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혁명선언
(朝鮮革命宣言)은
1923年
中國
北京
에 亡命中이던
신채호
(申采浩)가 祕密 抗日結社 團體인
義烈團
(義烈團)의 宣言文으로 作成한 글이다.
1919年 11月 10日에 創立되었던 義烈團은 ① 倭놈들을 몰아내고 ② 祖國을 되찾고 ③ 社會 階級을 없애고 ④ 平等을 追求하는 綱領과 <天下 正義(正義)의 율(律)을 猛烈하게 實踐함> 等의 公約 10條를 가지고 있었으며, 1923年 申采浩에게 委囑하여 6千 4百餘 者로 構成된 民族革命主義的인 이 獨立 宣言文을 提示하였다. 이 宣言文은 모든 義烈團 團員들이 恒常 所持하고 다녔을 뿐만 아니라, 1919年에 發表되었던 三日 獨立宣言文(三一獨立宣言文) 以後 가장 큰 歷史的 意義를 지닌 獨立思想을 밝힌 文獻으로 評價되었다. 이 宣言에 提示된 獨立事象은 1920年代 國內에서 日制를 匪賊國花(非敵國化)하고 妥協하려는 妥協主義와
上海 臨政
內의 外交路線主義論에 反對하여 暴力鬪爭的인 抗日鬪爭路線을 正當化했을 뿐만 아니라
아나키즘
의 影響을 받아 半强權(反强權), 反엘리트主義로 '民衆의 直接 革命'의 理念을 提示하였다. 따라서 이 宣言은 民衆·暴力의 두 要素를 結合시킨 아니키즘적 民衆革命, 暴力의 哲學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文獻에서 申采浩는 1905年 以來의 英雄史觀적(英雄史觀的) 色彩를 가진 自强主義(自强主義)를 克服하고 獨立鬪爭의 主體를 自强論的 엘리트에서 民衆으로 전환시켰을 뿐만 아니라 溫乾한 實力養成主義에서 革命的 民族主義로 그의 思想을 발전시켰다. 이 民衆·暴力의 아나키즘的 哲學에 依해 "
安重根
·
李在明
等 烈士의 暴力的 行動이 熱烈하였지만, 그 後面에 民衆的 力量의 基礎가 없으며
3·1運動
이 萬歲 소리에 民衆的 一致의 意氣를 볼 수는 있었으나 또한 暴力的 中心을 가지지 못했다"(同宣言)라고 民族革命主義的 獨立鬪爭의 歷史觀을 提示하기에 이르렀다. 이 思想에는
리스청
(李石曾) 等의 中國 無政府主義의 影響이 認定될 뿐만 아니라 獨立運動의 主敵인 日帝(日帝)를 아나키즘的인 反强權主義에 따라 그 絶對的인 敵으로 打倒해야 할 對象으로 設定한 反帝國主義 路線이 明白히 드러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