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地獄의 塹壕戰 10個月 100萬名 死傷… 只今도 땅罷免 遺骨|東亞日報

地獄의 塹壕戰 10個月 100萬名 死傷… 只今도 땅罷免 遺骨

  • 東亞日報
  • 入力 2014年 7月 28日 03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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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次大戰 勃發 100周年]最大 激戰地 佛샹파뉴-베르됭 가보니

알베르 多뒤르. 21歲. 셰르부르 出身. 23步兵連帶 所屬. 1915年 2月 7日 死亡. 2013年 7月 21日 이곳에서 遺骨이 發見되다.’

24日 프랑스 샹파뉴 地方의 너른 들판이 내려다보이는 마施主 高地 塹壕 遺跡. 第1次 世界大戰 當時 獨逸軍과 聯合軍이 一進一退를 거듭했던 이곳에는 只今도 땅만 罷免 兵士들의 遺骨이 나온다. 地下벙커와 塹壕 곳곳에는 兵士들이 使用했던 녹슨 水桶과 砲彈 破片, 野戰삽 等이 나뒹굴어 當時의 慘狀을 傳한다. 孫女와 함께 이곳을 찾은 張프랑수아 푸코 氏(72)는 “第1次 世界大戰의 地獄을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28日은 1914年 오스트리아-헝가리 帝國이 세르비아에 宣戰布告를 하면서 1次 大戰이 勃發한 지 100周年이 되는 날이다. 사라예보에서 19歲 靑年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오스트리아 皇太子 夫婦를 暗殺할 때만 해도 各國은 크리스마스 以前에 紛爭이 끝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의 同盟國인 獨逸과 오스만제국이 參戰하고 세르비아 篇에는 英國 프랑스 러시아 벨기에 美國 等 列强이 總出動하면서 이 紛爭은 ‘巨大한 戰爭(Great War)’으로 바뀌고 말았다. 4年 4個月이나 持續된 戰爭에서는 死亡者만 1500萬 名이 넘었다. ‘모든 戰爭을 끝내기 위한 戰爭’으로 불렸던 1次 大戰은 그 後의 國家 間 紛爭과 文明의 悲劇을 孕胎下祈禱 했다.

① 프랑스 알자스로렌 지방의 격전지 베르됭 계곡에 있는 전몰장병 묘지. ② 1918년 11월 11일 파리 북쪽 콩피에뉴 숲 속에서 독일군이 제1차 세계대전 항복문서에 서명한 열차. ③ 프랑스 샹파뉴 마시주 참호에서 발굴된 당시 병사들의 물통과 와인병.
프랑스 알자스로렌 地方의 激戰地 베르됭 溪谷에 있는 戰歿將兵 墓地. 1918年 11月 11日 파리 北쪽 콩피에뉴 숲 속에서 獨逸軍이 第1次 世界大戰 降伏文書에 署名한 列車. 프랑스 샹파뉴 마施主 塹壕에서 發掘된 當時 兵士들의 물通過 와인甁.
○ 地獄의 塹壕戰과 現代戰의 始作

프랑스 東北部 알자스로렌 地方의 最大 激戰地였던 베르됭 溪谷. 1916年 프랑스와 獨逸軍이 이곳에 있는 野山 한 個를 占領하려고 10個月間 싸워 兩側에서 100萬 名의 死傷者를 낸 곳이다.

戰爭 當時 ‘破壞된 마을’이 그대로 남아 있고 ‘銃劍 塹壕 博物館’에는 塹壕 속 兵士들의 悲慘했던 모습이 再演돼 있다. 博物館 案內者인 사라 카로멜 氏는 “베르됭은 獨逸軍이 毒가스를 本格的으로 使用한 곳이며 英國軍은 隣近 솜戰鬪에서 탱크를 처음으로 선보였다”며 “1次 大戰은 機關銃 曲射砲 戰鬪機 潛水艦 等 現代戰의 武器體系를 만들어낸 戰爭”이라고 說明했다.

開戰 初期 獨逸은 러시아와 相對하기 前에 먼저 프랑스를 치는 ‘슐리펜 計劃’에 따라 兵力을 이동시켰다. 그런데 파리 隣近 마른 江 流域 戰鬪에서 프랑스와 英國軍의 强力한 抵抗에 부딪히면서 以後 4年間 惡夢 같은 ‘塹壕戰’이 이어졌다. 獨逸은 벨기에 海岸에서 스위스 接境 벨포트로 이어진 電線을 따라 철통같은 防禦線을 構築했고 戰爭은 人的 物的 資源을 動員한 總力 消耗戰 樣相으로 흘렀다.

