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冊갈피 속의 오늘]1971年 京畿 光州 大團地 騷擾 事態|東亞日報

[冊갈피 속의 오늘]1971年 京畿 光州 大團地 騷擾 事態

  • 入力 2005年 8月 10日 03時 07分


코멘트
“空氣가 洶洶했다. 그 洶洶한 空氣가 低氣壓을 불러왔음 직했다. 비가 내렸다. 이른 아침부터 거리에 傳單이 撒布되고 壁報가 나붙었다.…11시가 지났다. 11時에 나와서 委員會 代表들과 面談하기로 約束한 사람이 나타나지 않자…모두들 거리로 뛰쳐나오라고 외치는 소리가 골목을 누볐다.”

作家 윤흥길(尹興吉)李 小說 ‘아홉 켤레 구두로 남은 사내’에서 描寫했듯 1971年 8月 10日 競技 光州 大團地 集團騷擾事態는 이렇게 始作됐다. 서울의 板子村에서 쫓겨나 이곳에 定着한 5萬餘 住民들은 곧바로 “배고파 못살겠다. 일자리를 달라”는 口號를 외치며 城南出張所에 불을 질렀다. 當時 동아일보가 ‘無法 부른 不毛 荒野’라는 題目으로 工場 誘致가 안돼 前 住民이 失業者와 다름없던 光州 大團地의 狀況을 르포로 報道할 程度로 이곳은 ‘삶이 없는 都市’였다.

그러나 光州大團地 事業은 發表 때만 해도 庶民들에게 큰 希望이었다. 1968年 김현옥(金玄玉) 서울市長이 計劃하고 1970年 양택식(梁鐸植) 市場이 確定한 이 事業은 京畿 光州의 200萬 坪에 5萬餘 家口 撤去民 移住를 目標로 推進됐다.

問題는 돈. 當時로서는 엄청난 260億 원의 豫算을 마련할 길이 없었던 서울市는 開發利益으로 都市를 建設하는 ‘땅장사’式 開發事業을 推進했다. 여기에 1971年 4月 大選과 5月 總選 公約은 坪當 2000원에 20坪씩 分讓한 땅이 20萬 원에 不法 前賣되는 等 땅값 暴騰과 함께 大規模 轉賣를 불러왔다. 하지만 選擧가 끝난 뒤 公約(公約)은 公約(空約)李 됐고 눈치 빠른 投機業者들이 하나둘 떠나면서 ‘開發 蜃氣樓’도 사라졌다.

이때 서울市가 轉賣入住者들에게 引上된 땅값 納付를 通報하고 選擧 公約이었던 稅金 免除 代身 稅金告知書를 發付하자 住民들의 不滿이 暴發했다. ‘破壞와 거짓 希望, 侮蔑, 暴壓의 時代’(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作家의 말)였던 1970年代 獨裁政權으로서는 想像할 수 없었던 ‘民亂’이 일어난 것이다. 이에 面談 約束을 지키지 않았던 兩 市場이 뒤늦게 나서서 土地 拂下價格 引下, 失業者 救濟 等 住民 要求를 모두 受容함으로써 所要는 끝났다.

自給自足의 基盤施設도 없이 新都市만 建設하면 된다는 當局의 姿勢는 그때나 只今이나 비슷한 듯하다.

金東喆 政治專門記者 eastphil@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火나요
    0
  • 推薦해요

댓글 0

只今 뜨는 뉴스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의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전통문화연구회 "울산대학교한국어처리연구실 옥철영(IT융합전공)교수팀"에서 개발한 한글한자자동변환기를 바탕하여 지속적으로 공동 연구 개발하고 있는 서비스입니다.
- 현재 고유명사(인명, 지명등)을 비롯한 여러 변환오류가 있으며 이를 해결하고자 많은 연구 개발을 진행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이를 인지하시고 다른 곳에서 인용시 한자 변환 결과를 한번 더 검토하시고 사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변환오류 및 건의,문의사항은 juntong@juntong.or.kr로 메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Copyright ⓒ 2020 By '전통문화연구회(傳統文化硏究會)' All Rights reserved.
 한국   대만   중국   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