은
서울신명초등학교
와
신명中學校
同窓으로
[29]
, 2001年에 高等學校를 卒業한 後 서로 다른 食堂에서 일하다가 만나 親해진 뒤, 孟春三의 畫像 카메라를 利用하여 사각팬티만 입은 차림으로 ‘
뽀뽀뽀
’, ‘짤랑짤랑’, ‘
곰 세 마리
’, ‘
國民體操
’ 等의 映像을 찍어 올렸었다.
[27]
[30]
루이스는 이들을 만난 뒤 自身이 企劃하던
韓日월드컵
音盤을 함께 作業하기로 하였으며
[27]
, 곧이어 춘부라더쓰는 루이스가 세운 LIM 엔터테인먼트에 所屬되었다.
[30]
루이스는 總 13曲이 收錄된 《椿府라더쓰 월드컵쏭》이라는 音盤을 프로듀싱하였으며
[31]
, 춘부라더쓰는 2002年 2月부터 트럭을 타고 월드컵 應援歌를 부르며 거리 公演을 進行하면서 誠金을 모아 孤兒院에 蹴球공을 보내는 캠페인을 하였다.
[27]
[32]
이들은 ‘明朗’ 獵奇家手로 人氣를 끌었으나
[30]
, 軍 服務로 活動을 中斷하였다.
[28]
2006-現在: 一般人으로의 삶
[
編輯
]
2006年頃 서울
弘大
에서 ‘FF’라는
클럽
을 經營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2013年 8月 30日 첫 番째 디지털 싱글 〈乾杯〉를 始作으로 몇 次例 디지털 싱글을 發表하였으며, 新人 歌手 김도형, 虎口, 임상헌 等의 프로듀싱
[33]
[34]
[35]
을 맡았다. 한便 루이스의 音盤에 자주 參與한 作曲家 전영진은
郵送情報大學
글로벌實用藝術學部 專任敎授로 在職 中이다.
[36]
音盤 目錄
[
編輯
]
正規 音盤
[
編輯
]
順序
|
情報
|
트랙 리스트
|
1
|
《
Possibility
》
|
- 226 (INTRO)
- 20
- 엄마의 日記를 펴고
- 對價 PART1
- 對價 PART2
- 다시 내게
- 날개
- 루이스의 사랑
- 오늘 하루쯤
- 付託해
- 엄마의 日記를 펴고 (Piano Version)
|
2
|
《
天才少年
》
|
- Angelina
- 밤의 王子
- 다시 내게 돌아와
- 랄랄라 (널 기다리며)
- 엄마의 日記를 펴고
- 中華斑點
- Yao, Yao!!
- 自虐
- 스물 (20)
- 等着?
- 中?一家
- 랄랄라 (‘千年’-Mix)
|
디지털 싱글
[
編輯
]
順序
|
情報
|
트랙 리스트
|
1
|
〈
乾杯
〉
|
- 乾杯
- 乾杯 (Inst.)
|
2
|
〈
五臺山 戀歌
〉 (with 임춘수)
|
- 五臺山戀歌
- 五臺山戀歌 (Inst.)
|
3
|
〈
승미에게
〉
|
- 승미에게
- 승미에게 (Inst.)
|
音盤 外 活動
[
編輯
]
公演
[
編輯
]
- 1998年 6月 - 콘서트 (中國 선양)
- 2001年 8月 13日 - “할머니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서울 연강홀)
放送
[
編輯
]
- 1998年 10月 3日 -
SBS
《서세원의 좋은 世上 만들기》
[37]
家族 關係
[
編輯
]
家族으로 아버지, 어머니, 누나, 男동생이 있다. 누나는 大學校에서
첼로
를 專攻하였고, 男동생은 中國에서 留學한 經歷이 있다.
[5]
루이스의 아버지 임춘수
[5]
[38]
는
1·4 後退
때
咸鏡南道
함흥시
에서
서울
로 避難하였다.
[39]
1966年 寶城高等學校를 卒業하고 1973年
東國大學校
經濟學科를 卒業하였으며, 1976年
캐나다
서스캐처원 州立大學 經營大學院을 卒業한 뒤 三 年 間
프라이스워터하우스 캐나다
에 在職하였다.
[40]
1980年에 春水物産과 漢陽잉크(當時 漢陽化學工業
[41]
)를 設立하였다.
[42]
2019年 1月 21日에 루이스와 함께 부른 발라드 〈五臺山 戀歌〉를 發賣하였다.
[43]
루이스의 어머니 壬寅獄
[5]
은
延世大學校
生化學科를 卒業한 뒤 1983年부터 約 三 年 동안 女性의전화에서 相談員과 敎育部長으로 勤務하였고, 1989年에는
女性新聞
敎育文化院의 初代 院長을 맡았으며, 以後 女性新聞의 理事職을 맡고 있다.
[38]
2010年에는 延世大學校 女子總同窓會長에 就任하였다.
[44]
같이 보기
[
編輯
]
各州
[
編輯
]
外部 링크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