機關銃이 새로 登場한 戰爭에서 聯合軍은 나폴레옹 時節의 ‘突擊 앞으로’ 戰術을 쓰다가 犧牲者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프랑스軍은 1915年 2, 3月 샹파뉴에서 幅 1.5km도 되지 않는 地域을 奪還하느라 24萬 名 以上의 兵力을 잃었다. 잦은 비로 물이 흥건하게 고이는 塹壕 속 兵士들은 軍靴 신은 발이 凍傷이 걸린 것처럼 神經이 痲痹되면서 皮膚가 썩어 들어가는 ‘참豪族(Trench Foot)’을 앓았다.

1919年 6月. 勝戰國이 된 프랑스는 베르사유 宮殿에서 獨逸에 200億 마르크를 要求하는 講和條約을 맺었다. 앞서 이 宮殿은 1871年 보불戰爭에서 勝利한 프로이센 王 빌헬름 1世가 獨逸帝國 皇帝로 卽位했던 場所로 利用해 獨逸-프랑스 間 複數를 象徵하는 場所가 되기도 됐다.

○ 20世紀 悲劇의 씨앗 뿌려

워싱턴포스트는 “1次 大戰이 모든 것을 바꿨다. 現代의 모든 글로벌 外交 紛爭의 原因을 알려면 이 戰爭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指摘했다.

오스트리아 皇太子 暗殺 事件은 主要 强大國들과 直接的인 利害關係가 없었다. 그런데도 强大國들은 旣存의 同盟條約과 復讐感情이 얽히면서 戰爭에 끌려들어갔다. 프랑스 國際政治學者인 피에르 르누뱅 敎授는 “同盟블록의 硬直 現象”을 1次 大戰의 한 原因으로 꼽았다.

이 戰爭으로 帝政 러시아, 오스트리아-헝가리 帝國, 오스만 帝國, 大英帝國 等 4代 帝國이 崩壞됐다. 帝政 러시아의 崩壞는 世界 最初의 共産主義 國家의 登場으로 이어졌다. 美國은 世界 最强國으로 떠올랐다. 우드로 윌슨 大統領의 ‘民族自決主義’는 第3世界 弱小國들의 獨立運動을 부추겼다.

월스트리트저널은 只今의 우크라이나 事態, 이스라엘-팔레스타인 戰爭도 1次 大戰에 淵源을 두고 있다고 指摘했다. 우크라이나는 1次 大戰 當時 ‘東部戰線’의 가장 熾烈한 戰爭터였다. 우크라이나 西쪽 住民들은 獨逸-오스트리아 便에, 동부는 러시아 쪽에 붙어 싸웠다. 우크라이나를 놓고 벌이는 유럽과 러시아와의 葛藤은 이때부터 싹튼 셈이다.

올해 東北亞, 中東의 不安한 情勢도 100年 前과 비슷하다는 指摘이 잇따르고 있다. 헨리 키신저 前 美 國務長官은 美中 關係를 1次 大戰 當時의 英國과 獨逸 間 霸權競爭과 比較하면서 東北亞에서의 中國과 日本 間의 軍事 衝突을 警告했다. 또 지난 10年間 유럽聯合(EU)의 經濟를 이끌어 온 獨逸이 2014年 브라질 월드컵에서 優勝까지 거두자 獨逸의 霸權을 警戒하는 유럽人들이 늘고 있다.

獨逸 時事主幹 슈피겔은 “1次 大戰의 가장 큰 敎訓은 자유로운 世界秩序가 얼마나 깨지기 쉬운지를 보여주었다는 點”이라고 指摘했다. 最近 유럽이 러시아 制裁에 積極 나서지 않는 理由를 놓고 뉴욕타임스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式의 報復이 巨大 戰爭을 만들 수 있다는 1次 大戰의 敎訓을 되새기고 있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샹파뉴·베르됭=전승훈 特派員 raphy@donga.com

“여기가 지옥의 현장”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서부전선 격전지였던 프랑스 샹파뉴의 마시주 참호 유적지. 이곳에서는 1914년 9월부터 종전 때까지 독일군과 프랑스군이 수십 차례나 진지를 뺏고 빼앗기면서 5만여 명이 숨졌다. 작은 사진은 1차 대전 당시 참호전 모습. 샹파뉴=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여기가 地獄의 現場” 第1次 世界大戰 當時 西部戰線 激戰地였던 프랑스 샹파뉴의 마施主 塹壕 遺跡地. 이곳에서는 1914年 9月부터 終戰 때까지 獨逸軍과 프랑스軍이 數十 次例나 陣地를 뺏고 빼앗기면서 5萬餘 名이 숨졌다. 작은 寫眞은 1次 大戰 當時 塹壕戰 모습. 샹파뉴=전승훈 特派員 raphy@donga.com
#1次世界大戰 100周年 #프랑스 샹파뉴 #베르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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