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出産 醫療事故 死因 밝힌 수민 姑母의 6年 法廷鬪爭|東亞日報

出産 醫療事故 死因 밝힌 수민 姑母의 6年 法廷鬪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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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入力 2010年 6月 8日 03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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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때문에 엄마가 숨진게 아냐… 예쁜 數민아, 이젠 활짝 웃으렴”

제왕절개 分娩뒤 過多出血
擔當醫師 産母狀態 안알린채 큰 病院 移送… 끝내 世上 떠나

檢察 無嫌疑로 起訴않자 訴訟
證據資料-歎願書 2000쪽 넘어… 大法院“醫師 過失” 有罪 確定

수민이 고모 박숙영 씨가 7일 전남 광양시 자택에서 6년 동안 진행된 법정 소송 기록을 살펴보고 있다. 박 씨는 50여 차례나 진행된 민형사 재판을 일일이 지켜봤고 2000쪽이 넘는 증거자료와 탄원서를 수사기관과 법원에 제출해 끝내 병원 측의 거짓을 밝혀냈다. 광양=이형주 기자
수민이 姑母 박숙영 氏가 7日 全南 광양시 自宅에서 6年 동안 進行된 法定 訴訟 記錄을 살펴보고 있다. 朴 氏는 50餘 次例나 進行된 民刑事 裁判을 一一이 지켜봤고 2000쪽이 넘는 證據資料와 歎願書를 搜査機關과 法院에 提出해 끝내 病院 側의 거짓을 밝혀냈다. 光陽=이형주 記者
박숙영(假名·53·女) 氏는 來年에 初等學校에 간다고 좋아하는 조카 수민이(假名·6·女)만 보면 가슴 한쪽이 먹먹해진다. 태어나자마자 엄마와 生離別해 朴 氏의 女同生인 막내 姑母의 손에서 자랐지만 수민이는 조카들 가운데 웃는 모습이 가장 밝은 아이다.

“사람들이 수민이에게 ‘엄마가 너 때문에 돌아가셨다’고 말할 것이 가슴 아팠습니다. 엄마의 죽음은 너 때문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엄마가 수민이를 낳다 世上을 떠난 것이 或是나 사랑스러운 조카에게 傷處가 될까 봐 朴 氏는 6年間의 길고 긴 法廷 싸움을 始作했다.

수민이 生日 다음 날은 수민이 엄마의 忌日이다. 2004年 10月 여느 日曜日처럼 敎會에서 禮拜를 보고 있던 妊娠 37週次 수민 엄마는 갑자기 배 아래쪽에서 묵직한 痛症을 느껴 平素 다니던 京畿道 한 中小都市의 C病院으로 急하게 갔다. 帝王切開 手術로 子宮 節槪를 하자마자 胎盤이 떨어져 나가며 피가 쏟아지기 始作했다. 唐慌한 醫師는 看護師들에게 “産母와 胎兒가 危險하니 빨리 保護者에게 連絡하라”고 소리쳤다. 午後 1時 50分 온몸에 붉은 아토피를 달고 태어난 수민이는 看護師가 몇 番이나 엉덩이를 때린 끝에야 겨우 울음을 터뜨렸다.

縫合 手術이 끝난 엄마의 狀態는 漸漸 나빠졌다. 피를 많이 흘린 탓에 血壓이 繼續 떨어졌지만 醫師는 수민이 엄마의 狀態를 確認하지 않았다. 午後 3時 50分이 돼서야 수민이 엄마는 近處 S病院으로 옮겨졌다. 그러나 醫師가 輸血이 必要한 수민이 엄마의 狀態를 S病院에 明確하게 說明하지 않은 탓에 輸血이 遲延됐고, 수민이 엄마는 다음 날 새벽 過多出血로 世上을 떠났다.

葬禮式場에서 수민이의 세 언니는 하루 終日 엄마를 찾으며 지칠 때까지 울어댔다.

