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성마립간
(實聖麻立干, ? ~
417年
陰曆 5月
, 在位
402年
陰曆 2月
~
417年
陰曆 5月
)은
新羅
의 第18代 賃金이며
김알지
의 後孫으로
伊飡
대서지
(大西知)와 이리부인 昔氏(伊利夫人 昔氏)의 아들이다. 다른 이름은 실紂王(實主王), 보주(寶主), 洑金(寶金)이다.
生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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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
김대서地
는
김말구
의 아들이라 하나 時期的으로 많이 差異가 나서 多少 不明確하며,
一然
의
三國遺事
에는
미추 尼斯今
의 동생이라 한다.
三國史記
의 說을 따르면 그는
김말구
의 아들이고, 構圖(仇道)葛文王의 孫子가 된다. 그러나
三國遺事
에는 아버지 대서지는
미추 尼斯今
의 동생으로 傳한다. 그의 出生地에 對한 記錄은 未詳이었으나,
浦項 냉수리 新羅碑
에서 그를 濁部 司敷地王(喙部 斯夫智王)이라 稱한 대목이 發見되어 그가
新羅
의 首都인
金星
의 濁部에서 태어난 것이 確認되었다.
三國史記에 依하면 실성은 키가 7隻 5寸
[1]
이 되었고 사람됨이 똑똑하고 빼어나서 未來를 볼 줄 알았다고 한다.
夫人은
미추 尼斯今
의 딸 아루夫人 金氏이다.
내물 尼斯今
이 죽고 그의 아들이 아직 어려 실성이 代身 王으로 옹립되었다.
[2]
元年인
402年
陰曆 3月
왜
와 友好를 맺고
미사흔
(未斯欣)을 볼모로 보냈다.
[3]
403年
陰曆 7月
百濟
가 侵入했으나 記錄이 仔細하지 않다.
405年
陰曆 4月 倭가 侵入해 명활성을 攻擊했으나 깨트리지 못했고, 尼斯今이 騎兵을 거느리고 退路를 막아 3百餘 名의 倭軍을 죽이거나 사로잡았다.
[4]
왜는
407年
陰曆 3月과 6月에 東쪽과 南쪽으로 다시 侵入하여 擄掠질을 해 一百餘 住民들이 被害를 입었다.
408年
陰曆 2月 倭人들이
對馬島
에 軍營을 設置한다는 말을 듣고 失性 麻立干은 先攻할 計劃을 세웠으나,
舒弗邯
미사品이 " '武器란 凶하며, 싸움이란 危險하다'란 말이 있습니다. 하물며 큰 바다를 건너 他國을 치다가 失敗한다면 後悔해도 所用이 없습니다. 그보다 險한 곳에 依支해 關門을 設置해 두었다가 그들이 오면 막아 우리를 어지럽히지 못하게 하고, 유리할 때 나가 사로잡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이것이 곧 남을 利用하며 이용당하지 않는 計略으로, 對策 가운데 으뜸일 것입니다." 라고 助言하여 실성 麻立干이 그의 말을 좇았다. 이가 곧 新羅의 對倭 防衛戰力이 되었다.
412年
失性 麻立干은
내물 麻立干
의 아들
復戶
를
高句麗
에 볼모로 보냈고,
415年
陰曆 8月 倭人들과 馮道(風島)에서 싸워 이겼다.
실성마립간은 復戶에 이어 내물 麻立干의 또 다른 아들 눌지까지 高句麗에 볼모로 보내려다 오히려 高句麗의 支援을 받은 눌지가 反旗를 들어, 結局 눌지에게 處刑되고, 눌지가 그의 뒤를 이어 王位에 오름으로써 金氏의 王位 繼承이 이어지게 되었다.
家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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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王妃인 아류부인 金氏는
미추 尼斯今
의 딸이라 한다.
- 아버지 : 伊飡 김대서地(金大西知)
- 어머니 : 이리부인 昔氏(伊利夫人 昔氏) - 아간
석등보
(昔登保)의 딸
- 王后 : 아류부인 金氏(阿留夫人 金氏)
- 아들 : 김치휴(金?休)
- 딸 : 아로夫人 金氏(阿老夫人 金氏) -
눌지 麻立干
(訥祗麻立干)의 王妃
- 딸 :
治術公州
(?述公主) -
朴濟相
(朴提上)의 夫人
失性 麻立干이 登場한 作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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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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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各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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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約 173cm 或은 184cm로 推算. 當時 隻을 23cm 或은 24.5cm 程度로 본다.
- ↑
김부식
(1145). 〈
本紀 卷3 失性 尼斯今
〉. 《
三國史記
》.
實聖尼師今立 閼智裔孫 大西知伊?之子 母伊利夫人 伊一作企 昔登保阿干之女 妃味鄒王女也 實聖身長七尺五寸 明達有遠識 奈勿薨 其子幼少 國人立實聖繼位(失性 尼斯今(實聖尼師今)李 王位에 올랐다. 알지(閼智)의 後孫으로 伊飡 대서지(大西知)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이리부인(伊利夫人) <이(伊)를 또는 基(企)로도 썼다.>으로 아간(阿干) 석등보(昔登保)의 딸이다. 王妃는 味鄒王의 딸이다. 失性(實聖)은 키가 일곱 자 다섯 치이고 智慧가 밝고 事理에 通達하여 앞 일을 멀리 내다보는 識見이 있었다. 奈勿王이 죽고 그 아들이 아직 어렸으므로 나라 사람들이 失性을 세워 王位를 잇도록 하였다. )
- ↑
김부식
(1145). 〈
本紀 卷3 失性 尼斯今
〉. 《
三國史記
》.
元年 三月 與倭國通好 以奈勿王子未斯欣爲質(元年 3月에 왜와 友好를 통하고, 奈勿王의 아들 미사흔(未斯欣)}을 볼모로 삼았다. )
- ↑
김부식
(1145). 〈
本紀 卷3 失性 尼斯今
〉. 《
三國史記
》.
四年 夏四月 倭兵來攻明活城 不克而歸 王率騎兵 要之獨山之南 再戰破之 殺獲三百餘級 (4年 여름 4月에 왜의 軍士들이 와서 명활성(明活城)을 攻擊하였으나 이기지 못하고 돌아갔다. 왕이 騎兵을 이끌고 독산(獨山)의 南쪽 길목에서 기다려 다시 한 番 그들을 擊破함으로써 300餘 名을 죽이거나 사로잡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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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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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동 三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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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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所在不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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追尊된 王의 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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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굵은 글씨
: 被葬者가 明確하게 認定받는 王陵
- *
: 被葬者가 異說 없이 確實하게 認定받는 王陵
- 기울기
: 被葬者가 明確하다는 見解가 있는 王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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