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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文社會]6·25 그 後 … ‘얻은 者와 잃은 者’|東亞日報

[人文社會]6·25 그 後 … ‘얻은 者와 잃은 者’

  • 入力 2001年 9月 28日 14時 37分


美國이 걸프 地域으로 戰艦과 軍用機를 移動配置하고 테러 膺懲을 위한 21世紀 첫 戰爭 準備에 突入했다. 이보다 앞서 北大西洋條約機構는 “美國에 對한 테러攻擊은 會員國 모두에 對한 攻擊이다”며 强勁한 態度를 보였지만 막상 報復攻擊에 積極 加擔할지는 不透明하다.

유럽聯合은 이참에 지난 2年 동안 遲遲不進하던 域內 犯罪共助體制에 合意하고 유럽統合을 加速化했으며, 日本은 美國의 報復攻擊을 支援한다는 名分으로 自衛隊의 正規軍火를 노리고 있다. 러시아와 中國의 態度는 미적지근하지만 反테러 聯合에 同參 意思를 밝힌 狀態다. 이처럼 各國은 이番 테러 犧牲者들을 哀悼하는 한便 돌아서서는 판勢 읽기와 實속 챙기기에 분주하다.

51年 前 韓半島를 둘러싼 國際關係도 이와 비슷했다. 韓國戰爭은 비록 地理的으로 아시아의 작은 國家에 局限하였고, 또 韓國인 사이의 葛藤으로 始作한 紛爭이었지만 6個 大陸에서 20個國의 軍隊가 參戰한 國際戰으로 번졌다. 勿論 이들이 參戰을 決定하기까지는 나름대로 計算法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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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은 1949年 3月 모스크바로 날아가 스탈린에게 南侵 可能性을 提起하고 協助를 求했다. 贊成도 反對도 하지 않던 스탈린이 이듬해 마음을 바꾸어 北韓에 飛行機, 長距離砲, 탱크를 提供하고 戰鬪經驗이 豐富한 軍事 顧問團을 派遣하는 等 事實上 戰爭을 承認했다. 스탈린은 韓國戰爭을 통해 國內的으로 個人 權力을 强化하고, 中國 共産化 以後 相對的으로 弱化한 아시아圈에서 蘇聯의 影響力을 擴大하고자 했다. 또 아시아에서 戰爭이 일어나면 自然히 유럽에 對한 美國의 援助와 關心이 줄어들 것이라고 豫想했다(그러나 戰爭 結果는 나토의 軍事同盟火, 西獨의 再武裝 等 蘇聯에 不利하게 作用했다).

한便 中國의 마오쩌둥은 韓半島에서 美國의 膨脹을 막지 않으면 中國도 危險하다고 判斷했고 무엇보다 같은 共産國家로서의 信義가 發動했다.

그 사이 美國은 설마 北韓이 蘇聯을 등에 업고 南侵을 敢行하리라고는 豫想하지 못했다. 그것은 곧 美國에 對한 蘇聯의 挑發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 美國의 誤判임이 드러나자 美國은 서둘러 유엔의 支持를 要請했고 이 戰爭에 16個國이 參戰했다. 日本은 後方에서 美國을 側面 支援하며 向後 經濟大國으로 跳躍할 발板을 마련했다.

韓國戰爭의 起源에 對해서는 蘇聯의 膨脹主義의 影響으로 北韓이 南侵했다는 傳統酒의 視角과, 南北韓 葛藤으로 觸發한 內戰으로 보는 修正主義가 大勢를 이룬다. 그러나 90年代 들어 韓國戰爭은 單純한 內轉이 아니며 國際戰으로서 分析해야 한다는 視角이 說得力을 얻는다. 조지아 大學 윌리엄 스툭 敎授(美國 外交史)는 16年에 걸쳐 ‘韓國戰爭의 국제사’에서 “韓國戰爭은 第3次 世界大戰의 代替展이다”고 結論지었다.

國際戰으로서 韓國戰爭의 意味는 戰爭 後 勝者와 敗者가 누구였는지를 따지면 좀더 쉽게 輪廓이 드러난다. 死亡者·負傷者·失踪者를 包含한 韓國의 人命 損失은 300萬 名(全體 人口의 10分의 1)이었고, 財産被害는 北韓 17億 달러, 南韓 20億 달러(1949年 南韓의 GNP에 肉薄하는 數値)에 達한다. 이처럼 韓國은 큰 犧牲을 치르고도 얻은 게 없다. 如前히 分斷狀態이고 緊張과 危險도 줄어들지 않았다. 스툭 敎授는 이 戰爭의 가장 큰 被害者는 바로 韓國人 自身이라고 말한다.

反面 戰爭의 最大 受惠者는 中國이었다. 中國은 戰爭에 介入함으로써 엄청난 人命 損失을 입었지만 最小限 北韓에서 中國의 影響力은 蘇聯과 同等해졌을 뿐만 아니라 美國도 더 以上 中國을 無視할 수 없게 되었다.

戰爭에 介入한 强大國 中 가장 큰 損害를 본 것은 蘇聯이었다. 蘇聯은 國際 共産主義의 唯一한 指導者的 位置를 毁損당했고, 위에 言及했듯 유럽에서 美國의 立地 弱化라는 스탈린의 計算은 빗나갔다.

美國은 一旦 蘇聯과의 競爭에서 勝利했고, 長期的으로 中·蘇 緊張關係가 美國에 利롭게 돌아갔기 때문에 損害볼 것 없는 戰爭이었다. 그러나 以後 中國이라는 새로운 相對를 牽制하는 데 많은 努力을 기울이지 않으며 안 되었다.

韓國戰爭에서 看過하기 쉬운 것이 유엔의 役割이다. 事實 그동안 유엔은 强大國의 들러리로 疑心받았다. 그러나 韓國戰爭에서 유엔은 第3次 世界大戰으로의 擴戰을 不辭한 美國을 沮止하는 데 成功하면서, 弱小國이 超强大國에 影響力을 行使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그러나 이 亦是 韓國과는 無關한 일이었다.

韓國戰爭을 始作한 것은 北韓이었는지 몰라도, 勝利는 中國과 美國이 나눠 가졌다. 또 韓國에 莫大한 被害를 준 韓國戰爭은 逆說的이게도 第3次 世界大戰의 勃發 可能性을 大幅 줄이고 全 世界에 冷戰이라는 ‘長期 平和’를 膳物했다. 美國에 對한 테러 攻擊 以後 새롭게 第3次 世界大戰의 可能性을 論議하는 只今, 果然 各國이 어떤 損益計算書를 뽑아놓았는지 궁금할 뿐이다.

윌리엄 스툭 지음/ 김형인, 김남균, 조성규, 김재민 옮김/ 푸른역사 펴냄/ 864쪽/ 3萬5000원

< 김현미="" 주간동아기자=""> khmzip@donga.com

Tips

윌리엄 스툭 William Stueck

조지아 大學 敎授(美國外交史). 스프링필드 大學을 卒業하고 퀸스 大學에서 碩士學位, 브라운대학에서 博士學位를 받았다. 2000年 8月 조지아 大學 夕座敎授로 任命되었으며, 풀브라이트 交換敎授로 韓國에 滯留한 바 있다. 한-美 外交史 分野의 專門家다.

著書로는 'The Road to Confrontation : American Policy toward China and Korea, 1947~1950''Reading and Writing America History, 2vols'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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