알뜰살뜰 살림을 잘하던 수민 엄마가 갑자기 世上을 뜨자 집안 꼴은 말이 아니었다. 수민이 아빠는 “事故 當時 大處만 잘했어도 아내를 잃지 않았을 것”이라며 每日 술을 마셨다. 當時 12歲로 初等學校 6學年이던 맏언니가 가장(家長)의 짐을 져야 했다. 姑母 朴 氏는 C病院에 醫療 事故에 對한 謝過와 함께 수민이 아토피를 治療할 수 있는 病院費라도 달라고 事情해 봤지만 “病院 잘못은 없다”는 對答만 돌아올 뿐이었다.

朴 氏는 수민이를 위해서라도 수민이 엄마의 死因(死因)과 事故 責任을 分明히 밝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수민이 엄마가 世上을 떠나자마자 警察과 檢察에 過失致死 嫌疑로 醫師를 告發했지만 證據가 없어 起訴되지 않았다.

法院에 訴訟이라도 내면 수민이 治療費라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朴 氏는 2005年 3月 京畿 地域 한 法院에 訴狀을 提出했다. 法廷에서 만난 C病院 醫師는 “午後 2時 40分 帝王切開 手術을 마무리한 뒤 胎兒의 狀態가 危重해 胎兒를 後送하는 데 同行하느라 産母의 狀態를 체크하지 못했다”고 발뺌했지만 目擊者들은 醫師가 同行한 事實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수민이 엄마가 世上을 떠난 지 半年이 지나 朴 氏가 가진 證據는 아무것도 없었다. 2006年 3月 朴 氏는 차근차근 證據를 모으기 始作했다. “保險社에 提出해야 하니 胎兒의 차트를 달라”고 事情해 病院에서 수민이 차트를 入手했다. 어렵게 求한 차트에는 수민이가 S病院에 到着한 時間이 午後 2時 半으로 記錄돼 있었다. 2時 40分 手術을 마친 醫師가 수민이와 2時 半에 S病院에 到着한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았다. 알아보기도 어려운 英語로 적힌 수민이의 차트를 들고 産婦人科 醫師들에게 물어물어 알아보니 수민이의 狀態는 아주 危重한 것은 아니었다. 醫師의 法廷 陳述이 거짓으로 判明 난 瞬間이었다.

수민이 母女를 옮긴 S病院은 朴 氏에게 “血液이 오고 있다”는 理由로 한 時間 半 동안 수민이 엄마의 輸血을 미뤘다. 朴 氏는 病院에 血液을 供給하는 隣近 地域 血液院을 모조리 搜所聞해 事故 4日 前 이미 病院에 血液이 供給돼 있었다는 事實도 確認했다. 結局 2007年 1月 法院은 朴 氏의 손을 들어줬다.

民事訴訟에서 1億餘 원의 賠償 判決이 나면서 刑事 裁判 準備도 一瀉千里로 進行됐다. 2008年 1審에서 無罪가 宣告됐지만 지난해 7月 抗訴審 裁判部는 “醫師가 應急 제왕절개手術 以後에 수민이 엄마를 綿密하게 觀察하지 않았고, 輸血 可能性에 對한 適切한 措置를 取하지 않았다”며 有罪를 宣告해 올해 4月 大法院에서 有罪가 確定됐다.

수민이 엄마가 世上을 떠나고 朴 氏는 全南 광양시의 집에서 수민이 姊妹가 살고 있는 京畿道까지 10時間 거리를 오가면서 飯饌을 챙겨주고 빨래를 해주며 ‘姑母 엄마’ 노릇을 했다. 수민이가 幸여 傷處를 안고 자라는 걸 願치 않아 朴 氏는 수민이 엄마가 지어준 예쁜 이름을 가슴에 묻고 家庭法院에 改名 申請도 냈다.

“이제야 가슴속 응어리가 풀리는 것 같습니다.” 7日 몇 年間 어렵게 모은 證據資料들이 담긴 訴訟 記錄을 整理하던 朴 氏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맺혔다. “病院과 醫師가 수민이에게 未安하다고만 했어도, 수민이 養育費만 주겠다고 했어도 우리 家族이 이렇게 苦痛받지는 않았을 겁니다.”

이서현 記者 baltika7@donga.com
光陽=이형주 記者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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